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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라이딩]강화도 일주 라이딩-한반도의 방패, 강화 일주 라이딩!! 본문

잔차이야기/잔차 이야기

[야영라이딩]강화도 일주 라이딩-한반도의 방패, 강화 일주 라이딩!!

강/사/랑 2014. 6. 3. 18:46
 [야영라이딩]강화도 일주 라이딩 


 
'강화(江華)'는 역사의 섬이다. 우리 한민족 역사는 반복되는 외세의 침입으로 대대손손 파란만장하였다. 우리를 침범한 외세는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았지만, 북쪽과 서쪽의 오랑캐와 남쪽의 왜구가 가장 큰 피해를 주었다.


강화는 한강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같은 섬이다. 따라서 오랑캐와 왜구 모두 강화를 침범하였다. 강화를 교두보로 삼아야 이 땅 중심을 수월케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강화는 이 땅의 외세 침범을 온몸으로 겪어 온 그야말로 역사 그 자체의 섬이다.


이 섬에 사람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기록 이전으로 올라간다. 선사시대의 고인돌 유적과 빗살무늬토기가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어진 것으로 보아 이미 신석기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입도(入島)하여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 이후의 강화는 하늘과 소통하는 기원의 장소로 출발했다. 강화에는 이 땅 최고의 생기처(生氣處)인 마니산이 있다. 기의 발생처이니 하늘의 소통 창구로 적합하였다. 그리하여 국조(國祖) 단군(檀君)께서는 마니산(摩尼山)에 참성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고조선을 이은 나라는 고구려였다. 국통을 이었으니 하늘을 섬기는 풍습도 이었다. 고구려의 유리왕과 광개토대왕도 마니산에서 제를 올렸고 후대에 이르러 을지문덕과 연개소문 역시 참성단에서 천제를 올렸다. 이때에는 섬 이름을 '혈구(穴口)' 혹은 '갑비고차(甲比古次)'라 불렀다.

 

이후 신라가 통일을 이룬 다음에는 '해구군(海口郡)' 또는 '혈구진(穴口鎭)'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모두 바다와 강으로 통하는 출입구라는 의미의 이름이었다.


강화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현으로 지정되면서 부르기 시작하였다. '강 江, 빛날 華'를 사용하니 '강에 피어난 꽃 같은 고장'이란 뜻이다.


그러나, 정작 그 유래는 꽃과는 거리가 좀 멀다. 그 시작은 이 섬이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합해져서 서해바다로 흘러드는 하구에 위치해 '강하(江下)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강하가 나중에 '강화(江華)'로 변음된 것이다.


유래와는 상관없이 그 뜻대로만 해석하면 참으로 이름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고장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이름과는 달리 강화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였다. 강화는 세 강이 합해져서 난바다로 나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고 그 강이 곧장 수도 서울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외적(外敵)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많이 받았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는 도읍으로 역사의 중심에 서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이름조차 '강도(江都)'가 되었고, 몽골에 최후까지 저항한 삼별초가 한 때 항몽전쟁(抗蒙戰爭)의 근거지로 삼기도 하였다.

 

조선조에 이르러는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높아져 정묘호란, 병자호란 당시 외적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한 천도지가 되었고, 이후 5진 7보 53돈대를 설치하여 군사적 요충지로 역할하였다.

 

근세에는 1866년 프랑스 군대가 침공한 병인양요와 1871년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공격한 신미양요가 일어났고, 일제 침략의 시발점이 된 운요호 사건이 1875년에 발생해 이듬해에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일제의 간섭에 처해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한민족 역사의 파란만장한 물결 한가운데에서 온몸으로 격랑에 맞서 한반도의 '방패' 역할을 한 강화는 섬 전체에 그 역사의 흔적이 산재했다. 그야말로 역사의 교과서적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무심히 스쳐가는 관광객의 눈길 전부에 역사 아닌 것이 없는 고장이기도 하다.

 

강화가 섬이 아닌 연륙(連陸)이 된 것은 1969년 강화대교가 건설된 이후부터다. 다리의 건설로 강화가 더이상 섬이 아니게 된 이후 팍팍한 일상의 삶에 지친 수도권 시민들이 앞 다투어 독특한 자연환경과 역사현장에 이끌려 섬으로 몰려들었고, 때문에 주말이면 섬을 들고 빠져나오는 인파로 엄청난 길이의 교통 정체로 악명을 떨치기도 하였다.

 

90년대 초반, 삶의 무게에 지쳐 힘들 때나 늘 좋아하던 낚시를 위해 계절에 관계없이 강화를 자주 찾곤 했다. 장화리 갯벌에서 감상하는 강화의 낙조, 동막해수욕장의 야영, 선두리포구나 내가지의 얼음낚시 등 강화는 찾을 때마다 늘 다른 얼굴로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하곤 했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 일정을 마치고 섬을 빠져나오자면 언제나 엄청난 정체에 시달려야 했고, 심한 경우는 열 시간 이상이 걸린 적도 있다. 

 

1997년 옛 강화대교 옆에 새로운 다리가 건설되고, 2002년 대명포구와 초지진을 잇는 초지대교가 건설된 후 교통정체는 많이 사라졌고, 편리해진 교통 덕분에 강화를 찾는 이는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다.

 

찾는 사람 많아지니 번잡한 것 싫어하는 이 사람은 점점 강화를 찾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고, 2000년대를 맞아 물을 떠나 산으로 주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더더욱 강화는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다만, 가끔 잔차 바퀴 굴려 동으로 서로 두 바퀴 여행을 하면서 강화로 아이스꼐끼 사 먹기 이벤트 하러 오거나 서해바다 보러 자전거 타고 오면서 아주 잊지는 않고 강화해협을 건너는 일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방문은 강화 초입에서 아이스께끼 인증을 하고 돌아가거나, 초지진쯤에서 바다구경 한번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수십 차례 강화를 찾았음에도 온전히 강화를 돌아보거나 강화의 속살을 모두 보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예전부터 자전거로 강화를 한 바퀴 돌면서 강화 전체를 느껴 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니 짧은 봄이 지나가고 성급한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오월 말일의 일이다.

 

 


한반도의 방패, 강화 일주라이딩!!


일시 : 2014년 5월 31일, 6월 1일, 흙과 해의 날
구간 : 강화인삼센터휴게소 ~ 강화대교 ~ 연미정 ~ 월곶리 ~ 화문석체험장 ~ 강화평화전망대 ~ 북성리 ~ 서사체험학습장 ~ 인화리 ~ 교동대교 ~ 창후리여객터미널 ~ 내가저수지 ~ 외포리선착장 ~ 건평항/야영 ~ 하일리 ~ 후포항벤뎅이마을 ~ 장화리 ~ 여차리 ~ 미루지 ~ 동막해수욕장 ~ 함허동천 ~ 선두포 ~ 소리체험박물관 ~ 황산도입구 ~ 초지대교 ~ 초지진 ~ 덕진진 ~ 광성보 ~ 오두돈대 ~ 용진진 ~ 갑곶돈대 ~ 강화인삼센터휴게소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오월 말일. 오랜 숙제 중 하나인 강화 일주라이딩을 하기로 하였다. 강화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택리지에 이르기를 "남북 길이가 100여 리이고, 동서 길이는 50리"라고 적혀 있다.


남북 길이가 백 리라면 40km가 된다는 얘기인데, 거리 측정이 정확치 못했을 옛날 자료라 오류가 좀 있다. 실제로는 약 28km로 70여 리쯤 된다. 동서 길이는 16km로 40여 리이다.

 

강화를 온전히 한 바퀴 도는 거리는 100km쯤 된다. 그 정도 거리면 하루 분량의 라이딩 거리로 딱 알맞다. 하지만 우리는 늘 그렇듯 강화의 속살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야영라이딩을 계획했다.

 

산이든 섬이든 그곳을 제대로 알자면 하룻밤 그 품속에서 자 봐야 한다는 나의 소신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짐이 많아지고 그만큼 무게의 압박에 시달릴 각오는 해야 한다. 시간도 한정 없이 늘어질 것이 당연하다.

 

연전에 야영라이딩을 위해 자전거 짐받이와 짐을 싣는 패니어를 구입해 두었다. 하지만 작년에 신도 시도 모도 야영라이딩을 하면서 시험해보니 짐을 많이 싣기는 하지만, 뒷드레일러에 간섭이 심하고, 무게중심이 뒤에 있어 조정하기도 힘들었다.

 

따라서 이번에는 짐을 최대한 줄이고 방수팩을 구입해서 그곳에 야영 짐을 싣고 35리터 배낭에 나머지 짐을 분산해서 짊어질 채비를 준비했다. 마눌 잔차에도 짐받이와 방수팩, 35리터 배낭을 동일하게 준비해 주었다.


이것저것 있으면 편리하나 꼭 필요하지 않은 야영 짐을 버리고 필수 짐만을 챙겼지만, 여전히 방수팩과 배낭의 무게는 무겁다.

BPL의 실천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구나! 


 

강화도/江華島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속하는 섬으로 경기만의 한강 하구에 위치하여 있다. 우리 나라 제5위의 큰 섬으로 강화군의 주도(主島)이다. 면적 293㎢, 인구 6만992명(1999년 현재)이다. 남북 길이 30㎞, 동서 길이 12㎞, 해안선 길이 99㎞이다. 강화도는 본래 김포반도와 연결된 육지였으나 오랜 침식작용으로 평탄화된 뒤 침강운동으로 육지에서 구릉성 도서로 격리되었다. 결정편암과 화강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강화도는 마니산(469m)·고려산(436m)·낙조봉(343m)·혈구산(466m)·진강산(443m)·별립산(400m) 등 산지가 있으나 험준하지는 않고 곳곳에 저평한 충적지가 발달해 있다. 기후는 해양성기후의 특징을 띠어 같은 위도의 내륙지방보다 따뜻하고 연평균기온은 10.9℃, 1월 평균기온은 ·4.7℃, 8월 평균은 25℃이며 연강수량은 1,277㎜이다. 온화한 기후로 남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탕나무·동백나무 등의 난대식물이 자생, 식생분포의 특이성이 나타난다. 경지면적은 논 8,8817㏊, 밭 3,427㏊이다. 산지가 많으며, 평탄한 농경지에서는 쌀을 비롯하여 잡곡 등이 많이 난다. 특히, 인삼과 화문석은 이 지방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수산물로는 조기·병어·민어 등이 어획된다. 교통은 육지에 못지 않게 도로가 잘 정비된 섬으로 강화읍을 기점으로 도로가 사방으로 통하며, 1969년 12월에는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염하(鹽河)에 강화대교(694m)가 가설되어 육지와의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으나 1998년에 완공된 새로운 강화대교로 더욱 교통이 편리하여 졌다. 문화유적은 고인돌을 비롯하여 마니산의 참성단에서는 매년 10월 3일에 단군제를 지내기도 한다. 이 밖에도 삼랑성·전등사·보문사 등의 유적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7개교, 분교 2개교,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5개교와 대학교 2개교가 있다. 강화도는 관광명소로서 역사적인 유물들이 곳곳에 산재한다.

 

<이곳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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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함.- 사진은 모두 스카트폰 버전임)

 

 


# 강화도 일주 잔차 바퀴의 궤적. 강화대교에서 출발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강화 한 바퀴가 100km거리라 하루 라이딩 거리로 적당하나 우리는 야영 짐을 매달고 달려야 해서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전철 타고 아라뱃길이 있는 검암역으로 가고, 그곳에서 출발해서 김포 해안길을 따라 북상하여 초지대교로 접근하여 그곳에서 본격적인 강화일주 라이딩 출발을 할 작정이었다. 이 코스는 접근거리가 20여km 더해져서 힘이 들기는 하겠지만 차 몰고 갈 일이 없으니 간편하여 좋다.

 

한데, 토요일에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겨 사무실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짐 꾸려 출발하기에는 시간 지체가 너무 심하다. 때문에 회사에서 일 보고 그곳에서 바로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러자면 차를 가지고 갈 수밖에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자동차에 캐리어를 매달고 잔차 두 대를 거치하였다. 오랜만에 캐리어를 매달았더니 서툴러서 한참을 버벅거려야 했다. 아침 먹고 마눌 대동해서 회사로 출근했다.


두세 시간 회사에서 일을 보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마눌은 그동안 회사 주변을 산책하고 커피도 마시고 낮잠을 자기도 했나 보다. 서둘러 라이딩 복장으로 환복하고 강화를 향해 출발했다. 예상보다 출발 시간이 늦어 걱정이다.

 

 

 

# 회사에서 1시간여 달려 강화도에 도착했다. 강화대교는 오랜만에 건넌다.

 

 

 

#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우측에 강화인삼센터 휴게소가 있다. 강화로 아이스께끼 사 먹으러 가기 할 때 이곳 휴게소에서 아이스께끼를 사 먹고 다시 집으로 잔차 굴려 돌아가곤 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출발이다. 방수팩과 35리터 배낭에 야영 짐을 나눠 담았다. 마눌은 산행용 배낭과 짐을 싣고 라이딩하기는 또 처음이다. 일단 출발은 패기 넘치게 파이팅이다!

 

 

 

# 인삼휴게소를 출발!

 

 

 

# 해안도로로 달려 내려간다.

 

 

 

# 강화는 해안도로를 따라 자전거도로를 따로 만들어 두었다. 강화 전체를 완전히 휘감게 만들진 않았지만 상당한 거리를 두고 조성해 두어 우리 같은 잔차라이더에게 아주 유용하다.

 

 

 

# 강화군 생활폐기물 소각장 근처를 지난다. 저 멀리 오르막 하나가 나타난다.

 

 

 

# 해안도로를 따라 길게 북상하면 성곽 하나가 나타난다.

 

 

 

# 월곶돈대를 복원해 두었다. 돈대(墩臺)는 적들이 침입하기 쉬운 요충지에 설치한 소규모 성곽을 말한다. 망루와 포루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다소 높은 곳에 설치한 성곽이다.

 

 

 

# 조해루라고 현판이 걸려 있다.

 

 

 

# 월곶돈대 성곽 안에 연미정이 있다기에 잔차 세워 두고 그곳으로 향했다.

 

 

 

# 깔끔하게 재단장하였다.

 

 

 

# 성곽 안에는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와 소박한 정자가 있다.

 

 

 

# 저 정자가 연미정이다. 제비 燕과 꼬리 尾를 쓴다.

 

 

 

# 물길이 제비꼬리 같다하여 얻은 이름이다. 이곳 연미정부터 초지진까지 20여km 거리에 강화 외성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다. 강화 외성은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여 강화해협 방향으로 축조되었다.

 

 

 

# 강 건너로 북녘땅 개풍군의 모습이 지척이다.

 

 

 

# 우측 멀리로는 김포 문수산 너머에 있는 유도가 보인다. 여러 해 전 홍수가 났을 때 북한에서 황소가 떠내려 온 섬이다.

 

 

 

# 수령 오백 년의 느티나무가 이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 하마트면 이 멋진 곳을 못 보고 그냥 지나칠 뻔 했다.

 

 

 

# 연미정부터는 민통선이라 해병대에서 도로를 막고 있다. 연미정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려다 해병대에 막혀 근처 슈퍼에서 음료수 사 먹으며 쉬었다. 그 집 주인에게 길을 묻다가 연미정 이야기를 듣고 보러 왔다. 가겟집 주인아저씨가 아주 친절하였다. 자기 아버지가 예전에 대동강까지 배를 타고 갔었단다.

 

 

 

# 해병대가 길을 막고 있어 해안도로를 버리고 좌측 월곶리 마을회관 쪽으로 들어 갔다가 다시 대산리를 거쳐 상도리로 갈 작정이다.

 

 

 

# 마을길을 구불구불 진행한다.

 

 

 

# 상도리 농로를 따라 진행한다.

 

 

 

# 뙤약볕 강렬하지만 차들이 없어 달릴만하다.

 

 

 

# 상도리 금곡마을 입구에서 한숨 돌렸다.

 

 

 

# 배낭 무게와 자전거 짐 무게때문에 힘이 많이 드나보다.

 

 

 

# 당산리로 해서 바닷가로 다시 접근하는데 강화 특산인 화문석 체험마을이 나온다.

 

 

 

# 철산리로 접어드니 강화평화전망대가 나온다.

 

 

 

#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아주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중간쯤에서 경사를 이기지 못하고 끌바를 해야 했다.

 

 

 

# 오르막 중간에 주차장이 있다. 단체로 관광버스 타고 관람 온 사람들이 많다.

 

 

 

# 주차장에 잔차 세워 두고 전망대로 올라갔다. 입장료를 받고 있다. 이런 시설에 돈은 왜 받냐?

 

 

 

# 이곳이 강화도 최북단이다. 따라서 북한땅이 바로 지척이다.

 

 

 

# 안으로 들어가자 경상도 어느 지역에서 온 단체 관람객에게 현장 설명을 해주고 있다.

 

 

 

# 헤엄 쳐서 건너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이다.

 

 

 

# 바로 눈앞으로 북한땅을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하다.

 

 

 

# 박무와 미세먼지가 많고 낡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잘 표현은 안 된다.

 

 

 

# 바람 좋은 곳에서 아주 오래 쉬었다. 매점에서 아이스바와 커피도 사먹고 푹 쉬었다. 전망대에 근무하는 직원이 자기도 잔차족이라며 알은 체를 했다. 그의 이야기 들어 주느라 또 오래 있었다.

 

 

 

# 강화평화전망대를 나와 좌틀하여 섬의 최북단을 찍고 좌측 해안으로 남하하기 시작한다. 북성리를 통과했다.

 

 

 

# 북성리를 지나 교산리로 접어들자 서사체험학습장이란 곳이 나온다. 아마도 폐교를 수리해서 만든 곳인 듯하다.

 

 

 

# 인화리로 접근하며 고개 하나를 길게 치고 넘는다.

 

 

 

# 인화리에서 48번 도로를 만나 우틀하여 그 도로를 따랐다. 도로 끝은 교동도로 들어가는 교동대교가 건설되고 있는 현장이다. 교동도는 북한이 지척이라 섬 전체가 개발도 늦고 옛스런 동네이다. 이번 강화 일주를 계획할 때 교동도로  배를 타고 들어가서 라이딩과 야영을 할 계획도 대안으로  준비했었다.


하지만 조만간 교동대교가 개통되어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뒤로 미루었다. 만약 오늘 그 다리로 건너 갈 수 있으면 강화일주를 포기하고 교동도로 방향선회를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공사가 완료되지 않아 출입이 금지되고 있었다.

 

 

 

# 교동도 가는 길을 버리고 농로로 내려섰다. 전들마을 쪽으로 접근한다.

 

 

 

# 석산마을을 지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치고 올랐다.

 

 

 

# 지도에 없는 산길을 길게 달려가면 무태돈대가 나온다.

 

 

 

# 무태돈대는 1689년 숙종 5년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이다. 창후리 포구에 축조되었다.

 

 

 

# 이 돈대는 규모가 작고 아담하다.

 

 

 

# 좌측 아래에 창후리포구가 있다. 저곳 창후리에서 교동도로 가는 배가 출발한다.

 

 

 

# 라이딩하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이곳에서 하룻밤 보내도 좋을 듯하지만 문화재라 불가능하다.

 

 

 

# 북쪽 너머로 인화리에서 교동도로 연결되는 교동대교가 건너다보인다.

 

 

 

# 가마우지들이 암초 위에 잔뜩 앉아 있다.

 

 

 

# 석양빛이 물들어가는 창후리 포구. 건너편 섬은 석모도이다.

 

 

 

# 창후리를 떠나 잠시 섬 안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진달래로 유명한 고려산 들머리 중 하나인 미꾸지고개를 넘어 길게 달려 내려가면 내가저수지가 나온다. 내가지는 겨울 얼음낚시터로 유명하다. 예전 낚시꾼 시절에 가끔 찾던 곳이다.

 

 

 

# 내가면 사무소를 지나 국수산 자락의 긴 고개 하나를 치고 오른다.

 

 

 

# 고개가 꽤 길어 힘이 들었다.

 

 

 

# 그 고개를 달려 내려가면 외포리 선착장이 나온다. 이 늦은 시각에도 석모도로 들어가려는 차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 석모도로 들어가는 페리들이다.

 

 

 

 

외포리에서 이미 석양이 많이 찾아 들었다. 애초에 계획은 동막해수욕장까지 달려가서 그곳 솔밭에서 야영을 할 작정이었는데 출발이 워낙 늦고 중간에 많이 쉬는 바람에 외포리에서 날이 어두워지려고 한다.

 

이제는 저녁 야영 준비를 해야 한다. 외포리에 있는 슈퍼에서 마실 물과 막걸리, 간식거리 등을 구입했다. 그리고 횟집에서 밴뎅이회도 조금 준비했다. 둘이 먹을 수 있게 달라고 했더니 도시락 하나에 초고추장까지 끼워서 단돈 만 원이면 충분하다. 착한 가격이다.

 

외포리를 떠나 해안도로를 따라 달려가면서 적당한 야영지를 찾아 본다. 해안로를 길게 달려 가다가 삼홍천을 지나고 건평리에 접어들자 길가에 멋진 거리공원 하나가 나온다. 해안 돌출부에 위치해 있어 조망도 훌륭하고 잔듸밭이 있어 야영지로도 훌륭하다.

 

빙고!를 외치고 막 짐을 풀려다 보니 공원 한 켠에 야영금지란 플래카드가 매달려 있다. 날은 어두워지고 몸도 피곤하여 그냥 이곳에서 머물고자 하는 마음 굴뚝 같지만 착한 시민인 우리가 야영금지란 글귀를 보고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그곳을 떠났다. 나중에 이 결정을 많이 후회했다.

 

거리공원을 돌아 내려가자 바로 우측에 건평나루가 나온다. 건평포구는 작은 어업용 포구라 한적하다. 반면 한 켠에 꽤 넓은 공터가 갖춰져 있다. 화장실도 있다. 마침 오토캠핑하는 부부가 텐트 한 동을 설치해 두고 저녁 준비가 한창이다. 우리도 그 한 켠에서 야영하기로 결정했다.

 

 

 

# 건평포구에 텐트를 설치했다. 어구 더미 뒤에 설영하니 바람도 막아 주고 좋다.

 

 

 

# 우리 곁에는 오토캠핑하는 부부가 먼저 집을 지어 두고 있었다.

 

 

 

# 야영라이딩은 산행야영과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 길가에 있는 팬션에서 재즈음악이 밤새 들려 온다.

 

 

 

# 그 음악 들으며 만찬을 즐겼다. 외포리에서 구입한 밴뎅이회이다. 도시락 하나로 만원을 받았다. 싱싱하고 맛나다.

 

 

 

# 오리주물럭도 굽고.

 

 

 

# 막걸리를 딱 한 병만 준비했는데 모자라서 아쉬웠다.

 

 

 

# 이곳 건평리포구에서의 야영은 아쉬운대로 점수를 줄만 하였다. 다만 20대 후반의 남녀 몇 명이 외제차를 몰고 와 우리가 가기 전부터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계속 시끄럽게 떠들고 난리를 부렸다. 나중에 그들이 떠나고 다시 30대 청년들이 밤낚시를 왔는데 이 넘들은 아주 새벽까지 쌩난장을 벌렸다. 아침에 이 두 팀이 떠난 자리에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널부러져 있었다. 철수하기 전에 청소를 해보니 라면박스에 두 박스나 되었다. 저 불빛은 새벽 조업을 나가는 어선이 조업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 쓰레기 같은 넘들의 난장이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편안한 밤이었다. 주변 환경은 열악하였으나 워낙 피곤하여 곯아 떨어진 탓일 것이다. 거리공원에서 잤으면 훨씬 편안하였으리라.

 

 

 

# 석모도 낙가산이 건너다보인다. 어느해 겨울 무시무시하게 추운 밤에 저 낙가산에서 하룻밤 보냈었다.

 

 

 

# 밀물이 들어와 바다가 많이 부풀어 올라 있다.

 

 

 

# 건평나루는 아주 한적한 시골 포구이다.

 

 

 

# 낚시를 왔다는 저 부부는 아침에 루어대를 두어 번 휘두르더니 금세 철수해 버리더라.

 

 

 

# 콘크리트 바닥에서 보냈지만 화장실이 가까이 있어 편리했다.

 

 

 

# 아침 끓여 먹고 철수 준비를 했다. 젊은 넘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하도 많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모두 치우고 철수했다. 쓰레기를 버려도 한 쪽에 모아 두었으면 치우기라도 쉬울 텐데 이 넘들은 그냥 산지사방으로 흩뜨려 놓았다. 도대체 이런 넘들의 머리 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 착한 일을 한 흐뭇한 마음을 안고 다시 출발이다.

 

 

 

# 건평나루를 떠나 해안도로를 길게 달려간다.

 

 

 

# 아침부터 기온이 무섭게 올라간다. 금세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 오늘도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언제부터인가 깨끗한 조망을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중국을 이웃으로 둔 덕분이다.

 

 

 

# 하일리 해안도로를 길게 휘감는다.

 

 

 

# 강화갯벌.

 

 

 

# 저멀리 후포항이 보인다.

 

 

 

# 후포항은 밴뎅이로 유명한 곳이다.

 

 

 

# 갈매기들이 밴뎅이로 잔치를 벌이고 있다.

 

 

 

# 잠시 후포항 구경을 하고 다시 출발했다. 곧바로 가파른 고갯길을 치고 올라야 한다.

 

 

 

# 주문도, 불음도 쪽인가 보다.

 

 

 

# 후포를 떠나 해안도로를 길게 돌아가면 낙조로 유명한 장화리가 나온다.

 

 

 

# 아주 오래 전 삶이 아득할 때 낙조 보려 홀로 찾고는 했었다.

 

 

 

# 북일곶돈대쪽에 장화리 일몰 조망지가 조성되어 있다. 예전에는 그냥 갯벌 만이 있는 바닷가였는데 지금은 나무데크와 쉼터 등을 만들어 두었다.

 

 

 

# 강화갯벌은 세계 4대 갯벌 중 하나이다.

 

 

 

# 저 해안을 따라가면 북일곶돈대가 있다.

 

 

 

# 그 바닷가에 이규보의 시가 걸려 있다.

 

 

 

# 무리지어 나르는 기러기와 홀로 나는 해오라기를 노래했다.

 

 

 

# 장화리 낙조 조망지를 나와 다시 해안도로에 올라섰다. 곧바로 아주 가파른 고개가 나타난다. 여차리고개이다.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어 겁 많은 마눌은 중간에 하차하여 끌바로 올라온다.

 

 

 

# 그 고개를 길게 달려 내려가면 드디어 동막해수욕장이 나온다.

 

 

 

# 동막은 해수욕장이라기 보다는 갯벌이다.

 

 

 

# 그래도 그 시원한 트임에 가슴 한번 펴 본다.

 

 

 

# 가족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이 많다.

 

 

 

 

# 바닷물이 멀리 물러나 있다.

 

 

 

 

# 어젯밤 이곳에서 야영했다면 잠들기 어려웠겠다.

 

 

 

오랜만에 찾은 동막해수욕장은 아직 시즌 전인데도 캠핑이나 해수욕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잠시 갯벌 구경을 하다가 그 번잡함이 싫어 도로 건너에 성업중인 횟집을 찾았다.

 

시간이 이르기는 하지만 식사와 막걸리 한 잔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집은 예전에 직원들하고 두어 차례 가 본 집인데 밴뎅이 무침은 되지만 회는 안된단다. 그 얘기는 밴뎅이가 싱싱하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 바로 옆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 집 역시 회는 안되고 무침만 된다. 게다가 가격을 무려 오 만원이나 달랜다. 간밤에 외포리에서 만 원에 싱싱한 밴뎅이회를 둘이서 먹기 충분하게 구했는데, 이곳은 싱싱하지도 않은 무침을 다섯 배나 부르고 있다.

 

결국 밴뎅이는 포기하고 막걸리와 파전을 시켰다. 잠시후 파전이 나오는데 새카맣게 태워 먹을 수가 없다. 주인 불러 까만 파전을 물리고 다시 부쳐 달랬더니 이번에는 기름을 범벅으로 들이 부어 느끼해 먹을 수가 없다. 두어 점 먹다가 포기하고 김치안주로 막걸리만 마셨다.

 

막걸리 마시다 입구에 있는 수족관을 보니 숭어 몇 마리가 온 몸에 상처 투성이로 너덜너덜 해진 채 헤엄도 못치고 겨우 입만 뻐끔거리고 있다. 만약에 숭어회를 시켰으면 저 넘을 잡아 주었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온다.


예전에 동막은 해수욕장이기는 해도 음식도 깨끗하고 밴뎅이회가 싱싱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시는 동막에서 음식을 먹을 일 없을 듯하다.

 

 

 

# 찝찝한 기분을 안고 동막을 출발했다. 해안도로는 동막을 지나 고갯길을 치고 올랐다가 내륙으로 깊게 휘감아 돌게 되어 있다. 아침에 건평에서 출발할 때 지도를 살피니 동막에서 분오리저수지 둑으로 내려가면 선두리선착장까지 가로질러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마눌에게 그 길로 질러 갈 것이라고 알려 주었는데, 고개 넘어 내리막 길에서 그냥 도로따라 먼저 가버린다. 뒤에서 불러도 못 들었는지 그냥 씽 달려가 버렸다. 별수 없이 도로를 따라 휘감아 돌아야 한다. 사진은 분오리 저수지이다. 건너편 선두포로 가로 지를 수 있는데 빙 돌아가게 생겼다.

 

 

 

# 함허동천 입구를 지나고 선두포 수로도 지났다. 선두리선착장쯤 오면 완전히 휘감아 동막고개 반대쪽으로 나오게 된다. 마눌이 많이 힘들어 해서 길가 나무그늘에서 오래 쉬었다.

 

 

 

# 들판 건너로 마니산이 건너다보인다. 함허동천에서 정수사 거쳐 올라 갈 수 있는 곳이다.

 

 

 

# 동검도 인근의 갯벌이다. 동검도(東檢島)는 강화도 동남방에 위치해 있으면서 예전 남해상에서 김포해협을 거쳐 한강을 통하여 한양으로 진입하는 모든 배들을 검문하던 곳이다. 강화와 연륙되어 있는 섬 속의 섬이다. 오늘은 그냥 패스했다. 

 

 

 

# 동검도입구를 지나 갯벌 간척지 직선도로를 따라 달렸다. 그 간척지 끝부분에 황산도가 있다. 황산도는 겨울 숭어로 유명한 곳이다. 몇해 전 마눌과 숭어 먹으러 왔었다. 값싸고 맛난 곳이었다. 황산도 역시 패스!

 

 

 

# 황산도를 지나자마자 초지대교가 나온다. 차량통행이 많아 신호대기를 한참동안 해야 했다.

 

 

 

# 초지진에 도착했다. 초지진은 조선조 효종 7년인 1656년에 축조된 요새이다. 초지진은 그야말로 강화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곳에서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이 모두 일어 났다.

 

 

 

# 저 소나무에는 당시의 포탄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

 

 

 

 

# 초지대교.

 

 

 

# 외적들이 저 해협에서 초지진을 향해 포격을 퍼 부었었다.

 

 

 

# 초지진에 이르면 이번 잔차 여행도 막바지이다. 등산 배낭과 리어랙에 매단 짐무게 때문에 마눌은 많이 힘이 드나 보다. 회복을 위해 초지진에서 오래 쉬었다.

 

 

 

# 초지진서부터는 북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북상만 하면 된다.

 

 

 

# 지금 강화의 길가는 금계국 노란 물결로 가득하다.

 

 

 

# 한차례 달려 올라가면 우측에 덕진진이 있다. 그런데 강화의 모든 진이나 보에는 입구를 막아 두고 입장료를 받고 있다. 아니, 역사의 현장을 개방하여 후손들에게 그 교훈을 널리 알려야지 돈벌이 할 궁리만 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 한차례 더 달려가면 광성보가 나온다. 이곳 역시 돈을 받고 있다. 그 행태가 얄미워 바깥에서만 구경하고 모두 그냥 지나쳤다. 우리와는 달리 관광버스로 온 사람들은 단체로 입장해서 사진도 찍고 요란하다.

 

 

 

# 넙성리, 오두리 들녁을 따라 길게 북상하였다.

 

 

 

# 그러다 오두돈대와 화도돈대를 지나 긴 오르막을 하나 만난다.

 

 

 

# 이곳에 이르러 해협은 많이 넓어 졌다.

 

 

 

# 고개 내리막 초입에 거리 공원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 라이딩 막바지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힘이 드나 보다. 긴 오르막을 많이 힘들어 하며 넘어 왔다.

 

 

 

# 배낭 때문에 허리가 아프고 손목도 아프다고 하소연이다.

 

 

 

# 아랫쪽에 숭어낚시하는 사람이 보인다. 강화숭어는 갯벌의 유기물을 먹고 자라 쫄깃하고 맛나기로 유명하다. 강화숭어낚시는 꼭 강화에서 나는 대형 갯지렁이를 미끼로 써야 잘 잡힌다.

 

 

 

# 내리막을 신나게 달려 내려가면 용진진이 나온다. 이곳은 돈을 받지 않는다.

 

 

 

# 장어요리집이 많은 신정리에 도착했다. 우측 멀리로 어제 출발했던 강화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 강화대교가 보이니 이제 다 왔다.

 

 

 

# 해협 건너 김포 포내리가 지척이다.

 

 

 

# 모퉁이를 한 호흡만 달려가면 갑곶돈대가 나온다. 이곳은 입장료 징수이다.

 

 

 

# 갑곶돈대를 지나 강화대교 교차로에서 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하여 어제 출발했던 인삼센터휴게소로 접근한다.

 

 

 

# 드디어 강화일주를 마치고 인삼센터로 복귀했다.

 

 

 

# 우리 차는 뙤약볕에 바짝 구워져 있다.

 

 

 

# 짐 무게 때문에 힘겨워 하더니 막상 마치고 나서는 기분이 한껏 업되어 있다.

 

 

 

# 강화 일주를 야영라이딩으로 마쳤으니 또한번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수고 많았소이다!

 

 

 

# 강화인삼센터에 도착하여 속도계를 보니 기가 막히게도 정확하게 100km를 가리키고 있다. 내 잔차에 매단 스마트폰 거치대 문구가 인상적이다. "달리든가, 죽든가!"

 

 

 

그렇게 힘들었지만 즐겁게 강화일주 야영라이딩을 마쳤다. 강화 일주가 100km 거리이니 하룻만에도 충분히 마칠 수 있는 코스이지만, 야영짐을 싣고 달리며 이곳저곳 볼 수 있는 풍광은 모두 보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들으며 가는 우리의 잔차여행 방식이 나름 의미깊은 일이다.

 

무엇보다 강화의 품속에서 하룻밤 야영하며 진정한 강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음이 더욱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다만 아직은 우리가 저질 체력이라 바리바리 짐을 싣고 메고 달리자니 무게의 압박 때문에 많이 힘 들었다는 점이 숙제이기는 하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현충일 연휴에 마눌의 국토종주 자전거길 나머지 구간인 새재와 낙동강구간을 2박 3일 여정으로 야영라이딩을 하며 마쳐 볼 거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 두른다. 좀 더 체력을 기르고 잔차 기술도 익힌 다음에 하자면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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