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삼남길]9구간(직산역~천안삼거리공원)-천안삼거리와 능수버들!! 본문

길이야기/삼남길(코리아트레일)

[삼남길]9구간(직산역~천안삼거리공원)-천안삼거리와 능수버들!!

강/사/랑 2017. 4. 7. 14:26

[삼남길]9구간(직산역~천안삼거리공원)


 

천안삼거리 흥- 능수버들은 흥- / 제멋에 겨워서 흥- 휘늘어졌구나 / 에루화 에루화 흥- 성화가 났구나 흥-
세상만사를 흥- 생각을 하면은 흥- / 인생의 부영이 꿈이로구나 / 에루화 에루화 흥- 성화가 났구나 흥-
백두산 성봉에 흥- 태극기 날리면 흥- / 삼천리 근역에 새 봄이 온다네 / 에루화 에루화 흥- 성화가 났구나 흥-
발그레한 저녁 노을 돋는 저곳에 흥- / 넘어가는 낙일이 물에 비치네 / 에루화 에루화 흥- 성화가 났구나 흥-
반만년 역사가 흥- 찬란도 하고요 흥- / 선열의 쌓은 공덕 위대도 하구나 / 에루화 에루화 흥- 성화가 났구나 흥-
은하 작교가 흥- 콱 무너졌으니 흥- / 건너 갈 길이 망연이로구나 / 에루화 에루화 흥- 성화가 났구나 흥-


이 노래는 천안(天安)을 상징하는 노래인 '흥타령'이다. 굿거리장단의 이 노래는 갑오개혁 이후 여류 명창 보패(寶貝)가 불러 유명해졌다.  '흥 흥'하는 추임새가 들어 있어 '흥타령'이라 불렀다. 또, 노래가 천안삼거리로 시작해서 그냥 '천안삼거리'라고도 부른다. 


구전(口傳)된 민요라 노래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일부 자료에는 평양감사 조성하(趙成夏)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원망하여 만들어진 노래라고 전해지는데, 확실치는 않다. 노래 가사에도 그러한 내용은 들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뚜렷한 근거 없이 전해진 이야기인 듯하다.


실록을 찾아보니 조성하는 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고종때까지 관직에서 승승장구한 사람이다. 실록의 기록에는 도승지, 대사성 등 여러 요직을 두루 맡은 것으로 나온다.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한 것도 사실이나 가렴주구의 내용은 없다. 흥타령이 천안의 상징이라 충청도 민요일 것으로 생각되어지나 사실 이 노래가 경기도 민요인 것처럼 잘못 알려진 이야기인 모양이다.


이 노래의 주제인 천안삼거리는 흥타령, 능수버들, 호두과자와 함께 천안(天安)의 상징이다. 천안은 조선 10대로(大路) 중 하나인 삼남대로의 주요 길목이었다. 삼남대로가 지나는 길목이니 역원(驛院)이 있었을 것이고 물류와 사람의 소통 활발하였을 것이다.


역원은 관에서 운영하는 공무(公務) 여행자를 위한 마필과 숙식 제공 등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역(驛)은 관에서 모든 것을 운영하여 그 쓰임새가 꾸준히 이어졌지만, 원(院)의 경우는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운영이라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여 차츰 유명무실하게 변했다.


경제란 원래 민간의 자율성(自律性)이 담보될 때 발전하기 마련이다. 원(院)이 쇠퇴함에 따라 민간에서 운영하는 점막(店幕), 즉 주막(酒幕)이 활성화되었다.


주막은 길가에 위치하여 술과 밥을 팔고 나그네에게 잠자리도 제공했다. 자연히 교통의 요지에 주막이 자연발생하였고 그 이웃에 인가가 늘어나 주막촌(酒幕村)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천안삼거리 역시 그러하여서 오가는 사람 많고 그 사람들을 상대로 한 주막 역시 번창하였다. 사람 많으니 사연도 많다. 천안삼거리와 능수버들을 배경으로 하는 전설이나 가담항설(街談巷說)이 갖가지 버전으로 구전(口傳)되고 있다.


삼거리에서 이별하였다가 재회하는 능소 부녀의 이야기, 과객과 삼거리 주막 처녀의 사랑 이야기, 형제 혹은 숙질 간에 결혼을 양보하다가 엉뚱한 제삼자가 결혼하게 되어 세 사람이 새로운 인연으로 맺어지는 이야기 등 모두 이 삼거리에 관련된 전설이다.


특이한 것은 모든 이야기에 이별 혹은 사랑의 정표(情表)로 능수버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버드나무가 원래 동양권에서는 사랑과 이별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탓이다. 옛사람들은 남녀가 밀회를 나눌 때 호숫가 수양버드나무 아래에서 사랑를 나누었고 사람을 떠나보낼 때 이별의 정표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주었다. 그것은 버드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처럼 먼 길 떠나는 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였기 때문이다.


능수버들은 버드나무의 일종으로 물가에서 잘 자라는데, 머리카락처럼 길게 늘어진 줄기가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수양버들을 능수버들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따지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능수버들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이고 잎줄기가 황록색인 데 반해 수양버들은 중국이 원산지이고 잎줄기가 적갈색이다. 다만 전체적인 형태나 생육 습성이 거의 흡사하여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해 보인다.


버드나무 종류는 생육이 빠르고 풍성하게 늘어진 수관(樹冠)이 우아하여 조경수로 많이 심는다. 이뇨, 진통, 해열 등 약성(藥性)도 가지고 있어서 인류가 만들어낸 약물 중 가장 우수하다는 아스피린의 원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버드나무는 봄철에 눈송이처럼 무차별적으로 날리는 꽃가루의 폐해가 심한 치명적 약점도 가지고 있다.


천안삼거리는 이름 그대로 길이 삼거리로 갈라지는 곳을 말한다. 한양에서 출발하여 과천, 수원, 진위와 직산을 거쳐 온 삼남대로는 천안삼거리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 길은 병천을 지나 청주·문경새재·대구·동래에 이르는 길이고, 또 하나의 길은 공주를 거쳐 논산·강경·전주·순천에 이르는 길이다. 영남대로와 삼남대로의 분기(分岐)인 것이다.


기록으로 천안삼거리가 최초 등장한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다. 제15권 천안군편에 "삼기원재군남육리(三岐院在郡南六里)"라는 구절이 나온다. 삼기원, 즉 삼거리원(院)이 군의 남쪽 육리 지점에 있다는 말이다.


그 외에도 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러 지도에 천안지방 남쪽에 삼거리가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특히 1872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지방지도인 '1872年 地方地圖' 에서는 천안 읍성 아래 대로(大路)가 두 갈래로 갈라져 삼거리가 되고 그곳에 '삼기리(三岐里)'라고 표기된 지명이 있다. 역시 천안삼거리를 나타낸 것이다.


세월 흘러 신작로가 뚫리면서 옛길은 뒤로 밀리고 그 자리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면서 천안삼거리의 정확한 지점은 의견이 좀 갈리는 모양이다. 현지 향토사학자 일부는 현 천안삼거리 초등학교의 뒤편이 천안삼거리라고 주장하고 또 일부는 천안시 삼룡동 325-8번지가 원삼거리라고 주장한다.


지도를 확인하니 둘 다 이제는 도로가 아니고 택지로 개발되어 있는 곳이다. 다만 두 지역 사이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아 500여 m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원 삼거리의 위치에 대한 주장이 분분하니 천안시는 두 지점의 맞은편에 두 곳을 꼭지점으로 하는 천안삼거리공원을 만들고 능수버들을 심어 옛 천안삼거리를 기념하고 있다.


세월 흘렀어도 사람의 이동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삼거리가 사거리, 오거리가 되고 폭 넓어 차량 통행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천안은 경부축(軸)과 호남축이 만나고 갈라지는 분기점이자 합류점으로 삼남지방과 수도권을 잇는 교통 요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강/사/랑의 삼남길 아홉 번째 나들이는 직산역을 출발해서 천안 시내를 접어들고 태조산 자락을 휘감아 경부고속도로 곁에 있는 천안삼거리에서 은성했던 천안의 옛 흔적과 만나게 된다.


 


천안삼거리와 능수버들!!


구간 : 삼남길 제 9구간(직산역~천안삼거리공원)
거리 : 구간거리(14 km), 누적거리(151.4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7년 4월  2일. 해의 날.
세부내용 : 직산역 ~ 한국기술교육대학교 ~ 두정역 ~ 방죽다리 ~ 천안로사거리 ~ 풋살경기장 ~ 태조산숲길 ~ 천안향교 ~ 천안대로 ~ 경부고속도로 천안휴게소 ~ 천안삼거리공원.



봄이 많이 깊어졌다. 한 주일 보낼 때마다 햇살은 더 따스해지고 새싹은 더 풍성해진다. 눈길 닿는 사방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날씨 포근하니 사람들 활동력도 높아진다. 그 활동력 충전받아 삼남길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당분간은 전철 통한 접근이 용이해서 마눌도 흔쾌히 동행한다. 지난 구간에 이어 이번 구간도 마눌과 함께 했다. 접근 편하고 오르내림 없는 길이니 마음 편안한 덕분일 것이다.



천안삼거리/天安三巨里


천안삼거리는 조선시대때부터 영남/호남과 서울을 잇는 삼남대로(三南大路)의 주요 길목이었다. 청주-보은-상주로 이어지는 영남 방면, 공주-전주로 이어지는 호남 방면 도로가 천안삼거리에서 갈라지고 합류하여 위로는 직산-진위-수원-인덕원-과천-사당으로 항하여 서울까지 이어졌다. 경기민요 흥타령이 "천안 삼거리 흥~"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아예 이 민요의 제목이 천안 삼거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곳 공원에서 벌어지는 축제 이름도 천안 흥타령춤축제다. 시가지가 확장되고 교통량이 늘어남에 따라, 도로의 확장·직선화가 이루어졌는데 이로 인해 천안삼거리의 기능이 현재의 삼룡사거리로 옮겨가면서 본의아니게 사거리가 되어버렸고, 과거 천안삼거리였던 자리에는 현재 삼거리초등학교가 들어서 길목을 막아버렸다. 현재의 천안분기점에서 호남(논산천안고속도로), 영남(경부고속도로) 방면으로 갈라지는데 과거의 천안삼거리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삼남길 9구간(직산역~천안삼거리공원)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구간 거리 짧고 접근 용이하니 서두를 일 없다. 느긋하게 준비하여 집을 나섰다. 동네에 있는 1호선 전철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다. 휴일 외곽으로 나가는 전철은 한산하다.




# 직산역에 도착했다. 이번 구간은 이곳 직산역에서 바로 출발한다. 남태령역에서 출발한 2구간과 인덕원역에서 출발한 3구간에 이어 가장 편안한 출발이다.




# 역 앞에 있는 직산교에서 강둑을 따라 내려간다.




# 요즘 우리나라 중소도시의 소기업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공장을 돌리기 힘든 실정이다. 산길, 들길 걷느라 지방을 다녀보면 만나는 사람 중 2,30%는 외국인 인 듯하다. 이곳 직산역앞 골목에서 베트남 노동자들이 야유회 같은 친목 모임을 하고 있다. 어디 초등학교라도 빌려서 하지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행사 중이다. 그래도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 삼남길은 다시 직산역으로 꺾어 들어간다. 역에서 그냥 바로 철길 따라 남진하면 될 일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길없슴" 이라 적은 안내판이 서있다. 정확한 우리말 맞춤법은 '길 없음', 혹은 '길 없습니다.'로 적어야 한다. 




# 역 옆 독가촌 농장에 매화꽃 피었다.




# 철길 따라 내려간다.



# 그러다 지하도 통해 철길을 건너고 이후 한가로운 농로를 따라 길게 내려간다. 우측 언덕 위에 천안 업성동 마을이 있다.





# 업성고가교 아래를 통과한다.




# 이후 업성 들판을 통과한다. 이곳 들판도 예전 정유재란 당시 직산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 직산전투는 명군이 조선에 원군으로 참여한 이래 몇 되지 않는 승전 중 하나이다. 대첩(大捷) 정도의 승전은 아니었지만, 이 전투로 왜군의 한양 진출이 무산되고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후방 보급로가 막히면서 왜군이 물러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 업성들을 관통하여 남으로 내려가다가 업성저수지 좌측으로 올라 간다. 그곳에 있는 작은 야산의 고개를 넘는다.




# 길가에 꽃잔디 예쁘게 피었다.




# 성환과 천안은 배가 유명하다. 곳곳에 배과수원이 있다.




# 조금 있으면 배꽃 하얗게 피어날 것이다.




# 청보리 푸르게 싹을 올렸다. 경부선 철길에 화물열차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진다. 철길 뒤 야산과 성거산 사이의 협곡에 왜군이 포진하였다 전해진다.




#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옆을 지난다. 이 학교은 처음 들어보는 대학이다.




# 두정동에 있는 북부교가도로 아래를 통과한다.





# 철길과 빌라촌 사이로 길게 내려간다.




# 천안 두정역을 만난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오래 쉬었다.




# 두정육교를 건너 두정역으로 갔다.  전철역 화장실에서 양치하고 잠시 쉬었다.




# 철길 곁에 있는 아파트 단지를 통과.




# 동서고가교 아래 통과.




# 고가교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꺾어 태조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 아파트 단지 곁에 있는 메타세콰이어 길을 지난다.




# 방죽다리를 만나 무심코 개천 산책로를 따른다. 잠시후 트랙을 벗어났다고 알람이 울린다.




# 삼남길은 방죽다리를 건넌다.




# 천안은 8경 정도로는 만족 못하고 12경을 지정했다. 너무 과하다.




# 천안로 사거리를 건너 호두과자집 곁으로 간다.




# 호두과자집과 주유소 사이 좁은 길이 태조산 들머리이다.




# 풋살경기장 곁을 통과. 젊은이들이 작게 만들어진 풋살경기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차고 있다.




# 곧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도 통과한다.




# 그리고는 곧바로 태조산으로 올라가게 한다. 경부고속도로는 휴일 차량으로 붐빈다.




# 이후 아늑한 숲길이 이어진다. 역시 우리는 이런 숲길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 산은 천안의 진산(鎭山)인 태조산(太祖山)이다. 고려 태조인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치기 위해 이 산에 주둔하였던 데서 태조산이란 이름을 얻었다. 왕이 머물렀던 유왕골(留王谷), 군량미를 비축했던 유량동(留糧洞) 등 지명에 왕건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금북정맥이 지나는 산이라 금북정맥 종주하면서 이 산줄기를 지났었다. 10년 쯤 된 이야기이다.




# 햇살 좋은 곳에 노란 돌양지꽃 만발하였다.




# 진진이도 꽃분홍 꽃잎을 솔바람에 맡겨 하늘거리고 있다.




# 야산 언덕 하나를 길게 치고 오른다.




# 태조산 등산로가 가로지르는 이 고개는 천안향교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 고개를 넘어 내려간다.




# 이른 봄꽃 만발한 카페 곁을 지나 아래로 내려간다.





# 목련꽃 그늘에 서면 옛 이야기가 뭉게뭉게 구름처럼 일어난다.





# 올 봄에는 홍매화 구경을 참 많이 한다.




# 유량동 언덕을 올라가면 그곳에 천안향교가 있다.




# 조선 태조때 인 1398년 지었으나 임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선조 39년에 다시 지었다. 향교는 원래 교육과 문묘에 대한 향사(享祀)를 담당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봉제사(奉祭祀)만 남게 되었다.





# 향교 언덕 너머로 태조산에서 장고개 거쳐 취암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의 산줄기가 길게 누워 있다. 그 뒤로 흑성산의 안테나가 보인다.




# 향교 언덕을 내려와 유량동 통과. 멋진 소나무 곁을 지난다.





# 새로나병원 앞에 작은 초미니 공원이 있다. 그곳 정자에서 짐 내리고 한숨 돌렸다.




# 휴식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어느 길 모퉁이 목련꽃 아래에서 길고양이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 경부고속도로를 향해 접근.




# 천안 답게 거리 곳곳에 능수버들이 자라고 있다. 능수버들은 휘휘 늘어진 가지가 풍성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인가 근처에 심을 수목은 아니다. 매년 봄이면 꽃가루 때문에 홍역을 치르게 된다.





# 태조산에서 흘러내린 개천을 건넌다.




# 이후 1번 국도를 따라 진행한다.




# 그곳에 도로원표(道路元標)가 있다. 도로원표는 도로의 기종점(起終點)과 경과지를 표시하는 것이다.





# 좌측에는 경부고속도로, 우측에는 1번 국도를 두고 진행한다.




# 그러다 고제사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 경부고속도로 쪽으로 접근한다.




# 이후 고속도로 좌측길을 따른다. 우리나라 제1의 고속도로이니 차량 통행도 제1이다. 




# 그러다 야산을 만나 언덕을 치고 오른다. 지나치는 차 안에서 쳐다보는 눈길이 많다.




# 오늘은 눈길 가는 곳곳에 노란 개나리 만발하다.





# 양지바른 무덤가에 할미꽃 무리지어 피어 있다.




# 이 고개 따라 계속 올라가면 금북정맥이 지나는 장고개에 이르게 된다. 10년 전 나는 금북정맥 종주하면서 어둠이 내린 밤중에 장고개를 통과했다.




# 삼남길은 편안한 사면의 오솔길을 따른다.




# 숲을 벗어나면 전방으로 경부고속도로 천안삼거리 휴게소가 보인다.




# 이 동네는 천안시이지만 이느 시골 마을 느낌이 난다. 




# 천안 구성동의 골목길을 통과한다.




# 휴게소 직원들 통로인 듯한 곳을 지난다.




# 휴게소에는 사람과 차가 가득하다. 그들이 토해내는 온갖 소음이 넘쳐난다. 얼른 그곳을 통과한다. 샛골 통과.




#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다시 지난다.




# 샛골길 주변의 집들은 옛날 시골 마을 분위기를 보인다.




# 성질 급한 벚꽃들은 이미 만발하였다.




# 곧 오늘 구간의 종점인 천안삼거리 공원에 도착했다. 이름은 삼거리이지만 옛이름이고 지금 이 주변 길은 대부분 사거리 이상이다.




# 공원 안에는 휴일을 즐기는 시민들이 많다.




# 70년대 조성한 면적 9만 6천 제곱미터의 공원이다. 단순히 공원만 만든 것이 아니라 삼룡동 삼층석탑 같은 문화재도 전시하고 있다.




# 연못 건너에  영남루(永南樓)가 있다. 조선시대 화축관(華祝館)의 문루(門樓)였던 모양이다. 화축관은 천안에 건립한 왕의 행궁이다. 선조 대에 천안군수 노대하가 1602년 세웠다 한다.




# 천안의 상징인 흥타령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먼지 털어낸 후 공원화장실에서 손 씻고 삼남길 9구간을 마무리했다. 이후 버스편으로 천안역까지 한 번에 이동했다.




삼남길은 안성천에서 경기 지방과 헤어진 후 성환에서 충청도로 진입했다. 이후 직산을 거쳐 천안으로 들어오며 완전히 충청도 깊숙히 들게 되었다.


앞으로는 차령(車嶺)을 넘어 공주와 논산으로 남하(南下)하게 될 것이다. 차차 만나지게 될 충청도의 산하(山河)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 줄지 기대가 크다. 두근두근!








*아래 배너를 클릭하면 강사랑물사랑의 다음 블로그 "하쿠나마타타"로 이동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