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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산행]중미산 소유곡/仲美山 巢由谷-우중유백림(雨中留柏林)!! 본문

산이야기/일반 산행

[야영산행]중미산 소유곡/仲美山 巢由谷-우중유백림(雨中留柏林)!!

강/사/랑 2014. 8. 22. 13:19
[야영산행]중미산 소유곡/仲美山 巢由谷

 

'요순시대(堯舜時代)'란 말이 있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다스리던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들은 성군(聖君)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들이다. 그러므로 요순시대란 성군(聖君)이 덕(德)으로써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의 삶이 어느 한 곳 불편함이 없이 태평성대(太平聖代)하였던 때를 말한다.

 

요(堯)와 순(舜)은 중국 고대 전설상의 임금인 삼황오제(三皇五帝)에 속한 왕들이다. 요는 '당요(唐堯)'라고도 부른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20세에 왕위에 올랐는데,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려 그의 치세에는 가족들이 화합하고, 백관의 직분이 공명정대하여 모든 제후국들이 화목하였다고 한다.

 

요는 재위 70년이 지난 후 효성이 지극하기로 널리 알려진 순(舜)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이렇게 직계 자손이 아닌 능력있는 인재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것을 '선양(禪讓)'이라 한다.

 

순은 '우(禹)'를 등용하여 그 당시 국가 최대의 우환이자 당면과제였던 황하의 치수(治水)에 성공한다. 우의 치수정책으로 농토가 증대하고 생산력이 높아지자 백성들은 순의 뛰어난 인재 등용을 입모아 칭송하였다.

 

수천 년 동안 인류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자기 혈연들에게 물려 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왔지만, 덕(德)이 살아있던 태평성대의 요와 순은 현명한 이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선양(禪讓)'을 실천하였다.

 

그리하여 순 역시 임금의 자리를 물려 주기 위해 널리 인재를 수소문 하였다. 그러다 '허유(許由)'라는 어진 은자(隱者)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유는 패택(沛澤)사람이다. 그는 바르지 않은 자리에는 앉지도 않았고, 당치도 않은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의(義)를 지키고 살았다.  

 

순임금은 허유를 찾아가 천하를 맡아 달라는 선양(禪讓)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허유는 순임금의 청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였다.

 

"鷦鷯 巢於深林 不過一枝(초료 소어심림 불과일지)/ 偃鼠飮河 不過滿腹(언서음하 불과만복)/ 歸休乎君 予無所用天下爲(귀휴호군 여무소용천하위).- 뱁새는 깊은 숲속에 보금자리를 틀지만, 나뭇가지 하나로 족하오. 두더지는 강물을 마시지만, 작은 배만 채우면 된다오. 부디 돌아가시오. 내게는 이 천하가 아무 소용이 없소."

 

그리고는 기산(箕山)으로 거처를 옮겨 더 깊이 은거하였다. 그러나 순임금은 다시 그를 찾아가 천하가 아니면 구주(九州)라도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허유는 다시 이를 거절하고 영천(潁川) 강가에 나가 흐르는 강물에 귀를 씻었다.

 

마침 소를 몰고 그곳을 지나던 '소부(巢父)'라는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까닭을 물었다. 허유는 순임금이 그에게 찾아와 천하를 맡아 달라길래 거절하였고, 그런 더러운 말을 들은 귀를 씻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소부는 소를 몰고 상류로 올라 가려고 했다. 이번에는 허유가 소에게 물을 먹이지 않고 상류로 올라 가는 까닭을 물었다. "더러운 소리를 들은 그대의 귀를 씻은 구정물을 소에게 먹일 수는 없지 않소!"

 

그렇게 소부는 깨끗한 물을 찾아 상류로 떠나고, 허유도 기산으로 들어가 영원히 은거하고 말았다. 이처럼 허유와 소부는 물욕이나 권력욕을 거부하고, 고고하게 지조를 지키며 살아가는 은거지사(隱居之士)의 표본으로 청사(靑史)에 그 이름을 남겼다.

 

'명달리(明達里)'는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마을이다. 원래 서종면은 산 높고 골 깊으며 물 맑은 고장이다. 그 중에서도 명달리는 통방산, 삼태봉, 중미산이 다락같이 솟아 있는 곳에 깊고 깊은 골짜기로 푹 파묻힌 산속 오지(奧地) 마을이다.

 

명달(明達)이란 이름은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침 햇빛이 제일 먼저 찾아드는 곳'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여러 자료에 그런 연유로 명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 곳에 '산간 깊이 묻힌 곳'이라는 뜻의 '멍덜'이란 마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멍덜이 한자음으로 변음되어 명달이 되지 않았나 짐작되기도 한다.

 

명달리에는 멍덜 외에도 삼각골, 상산치, 소유곡 등의 옛 마을 흔적이 있다. 삼각골이나 소유곡은 예전 화전민들이 터전을 잡았던 곳이다. 그 중 '소유곡(巢由谷)'은 중국의 전설상의 인물인 소부와 허유가 쉬어 간 곳이라 소유곡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대 중국의 신화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수만리 먼 이 해동국(海東國) 명달리를 지나 갔다는 얘기이다. 아마도 소부와 허유가 은거했던 기산처럼 이곳 명달리가 사람들 발길 닫지 않는 깊고도 깊은 골짜기였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그처럼 명달리는 산속에 파묻힌 깊은 골짜기이고, 그 중에서도 소유곡은 허유가 왕위를 피해 은거한 기산에 비교될 정도로 세상과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지금은 산속 생활을 동경해 들어 온 이들의 전원주택이 곳곳에 지어졌고, 맑고 청량한 계곡을 찾아 오는 사람들을 겨냥한 펜션들이 여럿 들어서 있지만, 아직까지는 사람들 넘쳐 나는 다른 유명 계곡에 비해 한적함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소유곡은 중미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계곡을 이뤄 흐르다 삼태봉과 통방산 물줄기를 더하면서 그 산줄기와 나란히 흘러 내리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아직은 사람들 손 덜 탄 깨끗한 계곡을 자랑하는 곳으로 그 품속에 소박한 잣숲 박지 두어 곳을 감추고 있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그 소박한 은거지를 눈여겨 봐오다가 비소식 때문에 먼 길 떠나지 못한 늦여름 소부와 허유의 은거지심(隱居之心)을 느껴보고자 그곳을 찾았다.

 


우중유백림(雨中留柏林)!!


일시 : 2014년 8월 16, 17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명달리 ~ 소유곡 ~ 잣숲 박지 ~ 기도원 ~ 삼각골 ~ 잣숲박지 복귀/야영 ~ 소유곡 ~ 명달리 ~ 자동차로 선어치고개 이동 ~ 폭우로 산행 종료.


 

삼일 연휴가 다시 찾아 왔다. 광복절이 금요일에 찾아와 달력에서 빨간색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연휴에는 삼일 내내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예보되고 있다. 때문에 지리종주나 둘레길을 꿈꾸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막상 광복절 휴일을 집에서 뒹굴며 보냈는데, 비는커녕 햇빛 쨍쨍하고 습기 머금은 무더위만 기승을 부린다. 기상청의 헛발질이 또 시작된 것이다. 황금 같은 삼일 연휴를 보람차게 보내려던 계획이 그들의 헛발질 때문에 어그러지고 말았다.

 

전국예보를 다시 확인하니 토요일엔 전국이 대부분 흐리고 일요일엔 남부와 경기북부, 그리고 영동지방으로 비가 예보되고 있다. 결국 경기 중남부 인근의 산행지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소유곡이다. 소유곡이 있는 명달리는 이전에 통방산 산행과 잣숲 야영을 하면서 다녀온 곳이다. 당시에 보니 수도권에서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찾는 이가 적고, 덕분에 아직 깨끗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또 산은 험하고 골은 깊어 심산유곡(深山幽谷)의 표본이라 할 만하였다.

 

소유곡에서는 중미산이 연결된다. 중미산은 선어치고개를 넘어 한강기맥이 지나는 소구니산, 유명산과 연결되며 벽계구곡의 발원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잣숲에서 하룻밤 보낸 다음 뒷날 중미산을 다녀오면 될 듯하다.

 

양평은 집에서 가까운 곳이니 토요일 오후 느지막이 짐 챙겨 집을 나섰다.

 


명달리/明達里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리(里). 일설에 의하면 마을이 높은 산간 지역으로 사방에 두루 통하며 아침 해가 제일 먼저 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유곡, 낭하탁골, 삼각골, 상산제를 합쳐 명달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멍덜, 삼각골, 상산재(상산치), 소유곡 등이 있다. 멍덜은 산간에 묻힌 듯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각골은 화전민이 살았던 곳이라 한다. 상산재는 뒷산이 높고 고개도 있으며 통방산 아래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유곡은 중국 전설의 인물인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지나가다가 쉬었다는 뜬소문이 전해 내려온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중미산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1년 만에 다시 찾은 명달리는 여전히 한가하고 고요하다. 주변 돌아본다고 묘각사까지 올라가 봤다. 그쪽 잣숲에는 딱 한 팀만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차가 한 대만 서 있다 묘각사 입구 정자에는 공부하는 이들과 스님이 한가롭게 휴식 중이다.

 

 

 

# 아무리 가까운 곳이지만 출발이 너무나 늦다. 이때 시각은 이미 다섯시를 넘기고 있었다.

 

 

 

# 임도는 차단기로 막혀 있다.

 

 

 

# 작년에 저 안내도 속의 상산재에서 출발하여 통방산과 삼태봉을 거쳐 이곳으로 하산했었다. 통방과 삼태는 산의 규모는 작지만 그 경사가 보통이 아니었다.

 

 

 

# 쉬엄쉬엄 한가로운 걸음으로 올라 간다. 이 동네에서는 모든 것이 여유롭다.

 

 

 

# 삼태봉을 올려다 본다. 산의 사면은 온통 짓푸른 잣숲으로 덮혀 있다.

 

 

 

# 길가엔 사위질빵이 대세이다.

 

 

 

# 옛이야기에 사위를 아끼고 사랑한 장모가 저 가느다란 덩굴로 사위의 나뭇단을 묶어 주어 사위의 힘이 덜 들게 했다는 이름 유래를 가지고 있다. 저 덩굴로 나뭇단을 묶었으니 금세 끊어졌을테고 사위의 짐은 한정없이 가벼워 졌을 것이다.

 

 

 

# 오동나무도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전설 속 봉황은 대나무밭에만 앉고 저 오동열매만 먹는 다고 한다.

 

 

 

# 펜션으로 휴가 온 젊은 커플이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산책을 하고 있다. 참 좋을 때다.

 

 

 

# 우리는 계속 고고 씽!

 

 

 

# 계곡이 참으로 맑고 깨끗하다.

 

 

 

# 중간중간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비소식 때문인지 덜 알려진 탓인지 계곡은 텅 비어 있다.

 

 

 

# 덕분에 인적은 완전히 끊겨 있고 주위는 고요하고 여유롭다.

 

 

 

# 통방산 갈림길이다.

 

 

 

# 절터고개로 올라 갔다가 좌틀하여 능선을 타야 한다.

 

 

 

# 곧 멋진 소(沼)가 나타난다.

 

 

 

# 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옥빛 물색 아래 바닥이 훤하다.

 

 

 

# 인근에 좋은 야영지가 있다.

 

 

 

# 숲향기가 그윽한 장소이다.

 

 

 

# 참으로 숨겨진 비경(秘景)이다.

 

 

 

# 이러니 만리 먼 길 마다 않고 소부와 허유가 찾아 왔으리라. 전설이긴 하지만...

 

 

 

# 임도 탐사를 계속했다. 삼각골을 지나 중미산 갈림길인 삼각골재까지 가 볼 참이었다. 삼각골 오르막 끝에 기도원이 나타난다. 조금만 더 오르면 삼각골재이다. 간 김에 중미산 정상까지 다녀 오자고 제안하니 마눌이 난색을 표한다. 우리가 출발을 너무 늦게 하는 바람에 이미 시각이 상당히 흐른 탓이다. 시간을 따져보니 중미산 정상을 다녀 오면 여덟 시가 넘을 듯 하다.

 

 

 

# 어두운 산길 불 밝히고 걷는 것이 부담스러워 중미산 정상은 내일 아침에 다녀 오기로 하고 임도따라 아래로 도로 내려 갔다.

 

 

 

# 전방에 삼태봉 꼭대기가 뾰족하게 솟아 있다.

 

 

 

# 임도를 걸어 박지로 복귀했다.

 

 

 

# 가파른 산길은 아니지만 임도따라 길게 왔다갔다를 했다.

 

 

 

# 얼른 집 한 채 뚝딱 세웠다.

 

 

 

# 우리는 매주 집 한 채를 지었다 허물었다 반복한다.

 

 

 

# 잣숲 바닥이 폭신 폭신하다. 커다란 버섯 한 송이 갓을 피어 올렸다.

 

 

 

# 임도따라 산책 나온 어느 가족이 맑은 계곡물에 발 담그고 한참을 쉬다 갔다.

 

 

 

# 그들이 떠나자 곧 어둠이 찾아 왔다. 이제는 온전히 우리 만의 시간이다. 계곡으로 내려가 시원한 계곡물에 풍덩 뛰어 들어 알탕을 즐겼다. 여름엔 이런 계곡이 최고이다.

 

 

 

# 깔끔하게 씻고 새옷으로 갈아 입은 후 잣숲 만찬을 시작했다. 오늘은 포천 검은콩 막걸리를 준비했다. 맛은 영 별로였다. 단양 대강막걸리에서 나오는 검은콩 막걸리에 비하면 맛 축에도 못 낀다.

 

 

 

# 1차 메뉴는 순대볶음.

 

 

 

# 당면도 넣고.

 

 

 

# 배 고프고 술 고프니 맛 없는 검은콩막걸리이지만 꿀꺽 꿀꺽 잘 넘어 간다.

 

 

 

# 메인은 삼계탕.

 

 

 

# 그렇게 잣숲의 밤은 깊어 간다.

 

 

 

# 소화시킬 겸 싸이트 주변을 한바퀴 돌아본다.

 

 

 

# 워낙 일찍 자리에 누웠더니 밤이 아주 길다. 도시에 있을 때면 아직 초저녁일테지만 매주말 산속에 들어 오면 밤이 얼마나 긴지 알 수 있다. 스마트폰에 담아온 애니메이션 한 편을 감상한다. 자전거 관련 애니인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이다. 삼분의 일쯤 보다가 잠이 들었다.

 

 

 

# 새소리 요란하여 잠이 깼다.

 

 

 

# 새소리 음악 삼아 아침 여유를 즐기는데, 갑자기 새소리 뚝 끊기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 계곡으로 내려가 세수하고 돌아 와도 빗방울은 가늘게 이어진다.

 

 

 

# 빗방울 떨어지니 숲향기 더욱 그윽하다.

 

 

 

# 잣나무의 기상도 느껴 본다.

 

 

 

# 깊은 잣숲이 아니라서 단풍나무도 같이 보인다.

 

 

 

# 아침 끓여 먹고 비 그치기를 기다렸다.

 

 

 

# 짐을 대충 챙겨놓고 가벼운 차림으로 정상을 다녀 오면 두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비가 그칠 생각을 안한다. 어제 예보에서는 오늘밤부터 비가 올 것이라 했는데 기상청은 그마저도 맞추질 못했다.

 

 

 

# 그래서 일단 짐을 모두 챙기기로 했다.

 

 

 

# 짐 챙기는 동안 비가 그치면 박배낭 멘 채로 정상을 다녀 올 생각이었다.

 

 

 

# 소부와 허유가 놀러 왔을 법한 동네이다. 이렇게 좋은 계곡이 있는데도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

 

 

 

#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기다리지만 비는 그칠 기미가 없다.

 

 

 

# 에잇, 정상은 다음을 기약하고 오늘은 철수하세!

 

 

 

# 하룻밤 편안한 잠자리를 허락한 잣숲에 감사하고 길을 떠난다.

 

 

 

# 어제 잎이 평평하던 버섯은 밤새 하늘을 향해 갓을 들어 올리고 있다. 빗물을 받으려고 그러나?

 

 

 

# 계곡을 건넌다.

 

 

 

# 소(沼)에게도 작별한다. 눈 내린 겨울에 다시 만납시다.

 

 

 

#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하산한다.

 

 

 

 

#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 진다.

 

 

 

# 길이 좋으니 빗줄기 굵어도 걱정이 없다.

 

 

 

# 임도 곁 산에서 금세 폭포가 만들어져 계곡으로 흘러 든다.

 

 

 

# 통방산에도 물안개가 끼었다.

 

 

 

# 명달리로 복귀하니 비로소 빗줄기가 줄어 든다.

 

 

 

# 반사경을 만나 이런 장난도 치고...

 

 

 

 

 

# 우리 자동차 홀로 비를 맞고 있다.

 

 

 

# 명달리로 복귀하니 비가 많이 가늘어진다. 그걸 보니 중미산 정상에 대한 욕심이 다시 고개를 든다. 그래서 선어치고개로 가서 그곳에서 정상을 어택하기로 했다. 명달리고개를 넘어 정배리를 통과했다. 중미산자연휴양림 앞에서 길게 고개를 치고 올라 가면 한강기맥길이자 소구니산 들머리인 농다치고개가 나온다. 그곳에서 좌틀하여 다시 고개를 치고 오르면 선어치고개가 나온다. 빗방울 떨어지는데도 잔차동호회에서 라이딩을 나왔다. 이들은동차 에스코트도 받는 팀이었다.

 

 

 

#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하지만 정상에 대한 열망이 강해 강행하기로 했다. 고개 정상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물 한 통 구입했다. 이상하게 술 생각은 나지 않더라. 비 때문에 심란해서 그랬나?

 

 

 

# 포장마차 뒷쪽에 들머리가 있다. 짐은 차에 두고 간편한 차림으로 출발했다. 선어치에서 정상까지는 삼사십분이면 충분하다.

 

 

 

# 평소 통행이 잘 없는지 수풀이 아주 무성하여 등로가 희미하다. 절개지 사면이 아주 가파르다. 한바탕 용을 써야 할 모양이다.

 

 

 

물기 가득 머금은 수풀을 헤치고 절개지 사면을 치고 오른다. 경사가 가파르고 물기 가득해 걸음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채 몇걸음 옮기기도 전에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한다. 돌아보니 마눌은 비명 지르기 일보 직전이다.

 

그래, 정상은 다음에 다녀오라는 산신령 뜻인가 보다. 세속의 물욕, 권력욕을 벗어던지고 기산으로 스며든 소부와 허유가 머물다 갈 정도로 그윽하고 깊은 소유곡을 단 한번 다녀 간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산신령의 뜻이 그러하니 오늘은 이곳에서 멈춰야 할 모양이다. 고개로 도로 내려와 바람막이 벗어 던지고 옷도 마른 옷으로 다시 갈아 입었다. 그리곤 다음을 기약하며 선어치를 떠났다.

 

그렇게 소유곡에서의 야영과 중미산 산행은 미완(未完)인 채로 마무리 되었다. 그 완성은 다른 계절에 중미산행과 소유곡 잣숲 야영을 이어 감으로 이뤄질테고, 그 결과 소부와 허유의 무욕(無慾)한 정신의 편린이나마 느낄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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