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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산행]괘방산/掛榜山-백두대간과 동해바다!! 본문

산이야기/일반 산행

[야영산행]괘방산/掛榜山-백두대간과 동해바다!!

강/사/랑 2015. 2. 24. 19:53
[야영산행]괘방산/掛榜山

 

'과거제도(科擧制度)'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시행된 오랜 역사의 관리채용 시험제도이다. 중국은 한(漢)나라 때에 기원하였고, 우리나라는 신라 원성왕 4년인 788년에 골품제(骨品制)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해 실시한 '독서출신과(讀書出身科)'가 첫 시작이었다.

 

나중에 당파나 시험부정, 뇌물, 정실인사 등 폐단이 누적되어 갑오경장(甲午更張) 때 폐지가 되었지만,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천여 년 우리나라 인재등용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제도이다.

 

귀족이나 고위관리의 자제들이 특권적 권한으로 관직을 세습하던 음서(蔭敍)를 극복하고, 실력을 갖춘 자라면 누구나 관직으로의 등용(登用)이 가능하게 만든 합리적이고 공정한 신분상승의 기회로써 역할하였다.

 

그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져서 고시(考試)제도가 아직도 국가 인재등용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근래 들어 공부만 잘하는 편협된 인재의 등용 수단인 고시를 폐지하고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전문가를 공직에 발탁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으로 보아 역사는 역시나 돌고 도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공정한 인재등용 수단으로서 고시의 역할은 분명하고, 역사에서도 과거제도의 순기능(順機能)은 폐단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과거제도가 신분 상승의 유일한 통로였던 만큼 우리 역사 속 과거(科擧)의 중요성은 비할 바 없었고, 과거급제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조선 시대 과거에 뜻을 둔 소년들은 서당에서 기초과정을 배운 뒤 8세가 되면 중앙 사학(四學)이나 지방 향교(鄕校)에 진학하였다. 이후 소과(小科)에 응시하였는데 소과는 생원과와 진사과로 나뉘고, 각 시험은 초시와 복시로 다시 구분되었다.

 

그 시험을 통과한 생원과 진사는 다시 서울의 성균관(成均館)에 진학하였고, 그곳에서 학문을 익힌 후 대과(大科)를 치렀다. 대과는 초시(初試), 복시(複試), 전시(殿試)로 구분하였는데, 초시와 복시는 다시 초장, 중장, 종장의 시험을 치러야 했다.

 

이 시험에서 최종 33명을 선발하였는데, 그 33인이 왕 앞에서 치르는 시험이 '전시(殿試)'이다. 수만 명의 응시자 중 33인 안에 들어야 하고, 또 그중에서 선발되어져야 하니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부분 이렇게 모든 과정을 거쳐 급제를 하면 삼십대의 나이가 되었다.

 

한편 실록(實錄)에서는 고종 24년인 1887년 83세의 박문규(朴文逵)라는 이가 개성별시문과(開城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최고령으로 과거에 급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인간승리의 인물은 안타깝게도 그 이듬해인 1888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렇게 온 생애를 바쳐 도전해야 하는 시험이니 그 시험을 치르기 위한 과정에서 갖가지 이야기가 탄생하고 징크스도 다양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지명(地名)과 관련된 징크스이다. 당시 영남과 호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자면 앞길을 가로막는 백두대간의 높디 높은 고개들을 넘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고개 중 과거 응시자들이 회피하는 고개가 있었으니 '죽령(竹嶺)'과 '추풍령(秋風嶺)'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모두가 고개 이름 때문인데, 죽령(竹嶺)은 죽죽 미끄러질까 봐 회피하였고, 추풍령(秋風嶺)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질까 봐 가까이하질 않았다고 한다. 

 

대신 먼길을 돌아가더라도 '문경 새재(聞慶 鳥嶺)'나 '괘방령(掛榜嶺)' 고갯길을 넘어갔다. 그 이유는 문경은 '반가운 소식(慶)을 들을(聞)' 수 있는 고장이라 그렇고, 괘방령은 고개 이름처럼 '과거급제의 방(榜)이 내걸리기(掛)'를 기원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과거급제의 기원을 담은 고개나 산이 우리 땅에는 더러 있다. 김천의 괘방령과 진주의 괘방산, 그리고 강릉 안인진의 괘방산이 바로 그런 염원을 담은 산이다.

 

강릉 괘방산은 안인진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그 모양이 과거급제자를 알리는 방처럼 생겨 괘방이라 불렀다고도 하고, 그 품속에 있는 등명 낙가사에서 공부를 하던 선비들이 이 산에 올라 기도를 하면 과거에 급제한다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실제로 이 산정에 올라 보면 앞으로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동해바다가 푸르디푸르고, 뒤로는 백두대간의 고산준령(高山埈嶺)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동해바다를 뚫고 솟아오르는 붉은 해의 기운과 백두대간의 정기를 모두 받을 수 있는 곳이니 아무리 어려운 과거시험이라도 덜컥 급제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의 장소이다.

 

그리하여 우리도 동해바다의 맑은 기운과 백두대간의 곧은 정기를 받아 보고자 설날 연휴에 먼 길을 달려 괘방산으로 향했다.

 

  


백두대간과 동해바다!!


일시 : 2015년 2월 20, 21일. 쇠와 흙의 날
세부내용 :


안인진삼거리 ~ 안보1지점 ~ 쉼터 ~ 164.8봉 ~ 활공장/야영 ~ 임도갈림길 ~ 고려성지 ~ 삼우봉 ~ 괘방산 ~ 괘방산사거리 ~ 2쉼터 ~ 당집 ~ 1삼거리 ~ 3쉼터 ~ 183고지 ~ 정동진.

  

연초에 동해 일출을 보고자 대관령 제왕산정에서 하룻밤을 보냈었다. 제왕산은 강릉 앞바다를 마주 보고 있는 산이다. 하지만 정상 주변에 수목이 있어 동해바다가 곧바로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당일 일출은 나뭇가지 사이로 솟아 오르는 아쉬운 일출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하여 설날 연휴를 맞이해 동해 일출 산행을 다시 하기로 했다. 설날 역시 음력 새해이니 그 의의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동해 쪽에 일출산행지로 알맞기로는 괘방산이 으뜸이다. 괘방산은 정동진 바닷가 뒷쪽에 위치해 있으니 동해일출 조망에 최적의 장소이다.

 

게다가 정상 가는 길에 있는 활공장에 야영하기 좋은 데크까지 갖추고 있어 여러모로 우리 의도와 일치한다. 다만 그 활공장이 꽤 알려진 곳이라 너무 번잡할까봐 걱정 되는 점이 약점인 곳이기는 하다.



괘방산/掛榜山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의 산성우리 , 안인진리, 임곡리 사이에 있는 산. 높이는 339m이다.
괘방산(掛榜山)은 산줄기의 모양이 과거에 급제하면 합격자의 명단을 붙이던 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선비들은 등명낙가사에서 공부를 하다가 새벽에 괘방산에 올라와 바다를 보며 과거 급제를 기원했다고 한다. 또한 과거에 급제하면 괘방산에 급제자의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을 쓴 커다란 두루마기를 걸어 놓았다고 한다. 이 산이 있어서 강릉지역에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괘방산은 화비령에서 북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이 바다를 끼고 있다. 괘방산의 동쪽 끝에 7번 국도와 영동선 열차가 지나가는데 정동진 열차역은 괘방산의 산행 들머리에 있다. 괘방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강릉역에서 열차를 타고 정동진역에서 하차하거나 강릉시에서 정동진행 시내버스를 타고 정동진에서 하차하는 방법이 있다. 괘방산 중턱에는 괘방산성, 고려성지가 있고 동쪽 낙맥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지은 등명사지[지금은 등명낙가사]가 있다. 등명낙가사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대포동은 1996년 9월 18일 북한 무장공비들이 잠수함을 타고 침투한 지역이다. 이 사건 이후로 괘방산에 안보체험등산로를 만들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괘방산은 강동8경 가운데 하나인 방산낙조(榜山落照)에 해당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괘방산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집에서 출발이 늦기도 하였지만 설 연휴라 길이 워낙 막혔다. 대관령 넘어 안인진 바닷가에 도착하니 시각은 이미 다섯시 오십분을 가리키고 있다. 안인진 삼거리에 주차장과 산행 들머리가 있다.

 

 

 

# 오늘 우리가 걸을 이 길은 해파링길 36코스이기도 하다. 해파랑길은 나중에 자전거로 달릴 예정이다.

 

 

 

# 또, 이 길은 안보체험등산로란 이름도 가지고 있다. 잠수함 침투사건지역이라 그런 이름을 지었나 보다.

 

 

 

# 모두들 산행 마치고 하산 완료한 시각에 우리는 무거운 등짐 지고 산을 오른다.

 

 

 

# 계단길을 올라 가다 돌아 보면 동해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보는 동해바다이다.

 

 

# 올 겨울은 빨리 지나간다.  이곳 등로는 벌써 해빙기의 모습이다. 땅이 녹아 등로는 온통 진창이다.

 

 

 

# 한 차례 올리더니 산의 사면을 휘감는다.

 

 

 

# 강릉은 소나무가 유명하다. 그리하여 '솔향강릉'이란 고장 네이밍을 했다.

 

 

 

# 한차례 올리면 안보1지점이란 갈림길이 나온다.

 

 

 

# 좌측 봉우리에 동해가 조망되는 쉼터가 있는 모양이다.

 

 

 

# 날씨가 포근해 겉옷을 벗어 패킹하였다.

 

 

 

# 등로는 다시 사면을 휘감는다.

 

 

 

# 그러다 잠시 올리면 능선갈림길이 나온다. 좀 전 전망대 쉼터로 이어지는 능선갈림길이다.

 

 

# 백두대간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다. 

 

 

 

# 백두대간 능경봉 우측 어깨 너머로 해가 넘어 간다.

 

 

 

# 강릉이 저 멀리 보인다.

 

 

 

# 조망이 깨끗하지 않다.

 

 

 

# 갈림길을 지나 능선을 따라 진행한다. 편안한 길이다. 솔향 가득하고..

 

 

 

# 안인진 봉화산과 그 좌측의 염전해변이 보인다.

 

 

 

 

# 잠시 더 진행하면 벤치가 있는 쉼터가 나온다.

 

 

 

# 안인진 바다가 보이는 쉼터이다.

 

 

 

 

# 우측으로 휘감아 저 봉우리를 올라야 한다.

 

 

 

# 한차례 올라 봉우리에 올라 섰다.

 

 

 

# 백두대간의 장쾌한 흐름이 눈앞에 펼쳐진다.

 

 

 

# 가운데 오목한 곳이 닭목재이다.

 

 

 

# 삽당령과 닭목재, 대관령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다.

 

 

 

# 불타는 노을이 아니라 조금 아쉽기는 하다.

 

 

 

 

# 가야할 활공장이 저 멀리 우뚝하다. 앞의 봉우리는 164.8봉이다.

 

 

 

# 활공장 데크에는 이미 누군가 자리를 잡고 있다.

 

 

 

# 한차례 길게 올려 전위봉에 이르렀다.

 

 

 

# 1.5km 쯤 올라 왔다.

 

 

 

# 한차례 더 올려 활공장 데크에 도착했다. 1시간 걸렸다. 동해 쪽 전망대는 비어 있다.

 

 

 

# 대간 쪽 전망대에 텐트 세 동이 설영되어 있다.

 

 

 

# 등명 낙가사가 발 아래이다.

 

 

 

# 우측 불빛은 휴양림이다.

 

 

 

# 저 멀리 괘방산 정상이 보인다.

 

 

 

# 괘방산 정상은 통신대가 차지하고 있다.

 

 

 

# 대간 쪽 데크에 선객들이 자리 하고 있지만, 워낙 넓은 곳이라 텐트 칠 곳은 넉넉하였다.

 

 

 

# 깅릉시내는 이미 불야성이다.

 

 

 

# 선객(先客)들에게 인사하고 우리도 얼른 집 한 채 올렸다.

 

 

 

# 선객들은 세 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텐트가 모두 후덜덜한 것들이다. 힐레 알락 두 개, 엑스패드 폴라리스가 한 개이다. 가격이 모두 백만 원을 훌쩍 넘기는 비싼 것들이다. 비싼 텐트를 가지고 다녀 그런지  그들의 대화는 온통 텐트 이야기이다.

 

 

 

# 반면 우리 텐트는 이십만원 짜리 공동구매 물품이다. 저렴한 놈이지만 우리 두 사람과 함께 방방곡곡으로 돌아 다닌 부지런한 넘이다. 그동안 숱하게 추위와 더위, 비와 바람을 모두 막아 준 든든한 동무이다.

 

 

 

# 이곳 괘방산 활공장은 꽤 운치가 있는 곳이다.

 

 

 

# 괘방산 정상을 올려보았다.

 

 

 

# 하늘에 별이 총총하였다. 내일 아침 일출이 기대된다. 

 

 

 

# 

 

 

 

# 어느 카페에서 공동구매한 돔쉘터 빨갱이. 가격은 이십만 원에 불과하지만 가성비 높은 넘이다. 설치 편하고 가볍다. 무엇보다 가로 폭이 150cm로 일반 2인용 텐트에 비해 30cm 이상 넓다. 때문에 2인이 편하게 잘 수 있고, 동절기에 텐트 안에서 취사가 가능하다. 다만 홑겹 텐트라 결로에 취약한 것은 감수해야 한다.

 

 

 

# 저 텐트들은 한 개 가격으로 내 텐트 대여섯 동은 살 수 있다.

 

 

 

# 땀 닦아 내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후 막걸리 한 잔 나누었다.

 

 

 

# 편안한 밤이었다. 이웃집 사람들의 술자리가 늦게까지 이어져서 약간 곤란하였지만, 깊이 잠들어 별무상관이었다.

 

 

 

# 텐트밖으로 나왔는데, 하늘 올려보니 날이 잔뜩 흐리다.

 

 

 

# 일출시간에 맞춰 동해쪽 데크로 올라 갔다.

 

 

 

# 부지런한 산객이 벌써 올라와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 

 

 

 

# 수평선 너머로 약간 밝아지기 시작한다.

 

 

 

# 이웃집 산꾼 중 한 분도 카메라 세팅한 채 일출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잔뜩 찌푸린 하늘은 불타 오르는 일출을 허락하지 않는다.

 

 

 

# 기다림에 지친 당일산꾼들은 안인진으로 하산한다.

 

 

 

#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삼각대만 홀로 바다를 응시한다.

 

 

 

 

# 안보공원이 내려다 보인다.

 

 

 

# 안인진 포구와 봉화산.

 

 

 

# 부지런한 어부는 벌써 새벽조업을 마치고 귀항하고 있다. 

 

 

 

# 모두 떠난 정상에서 오래 일출을 기다렸다. 수평선 위로 하늘이 조금 열린다. 약간 밝아진 하늘이 기대감을 갖게 한다. 

 

 

 

# 하지만 거기까지가 다였다. 

 

 

 

# 동해 일출을 기대한 두번째 도전도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 아쉬운 마음 안고 숙영지로 복귀했다. 

 

 

 

# 어젯밤에 밝은 불빛을 보여주던 강릉시내도 뿌연 박무 속에 숨었다.

 

 

 

# 박무 때문에 깨끗한 조망은 아니지만, 백두대간은 그 장쾌한 흐름을 숨기지 못한다

 

 

 

# 저 뾰족한 산은 칠성산이다. 그 산 우측 골짜기로 계속 가면 백두대간 삽당령이 나온다.

 

 

# 맨 앞쪽에 짙은 산은 청학산이다. 

 

 

 

# 이 산은 백봉령 가기 전에 있는 피래산이다.

 

 

 

# 강릉쪽 조망이다. 여전히 희미하다.

 

 

 

 

# 백두대간 능선이다. 고루포기산과 능경봉. 앞쪽으로 튀어나온 산은 지난 새해 첫날에 올라 가서 야영했던 제왕산이다. 그 우측으로  대관령과 선자령이 이어진다.

 

 

 

# 아침 챙겨 먹고 얼른 짐을 꾸렸다. 괘방산은 등산객이 많은 산이다. 민폐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철영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전방 백두대간의 흐름을 넓게 펼쳐 보았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좌측에서부터 백두대간 앞에 있는 피래산, 백복령, 저멀리 뒷쪽으로 백두대간 석병산, 앞에는 칠성산, 또 뒷쪽에 닭목재, 고루포기산, 능경봉, 대관령, 선자령으로 이어진다. 맨앞 쪽에 송전탑이 있는 청학산이 보인다. (아래 사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백두대간 선자령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 이웃집과 작별한다. 그들은 느긋한 것이 안인진으로 원점회귀 할 모양이다.

 

 

 

# 비행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안보공원.

 

 

 

# 작은 규모의 자연 휴양림.

 

 

 

# 박무때문에 바로 앞의 바다 풍경도 흐릿하다.

 

 

 

 

# 우측 멀리 괘방산 정상이 보인다. 우리는 저 정상을 넘어 정동진으로 내려 갈 생각이다.

 

 

 

# 하룻밤 편안하게 보낸 활공장 봉우리에 작별하고 길을 떠난다.

 

 

 

# 휴양림 쪽에서 올라온 저 처자는 연신 "대박 대박!" 을 외친다.

 

 

 

# 곧장 아래로 깊이 떨어진다.

 

 

 

# 그곳에 임도 사거리가 있다.

 

 

 

# 우리는 직진하여 삼우봉 방향으로 올라 간다.

 

 

 

# 한차례 올려 고려성지에 도착했다. 허물어진 성돌을 모아 탑을 만들었다. 

 

 

 

 

# 정상까지는 아직 봉우리 두어개를 더 넘어야 한다.

 

 

 

# 

 

 

 

# 우측으로 조망이 열려 있다. 

 

 

 

# 

 

 

 

 

# 삼우봉 전위봉에 바위 전망대가 있다.

 

 

 

 

# 지나온 산줄기가 보인다. 

 

 

 

# 우리가 하룻밤을 보낸 활공장이 건너다 보인다.

 

 

 

# 저 멀리 바닷가에 오똑한 봉화산과 안인포구. 그곳에서 출발했다.

 

 

 

# 봉화산과 안인포구.

 

 

 

# 안보공원과 자연휴양림. 

 

 

 

# 삼우봉에 올라 섰다.

 

 

 

# 시원한 조망은 없는 곳이다.

 

 

 

# 백두대간 쪽이 열려 있기는 하다.

 

 

 

# 다시 괘방산을 향해 치고 오른다.

 

 

 

# 이곳은 응달 북사면이라 눈이 아직 남아 있다. 미끄럽다.

 

 

 

# 한 호흡 치고 올라 괘방산 정상에 이른다.

 

 

 

# 진짜 정상에는 통신시설이 있어 접근하지 못하고, 이 전위봉을 괘방산 정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정상임을 알리는 아무 표식도 없다.

 

 

 

# 괘방산 정상.

 

 

 

#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 사면을 따라 우회한다.

 

 

 

 

# 터진 숲 너머로 정동진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 크루즈 선박이 산 위에 올라 있다. 사공이 아주 많았나 보다.

 

 

 

# 괘방산 정상을 돌아 아래로 내려 간다.

 

 

 

# 전망대 쉼터.

 

 

 

# 임도가 다음 봉우리의 사면을 휘감고 있다.

 

 

 

# 길게 내려가면 다시 임도를 만난다. 이 길은 정상의 통신시설로 올라 가는 길이다.

 

 

 

# 임도를 가로질러 숲으로 내려 간다.

 

 

 

# 숲길이 아주 정겹다.

 

 

 

# 안보3지점 통과.

 

 

 

# 이 동네는 온통 솔밭이다. 정말 강릉은 솔향기 가득한 곳이다.

 

 

 

# 임도가 가까이 있어 지도를 확인 해 본다. 아쉽게도 임도는 우리가 가야할 길과는 점점 멀어진다.

 

 

 

# 미련 버리고 숲길로 이동.

 

 

 

# 다시 한차례 밀어 올린다.

 

 

 

# 이름 없는 봉우리이다.

 

 

 

# 이 봉우리에서 우틀하여 떨어져 내린다.

 

 

 

 

# 솔향기 맡으며 전진.

 

 

# 그곳 안부에 당집이 있다. 

 

 

 

# 동해바다는 풍랑이 거센 곳이다. 그리하여 이 고장 사람들은 해신을 섬겨 바다를 달래려 했다. 당집문을 열어보 신령님 초상과 제물이 놓여 있다.

 

 

 

# 이 동네 사람들의 간절한 기원의 장소인 이곳에도 몰지각한 외지 등산객들이 쓰레기를 잔뜩 버려 두고 갔다.

 

 

 

# 당집 바로 앞에 사거리 갈림길이 있다.

 

 

 

# 정동진 방향은 직진.

 

 

 

# 잠시 가면 넓은 임도를 만난다. 한 무리의 산꾼들이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다.

 

 

 

# 아름드리 노송들이 나래비를 서 있다.

 

 

 

# 그 길 한 편에 당집의 흔적이 있다.

 

 

 

# 집은 사라지고 돌담과 기와 파편만 남았다.

 

 

 

# 이곳은 예전에 탄광이 있던 곳인 모양이다. 길이 온통 검은 탄가루 섞힌 흙으로 되어 있다.

 

 

 

# 183봉까지는 봉우리 몇 개를 더 넘어야 한다.

 

 

 

# 폐탄석을 쌓아둔 봉우리도 있다.

 

 

 

# 검은 석탄가루 섞힌 땅이 질척하게 녹았다.

 

 

 

# 길은 순하다.

 

 

 

# 넓은 광장 있는 곳에서 괘방산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 제법 긴 오르막 하나를 치고 오른다.

 

 

 

 

# 벤치가 있는 봉우리이다. 안내도에 기록된 3쉼터인가 보다.

 

 

 

# 지역 주민들이 산행을 나왔다. 여성 한 분이 우리 짐을 보고 자기 남편을 타박한다.남들은 저렇게 무거운 배낭 메고 산을 잘도 오르는데 도시락 하나 든 배낭도 무겁다고 불평하느냐는 거다.  계속 있다가는 부부싸움 할 것 같아 얼른 자리를 피했다.

 

 

 

# 다시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른다.

 

 

 

# 좀 전 봉우리보다 더 길게 오른다.

 

 

 

# 183봉이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지만 제법 긴 거리에다 대형 배낭 차림이니 쉽지 만은 않다.

 

 

 

# 정동진까지는 아직 1.3km를 더 가야 한다.

 

 

 

# 저 멀리 산줄기들이 장쾌하다.

 

 

 

# 흰 눈 덮인 저 산은 백두대간 댓재 백복령 구간에 있는 고적대인 듯하다.

 

 

 

# 오르내림은 계속 된다.

 

 

 

 

#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했다. 정동진이 바로 코앞이다.

 

 

 

# 이젠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 드디어 정동진에 도착했다. 활공장에서 7.5km 거리이고 세 시간이 걸렸다.

 

 

 

# 등로가 진창이라 신발이 엉망이다. 진흙 털어낼 곳 찾아 잠시 방황하다 시내로 내려 갔다.

 

 

 

 

# 버스정류소가 있길래 일단 자동차를 회수하기로 했다. 지역 주민과 대화도 나누고.

 

 

 

#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택시를 탔다. 바로 코앞의 거리인데도 정동진의 택시는 시외 할증을 요구한다. 불쾌하였만 싸우기 귀찮아 그냥 지불했다. 자동차 회수하여 등명낙가사를 잠시 둘러 보았다. 이십여 년만의 방문이다.

 

 

 

# 정동진역으로 가보았다. 관광객들이 바글바글 하다.

 

 

 

# 찬바람 부는 정동진 바닷가에도 사람들로 넘쳐난다.

 

 

 

# 오랜만의 바닷가 산책이라 관광객 틈에 끼는 일쯤은 감수한다.

 

 

 

 

# 동해바다 파도소리가 참으로 반갑고 정겹다.

 

 

 

 

# 묵호항 어달리까지 내려 갔다.  십수 년 전 낚시하러 왔다가 우연히 허름한 바닷가 식당을 들렀다. 할머니가 운영는 손바닥 만한 작은 가게인데 곰치국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그후 동해안에 올 때면 일부러 라도 찾곤 했던 집이다. 이번에는 꽤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그런데 집은 그 자리에 있는데,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할머니께 무슨 일이 있으셨던 모양이다. 할 수 없이 시장으로 들어 갔다.맛있기는 했지만 어달항 할머니 손맛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렇게 괘방산 야영산행을 마쳤다. 이번 괘방산行은 동해 일출 두 번째 도전의 산행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동해 용왕님은 소망했던 불 타는 일출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백두대간 졸업 이후 십여 년 동해를 찾지 않았더니 많이 서운하셨던 모양이다.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찾아 뵙고 일출 허락을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그때는 신선봉으로 갈까, 아니면 두타산으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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