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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길]8구간(안성천교~직산역)-백제 왕국의 출발 직산위례(稷山慰禮)!! 본문

길이야기/삼남길(코리아트레일)

[삼남길]8구간(안성천교~직산역)-백제 왕국의 출발 직산위례(稷山慰禮)!!

강/사/랑 2017. 3. 29. 20:00

[삼남길]8구간(안성천교~직산역)


 
稷山縣本慰禮城 百濟始祖溫祚王 開國建都 後高句麗取之 改爲蛇山縣 新羅因之 爲白城郡領縣 高麗初 更今名 顯宗九年 來屬 後置監務(직산현본위례성 백제시조온조왕 개국건도 후고구려취지 개위사산현 신라인지 위백성군령현 고려초 경금명 현종구년 래속 후치감무)


직산현(稷山縣)은 본래 위례성(慰禮城)으로, 백제(百濟) 시조 온조왕(溫祚王)이 개국하면서 이곳에 도읍을 세웠다. 뒤에 고구려(高句麗)가 이곳을 차지하여 사산현(蛇山縣)으로 고쳤으며, 신라(新羅)가 그대로 이어받아 백성군(白城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高麗)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현종(顯宗) 9년(1018) 천안부에 내속(來屬)하였다.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 고려사(高麗史)


그 옛날(BC 18년) 백제(百濟)의 시조(始祖)인 온조(溫祚)는 졸본부여(卒本扶餘)에서 한반도로 남하하여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었다. 위례성은 지금의 직산(稷山)이다. 직산은 천안 서북쪽의 고장이다. 직산현의 읍치(邑治)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천안(天安)에 속한 읍이지만, 천안 이전의 옛 지명이다.


직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설(說)이 나뉜다. 직산벌이 지형 높고 천수답(天水畓)이 많아 '피(稷)'가 무성하여 직산으로 불렀다는 설과 온조가 나라를 세운 위례성이 있던 곳이라 사직(社稷)을 상징하는 '직(稷)'자를 사용하였다는 설이다.


직(稷)은 곡물 중 '피(稷)'를 가리킨다. 지금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피를 잡초로 보고 눈에 띄는 즉시 뽑아낸다. 키가 껑충하고 벼보다 빨리 자라 양분을 뺏아 먹는다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는 단순히 잡초가 아니라 역사가 깊은 곡물이다. 가뭄에 강하고 생장기간이 짧아 벼(禾)가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주요 곡물이었고 벼 이후에는 구황작물(救荒作物)로 역할했다.


중국 문명은 황하유역에서 발원하였다. 피는 이 황하유역에서 주로 자랐다. 한자의 어원을 밝히는 최초의 자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 피(稷)를 '오곡지장(五穀之長)' 즉, 오곡의 으뜸이라고 하였다. 오곡지장(五穀之長)이니 신(神)의 상징이 되었다. 고대 중국 주(周)나라 사람들은 전설에 나오는 농사의 신을 '후직(后稷)'이라고 하여 제사를 지냈고 이후 토지신인 사(社)와 더불어 국가의 상징으로 여겼다. '사직(社稷)'의 탄생이다.


사직(社稷)은 천자나 제후가 천지신명께 올리는 제사이기도 하고 나라 그 자체이기도 하였다. 논어(論語) 선진(先進)편에 "백성이 있어야 사직이 있다.(有民人焉 有社稷焉)"고 했고, 맹자(孟子) 진심장구하(盡心章句下)편에서는,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고 임금은 여기에 비해 가벼운 존재이다.(孟子曰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라고 했으며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갈아치워야 한다(諸侯危社稷則變置)" 고 하였다. 모두 사직을 국가 자체로 간주한 표현이다.


위례성(慰禮城)의 위치에 대해서는 주장이 엇갈린다. 대체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학자들은 위례성을 현 직산 지역이라 여겼다. 이는 입으로 전해져 온 옛 기록과 입장면 성거산과 위례산 정상부에 있는 위례산성(慰禮山城)의 존재 때문이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산성은 그 존재 자체뿐 아니라 온조왕이 처음 머물렀다는 '깊은골(深谷)', 도읍의 문이 있었다는 '부소문이고개(扶蘇門嶺)', 백제군이 주둔하였다는 '군단이(軍丹)', 대궐이 있었다는 '대궐터(大闕址)' 등의 지명으로도 이곳이 위례였음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 흘러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고증을 통해 위례성이 한강 북쪽의 '하북(河北) 위례성'이 처음 있었고 한강 남쪽 지금 경기도 하남시인 광주 지역으로 도읍을 옮긴 후 '하남(河南) 위례성'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1997년 풍납토성에서 백제 초기의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학계에서는 한수지역의 위례가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뚜렷한 물증이 제시되지 않아 논란이 분분하지만, 수천 년 자신들의 고장이 백제의 출발이라 믿었던 직산 사람들에겐 상실감 느껴질 주장이다. 그리하여 이 지역 향토사학자나 학계에서는 직산 위례의 증명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모양이다.


금북정맥(錦北正脈) 종주 할 때이니 2007년의 일이다. 한여름 무더위가 절정일 때 천안지방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금북의 산줄기를 홀로 종주하였다. 구절양장 배티고개를 출발하여 서운산을 넘고 엽돈재에서 다시 산을 몇 개 넘었다. 산중턱 높은 고개에 도착하니 이미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고개가 백제 위례성의 문이 있었다는 부소문이고개였다.


시각 늦고 땀을 너무 많이 흘려 그곳에서 멈추고자 하였지만, 나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전방의 산을 치고 올랐다. 지친 몸으로 잡목 우거진 산 정상에 올라 서니 허물어진 토성(土城)이 정상을 휘감고 있었다. 그 산이 바로 '위례산(慰禮山)'이다. 온조왕이 도읍을 세웠다는 위례성의 산성이자 위례라는 이름의 흔적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산 정상에 서니 전방으로 입장과 직산의 너른 들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두른 넓은 들판이 넉넉하였고 그 앞을 가로지르는 성환천의 물줄기도 유장하였다.


금북의 높은 산을 배경으로 너른 들판과 풍부한 물줄기를 가졌으니 고대 국가 하나쯤은 넉넉히 품어낼 만한 환경이었다. 역사적 안목 취약한 이 나그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삼국사기에서는 하남 위례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惟此河南之地  北帶漢水 東據高岳 南望沃澤 西阻大海 其天險地利 難得之勢 (유차하남지지 북대한수 동거고악 남망옥택 서조대해 기천험지리 난득지세 : 생각컨대 이 하남의 땅은 북으로 한수를 끼고 동으로 고악에 의거하였으며 남으로 옥택을 바라보고 서쪽은 대해로 가로막혔으니 그 천험의 지리를 이루어 얻기 어려운 형세이다)


내가 위례산의 정상에서 바라본 광경과 흡사한 표현이다. 경기 하남의 위례 역시 이 지형 묘사에 부합하지만, 직산 역시 삼국사기의 기록에 벗어난 점이 없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직산의 사람들은 북대한수 동거고악 남망옥택 서조대해(北帶漢水 東據高岳 南望沃澤 西阻大海) 네 구절을 궁구(窮究) 또 궁구하여 위례의 증거로 삼으면 될 일이다. 그러다보면 어디에선가 수천 년 잠들어 있던 직산 위례의 증거가 백일하에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강/사/랑의 삼남길 여덟 번째 걸음은 고대 왕국 백제의 첫 도읍지인 직산벌을 따라 남하(南下)하는 길이다. 문화 강국(强國) 백제의 향기 가득할 것이다. 역사 깊은 고장이니 관심 갖고 걷다보면 직산위례의 흔적 하나 쯤은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기대되는 구간이다.

 


백제 왕국의 출발 직산위례(稷山慰禮)!!


구간 : 삼남길 제 8구간(안성천교~직산역)
거리 : 구간거리(15 km), 누적거리(137.4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7년 3월 26일. 해의 날.
세부내용 : 안성천교 ~ 안궁교회 ~ 천안대로 ~ 성환천 둑길 ~ 성환역 ~ 매주리 들길 ~ 성환천 둑길 ~ 직산역.


2주일 만의 삼남길 나들이다. 삼남길은 이번 구간부터 경기도를 벗어나 충청도로 접어든다. 그곳에서 만나게 될 고을은 성환과 직산 그리고 천안 순(順)이다. 귀에 익은 이름처럼 오랜 역사의 고장들이고 다들 너른 들을 가진 곳이라 오르내림 없이 편한 길을 예상한다.


작년 봄 숭례문에서 삼남길 순례를 시작하면서 일차적으로 경기 구간까지만 걸어보자 하였다. 그때는 내 건강이 높은 산을 오르거나 무거운 야영 배낭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게다가 삼남길 경기 구간은 대부분 집에서 가까워 전철로 쉽게 접근이 가능했던 것도 이 길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솔방솔방 걸어 경기 구간을 마무리 한 것이 2주일 전이었다.


그런데 막상 경기 구간을 끝내고 나니 다시 그 다음 구간에 대한 미련이 생긴다. 어차피 시작했으니 가는 데까지는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인 것이다. 그리고 천안까지는 전철도 다니니까 접근 역시 쉬워 충청 구간을 계속하자는 선택이 쉬웠다.


그렇게 다시 작은 보따리 꾸려 삼남길 충청 구간에 발을 들여 놓았다. 당분간은 편안한 들길의 연속이라 이번 구간에도 마눌이 동행했다.  


직산전투/稷山戰鬪


정유재란 중인 1597년(선조 30) 9월 7일 직산에서 명군이 일본군을 격파한 전투. 1597년 1월부터 병력을 증강시킨 일본군은 7월에 6백여 척의 선박으로 추가 병력을 경상도 해역에 상륙시키는 등 총 14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경상·전라 지역을 석권하였다. 일본군은 이어 충청도까지 장악하고 계속 북진하여 경기지역으로 진공하였다. 북상하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 조선은 한강에 방어선을 구축하였고, 명군 주력부대는 남하하여 일본군을 차단하려 하여 경기도 남쪽 직산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명군이 9월 7일 직산 남쪽 삼거리 부근에 도달하여 도로를 차단하고 방어진을 펴고 있었다. 이때 북상하면서 이곳을 지나던 일본군이 명군을 발견하고 선제공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이미 진지를 구축한 명군은 일본군에게 포격을 가하면서 응전하였다. 일본군은 조총 사격을 가하고 돌격을 감행하였으나 포격으로 일본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명군은 백병전에서도 밀리지 않아 승리할 수 있었다. 서전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다시 명군 진지를 포위하기 위하여 병력을 좌·우로 나누어 접근하여 다시 접전이 벌어졌으나 일본군의 포위망이 형성되기 전에 명 증원군이 도착하여 형세가 역전되었다. 명군은 기존 병력과 증원군을 합하여 일본군을 역포위하여 일본군을 압도하였다. 천안에서 급파된 일본군 기병대가 합세하였으나 전세를 뒤집지는 못하였고 6차의 접전 끝에 일본군은 패퇴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서울 진격을 포기하고 남하할 수밖에 없었고, 한편 조·명 연합군은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면서 압박을 가하자 일본군은 충청도 지역을 버리고 남하하여 다시 해안으로 밀리게 되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삼남길 8구간(안성천교~직산역)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이번 구간도 접근 방법은 전철이다. 성균관대역에서 평택역까지 한 번에 도착할 수 있다.




# 평택역에서 택시 타고 지지난주 멈췄던 안성천교에 도착했다. 찬바람 가득했던 그날 오후와는 달리 오늘은 따스한 봄볕이 가득하다. 뺨을 스치는 바람도 훈훈하다. 시절은 어느새 봄 깊이 들어가고 있다.




# 안성천교 다리를 지나는 순간 경기도와는 이별이다.




# 너른 강을 따라 봄바람 불어온다. 온기 느껴지는 바람이다.




# 다리 건너 경기도 방향을 돌아본다. 삼남길이 지나는 광역단체 중 경기도와 전남도 만이 삼남길을 정비하여 관리하고 널리 홍보하고 있다. 이제 충청 구간부터는 온전히 내 판단력으로 가야하므로 길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친다. 다리 끝나는 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가드레일이 앞을 가로막았다.




# 차에서 버린 쓰레기 가득한 가드레일을 넘어 안성천 강둑에 내려섰다. 




# 강둑 위에 봄풀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다. 




# 강둑을 길게 걸어 안궁3리까지 갔다. 그곳에 있는 갈림길 따라 마을로 내려갔다.





#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매화향 풍겨온다.




# 안궁교회 앞길로 꺾어 마을을 통과한다.




# 마을 공터에 휴일을 맞은 아이들이 공놀이가 한참이다. 시골에 저런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마도 교회에 예배보러 온 아이들인 듯 싶다.




# 안궁리 들길을 길게 진행한다.




# 중간에 갈림길이있는데 표지기를 못 보고 지나쳤다. 표지기가 가드레일 다리 아래에 붙어있고 그 주위에 흙이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지나쳤다가 기분이 이상해 지도 확인하고 다시 갈림길로 복귀했다.




# 갈림길에서 도로를 향해 우측으로 진행한다.




# 1번 국도를 통과한다.




# 신가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 성환쪽 들녘이 광활하다.




# 이 동네 쌀 상표가 요상하다. '머슴과 마님쌀'이란다. 뭔가 묘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 성환천 강둑으로 올라선다.




# 이후는 성환천 둑을 따라 길게 남하한다.




# 강둑에 파란 쑥이 쑥쑥 고개를 내밀고 있다.




# 억새와 갈대를 애무하는 봄바람이 강 위에 가득하다.




# 고요하고 한가로운 길이다. 둘이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천천히 진행하였다.




# 성환천은 환경 관리가 시급해 보였다. 곳곳에 쓰레기가 떠다니고 물빛도 탁하였다.





# 지난 겨울 강둑에 불을 질렀던 모양이다. 까만 재 위로 봄풀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다.







# 아직 시절이 이른데 성미 급한 강태공들은 벌써 강물에 찌를 드리웠다.




# 3월말 봄은 이미 곁에 와 있지만, 이곳 강둑의 바람은 아직 차다. 바람 찬 성환천 둑길을 따라 길게 남하하였다.




# 한겨울 내내 비린내 그리웠을 강태공들이 성환천 곳곳에 포진하였다.




# 규모가 엄청나게 큰 오리농장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업체인데 조류독감 때문인지 오리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 저 팀은 바람 찬 이 강변으로 낚시 겸한 가족 나들이를 나왔다. 낚시는 딴전이고 하하 깔깔 즐겁게 놀고 있다.




# 겨우내 바싹 마른 억새풀이 강한 바람에 와스스 와스스 소리내며 흔들린다.




# 인기척에 놀란 오리떼들이 하늘 높이 날아 오른다. 미안하다. 너희의 평온을 방해했구나.





# 강아지 좋아하는 우리는 산책나온 이 넘들과 한참을 놀았다.



# 성환리 안으로 들어 간다. 장천교 통과.




# 강변에 산수유 노란 꽃을 터뜨렸다.





# 그곁에 매화도 만발하다. 꽃향기 가득하다.




# 강둑을 버리고 성환역 쪽으로 접근하다.




# 머위가 싹을 피웠다.




# 성환역에 도착했다.




# 성환역으로 올라가 한참을 휴식했다. 화장실도 이용하고. 




# 삼남길은 성환역 옆 좁은 샛길을 따라 이어진다.





# 할머니들이 철도길 옆 손바닥 만한 작은 공간도 버리지 않고 각종 채소를 심고 계시다.




# 매주육교 앞에서 우측으로 꺾어 진행한다.




# 그러다 곧 좌측 들길로 방향을 잡는다.




# 이후는 곧장 직산을 향해 들길 직진이다. 성환과 직산은 들이 넓다.




# 간간이 전철이 곁을 지난다. 곧고 바르게 직진하였다.




# 그러다 갈림길에서 우측 강둑으로 가라고 한다. 그냥 직진하여도 전방 고가 아래서 다시 만나게 된다.




# 수헐교차로 고가 아래 통과.



# 다시 성환천 강둑을 따른다.




# 공사 현장에서 작은 굴다리를 건너 건너편 우측 강둑으로 올라 간다.




# 좌측 멀리 직산읍의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그 뒤로 위례산과 성거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고대 백제는 이곳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이루었다. 적당한 높이의 산을 배후로 하고 앞에는 너른 들과 강을 갖추었으니 도읍으로는 적당하였다. 10여 년 전 금북정맥 종주할 때 저곳 위례산 정상에서 이쪽 직산들판을 내려다보며 고대 백제의 도읍지를 상상했었다.




# 이곳 직산 들판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직산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이다. 그해 왜군은 삼남지방 초토화를 목표로 다시 침입하였다가 한양으로 재진격 중이었다. 명군은 제독 마귀가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였는데, 이곳 직산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여섯 차례의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 정도는 아니지만 명군이 승리하였다. 후퇴한 왜군은 다시 공세를 준비하였는데 때마침 이순신장군의 명량에서의 대승으로 후방 보급까지 끊겨 퇴각하게 되었다. 




# 역사적으로도 이런 산을 배후로 둔 넓은 개활지에서 회전(會戰) 성격의 전투가 자주 벌어지곤 했다. 옛 전투의 흔적을 더듬으며 길게 남하하였다. 우측 멀리 직산역이 보인다. 외국인 노동자 몇 명이 천안이나 수원으로 놀러가는지 들뜬 표정으로 전철역을 향하고 있다.




# 삼남길 구간 종료지점에 전철역이 있다. 최고의 접근로이다.




# 직산역은 도심지가 아니라 들판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때문에 이용 인구가 적다. 몸에 묻은 먼지 털어내고 삼남길 8구간 순례를 마감했다.




이후 전철편으로 편안하게 귀가했다. 당분간은 교통 좋은 곳이 이어져 이런 편안한 구간 접근이 가능하다. 쉬엄쉬엄 시간 날 때마다 삼남길을 이어가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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