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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100대 명산]28(덕유산/德裕山)-덕유산 원추리!! 본문
그 지역 생태계의 상징적 선구자로서 깃발 든 '잔 다르크'처럼 지표(指標)로서의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리하여 '깃대'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 개념은 국제환경연합(UNEP)에서 제시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리산의 '히어리'와 '반달가슴곰', 설악산의 '눈잣나무'와 '산양', 덕유산의 '구상나무'와 '금강모치' 등을 대표적인 깃대종으로 선정하고 있다. 모두 그 지역의 고유종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성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반면,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지만 '대표종(代表種)'이란 용어도 있다. 그 분포가 흔하고 희소성이 낮아 깃대종에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일정 지역의 상징적인 식물상(植物相)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들이다. 지리산 세석평전과 바래봉의 철쭉, 천관산과 고려산의 진달래, 선운산의 동백꽃, 민둥산이나 화왕산의 억새 등이 그러한 '대표종'들이다.
이들은 생태계의 지표로서 건강성이나 변화의 척도(尺度)가 되지는 못하나 그 지역의 생태계 랜드마크(Landmark)로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고, 그로써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렇게 깃대종은 되지 못했으나 대표종(代表種) 쯤은 되는 상징적 식물 가운데 '덕유산의 원추리'가 있다. 원추리는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 계곡이나 산기슭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백합과의 외떡잎 식물이라 칼처럼 길쭉한 잎이 길고 여리게 자라며 백합처럼 하나로 모인 통꽃이 노랗게 피어 난다.
봄철에 어린 순은 나물로 식용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군집(群集)으로 피어나는 노란 꽃무리가 아름다운데, 매년 여름 덕유산의 주능선을 따라 무더기로 핀 원추리꽃 물결은 그 아름다움이 유별나 많은 산악인을 불러 모으는 덕유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덕유산은 백두대간 종주할 때 대간 능선을 따라 종주했을 뿐 따로이 찾을 기회는 없었다. 다만 겨울 눈 쌓인 동엽령에서의 야영이나 원추리 만발할 여름날 덕유 종주를 몇 차례 계획을 하기는 했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실행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게 무더운 올해 여름이 막바지 폭염의 꼬리를 불태우고 있는 8월 중순 주말에 다락같이 솟은 등짐을 짊어지고 덕유산의 원추리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덕유의 어느 능선 자락에 하룻밤 묵으며, 달빛 아래 하늘거리는 원추리꽃 노란 물결에 취해 볼 아름다운 정취를 꿈꾸면서...
덕유산(德裕山) 원추리!! 일시 : 2013년 8월 17, 18일, 흙과 해의 날
2013년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습하다.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게 길고 지역적으로 편중된 장마와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로 한반도는 이미 아열대 기후로 넘어간 듯하다.
때문에 덕유산 주능에서 원추리 향기에 취해 보겠다는 매년 여름초의 계획은 올해도 자꾸 뒤로 미뤄진다. 대신 물 좋은 계곡 산행이나 바람 시원한 섬 산행 쪽으로만 발길이 이어진다.
이러다 올해도 원추리 구경이 힘들겠다 싶어 마눌에게 덕유산 원추리의 장관을 설명해 주고 박배낭으로 짐을 꾸린다. 덕유는 우리가 백두대간할 때 엄청난 강풍과 폭우 때문에 목숨의 위협을 느꼈던 곳이고, 온종일 맞은 비 때문에 산행 후 난생 처음 저체온증의 위험성을 체험한 곳이어서 감회가 남다른 산이기도 하다.
8월 16일, 토요일 아침. 각기 17kg과 27kg짜리 등짐을 짊어지고 집 뒤 언덕 너머에 있는 광명 KTX역으로 향한다.
덕유산/德裕山
<이곳저곳>
# 8시 18분 광명발 대전행 KTX에 탑승한다. 이번 산행은 차량 회수가 어려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 고속열차가 얼마나 빠른지 대전까지 40분이 채 안걸렸다.
# 대전역에서 대전복합터미널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이 터미널은 지난번 섬진강 잔차종주 때 들른 후 2주일만이다.
# 대전에서 무주구천동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구천동까지는 1시간 40분이 걸린다.
# 구천동 아래 계곡엔 피서 나온 사람들이 아주 많다. 식당가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 셔틀버스가 자주 있지 않아 택시로 무주리조트까지 갔다. 택시비는 미터 찍지 않고 만원을 달래더라.
# 설천봉까지 곤돌라로 올라 갈 예정이다. 출발이 늦어서 어쩔 수 없다. 그래야 해지기 전에 무룡산을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무주리조트는 겨울 스키시즌이 아닌데도 곤돌라 이용객이 아주 많다. 여름철 곤돌라 운임비 만해도 일년 운영비가 나오겠더라. 1인당 편도가 8천원이나 한다.
# 한때 스키에 미쳐 겨울 내내 눈밭에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 마눌과 함께 이 무주리조트에 왔었다. 스키 안탄 지가 십몇 년이 넘었으니 참 오랜만에 곤돌라를 타 본다.
# 한여름 곤돌라 안은 찜통이다.
# 참으로 편하게 설천봉에 도착했다. 햇살이 엄청나게 강하다. 그 햇살 아래 관광객들이 바글바글 하다.
# 슬리퍼 신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 틈에 높다란 등짐을 지고 있으니 자연히 구경거리가 된다.
# 이곳은 겨울날 흰눈에 푹 파묻혀 있을 때가 더 멋진 곳이다.
# 무주의 인간세가 내려다보인다.
# 전방으로는 향적봉이 올려다보이고,
# 우측 멀리 무룡산과 너머에 장수덕유의 모습도 보인다.
# 향적봉을 향해 출발.
# 정상엔 사람들이 많다.
# 주변에는 산오이풀이 지천이다.
# 여름이 저물어 가면서 산오이풀이 끝물로 넘어가는 듯 하다.
# 곤돌라 타고 산책하듯 나온 사람들이 연신 지나치는데, 우리 등짐 보고 다들 입을 딱 벌린다.
# 대부분 반바지에 슬리퍼다. 지난 번 통영 미륵산에서도 케이블카 타고 올라 온 사람들 사이에서 구경거리가 되었었다.
# 향적봉 정상.
#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 차례를 기다려야 사진 하나 남길 수 있다.
# 설천봉이 내려다보인다.
# 겨울에 한번 와야겠다. 녹슨 스키장비를 닦아 볼까?
# 저 멀리 백두대간길 너머에 산이 우뚝하다.
# 땡겨 보자! 아마도 빼재 너머에 있는 삼봉산과 거창삼도봉, 그리고 대덕산인가 보다.
# 향적봉은 광장이 넓다.
# 중봉의 모습.
# 무룡산이 참으로 뾰족하다. 일단 저곳을 목표로 한다.
# 향적봉 정상에서 전방으로 넓게 그림을 펼쳐 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구천동 방향.(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중봉과 그 너머의 백두대간길 파노라마.(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백두대간길이다. 지봉과 대봉쯤 될 것이다.
# 아마도 지봉인 듯하다. 지봉은 못池자를 쓴다. 저 높은 곳에 못이 있었다 한다. 전설이지만...
# 한라산, 지리산, 반야봉, 설악산에 이어 다섯 번째로 높은 곳이다. 곤돌라 덕분에 슬리퍼 차림으로 편안히 오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정상 부근에도 산오이풀이 지천이다.
# 끝물로 향해 가고 있다.
# 미안타만 너말고 원추리는 어디 갔냐?
# 관광객들 틈에서 마음껏 여유를 부려 본다.
# 남덕유까지는 일곱여덟 시간 넘게 걸리겠구나
# 안내판 그대로 찍어 봤다.
# 무룡 좌측 너머로 천왕봉이 보인다.
# 눈으로는 보였는데 사진으로는 윤곽이 희미하다.
# 사방 경치 구경하다가 길을 나선다.
# 사람들 물결에서 벗어 날 수 있다.
# 잠시 가면 좌측 산사면에 향적봉대피소가 있다.
# 대피소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 장박하면서 덕유산 운해나 일출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고풍스러운 장비가 눈에 들어 온다.
# 그 카메라의 시선 방향이다. 내 시각으로는 멋진 촬영장소는 아닌 듯 한데...
# 어떤 남자가 인사도 서두도 없이 단도직입으로 꽃이름을 물어 본다. 산형과(傘形科)는 꽃이름 구분이 참 어렵다는 전제를 하고 궁궁이 아니면 개당귀인듯 하다고 했다. ㅈ도 모르는 구만! 하는 표정으로 가더라. 나중에 확인하니 궁궁이가 맞다.
# 대피소에서 얼음과자와 스포츠 음료 사먹고 휴식하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 주목과 구상나무가 간간이 눈에 들어 온다. 하지만 원추리는 전혀 볼 수가 없다. 어디 있는 거야? 어디?
# 대신 동자꽃만 지천으로 피어 있다.
# 물레나물도 간혹 눈에 띄고.
# 정영엉겅퀴도 개체수가 꽤 되더라.
# 가을이 올려나? 참취도 꽃이 만발했다.
# 산형과 중에서 가장 구별이 쉬운 어수리. 꽃잎이 특징적이어서 그렇다. 새순은 나물로,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 은분취.
# 산꼬리풀. 이 넘도 끝물이다.
# 댕댕~ 종소리 울릴 듯한 모싯대. 원추리가 뵈질 않으니 다른 야생화에 자꾸 눈이 간다.
# 주목이나 구상나무는 연속으로 보인다.
#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사는 나무이다.
# 그 너머로 중봉이 보인다.
# 그래, 이 덕유평전의 원추리를 보러 왔단 말이다.
# 시절 맞지 않아 원추리는 모두 지고 동자꽃과 산오이풀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 불과 일주일 사이에 이렇게 변해버리는 구나!
# 중봉 정상.
# 중봉 정상의 조망. 남덕유, 서봉까지의 덕유 주능과, 좌측으로 금원, 기백으로 이어지는 진양기맥의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 온다.
# 중봉에서 백암봉으로 넘어가는 저 산길은 또 하나 덕유의 멋진 명소이다.
# 저 산길 주변의 덕유평전에 봄에는 철쭉이, 여름엔 원추리가 만발하여 향기를 천지에 뿌리게 된다.
# 중봉은 정상이 약간 초라한 느낌이다.
# 지리산 연하선경의 느낌도 난다.
# 산오이풀, 너라도 있어 위안이 된다. #
# 향적봉을 돌아 본다.
# 중봉을 떠나 백암봉으로 출발.
# 언제 보아도 멋진 길이다.
# 연하선경과 여러모로 흡사하다.
# 저 길 양옆으로 철쭉이 활짝 피었거나, 원추리 물결 넘실거릴 때를 상상해 보라!
# 노란 물결 일렁거려야 할 곳에 늙은 잎사귀만 남았다.
# 비록 꽃 없어도 길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곳이다.
# 돌아 보아도 그러하다.
# 겨울날 하얀 눈꽃 피었을 때도 아름다운 곳이고.
# 오늘은 길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만족하자!
#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 원추리는 꽃을 모두 떨어뜨리고 이렇게 씨방으로만 남아 있다.
# 뙤약볕에 노출된 채 길게 걸어 백암봉에 올랐다.
# 중봉 거쳐 향적봉 가는 길과,
# 횡경재 가는 대간길, 그리고 동엽령,육십령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 갈라져서 송계삼거리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 2005년에 백두대간하면서 그 자리, 그 포즈로 사진 찍은 곳이다.
# 그때처럼 고추잠자리가 엄청나게 많다.
# 저 무거운 배낭을 둘러 메고 가야 한다.
# 출발이다!
# 덕유의 주능은 내도록 뙤약볕에 노출되어 걷는다.
# 일단 저쪽 동엽령까지 가보자!
# 무룡산이 참 뾰족하기도 하다.
# 저 뾰족한 곳까지 가야 한단 말이지! 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 마눌은 언제나 앞장서서 잘 간다.
# 이곳도 원추리꽃 만발했을 곳이다.
# 그런데, 가만... 저기 중간중간 노란색이 있는데?
# 심봤다~ 원추리다~
# 늦둥이로 남은 게 있었구나!
# 사면쪽으로 제법 여러 개체가 보인다.
# 원추리다~ 원추리! 하며 고함을 질렀는데, 이 사람이 불쑥 나타나며 화들짝 놀래더라.
# 시들어 빠진 원추리가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고함이냐? 하는 표정으로 지나쳐 가지만, 오늘 나에게 이 시든 원추리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는 모른다.
# 중봉, 향적봉, 백암봉 일대에는 한 개채도 없던 원추리가 주능 주변으로 간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록 시들어 가는 넘들 뿐이지만...
# 1312봉 가는 길의 암봉.
# 동엽령이 코앞이다.
# 병곡리 계곡이 내려다 보인다.
# 덕유의 옆구리 암봉 하나 우뚝하다.
# 1312봉 직전 암릉에 올라 섰다.
# 노란 원추리 대신 노란 물봉선과,
# 노란 짚신나물이 노란빛을 대신 보여준다.
# 동엽령에 도착했다.
# 동엽령에도 원추리 몇개체가 눈에 들어 온다.
# 무시무시한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동엽령 데크엔 뙤약볕만 강렬하다.
# 무슨 작업 중인가 보다. 흙포대가 방치되어 있다.
# 마눌은 동엽령에 홀로 두고 참샘으로 물 길러 간다.
# 예전에는 그냥 계곡만 있었는데 그동안 샘을 만들어 두었다.
# 물이 시원하게 잘 나오고 있다. 수질검사 결과도 붙어 있다. 음용 적합!
# 참샘에서 610걸음 걸으니 동엽령에 복귀할 수 있다. 마눌은 안내판 그늘에 자리 깔고 자고 있다.
# 병곡리쪽 조망.
# 수십 개체 남아 있는 원추리꽃 구경을 한다.
# 아쉬우니 다른 넘들도.
# 금마타리도 노란빛을 더해 준다.
# 원추리 물결 넘실거릴 꿈에 부풀어 왔는데... 참 많이 아쉽다!
# 저 사면이 원추리 노란 꽃물결로 넘실 거렸을 것이다.
#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적상산이 보인다.
# 물 보충하였으니 이제 애초의 계획대로 무룡산으로 넘어 가야 한다. 무룡산 일대에도 원추리 군락지가 있으니 그곳에서 하룻밤 보내며 달빛 아래 춤추는 원추리 물결을 보잔 계획이었음에... 하지만 오늘 덕유산 일대에는 더이상 원추리 물결을 기대할 수는 없다. 불과 일주일여 사이에 꽃은 모두 져 버리고 씨앗만 둥글게 남아 있을 뿐이다. 혹시나 해서 무룡산을 넘어 오는 산객들에게 그곳 소식을 물으니 역시나 원추리는 전혀 구경을 못했다 한다. 결국 무룡산은 내일 넘기로 하고 오늘은 이곳에서 정지! 를 외친다.
# 그나저나 해질녘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 일단 데크로 내려가 짐 내리고 땀에 젖은 옷도 갈아 입는다.
#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 주변 경치 구경을 하다가,
# 느긋하게 자리 깔고 누워 흘러가는 구름이나 올려다 본다. 아~ 좋다~ 이런 여유를 누려본 지가 얼마만인가?
# 느긋한 게으름에 노곤해질 무렵 낮달이 뜨고, 곧 땅거미도 찾아 든다.
#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후에야 집을 한 채 지었다.
# 날 어두워지기 전에 동무 한 사람이 생겼다. 용인분인데 우리처럼 원추리 향기에 이끌려 왔단다. 그 역시 내내 원추리타령만 하고 왔을 것이다. 합석해서 같이 술잔을 나눴다. 우리 음식 준비가 풍족하여서 늦게까지 배불리 먹으며 담소할 수 있었다.
# 산꾼들이니 산얘기가 공동 관심사라 오래 산얘기 나누다 그는 2층으로 가고 우리는 1층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야 지나칠 정도로 많은 준비를 하지만, 그는 작은 배낭에 단촐하게 챙겨 왔더라. 작은 타프 하나에 비닐깔개로 잠자리를 만들었는데, 고산이라 밤에는 기온이 상당히 내려 가서 제법 추웠을 것 같았다.
# 우리는 모기장까지 준비했는데 펼쳐볼 생각도 않했다. 바람 많이 불고 기온 낮아 모기는 한마리도 안 보였다. 대신, 벌레들이 텐트 주위에서 어찌나 시끄럽게 울어 대던지 계속 숙면하지 못하고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마눌은 많이 피곤하였는지 전혀 몰랐다 하더라.
# 역시나 벌레소리때문에 눈을 떴다. 소변 볼겸해서 밖으로 나오니 하늘 한쪽이 벌겋게 불타고 있다.
# 기온이 너무 차서 우모복을 꺼내 입고 일출을 기다렸다.
# 붉은 잉크를 뿌린 듯 하다.
# 동엽령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고있다.
# 병곡리쪽 산첩첩,
# 중봉과 향적봉도 잠에서 깨어난다.
# 오늘 일출은 참 더디다.
# 찬바람 불고 기온 떨어져 한기가 드는데 벌겋게 물들기만 하고 해는 솟지 않는다.
# 그런데, 갑자기 카메라 배터리가 떨어졌다는 메시지가 뜬다. 내 카메라는 오래된 낡은 DSLR이어서 요즘 휴대폰보다 화소수가 적은 600백만 화소에 불과한 넘이지만 배터리 하나는 백만돌이처럼 오래 가는 넘이다. 그런데 갑자기 떨어진 기온때문에 맛이 가버린 모양이다. 그래서 배터리를 빼서 품에 넣었다가 몇장 찍고, 또 품에 넣고를 반복해야 했다.
# 간만에 일출사진 찍을 기회를 맞았는데 기계가 도와주질 않는다.
# 배터리는 간당간당한데 일출은 참 더디다.
# 어제 피어있던 원추리가 밤새 입을 다물었다. 오늘 낮에 햇살 받아 하루 더 피어날지 아니면 시들어 떨어질지 두고봐야 알 일이다.
# 배터리때문에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는데 산자락 위로 작은 바퀴 하나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 아, 오늘따라 렌즈도 번들만 챙겨 왔구나...
# 그래도 붉은 바퀴가 둥실둥실 떠오른다.
# 그 붉은 태양의 정기를 마음껏 마셔본다. 흐흐흡~ 흐흐흡~흐흐흡!
# 이제 구름 걷어내고 불쑥 솟아오르기만 하면 된다.
# 그런데, 오늘 허락된 행운은 여기까지이다.
# 구름을 확 걷어내지 못하고,
# 구름 속으로 도로 들어가 버린다.
# 오늘의 일출은 거기까지 였다.
# 잠시후 붉은 기운 모두 털어내고 밝은 빛으로만 남게 된다.
# 그러더니 일시에 어둠을 모두 걷어 내 버린다.
# 아랫쪽 인간세엔 운무가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 그 사진도 배터리때문에 다 못찍었다.
# 그래도 아랫세상에서는 꿈도 못꿀 아침 풍경을 홀로 즐겼다.
# 잠 없는 안내산악회들 걱정에 최대한 서둘러 아침 먹고 짐을 꾸린다.
# 밤낮의 기온차이가 극심해서 밤새 이슬이 엄청나게 많이 맺혔다. 물구덩이가 된 타프와 일부 짐들을 말렸다.
# 최대한 서둘렀음에도 두 팀의 안내산악회를 만났다. 일일이 대꾸하기 힘든 질문들이 쏟아진다. 아뿔싸! 서둘러 짐 꾸려 동엽령을 떠날 채비를 한다.
# 주변의 멋진 조망을 다시 한번 돌아 보고.
# 한 팀이 사오십 명은 되나 보다.
# 하룻밤 아늑하였던 동엽령에 작별한다.
# 수리취.
# 다른 해에 원추리 만발할 때를 골라 꼭 다시 오리라 작정한다.
# 마눌의 고글 속에 나와 동엽령이 들어 있다.
# 이제 무룡산을 향해 가야 한다. 해가 오르면서 무룡쪽으로 구름이 피어 올라 등로를 덮었다. 이 순간 마눌의 마음이 변했다. 원추리 없는 무룡을 넘어 봐야 삿갓재대피소에서 황점으로 내려 가거나 남덕유까지 가야 하는데, 무더운 날에 쌩고생하지 말고 칠연계곡으로 가서 물에 발이나 담그자 한다. 칠연계곡으로 내려 가야 귀경하는 차편 구하기도 쉬울 것이고.
# 애초의 계획이 있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눌의 뜻에 따르기로 한다. 그래, 어차피 올해는 원추리꽃향기를 제대로 못 맡았으니 다른 해를 기약하세!
# 그리하여 칠연계곡으로 탈출을 하기로 한다. 저 길로는 벌써 세번째 탈출인 셈이다.
# 한번은 무시무시한 비바람을 뚫고, 또 한번은 강렬한 뙤약볕 아래, 그리고 오늘 역시 햇살이 뜨겁다.
# 긴 계단길을 내려가다 보면,
# 칠연계곡 상단부에 도착하게 된다.
# 인적 없는 곳에서 물 한 번 뒤집어 썼다.
# 아랫쪽으로 내려 갈수록 사람들이 간간이 올라 오더니 급기야 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 오랫만에 만나는 뻐꾹나리. 호남정맥할때, 내장산에서 만났었다.
# 계곡은 점점 넓고 풍부해진다.
# 중간에 배낭내리고 물놀이하며 오래 쉬었다.
# 멋진 계곡이다. 무룡을 넘지 않고 이리로 내려 온 것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 돌 세우기를 하며 놀았다.
# 내가 중심잡기에 소질이 있나보다.
# 숲에 가린 계곡이 서늘하고 아득하다.
# 대여섯 팀의 산악회에서 많은 인원이 떼로 올라 갔는데 한 10%정도는 땡땡이 치고 계곡에서 만고강산이더라.
# 계곡 물소리 들으며 길고길게 아래로 내려 간다. 그런데 두번이나 지나 간 곳인데도 도대체 기억이 없다. 그때는 계곡 구경할 여유가 없어서 그랬나?
# 그러다 이 폭포 보고는 기억이 제대로 나더라.
# 멋진 계곡임에도 아랫쪽 물가에는 사람 하나 없다. 길게 내려 안성매표소로 나갔다. 예전에 비에 흠뻑 젖어 덜덜 떨며 내려 왔던 곳이다.
# 주차장을 지나 아래로 도로따라 길게 내려 가는데 물가에서 사람소리 많이 들려 가까이 가보니 물놀이하기 좋은 계곡이 나온다. 옳타쿠나! 우리도 계곡 한 켠에 자리 잡았다. 그곳에서 장비도 말리고 몰놀이도 즐겼다.
# 그러다 배고파 산에서 먹을려고 준비했던 스파게티를 끓인다.
# 스파게티와 막걸리. 약간 우스운 조합이지만 나름 색다른 맛이 있더라.
# 평소에 스파게티를 좋아하니 더욱 그러하다.
# 한 잔 하입시다~
# 칠연계곡 아래 안성면에는 계곡가에 이런 멋진 소나무 숲이 있다. 마을에서 관리하는데 텐트 자리 하나에 삼만원이나 한다. 모텔값이다.
# 마을에서 버스를 타니 안성면소재지 버스정류소를 거쳐 무주까지 간다.
# 무주에서 다시 버스 타고 대전까지 갔다가, 다시 택시타고 대전역으로 갔다. 대중교통이 편안하기는 한데 이런 연결이 쉽지 않다.
# 마지막으로 KTX편으로 광명으로 돌아 왔다. 뭐, 그래도 완전히 어둡기 전에 도착했다.
우리의 산행 여정에 있어 덕유산은 늘 만만치 않은 산으로 기억된다. 첫 기억은 무시무시한 강풍과 비바람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걸었고, 급기야 저체온증으로 의식까지 혼미해질 정도였었다. 두 번째는 강한 뙤약볕에 벌겋게 익어서 힘이 들었었다.
이번 덕유행은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으나 때가 맞지 않았다. 원추리 꽃향기 맡으며 흐뭇한 달빛 아래 하룻밤 보낼 계획으로 찾았지만, 시절을 잘못 택해 정작 원추리는 모두 지고 만 이후였다.
하지만 수십 송이나마 끝물의 원추리를 본것은 그나마 행운이었고, 덕유에서의 하룻밤은 원추리 없이도 충분히 덕(德)을 품기 알맞았으며, 원추리 꽃향기를 찾아 다시 만날 기약을 남겼으니 미래를 기대할 여지가 있어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몇 해 뒤가 될지 알 수 없는 그날의 원추리꽃 향기가 벌써 코끝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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