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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의 山]7(욕지도/欲知島)-천황산/天皇山-지적 욕구의 섬! 본문

산이야기/그 섬의 山

[그 섬의 山]7(욕지도/欲知島)-천황산/天皇山-지적 욕구의 섬!

강/사/랑 2016. 4. 26. 15:28
 [그 섬의 山]7(욕지도/欲知島)-천황산/天皇山

  

 

서양철학은 그리스로부터 비롯하였다. 우리가 흔히 '철학(哲學)'이라고 할 때 번역하는 영어의 'Philosophy'는 본래 그리스어의 'Philosophia'에서 온 것이다. 그 뜻은 '애지(愛知)' 즉 '지혜를 사랑함'을 의미한다. 사랑을 뜻하는 'philos'와 지혜를 뜻하는 'sophia'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나 세계에 대한 지혜와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자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관심사에 대한 성실한 사색의 활동인 필로소피(Philosophy)를 왜 우리는 지금 '애지(愛知)'로 부르지 않고 '철학(哲學)'이라 부르는 것일까?


그 근원은 근대화(近代化)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말 서양제국들이 동아시아를 식민화하기 위해 접근했을 때 동아시아 삼국의 대응은 서로 달랐다. 중국은 아편전쟁의 패배로 인한 불가피한 개항(開港), 일본은 미국 페리 제독의 개항요구에 대한 적극적 개항을 택했다.


반면 조선은 쇄국정책(鎖國政策)으로 서양제국의 접근을 꼭꼭 막았고 초창기 몇몇 전투에서 승리하여 서양 오랑캐의 침입을 막아냈다는 자부심으로 더더욱 칩거하였다. 그 선택의 차이로 조선은 근대화에서 가장 뒤처졌고 그 결과 주권을 잃고 역사의 패자가 되는 불행을 초래하였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문호개방을 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은 서양의 앞선 기술을 도입하고 산업화를 추진하여 국력의 키우기 위해 서양의 학문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그 중심에 선 것이 일본 최초의 근대적 학회(學會)라고 할 수 있는 '메이로쿠샤(明六社)'였다. 일본 근대화의 주역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나 '니시 아마네(西周)' 등이 메이로쿠샤에서 활약한 계몽(啓蒙) 운동가들이다.


신문물이나 신학문의 도입을 하자면 새로운 용어나 단어의 번역(飜譯)이 필수이다. 개화 시기 서양 학문의 용어(用語)나 개념(槪念)은 당시 동북아 세계의 사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다. 따라서 계몽학자들의 첫 번째 과제는 새로운 용어나 단어의 번역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말이 심리학(心理學 ; mental philosophy), 현상(現象 ; phenomenon), 객관(客觀 ; object), 주관(主觀 ; subject), 논리학(論理學 ; logics), 윤리학(倫理學 ; ethicis), 미술(美術 ; fine art), 자유(自由 ; Liberty), 개인(個人 ; Individual), 자연(自然 ; nature), 사회(社會 ; society), 연설(演說 ; speech), 토론(討論 ; debate), 경쟁(競爭 ; competition) 등이다.


이때 도입되고 번역된 용어는 그 양이 실로 방대하여 오늘날 우리가 배우고 사용하는 정치, 경제, 사회, 학문 관련 용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학문의 이름이나 두 음절의 단어로 된 한자 용어들 대부분이 이 시기 형성된 것들이다.


필로소피(Philosophy)도 이렇게 근대화 과정에서 철학(哲學)이란 용어로 번역이 되었다. 철학(哲學)은 '밝을 철(哲)', '배울 학(學)'을 쓴다. '밝은 학문'이란 뜻이다. 이 용어는 니시 아마네가 번역한 용어인데, 그는 '지혜 사랑'이란 필로소피의 뜻을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학문으로 보았고 무지몽매(無知蒙昧)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나가는 통로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필로소피는 일본에 이르러 애지(愛知)가 아닌 철학(哲學)으로 뜻이 모호하게 확대되었고 그 일본을 통해 신식 문물을 받아들인 조선에 그대로 전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동양에서는 애초에 철학이라는 개념이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철학이라는 단어로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동양은 기원전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유가(儒家)·도가(道家)·음양가(陰陽家)·법가(法家)·명가(名家)·묵가(墨家)·종횡가(縱橫家)·잡가(雜家)·농가(農家) 등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이 백화제방(百花齊放)으로 꽃 피었다.


그리고 그 전통은 동북아 삼국 역사를 면면히 이어 문화로 계승되어 왔고 특히 조선의 경우 퇴계(退溪)와 율곡(栗谷)에 이르러 중국을 뛰어넘어 그 폭과 깊이가 심화된 고유의 사상체계로 발전되었다.


그 이름이 철학이든 애지이든 필로소피는 근본적으로 인간과 세계의 근본원리를 알고자 하는 학문이므로 동서양의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인간 지혜의 역사와 함께해 온 분야이다. 그리하여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지만, 어디서든 누구이든 그 답을 명확히 알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조선 땅 통영에서 남서쪽으로 30㎞ 떨어진 곳에 12.73㎢의 면적을 가진 섬이 하나 있다. 수목이 울창하고 온갖 약초가 뒤엉킨 골짜기마다 사슴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여 '녹도(鹿島)'라고 불렸던 섬이다. 임진왜란 직후 이 섬에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설치되어 인근 해안의 수색 및 초계 정박처가 되었는데, 매년 여름철이면 통제영 수군들이 사슴을 수렵하여 그 녹용을 진공품으로 조정에 올렸다 한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섬 이름이 그냥 녹도로 계속 있어도 무난할 터인데, 기록에는 욕질도(欲秩島), 욕질도(褥秩島), 욕지도(欲智島), 욕지도(欲知島), 욕지도(浴池島), 욕지도(辱地島) 등의 이름이 난무하고 있다.


매년 봄가을 변방(邊方)의 수령들은 바다의 호국신(護國神)에게 변방의 보전과 국태민안을 비는 제사를 지냈는데, 이러한 산천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망제(望祭) 혹은 망질(望秩)이라 했다. 그 망질에서 '欲秩'과 '褥秩'이란 이름이 나왔다. 조선 초기에는 그렇게 불렀다. 그러다 조선 중기에 '욕지도(欲智島)'와 '욕지도(欲知島)'로 함께 부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욕지도'欲知島)'로 굳어졌다.


'浴池'는 욕지항 가운데의 거북처럼 생긴 작은 섬이 못(池)에서 목욕(浴)하는 형상이라 하여 유래하였다 하고, '辱地'는 유배인들이 굴욕적인 삶을 산 곳이라 하여 불렀다고 하는데 굴욕적인 유배의 섬이 어디 욕지 뿐이겠는가?


화엄경(華嚴經)에 '약인욕료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體唯心造)'란 게송
(偈頌)이 있다. '만약 사람이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의 깨달음을 알고자 한다면, 법계의 성품은 오로지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마땅히 직관(直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욕지도(欲知島)라는 이름은 이 화엄의 말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마지막 화엄의 뜻이 가장 고상(高尙)하고 한자 뜻풀이도 딱 들어맞아 이 지역 사람들은 깨달음(知)을 알고자(欲) 하는 그 유래를 가장 선호하는 듯하다.


원래 사람살이라는 것이 뜻이 좋으면 그 결과도 좋은 법이다. 이왕이면 고상하고 학문적인 뜻으로 그 유래를 삼음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그렇게 욕지도(欲知島)는 깨달음을 알고자 하는 가장 철학적인 이름의 유래를 갖게 되었다. 즉물적(卽物的) 누림과 향락(享樂)이 대세인 이 시대에 '지혜에 대한 욕구'를 그 이름으로 하는 섬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깊은 일이다. 


그 철학적인 섬의 산정(山頂)에서 헝겊집 하나 짓고 하늘의 별을 병풍 두르고 바다의 파도 소리를 음악 삼아 하룻밤 보내노라면 나 같은 무지몽매의 범인(凡人)도 지혜의 끈 하나쯤은 얻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이다. 그리하여 그 깨달음의 사랑에 물들고 싶어 무거운 바랑 챙겨 욕지도로 향했다.

 

 

지적 욕구의 섬!


일시 : 2016년 3월 26 ~ 27일. 흙과 해의 날.

부내용 : 욕지여객터미널 ~ 버스 ~ 야포 ~ 일출봉 ~ 망대봉 ~ 잿고닥 ~ 전망대 ~ 출렁다리 ~ 전망대 ~ 고래강정 ~ 낮은목 ~ 목넘이 ~ 욕지항/휴식 ~ 서촌윗길 ~ 저수지 ~ 태고암 ~ 천황산 ~ 대기봉 ~ 새천년기념공원/야영 ~ 혼곡 ~ 욕지여객터미널

 

 
해마다 봄이면 먼바다 남쪽의 욕지도를 꿈꾸었다. 그러나 일상의 무게 무겁고 인연의 끈 이어지지 않아 여러 차례 시도가 무산됨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육칠 년을 보냈다.


그러나 올봄에 무거운 일상의 짐을 잠시 내려놓을 기회가 생겼다. 이 휴식이 길어질지 잠시일지는 알 수 없으나 수십 년래의 휴식이라 일단은 그동안 시간 없다는 핑계로 못했던 일들을 하나둘 해볼 작정이다. 그중 하나가 욕지도 방문이다.


올봄에는 유독 고향 진주를 갈 일이 많다. 경조사가 갑자기 여러 번 겹쳤기 때문이다. 그 경조사 중 하나를 위해 진주에 가는 길에 욕지도 야영을 하기로 했다. 아직 찬바람 남아 있는 뭍에 비해 그곳은 봄날이 무르익고 있을 터이니 심춘(尋春) 섬산행으로 그만일 것이다.


그럴 요량으로 진주행을 하면서 자동차 짐칸에 야영 짐을 바리바리 실었다.

 

 

 

욕지도/欲知島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에 있는 섬. 동경 128°18′, 북위 34°36′에 위치하며, 통영에서 남서쪽으로 30㎞ 떨어져 있다. 욕지면의 주도로서, 욕지면 관할 39개의 도서 가운데 가장 크다. 면적은 12.73㎢이고, 해안선 길이는 31.5㎞이다. 수목이 울창하고 온갖 약초가 뒤엉킨 골짜기마다 사슴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여 녹도(鹿島)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후 욕지항 안에 작은 섬이 거북이 모양으로 목욕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욕지(浴地)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섬의 최고봉인 천황봉(天皇峰, 392m)과 섬 북쪽의 약과봉은 급경사를 이루면서 해안에 몰입하여 곳곳에 험준한 벼랑을 이루고 있다. 천황봉의 산기슭에서는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천황산신제를 지낸다. 해안은 굴곡이 심하며, 북동해안 중앙에는 깊숙한 만이 발달하고 있어 욕지항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해안은 암석해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1월 평균기온 3.0℃, 8월 평균기온 25.3℃, 연강수량 1,548㎜이다. 온난한 해양성기후로 식생은 팔손이·동백나무·풍란·모밀잣밤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본래 고성군에 속하였던 지역으로서 1900년 진남군에 편입되었고, 1909년에는 진남군을 용남군이라 개칭하면서 원산면에 속하였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남군과 거제군을 통합하여 통영군을 설치하면서 원삼면과 사량면을 병합하여 원량면 소속이 되었다. 이후 1955년에 원량면이 욕지면과 사량면으로 분리됨에 따라 다시 욕지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에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 통영시가 됨에 따라 통영시 욕지면 소속이 되었

다. 2009년 기준으로 인구는 1,694명(남 889명, 여 805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866세대이다. 취락은 면소재지인 섬 중동부에 형성된 만입부의 완사면에 있는 동항리에 집중분포한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 0.13㎢, 밭 4.10㎢, 임야 9.10㎢이다. 주민 대부분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를 비롯한 맥류 및 고구마의 생산량이 상당하며, 감귤․마늘·고추․양파 생산도 매우 활발하다. 어업은 한때 어업전진기지가 될 정도로 활발하였으나, 지금은 연안어업과 주로 전복·미역 등의 양식업에 한정되고 있으며, 최근 장어양식이 대단히 성하여 높은 소득원이 되고 있다. 주요 수산물에는 멸치․장어․정어리․방어 등이 있으며, 미역과 톳도 소량 생산된다. 통영과는 정기여객선이 운항하며, 교육기관으로는 원량초등학교와 욕지중학교가 있다. 해군부대가 주둔하는 군사 요충지이기도 하다. 섬의 동항리 자부마을 뒷산에 집중적으로 자생하고 있는 100여 그루의 모밀잣밤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43호로 지정되었고, 동항리에 광범하게 분포되어 있는 욕지도 패총(조개무지)은 경상남도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욕지도 개념도. 우측의 야포에서 출발하여 일출봉, 망대봉을 오르고 능선마루금을 따라 휘감아 혼곡에서 대기봉 거쳐 천황산을 오를 생각이다. 그곳에서 하룻밤 야영하고 뒷날 욕지항으로 내려가면 된다.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진주의 경조사 인사를 마치고 곧장 통영으로 향했다. 통영은 1년에 한 번 정도는 꼭 찾게 된다. 이렇게 먼 고장이 의외로 자주 찾아지는 이유는 이 고장이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통영 도착 기념으로 중앙시장 회를 맛보았다. 여전히 값싸고 맛나다. 

 


# 통영은 문화예술과 관련된 콘텐츠와 여행객을 위한 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다. 시장 뒷골목에 있는 여행자 카페가 내 눈에 쏙 들어온다. 자전거와 스쿠터를 대여해 주면서 여행객들에게 통영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커피도 팔고. 벤치마킹해서 운영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 찜질방에서 잤다. 짧게 자고 나와야 해서 한 선택이다. 하지만 찜질방에서의 숙박은 늘 후회를 동반한다.




# 찜질방 바로 앞이 바다이다.

 


# 건너편 남망산공원의 성곽과 정자가 건너다 보인다.




# 찜질방에서 통영여객터미널까지는 매우 가까운 거리였다. 걸어서 접근이 가능하다. 

 



# 통영은 모두 570여개의 섬을 가지고 있다. 어마어마하다.

 



# 욕지행 배 발권. 왕복 배표를 동시에 구매해야 한다. 욕지로 들어가는 배편은 이곳 통영항에서 출발하는 것과 산양읍 삼덕항에서 가는 배편이 있다. 소요시간은 삼덕항이 50분 내외, 이곳이 1시간 10분 내외 걸린다. 삼덕까지 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이곳이 우리에게는 더 가깝다.

 



# 배 시간이 남아 터미널 앞에 있는 복국집을 찾았다. 이 집은 10여 년 전에 처음 발견하고 그 맛에 반한 집이다. 그동안 별로 실망시킨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완전 실망이었다. 복국도 찬도 서비스도 모두 예전 같지 않다. 주인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통영 복국은 서문시장 안에 있는 가게가 가장 유명한데 이제 멀더라도 꼭 그 집을 가야할까 보다.

 



# 욕지도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섬이다. 주말 배표는 금세 매진이 된다.

 


# 산악회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가족 친지끼리 무리지어 많이들 왔다. 선실 안이 요란하다.



# 선실에 짐 내려두고 항구를 떠나는 뱃전으로 나왔다.

 

 



# 크레인 뒤로 미륵산이 보인다.

 


 

# 몇 년 전 일이다. 욕지도 야영 산행을 위해 새벽같이 길을 나섰는데 진주 근처에서 오래된 내 자동차가 고속도로 상에서 퍼져버렸다. 견인차 불러 진주로 갔지만, 주말에 근무하는 정비소를 찾기 어려워 고생을 했다. 겨우 자동차 고쳐 통영에 도착하니 이미 시각은 밤 8시를 넘기고 있었다. 결국, 욕지도는 포기하고 밤길 더듬어 미륵산을 올라갔다.

 



# 밤 10시를 넘겨 미륵산정에 도착하였고 그 산정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뜻밖의 미륵산 야영이었는데, 그날 밤의 야영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밤바다와 통영의 야경, 뒷날 아침의 일출, 그리고 아침 바다의 풍광. 모든 것이 일품이었다.

 



# 저들은 하루의 노동을 위해 길을 나서고 있다.

 



# 통영 국제음악당이 뒤로 밀려나고 있다.

 



# 관광객이 몰리는 삼면 어느 바다이든지 갈매기들은 공히 새우깡에 길들여져 있다.

 



# 그래서 서해 섬을 찾을 때나 남해 섬을 찾을 때나 이 장면에서는 그림이 비슷하다.

 


 

 

 

 



# 야생성을 잃어버린 그 갈매기 미륵산을 배경으로 새우깡을 쫓고 있다.

 

 

 

 

# 당겨보니 미륵산 케이블카는 이미 가동 중이다.

 

 



# 통영을 출발한지 1시간 가까이 되자 연화도가 눈에 들어온다.

 



# 연화도에 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 연화도(蓮花島)는 욕지도에 딸려있는 섬이다. 먼 바다에 한 송이 연꽃처럼 피어있는 섬으로 한 바퀴 돌면 12km정도 되는 아담한 섬이다. 저곳 산정에서의 야영도 내 섬산행 목적지 중 하나이다.

 



# 연화도를 떠나 20여 분 더 가면 드디어 욕지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 욕지도 최고봉인 천황산이 보인다. 당겨보니 정상부에 있는 군부대가 뚜렷하다. 오늘 밤 저 산정에서 하룻밤 보낼 작정이다.

 



# 참으로 어렵게 만나는 욕지도이다. 배는 앞문을 열면서 천천히 섬으로 접근한다.

 

 



# 아담하지만 깊숙히 들어가 있는 항구이다.

 



# 드디어 입도 완료!

 



# 우리는 천황산을 바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섬 전체 마루금을 일주하면서 오를 예정이므로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을버스를 탔다.

 



# 욕지 일주도로는 섬을 완전히 한 바퀴 휘감는 것이 아니라 동쪽 곶부리 부분에서 단절된다. 따라서 마을버스는 야포에서 다시 돌려 항구 쪽으로 돌아간다.

 



# 저멀리 도로가 끝나는 부분에 등산로 들머리가 있다.

 



# 야포 버스정류소에서 산행을 위해 잠시 정비를 한다.

 



# 내 허리부상 때문에 마눌과 나는 10개월 가까이 야영산행을 못 했다. 정말 오랜만의 야영산행이라 사실 둘 다 긴장하고 있다. 내 허리가 이 무거운 배낭을 견뎌줄지 걱정이다.

 



# 우리와 함께 입도한 산악회 사람들은 벌써 산행을 시작하였다.

 



# 일출봉까지 600미터 정도 곧장 밀어 올려야 한다.

 



#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표지기들의 배웅을 받으며 산행을 시작한다.

 



# 10개월 만에 메는 야영 배낭이라 시작부터 무게 부담이 크다.

 



# 한숨 돌리며 잠시 돌아본다. 저 둥근 가두리는 고등어 양식을 위한 가두리이다. 욕지도는 고등어 양식으로 유명하다.

 



# 욕지항구 건너 천황산이 우뚝하다. 오늘 저곳 산정까지 가야 한다.

 



# 산악회 후미조 사람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제법 가파른 사면을 치고 오른다.

 



# 어마무시한 표지기 전시장을 지난다. 무얼 저렇게까지 자랑하고 싶은 걸까? 표지기란 원래 길찾기용으로 사용되던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자기과시용이 되어버렸다.

 



# 거친 숨소리 뿜어져 나올 무렵 정상부에 도착한다.

 



# 점점이 핀 진진이 무리가 오랜만의 빡센 오름질을 응원하고 있다.

 



# 암릉부는 항구 쪽으로 전망이 트였다. 이렇게 보니 가야할 길이 상당한 거리임을 알 수 있다.

 



# 우리나라의 섬은 대부분 그 자체로 한 덩이의 산봉우리로 되어 있다.

 



# 조망 감상하면서 잠시 한숨 돌린 힘으로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 일출봉 정상이다.

 



# 좌측으로 휘감아  오르내리다가 천황산으로 접근해야 한다.

 



# 정상에 있는 저 군부대 앞쪽 능선에 야영자리가 있다 한다. 

 



# 남녘의 삼월은 이미 깊은 봄이다. 다들 겉옷을 벗어 패킹하며 재정비한다. 우리는 아래에서 출발할 때 이미 준비를 마쳤다.

 

 



# 망대봉을 향해 출발!

 



# 섬의 중앙부가 오목한 형태의 만(灣)이라 물 맑고 고요하다. 가두리 양식에 최적의 장소이다. 

 



# 섬의 마루금을 걸으니 반대쪽 바다도 조망된다. 초도와 소초도의 모습이다.

 



# 어선이 물굽이를 남기며 항해하고 있다. 고요한 바다이다.

 



# 등로 곁에 노루귀가 만발하다.

 



# 노루귀는 꽃 지고 나면 잎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모습이 노루의 귀를 닮아 노루귀라 부른다. 참 예쁜꽃이다.

 



# 섬산행은 좌우로 바다를 조망하면서 걷는 재미가 있다. 

 



# 큰 오르내림 없이 길게 진행하여 망대봉에 이른다.

 



# 정자 쉼터가 있다. 먼저 도착한 산악회 사람들은 벌써 술판이 낭자하다.

 



# 그 소란을 피해 얼른 출발한다.

 



# 곧장 아래로 내려가면 도로와 나란한 노적고개가 나온다.

 



# 노적고개의 등로는 자동차 길 아래에 있다.

 



# 흰제비꽃도 무리지어 피었다.

 

 



# 산의 우측 사면으로 올라간다.

 

 



# 솔숲길이 편안하다.

 



# 숲을 벗어나자 곧장 전망이 트인다. 이곳에도 한 무리의 산악회 사람들이 식사 중이다.

 



# 산길, 들길, 해안길 걷는 것이 제주 올레길 걷는 기분이다.

 



# 선홍색 동백의 빛깔이 정말 아름답다. 동백은 절정의 시기에 꽃 전체가 뚝 떨어져버린다. 장렬한 소멸이다. 그리하여 화려한 삶을 추구하는 여인의 꽃이다. 뒤마의 소설 춘희(椿姬)는 동백꽃 여인이란 뜻이다. 마르그리트는 동백꽃을 사랑하는 화려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직업은 파리 사교계의 고급 창녀였다.

 



# 잠시 도로를 따른다. 따지고 보면 이 도로도 마루금이다.

 



# 이 일대가 잿고닥이다. 이 고장 사람들은 재(고개) 아래 구덩이처럼 오목한 지형을 잿고닥이라 불렀다. 고닥이란 말은 구덩이를 가리키는 통영말이다. 이 말은 제주에도 있는데 명사가 아니고 "고닥고닥 걷다" 와 같이 쓰인다. 묵묵히 또박또박 이런 뜻인 듯하다.

 



# 봄 햇살 강렬하다.

 



# 바다로 이어지는 완만한 사면에 사람들은 집을 짓고 밭을 일궈 삶을 영위했다.

 



# 그 길 중간에 전망대가 있고 바다 쪽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있다.

 

 



# 조망 좋고 바람 많은 전망대이다.

 



# 저 바위섬도 삼례도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 낚시 포인트로 좋아보이는 여도 있다.

 



# 사면을 따라 내려 갈림길에 도착. 출렁다리 쪽으로 갔다.

 



# 대나리강정 출렁다리. 산악회 사람들 온갖 소리 요란하여 잠시 둘러보고 말았다.

 



# 고래강정 방향으로 해안길을 따른다.

 

 

 

# 짐승 한 마리 바다에 앞발 담그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 해안길이 편안하다.

 



# 그 도중에 넓은 전망대 데크를 만난다.

 


# 이곳에서 야영하면 파도소리 원없이 듣겠다.



# 해안길이 참 이쁘다.

  

 



#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어 큰 어려움 없이 갈 수 있다.

 

 



# 해녀들의 숨비소리 길게 들린다.

 

 



# 잠시 후 고래강정을 만났다. 강정은 해안의 바위 벼랑을 부르는 바닷가 말이다. 제주에도 강정이란 말이 있었다. 고래강정이란 말은 바위 벼랑에 부딪치는 포말이 마치 고래가 숨을 쉬는 듯하다고 붙인 이름이라 하는데, 뒷사람들이 붙인 말일 것이다. 아마도 옛 사람들이 남긴 유래가 있을 터인데 찾기 어렵다. 

 

 



# 천황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

 

 



# 낮은목으로 나왔다. 저 산악회는 아예 차를 싣고 들어왔다.

 



# 다시 해안길로 들어가 작은 봉우리 하나를 오른다.

 



# 바다 조망이 계속 열려 있어 가다쉬다를 반복한다. 그 경치 지나치기 어려운 탓이다.

 

 


# 지나온 산길의 모습이다. 일출봉과 망대봉.

 



# 이쪽은 제법 산길 오르는 맛이 난다.

 



# 개나리 노랗게 피어 봄날 운치를 돋군다.

 



# 우측에 옴폭 들어간 해안절벽이 고래강정이다.

 



# 본섬 좌측 멀리 무인도인 갈도가 보인다.

 



# 그늘 좋은 숲길을 지나,

 



# 목넘이로 나왔다.

 



# 바닷바람 바로 받는 곳에 펜션이 있다. 조망 좋고 양지 바른 곳이기는 하나 바람을 극복해야 하는 곳이다.

 



# 현지 정보가 어두워 이 인근쯤에서 가겟집 하나쯤은 만날 줄 알았다. 하지만 욕지항 외에 오는 도중에 가게를 만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지금 야영준비가 부족하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짐 무게 줄이느라 진행 도중에 구입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곧장 천황산으로 오르게 되어 있는데 준비없이 오를 수는 없다. 부득이 이곳에서 방향을 틀어 욕지항으로 향했다. 

 


# 입석 지나 해안로를 따라 욕지항으로 갔다. 그곳에서 저녁에 먹을 부식과 막걸리, 그리고 물 등을 구입했다. 이왕 온 김에 간식 사먹으며 한참을 쉬었다. 원래 우리는 욕지섬을 가로로 길게 종주해서 천황산정에서 하룻밤 머물고 뒷날 태고사 거쳐 욕지항으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부식 구입차 욕지항으로 왔으니 아예 태고사 방향으로 올라 정상을 찍고 뒷날 목넘이쪽으로 복귀하는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오래 쉰 후 항구에서 골목길을 따라 길게 위로 올라 갔다.

 



# 욕지면 면소재지가 있는 서촌의 윗쪽을 가로지르는 서촌윗길이 그곳에 있다. 힘겹게 비탈길을 걸어 삼거리에 올랐는데, 어떤 여성이 혼자 길가에 앉아 중얼중얼 꽃을 희롱하고 있다. 예전 우리 어릴 때는 마을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꼭 있었다. 그녀들은 늘 들로 산으로 혼자 쏘다니며 혼자 노래부르고 춤추다 울고 고함치고를 반복했다. 저 여성은 무슨 사연이 있어 홀로 저러고 있을꼬?

 



# 욕지는 제법 규모가 큰 섬이다. 본 섬에만 천여 가구가 살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이 면소재지가 있는 이곳 동항리에 살고 있다.

 



# 바닷가 완만한 산기슭에 사람들은 집을 올리고 밭을 일구었다.

 



# 서촌윗길을 따라 서진한다.

 



# 그곳에 외딴 집이 있다. 펜션이다. 이 댁 주인은 연세가 지긋한 분인데 좀 전 우리가 재정비를 위해 욕지항에 있을 때, 어묵가게에서 만났다. 은퇴하고 이곳 욕지로 입도하였다 한다. 털복숭이 강아지들이 지붕 위에서 등짐 진 나그네를 낯선 듯 바라보고 있다.

 



# 서진하던 도로가 방향을 꺾어 천황산을 향하는 곳에 저수지가 있다. 아마도 욕지의 상수원인가 보다.

 



# 산행을 마친 산악회 사람들이 삼삼오오 하산하고 있다. 간편한 차림의 그들이 하산하는 시각에 무거운 등짐 진 우리는 산을 오르고 있다.

 



# 오르는 길 좌측에 저수지 관리에 관련된 듯한 건물이 있다.

 



# 경사가 엄청나게 가파르다. 눈 내리고 쌓이는 고장이 아닌 것이 다행이다. 만약 윗동네에 이런 경사길이 있다면 겨울에는 출입금지일 것이다.

 

 

 



# 그 가파른 경사길 위에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동네는 일반 승용차로는 오르내리기 힘들어 보인다.

 



# 잠시 후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길은 고개 넘어 덕동마을로 넘어가는 길이고, 좌측 길은 태고암으로 가는 길이다.

 



# 경사는 여전히 가파르다. 덥고 목 말라 짐 내린 후 한참 쉬었다.

 



# 오랜만의 야영산행이라 무거운 등짐의 부담이 큰데 길 마저 이렇게 가팔라 마눌의 고생이 많다. 나 역시 헉헉 소리 절로 나왔다. 허리 부상 이후 첫 야영산행이라 더욱 그렇다.

 

 

 



# 진하게 땀 흘린 후 태고암에 도착했다. 이 머나먼 남녘 섬의 가파른 산 속에 절집을 세운 불심 갸륵하다.

 



# 개똥보다 더러운 것이 사람똥이란다. 온갖 욕망의 찌꺼기가 뭉쳐 있어 그럴 것이다.

 



# 태고암은 그늘진 곳에 있다.

 



# 개똥보다 더러운 사람똥 가득 찬 우리는 계속 산길을 이어간다. 몸 속의 더러운 똥은 살아있는 한 채웠다 버렸다 반복해야 할 일이고 나날이 커가는 더러운 욕심은 버리고 버리다 보면 없어질 날 있으려나?

 

 


 # 북동쪽 통영 방향으로 조망이 트였다.

 



# 두 섬이 모래사장으로 연결된 적도가 건너다 보인다.

 



# 편백나무 우뚝한 숲길을 오르고,

 



# 가파른 계단길도 오른다.

 



# 그 끝에 햇살 좋은 광장이 있다.

 



# 대기봉과 천황봉이 갈라지는 마루금 광장이다.

 



# 우측에 천황산 정상이 암봉으로 우뚝하다. 해발 393.5m이다. 섬의 산이 393이라면 고도감은 제법 있는 산이다. 해발고도 0에서 곧장 치고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천황산(天皇山)은 그 이름이 사뭇 거창하다. 그 높이에 비해 과분하다 싶게 최고 명산에만 붙을 법한 이름을 얻었다. 옛 자료에는 천왕봉(天王峰)으로 나온다. 통영군지를 보니 '천왕봉재욕지도(天王峰在欲知島)'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전에는 천왕봉이라 불렀다는 말이다. 언제 지금의 이름으로 변했는지 찾지 못했다.

 



# 천황산 정상은 군사시설이라 머물 수가 없다. 이곳에서 야영할 예정이니 짐 내려 놓고 빈몸으로 정상을 향한다.

 



# 잠시 오르다 정상부 암봉을 만난다.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 여기가 천황산에서 올라 갈 수 있는 최고 지점이다. 

 



# 이곳까지 계단을 만든 이유는 정상을 대신할 공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이 암각문이 있어서이다. 암각문이라고 해서 대단한 고문(古文)인 줄 알았는데 이세선이란 이가 이곳을 다녀갔노라는 일행의 이름만 남긴 글이다. 요즘으로 치면 북한산 인수봉에 김개똥 다녀가다 라고 낙서한 글과 같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세선(李世選)이란 이는 삼대가 통제사를 했다는 나름 명문가의 사람이다. 본관이 충청도 전의이고 71세까지 장수한 인물이다.

 



# 우리는 그저 그림자만 남겼다.

 



# 나름 정상이니 막힌 암봉 방향은 제외하고 조망은 훌륭하다. 유동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 유동마을 앞 저 지형은 새의 머리를 닮았다. 욕지도 최남단이고 정상에 유동등대가 있다. 그 너머 바닷가에도 양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 대기봉과 우리가 짐을 두고 온 갈림길 광장이 보인다.

 



# 당겨보니 빨간 내 배낭이 보인다.

 



# 저 멀리 육지쪽 하늘에 구름 피어오르고 있다.

 

 



# 욕지도는 참치 양식에 성공한 지역이다. 저 둥근 가두리에 참치가 들어있다.

 

 



# 섬이 정말 많다. 저 멀리 두 개의 봉우리로 된 섬은 추도인 듯하다.

 

 



# 정상을 내려와 짐을 두었던 정상 갈림길로 돌아왔다. 제법 넓은 광장이라 공간은 충분하다. 약간 경사가 져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지만 잔디 푹신한 곳이다. 하지만 유동마을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데, 농사 짓는 거름을 뿌렸는지 그 바람 속에 견디기 쉽지 않은 냄새가 섞여 있다.

 



# 밤새 저 냄새에 시달릴 이유가 없다. 플랜B로 바꿔야 한다. 플랜B는 새천년기념공원의 데크이다. 

 



# 다시 짐 챙겨 길을 나섰다.

 



# 천황산 정상과 작별하고.

 



# 대기봉은 고도감 없이 금세 도착한다.

 


 

 



# 정면 일출봉에서부터 이곳까지 왔다. 욕지도의 산줄기가 모두 보인다. 그 너머로 적도, 쑥섬, 연화도의 모습도 보인다.

 



# 배 한 척 입도하고 있다.

 


# 쑥섬과 두 개의 섬이 이어진 적도. 뒤쪽으로는 연대도, 추도 등일 것이다.

 

 



# 내림길 중간에 암봉 전망대가 나온다.

 


# 우리가 오늘 걸은 욕지도의 산줄기가 발 아래이다.

 



# 삼례도는 이쪽에서는 이런 모양을 보여준다.

 



# 저 멀리 좌사리도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 조망 좋은 곳이라 한참을 감상하였다.

 

 



# 이후의 내리막은 꽤 가파른 경사가 길게 이어진다.

 



# 섬의 산은 압축미가 있다. 짧은 산길이지만 골고루 보여줄 것은 모두 보여준다.

 



# 저 아래 목적지인 새천년기념공원이 보인다.

 



# 길게 내려 새천년기념공원에 도착했다.

 



# 그런데 이미 발 빠른 이들이 좋은 장소를 선점하였다. 단체팀인데 값비싼 텐트들이 여러 동 설영되어 있다. 요즘 우리나라 제법 알려진 곳은 대부분 이런 실정이다.

 



# 부득이 도로 아래 공원으로 내려왔다.

 



#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전 세계가 들썩거릴 때 이 동네도 이런 기념물을 만들었나 보다.

 



#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긴 데크가 있고 이곳에도 두 동의 텐트가 이미 설영되어 있다. 공간 넓어 그들과 공유하고도 널널하게 남는 곳이다. 간단하게 인사 나누고 주변 경치 구경을 하였다.

 

 



# 네이버나 다음 지도에는 저 섬을 삼례도라 기록하는데 현지의 안내판에는 광주여라 적어두었다. 여는 물속에 잠긴 바위를 가리킨다. 여는 섬이 되지 못한 암초를 말하는데 의엿한 삼례도란 이름을 얻은 저 섬은 사연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 선객들과 떨어진 곳에 집 한채 올렸다. 바다를 향해 대문을 만들고...

  

 

# 길에서 가까운 곳이지만 섬의 저녁은 다니는 사람 없이 고요하였다. 처음 이곳에 집을 지을 때는 걱정이 많았는데, 윗쪽 단체팀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고 근처 두 집은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오직 파도소리만 밤새 귓전을 흔들었다. 그 파도소리 안주로 막걸리 한 잔 나누었다. 좋은 밤이었다.

 



# 편안한 밤을 보냈다. 다만 일출 보러 나왔더니 새벽같이 차 몰고 섬을 일주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는 하였다.

 



# 텐트 문 열고 나오면 바로 눈앞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 일출봉과 망대봉 우측에서의 일출이다.

 

 



# 붉게 물든 구름 위로 서서히 솟아 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느낀다.

 

 

 

 

 

 

 

 



# 애국가 배경이 되듯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좋은 아침이고 좋은 일출이었다.

 



# 이윽고 하늘과 바다는 붉은 색에서 황금빛으로 변하였다.

 



# 그 햇살에 침낭을 비롯한 살림 일체를 말렸다.

 

 



# 좋은 휴식을 보내고 짐을 정리했다.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질문하고 궁금해하기도 하였다. 얼른 정리하는 것이 번거로움을 피하는 길이다. 윗쪽에 자리했으면 피했을 일이기는 하다.

 



# 이곳 새천년기념공원은 화장실까지 갖춘 멋진 휴식의 장소였다.




# 그 편안했던 휴식에 감사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 어제 중단했던 혼곡으로 복귀하면 된다.

 



# 길가에 유채꽃씨가 날아와 노란 꽃을 피웠다.

 




# 욕지의 봄 길에는 동백꽃이 만발하다. 누군가 떨어진 동백꽃을 주워 하트를 만들어 두었다. 동백의 꽃말은 '겸손한 마음' 혹은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이다. 그 꽃말에 어울리는 배치이다.

 



# 그 빠알간 동백꽃을 배경으로 우리는 걷는다.

 



#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 길게 걸어 혼곡으로 복귀했다. 좌측 산길로 올라가면 대기산 거쳐 천황산으로 오르게 된다.

 




# 산길 들머리를 지나 좌측에 있는 서촌윗길을 택해 욕지항으로 접근했다.  

 



# 욕지면소재지의 풍광을 매화가지 하나 넣어 그려보았다.

 



# 어느 펜션 주변 길가에 파릇한 쑥이 쑥쑥 머리를 내밀고 있다. 배낭 내리고 각자 미니 칼과 봉지를 챙겼다. 잠시 만에 쑥이 한 봉지 가득이다. 해풍 맞은 새쑥의 향이 강렬하다.

 




# 비탈진 곳에 밭을 일궜으니 기계 들여놓기 어렵다. 그리하여 수천 년래의 농사 방식으로 밭을 갈고 있다.

 



# 어제 가파르게 올라왔던 갈김길에서 내리막을 택해 항구로 내려갔다.

 



# 욕지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섬이다. 항구에는 늘 새로운 사람들이 들고 난다.

 


 

# 여객선터미널에서 통영으로 나가는 배 시간을 확인한다.

 


 

# 저 배는 삼덕항으로 가는 배이다.




 # 어디서 숨비소리 들려 돌아보니 해녀가 부두에 바짝 붙어 물질을 하고 있다.

 



# 가만히 보니 성게를 잡아내고 있다.


 



# 한가롭게 경치 구경하며 쉬는 동안 우리를 뭍으로 실어줄 배가 들어오고 있다.

 



# 추사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글이 항구에 적혀있다. 알고자 하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그리하여 애지(愛知)이자 철학(哲學)인 섬. 욕지는 그 이름만으로 충분히 가치로운 섬이다.




# 그 의미를 가슴에 새기며 섬을 떠났다.

 

 



# 천황봉 정상과도 작별한다.

 

 



# 내 다시 저 정상에 설 날이 있을 지는 알 수 없으나 어제의 만남이 참으로 좋았다.

 

 



# 새우깡 쫓는 갈매기들 배경으로 욕지와 다음을 기약한다.

 

 

 



# 왔던 길 그대로 연화도에 다시 잠깐 기항한다. 

 

 

 

 



# 한 시간여 더 달려 통영으로 복귀한다. 통영으로 돌아오는 길엔 언제나 미륵산이 제일 먼저 반긴다.

 

 

 

 



# 통영항으로 진입.

 



# 1박 2일 간의 욕지 방문을 마치고 뭍에 복귀했다.

  

  

1934년에 발간된 통영군지(統營郡誌)에는 욕지도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欲知島 在郡南大洋中 古有湖州判官而年代不可考矣 樹木森蔚蛇蟲蟠廻 人無居焉以麋鹿之多産 自營送軍砲每年夏至之節 獲獵鹿茸以奉進貢矣(욕지도 재군남대양중 고유호주판관이연대불가고의 수목삼울사충번회 인무거언이미록지다산 자영송군포매년하지지절 획렵녹용이봉진공의)"


군 남쪽의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연대를 알 수 없는 옛날 호주 판관이 거하던 곳이다. 수목이 울창하고 뱀이나 벌레 많은데, 사람은 살지 않고 사슴이 많이 살고 있다. 블라블라...


사슴 많아 녹도(鹿島)라 부르던 섬이 앎에 대한 욕구와 깨달음의 갈망이 서린 섬이 되었을 때는 그에 걸맞은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료 남아 있지 않으니 그 까닭 정확히 알 수 없고 뒷사람들은 그저 생각하기 편한대로 해석하고 있다.


옛 사연 정확히 알면 좋을 일이나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는 지금의 이름이 충분히 의미 깊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지금 이름에 걸맞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사연을 채워 넣는다면 욕지에서 사는 이들은 물론 욕지를 거쳐 가는 사람들에게도 얼마든지 의미롭고 아름다울 일이다.


욕지도는 참으로 찾기 어려운 섬이었다.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수차례 길을 나섰지만, 입도(入島)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드디어 올봄에 그 뜻을 이루게 되었다. 깨달음에 가까이 하기가 쉬울 턱이 없다. 이제 마침내 그 깨달음의 섬에서 하룻밤 보내는 경험을 하였으니 나에게도 깨달음의 그림자 하나쯤은 매달렸으려나? 두고 보고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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