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제주올레길]14코스/저지한림 올레 - 한여름 제주에서의 저체온증!! 본문

길이야기/제주 올레길

[제주올레길]14코스/저지한림 올레 - 한여름 제주에서의 저체온증!!

강/사/랑 2017. 9. 12. 17:09
 [제주올레길]14코스 - 저지한림 올레


   

'저체온증(低體溫症)'은 인체의 중심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영어로는 'hypothermia(하이포서미아)'라고 한다. 'hypo'는 '아래(below)', 'thermia'는 '열(heat)'을 의미한다.


의학적으로는 인체의 열 생산이 감소하거나 열 소실이 증가할 때 발생하는데, 갑자기 생기거나 점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원인으로는 추운 환경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우발성(偶發性, 환경성) 저체온증과 여러 내분비계 질환으로 인한 대사성(代謝性) 저체온증, 그리고 패혈증이나 외상 등 기타 요인으로 인한 저체온증이 있다.


우리 같은 산꾼들이 흔히 경험하는 우발성(偶發性) 저체온증은 한습풍(寒濕風) 환경에서 방풍, 방수, 보온에 필요한 준비 부족으로 체열 손실이 일어나 발생하게 된다. 이런 추운 환경에 처해졌다고 모두 저체온증이 오는 것은 아니고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영양섭취의 불균형, 극심한 과로 등의 상태에 있을 때 저체온증에 걸리기 쉽다. 


저체온증에 걸리면 1단계로 심한 오한이 들어 몸을 떨게 되고 2단계로 불안 초조와 졸음을 호소하고 의욕이 없거나 판단력이 흐려지게 된다. 3단계는 기억력이 저하되고 헛소리를 하며 의식이 흐려지면서 손발이 차가워진다. 4단계는 맥박과 호흡이 약해지며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신체 기능이 급속히 떨어지며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되어있다.


저체온증은 증상이 급격히 악화되기 때문에 처음 이상증세를 느꼈을 때 재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급속히 진행되므로 그 시기를 놓치기 쉽다.


우리네 종주 산꾼은 무거운 짐을 지고 긴 거리를 걷거나 험한 산을 오르기 때문에 늘 땀에 흠뻑 젖는 환경에 노출된다. 또 산에서 예보에 없던 비바람을 만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 비에 대한 대책 없이 몸이 젖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저체온증을 겪게 된다. 나도 그런 경험이 여러 차례 있다.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인 2005년 봄의 일이다. 육십령을 출발해서 할미봉, 남덕유, 무룡산을 넘어 동엽령까지 가는 덕유산 구간을 걷다가 무룡산에서부터 엄청난 강풍과 비바람을 만나게 되었다. 동엽령에 도착하여 안성면 칠연계곡으로 탈출했다. 대여섯 시간 이상 비를 맞았더니 온몸이 빗물에 흠뻑 젖고 말았다.


그때 마눌은 고어텍스 재킷을 입어 땀은 좀 흘렸지만 속옷이 젖지는 않았는데, 나는 일반 재킷 차림이라 비에 젖고 땀에 젖어 속옷까지 완전히 물구덩이 상태였다. 안성매표소에서 택시 불러 차를 세워둔 육십령고개로 복귀했다. 흠뻑 젖은 몸 때문에 택시 시트를 버릴까 봐 깔판을 깔고 택시를 탔다.


육십령에 올라가니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마침 택시가 휴게소 입구에 우리를 내려주고 가는 바람에 우리 차 있는 곳까지 잠깐 걸어가야 했다. 그날 육십령에는 찬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고 있었다. 이삼십 미터 정도 거리를 걸어 우리 차에 탔는데, 젖은 몸으로 맞은 잠깐의 찬바람이 저체온증을 유발시켰다.


순식간에 온몸이 덜덜 떨리면서 손발에 힘이 빠지고 앞이 잘 안 보이기 시작하였다. 마눌이 급하게 내 옷을 모두 벗기고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그리고 몸을 주물러 체온을 올리고 차 시동 걸어 히터도 작동시켰다.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시트 젖혀 누우니 비로소 정신이 돌아오고 사물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처음 겪은 저체온증이었기에 충격도 컸다.


두 번째는 지리산 둘레길에서 겪었다. 그때는 자전거를 너무 과격하게 타서 양쪽 다리 모두에 장경인대염이 발생해 고생하고 있었다. 아픈 다리로 산길 걷기 힘들어 지리산 둘레길을 선택했다. 늦가을인 11월에 남원 주천에서 출발하여 운봉고원의 들길과 산길을 걸어 운봉읍으로 밤중에 들어갔다.


운봉에 있는 서림 공원에 헝겊집 한 채 짓고 하룻밤 야영하였다. 저녁 끓여 먹고 막걸리도 한 잔 마셨다. 술 마셨더니 소변이 자주 마려웠다. 소변 보러 텐트 밖으로 나갔다가 찬바람을 꽤 오래 쐤다. 으슬으슬하다 느끼며 텐트 안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급히 우모복 꺼내 입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 온몸을 비볐다. 마눌이 더운물을 끓여 먹이고 자기 침낭을 더 덮어주는 등 조치를 하였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겪은 후 안정이 되었다.


이 외에도 가벼운 저체온증은 여러 차례 겪었다. 대부분 힘든 여정의 산행이나 트레킹 이후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땀을 많이 흘려 젖은 몸으로 찬 바람을 쐬었을 때 발생하였다. 나는 저체온증의 경험이 몇 차례 있는지라 항상 우모복이나 보온재를 가지고 다닌다. 덕분에 심각한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건 사고는 방심(放心)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사고에 대비한 준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방심하여 사고를 피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번 제주 올레길에서 그런 방심의 저체온증을 경험했다.


이번 제주올레길은 이 년 만의 재방문이라 기대가 아주 컸다. 첫날 용수에서 출발해서 저지까지 걸었고 저지오름을 넘어 저지마을회관에서 야영하며 하룻밤 여장을 풀었다. 둘째 날은 저지에서 한림항까지의 18.9km 코스였다. 절반은 내륙 길을 절반은 바닷가를 걷게 되어 있다.


월령리에서 바다를 만났는데, 이 년 만에 만나는 제주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고 환상적인 물빛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그 물빛에 반해 햇살 뜨거운 줄 모르고 걸었다. 이날 우리는 7부 팬츠 차림이었는데 노출된 종아리가 강렬한 햇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돋보기로 지지듯 햇살이 종아리를 지지고 있음을 우리는 몰랐다.


월령리 바닷가를 돌다가 해안 길을 만났다. 해안 길은 검은 화산암으로 길을 만들어 두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돌이라 바깥쪽으로는 견고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문득 몸에서 중력(重力)이 사라지더니 내 몸이 바다 쪽으로 푹 꺼져버렸다. 무거운 야영 배낭을 멘 채 떨어졌으니 충격이 훨씬 더 컸다. 정신 차려보니 오른쪽 정강이에 깊고 큰 상처가 여러 군데 생기고 피가 철철 흐르고 있다.


배낭 내리고 지혈(止血)하였다. 이윽고 피 멈추고 나서 가지고 다니는 응급약으로 조치했다. 약 바르고 붕대 감았지만 걸을 때마다 통증이 있었다. 마눌 걱정할까 봐 괜찮다 하고 마저 걸었다. 상처 입은 다리로 절룩거리며 협재해수욕장까지 갔다.


해수욕장 입구 그늘 아래 쉬는데 사타구니가 엄청 쓰라렸다. 화장실에서 확인하니 한쪽 사타구니가 헐어서 벌겋게 까져 있다. 속옷을 삼각으로 입었더니 재봉선이 땀에 젖어 부풀어 올라 피부를 공격한 모양이다. 역시 가지고 다니는 바셀린으로 응급조치하였다.


그리고 출발하는데 이번에는 종아리가 엄청나게 아팠다. 돌아보니 종아리가 완전히 홍시처럼 발갛게 익어 있다. 햇살에 노출된 종아리가 화상을 입은 것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었다. 그동안 올레길 걸으면서 반바지나 7부 팬츠 등 간편한 옷을 입은 적이 많다. 나는 피부가 민감한 편이다. 하지만 노출된 피부에 약간의 트러블이 있기는 했어도 이렇게 화상을 입은 적은 없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한여름에 제주바닷가를 걷기는 처음이다. 방심하였다.


삼 중의 부상을 입고 힘겹게 한림항에 도착했다. 14코스 종착지는 한림항 도선 대합실과 해양경찰서 사이에 있었다. 인증도장 찍고 그곳 벤치에 앉아 쉬었다. 부상 당한 몸으로 걸었더니 완전히 파김치가 되었고 온몸은 땀범벅이었다. 마눌이 주변 맛집이나 야영 장소를 찾는 동안 좀 쉬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 벤치는 바람골이었다. 바닷바람이 두 건물 사이를 빠져나가는 곳이었다. 땀에 젖은 몸이 찬 바람을 쐬자 체온이 떨어지며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바람막이 꺼내 입고 몸을 웅크렸다. 피곤하여 잠시 까무룩 졸았는데, 몸이 너무 떨려서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우모복을 꺼내 입었다. 하지만 찬 바람을 쐬며 잠들었던 것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손발이 차가워지고 무기력하여 손끝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마침 마눌이 돌아왔다. 마눌도 나도 아직은 심각성을 몰랐다. 일단 따뜻한 식사를 하기로 하고 마눌이 발견한 항구 앞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 안은 손님으로 붐비고 음식 끓는 열기로 따스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춥고 졸리고 무기력하였다. 억지로 두어 숟가락 국물을 먹었는데 어지럽고 구토가 올라와 먹을 수가 없었다. 비로소 심각한 저체온증이 왔음을 알았다.


창백한 내 모습에 마눌과 식당 종업원 모두 놀랬다. 병원에 가 보라고 하지만, 일요일 저녁 한림에서 갈 수 있는 병원은 없었다. 얼른 젖은 옷을 벗고 따뜻한 물에 담글 필요가 있었다. 식당 바로 뒤에 깨끗한 모텔이 있었다. 그곳에 가서 욕조에 뜨거운 물 가득 받아 놓고 몸을 담갔다.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그 순간에도 물 온도 조절한다고 잠깐 찬물이 몸에 닿으면 다시 어지럽고 한기가 들었다.


따뜻한 욕조에 오랫동안 담갔더니 정신이 돌아오고 현기증도 구토도 사라졌다. 몸 닦고 침대에 누워 한잠 자고 났더니 회복되었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가장 심각한 저체온증이었다. 저체온증 3단계쯤 되는 상황이었다. 8월 한여름 제주에서 저체온증을 겪으리라 누가 상상하겠는가? 그런 방심이 이런 심각한 상황을 만든 것이다.


무릎 부상, 사타구니 부상, 종아리 화상까지 당한 상태에서 젖은 몸으로 찬바람을 오래 쐬었더니 이 모든 악조건들이 연쇄반응(連鎖反應)을 일으켜 따스한 남쪽 제주에서 그것도 한여름에 하이포서미아를 가져온 것이다. 놀라운 경험이었고 아찔한 순간이었다. 우리처럼 야외활동이 많은 이들이 절대 방심하여서는 안 될 일을 겪은 것이고 좋은 교훈을 얻은 것이다. 방심하지 말아야 할 일이고 조심해야 할 일이다.

 

 


한여름 제주에서의 저체온증!!


구간 : 제주 올레길 14코스(저지~한림)
거리 : 구간거리(18.9km), 누적거리(287.0km, 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7년  8월 31일. 나무의 날.
세부내용 : 저지 마을회관 ~ 14-1구간 갈림길 ~ 허브단지 ~ 굴렁진 숲길 ~ 환경관리시설사무소 ~ 월령천 ~ 새웃교 ~ 월령삼거리 ~ 월령포구 ~ 일성콘도 ~ 금능포구 ~ 금능해수욕장 ~ 협재해수욕장 ~ 옹포리포구 ~ 한림항 ~ 한림항 도선대합실.


  

저지 마을회관 정자에서 하룻밤 잘 보냈다. 아침 일찍부터 차량통행이 잦긴 했어도 그다지 방해되지는 않았다. 회관에 있는 화장실에서 씻고 준비마쳤다.


저지 마을은 마을 재정이 풍부한 모양이다. 리(里) 단위의 마을에서 이런 멋진 회관을 가졌다는 것이 놀랍다. 대도시 어느 동 단위의 주민센터도 이렇기는 쉽지 않다. 넓은 대지에 잘 지어진 회관 건물과 독립된 체육관까지 갖추고 있다.


저지리에 예술인마을이 유치되고 농촌체험마을도 만들고 하면서 예산확보가 원활했던 듯하다. 어쨌거나 덕분에 마을에 윤기가 흐르니 인심도 좋고 우리같은 나그네를 바라보는 눈길도 부드럽다. 그 인심에 감사하고 저지를 떠났다.

 


한림항/翰林港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에 있는 연안항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연안항 6곳(한림항·애월항·추자항·성산포항·화순항) 중 한 곳으로, 도내 서부지역에서 가장 큰 항구이다. 좌표는 북위 33°25.0′, 동경 126°15.6′이며, 제주항으로부터 서쪽으로 28.65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항구 남서쪽 3.1km 지점으로는 비양도(飛揚島)가 있다. 한림항은 제주 서부지역의 수산센터로서의 역할을 하는 연근해 어업의 중심지이자 모래·시멘트·감귤 등 지역 연안 화물을 처리하는 화물항이기도 하다. 한림항은 제주도 서쪽 동중국해의 풍부한 어장에 근접하고 있어 일제강점기에 일본어업자본가들의 진출기지로 개발되었다. 1934년 전라남도가 공사비 12만 원을 투입하여 최초의 방파제를 만들었고, 광복 전에도 여러 차례 방파제 연장 공사를 하였다 한다. 광복 이후에는 제1차 경제개발계획 기간(1962~1966)부터 준설공사와 물양장·방충재·방파제 축조공사 등을 활발히 벌여 오며 오늘에 이른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주 올레길 14코스 저지한림 올레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저지 마을회관 마당에 있는 정자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 저지 마을은 부자동네이다. 시골마을의 회관이 이렇게 잘 지어진 것은 처음 본다. 뒤쪽에는 큰 체육관도 있다.




# 바로 곁에 자동차 길이 있긴 했어도 큰 소음없이 편안하게 잘 잤다.




# 간밤에 회관 체육관에서 운동하시던 동네 어르신들께 허락받고 이용했다. 우리야 언제 어디서든 흔적없이 머물다 떠나는 사람이다. 깨끗이 정리하고 짐 꾸렸다. 




# 저지 마을회관과 작별하였다. 뒤로 저지오름이 보인다.




# 쾌청한 날씨다.




# 마을회관 바로 앞 삼거리가 14-1코스 갈림길이다. 우리는 몇 해 전 저 14-1코스를 걷다가 곶자왈에서 엉뚱하게 11코스로 접어드는 바람에 미처 마치지 못한 기억이 있다. 14-1코스는 이곳 저지에서 곶자왈을 거쳐 무릉리로 연결된다.




# 곶자왈은 다음을 기약하고 오늘은 한림을 향해 출발했다.




# 저지오름은 이쪽에서 보면 둥근 언덕처럼 생겼다. 어제 반대쪽에서 접근할 때는 위가 평평한 사다리꼴 모양이었다.




# 저지농산물 판매점 앞에 인증소가 있다. 스탬프 찍어 인증 마쳤다.





# 저지마을은 여느 시골마을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상당히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마을 살림을 꾸려 나가는 것 같았다.




# 도로에서 좌틀하여 저지 오름쪽으로 접근한다.




# 하늘타리 열매가 담장 위에 매달려 있다. 크기가 참외만 하다. 하늘타리는 우리나라 전국에서 자생하는데 제주에는 노랑하늘타리가 많다. 이 넘도 노랑하늘타리다. 한자로는 '괄루(括蔞)'라고 한다. 뿌리는 왕과근(王瓜根)이라 하는데 고구마처럼 생겼고 전분이 풍부하다. 통경, 이뇨, 배농(排膿)의 약으로 쓴다. 우리는 하늘타리를 어릴 때 하늘수박이라 불렀다.




# 하늘타리 꽃은 장마철 이후에 피는 여름꽃이다. 암수 딴몸이고 암꽃이 화려하다. 이 넘이 암꽃이다.




# 농장들 사이로 난 포장길을 따라 진행했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 약용작물허브단지를 통과.




# 마늘밭 너머로 멀리 금오름이 보인다. 금악오름이라고 한다.



# 금오름 뒤로는 한라산의 모습도 보인다. 올 겨울에 한라산 심설산행(深雪山行)을 한 번 와야 겠다.




# 올레길은 저지리와 월림리의 경계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 어느새 뙤약볕 강렬해졌다. 해가 오른쪽에 있어 오른쪽 종아리에 뙤약볕이 작렬하고 있다. 저것이 문제가 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 저지리 일대는 콩농사가 성하다. 가는 곳마다 파란 콩잎의 물결이다.




# 그러다 월림리 야산으로 들어간다. 말이 야산이지 야트막하게 그냥 버려진 황무지 길이다.




# 햇살 좋은 곳이라 고사리가 많다. 봄에 나야 할 고사리 새순이 지금 이 더운 여름에 쑥쑥 자라고 있다. 만져보니 새순 부분은 충분히 먹을 수 있게 부드럽다. 고사리 따느라 지체했다.





# 숲 속으로 들어가면 잠시 햇살을 피할 수 있다. 잠시나마 서늘한 그늘의 은덕으로 편안하였다.





# 그러나 그런 은덕은 그다지 오래 가지 못한다. 다시 뙤약볕 아래로 나가야 했다.




# 감귤 그려진 집수탑이 이국적 풍광을 연출한다.




# 길가 햇살 좋은 곳에 수세미가 자생하고 있다. 크고 노란 꽃과 긴 열매가 함께 있다. 우리 어릴 때는 저 열매 속 거친 수세미로 식기를 닦았다. 박과(科)인 수세미의 꽃말은 '유유자적(悠悠自適)'이다. 지금 우리 모습이다.




# 길은 크게 보아 한경바다로 가는 모양세다. 저 멀리 바다내음이 난다.




# 뙤약볕 강렬한 언덕을 치고 올랐다.




# 언덕 너머로 쓰레기 매립장이 보인다. 포크레인과 쓰레기차량이 움직이고 있다.




# 굴렁진 숲길로 접어들었다. 굴렁진 숲길은 움푹 패인 숲길을 말한다.




# 누군가 의도적으로 올레길 간새를 부숴버렸다.




# 야자나무 나래비 서 있는 밭길을 휘감아 간다. 우측에는 환경관리시설이 있다.




# 선인장 밭 통과. 월령리는 제주에서 제일 유명한 손바닥 선인장의 자생지다. 우측에 있는 건물은 양돈농협사료공장이다.




# 그 길 끝에 월령천이 있다.




# 이제부터는 이 월령천을 따라 월령바다로 나가게 된다.




# 뙤약볕의 공격이 너무나 강했다. 뙤약볕이 뒤통수와 종아리를 지지고 있었다. 월령천길은 어디에도 그늘 한 점 없는 곳이다.




# 휴식도 이런 땡볕 아래서 할 수밖에 없었다. 마눌은 이번에 볼 좁은 경등산화를 신고 왔다. 당일 산행에는 문제 없던 것인데 사 일간의 긴 트레킹에는 적합치 않았던 모양이다. 이때 불편하다 호소했는데 무심히 지나쳤는데, 나중에 보니 발바닥에 엄청난 물집이 생겼다.




# 월령천길은 3.5km 정도의 긴 거리다. 햇살에 완전히 노출된 채 그 길을 걸었다.





# 바닷가에 가까워지자 선인장의 크기가 더욱 커지고 기름지다. 이곳 월령리 선인장은 문주란, 파초일엽과 함께 제주의 3대 외래 식물이다. 선인장은 물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는데 저렇게 화려한 꽃을 피워낸다. 봄날 선인장 꽃 만발할 땐 장관을 이루는 모양이다.




# 제주일주도로와 만났다.




# 월령교차로 통과.





# 드디어 월령리 바다에 도착했다. 한림읍 서쪽 끝동네이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 있는 곳으로 옛기록에는 원룡포(元龍浦)라 적고 있다.





# 햇살 뜨겁지만, 바람이 좋은 곳이다. 바람 시원하니 조금 살 만하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뙤약볕의 공격이 아직 계속되고 있고 바닷가에 와서 더 강해진 것을 잊게 되었다. 그것이 뙤약볕에 대한 대책 세우는 것을 망각하게 만들었다.





# 제주바다는 언제 보아도 좋다. 어떻게 저런 물빛이 나는 걸까? 그 오묘한 바다 빛깔과 바다 내음, 그리고 시원한 바람을 한껏 느껴보았다.





# 우측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했다. 저 길은 예전에 '거문질'이라 불렀고 동네 이름으로도 불렀다. 검은 길이란 뜻이다.




# 나무데크로 해안길을 잘 꾸며두었다.




# 저멀리 월령코지의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월령코지는 검은 방파제처럼 바다 쪽으로 쭉 뻗은 지형이다. 용암이 찬바다와 만나 굳어져 천연방파제가 된 것이다.




# 돌아보면 신창리 풍차해안이 보인다.





# 2년 전 저곳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올레길 구간 마무리를 했었다. 바다 안에 건설된 풍력발전기가 이채롭다.



# 해안길 따라 가다보니 식당 하나가 눈에 띈다. 겉모습만 봐도 딱 맛집일 느낌이다. 관광객 대상으로 바가지 씌우는 곳이 아니라 나름의 음식 철학을 갖춘 곳일 것 같았다. 기대만발하고 찾아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여름 휴가 갔다고 적혀 있다. 아쉽다. 정말 이 집이 맛집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 제주 어느 해안이라고 다르겠는가만 이곳도 해안은 모두 검은 용암으로 뒤덮혀 있다. 거문질 혹은 가문질이란 이 동네 이름의 유래다.



# 그 광경을 파노라마로 찍어봤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배가 고파 식당을 찾는데 월령포구에는 좀 전의 그 느낌 있는 집 외엔 마땅한 집이 없었다. 포구 주변을 벗어나 마을 안 깊이 들어갔다. 길가에 꽤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그 집도 휴일이었다. 건너편에 고급스럽게 지은 식당이 하나 있었다. 손님이 꽤 있었다. 우리는 짐이 많아 바깥에 있는 야외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장사가 잘되어선지 외지인 처럼 보이는 젊은 주인이 무관심하였다. 짐 두고 안으로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니 바깥에는 서빙하기 힘들단다. 기분 상해 그냥 짐 챙겨 나왔다.


결국, 월령포구로 도로 내려와 그곳 작은 동네 슈퍼에서 컵라면과 김밥 등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후덕해 보이는 주인내외와 얘기도 한참 나눴다. 점심후 다시 올레길을 이었다.




# 월령포구 우측 끝에 월령코지가 있다. 그곳에 있는 같은 이름의 펜션 앞을 돌아 나갔다.




# 잠시 후 길은 월령코지에서 해안의 돌길로 이어졌다. 바로 앞에는 거대한 풍차의 수리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광경을 사진에 담아보고 싶었다. 길 중간에서는 앵글이 시원찮아 바깥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갑자기 몸에서 중력이 사라져버렸다. 돌이 무너진 것이다. 이곳의 길은 용암 파쇄석으로 대충 얼기설기 길 바깥을 쌓았다. 둥근 현무암들이 치밀하게 짜여진 것이 아니라 얽혀 있는 것이어서 애초에 힘을 받을 수 없는 곳이었다. 내 무게에다 대형 배낭 무게까지 더했으니 깊이 푹 떨어져 버린 것이다. 엉금엉금 기어나와 보니 오른쪽 무릎과 정강이가 피범벅이다. 긴 바지를 입었으면 옷 때문에 부상이 덜했을 것인데, 7부를 입었더니 맨살이 날카로운 현무암에 짓이겨진 것이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찌해 볼 방도가 없었다. 정신차리고 움직여 보니 상처가 넓고 두어 군데 깊게 파이긴 했어도 뼈는 이상이 없다. 가지고 다니는 응급약품으로 상처 씻어내고 약을 발랐다. 상처가 워낙 넓어 한 번 사용에 약품을 모두 소모했다. 붕대로 감아 상처 보호하고 나니 비로소 통증이 일어났다. 걱정 태산인 마눌 때문에 괜찮다 말해주고 다시 길을 나섰다.




# 한 바탕 소란을 겪은 후 다시 올레길을 이었다. 전방 우측에 일성콘도가 보이고 그 앞 바다에 비양도가 떠 있다.




# 아담한 모습의 비양도(飛揚島). 날아온 섬이란 뜻이다. 제주에서 가장 나중에 화산이 분출하여 형성된 섬이다. 어족자원이 많아 낚시꾼들의 로망인 섬이다. 우도에도 비양도란 부속섬이 있다. 여러 해 전 처음 올레길 걸으러 입도했을 때 우도에서 만났던 섬이다.




# 전경부대가 있던 주둔지와 하얀 등대를 지난다.




# 그곳에선 비양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비양도에 있는 두 개의 분화구가 뚜렸하다.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니 헤엄쳐서 건널 수도 있겠다. 전설에는 협재리의 어느 임산부가 문득 바다를 보니 없던 섬이 떠내려 오고 있어 "섬이 떠내려 온다" 라고 고함을 쳐 섬이 그 자리에 굳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류의 전설은 뭍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출발한 낙남정맥이 하동 옥종으로 흘러내려가는 산맥의 곁에 옥산(玉山)이란 둥근 산이 있다. 이 산도 그 고장에 사는 볼 빨간 처녀가 지리산 산신령의 명령을 받고 지리산으로 가던 옥산을 보고 "산이 간다"고 소리를 쳐 산이 그 자리에 멈췄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 금능해수욕장을 향해 길게 진행했다. 우리가 저지에서 월령으로 올 때는 해가 머리 뒤에 있었다. 그 때 우리 뒷통수와 종아리가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해안길을 걸으면서부터는 우측 뒤에서 뙤약볕이 내려 쬤다. 이번에는 몸의 우측 부분이 집중적으로 공격 당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몰랐다.




# 금능포구에 도착했다. 힘들고 지쳐 길가 벤치에 털석 주저 앉았다.



# 금능리 원래 배령리(盃令里)라 불렀다. 마을에 잔과 같은 동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버랭이 즉, 벌레 같다 하여 금능으로 개명하였다 한다. 하지만 하필이면 중국의 지명을 따서 지었다 하니 씁슬하다.


포구 우측에 '원담'이 있다. 원담은 돌을 이용하여 둥글게 담을 두른 것으로 밀물 때 밀려 들어온 물고기를 잡는 원시적 어로법이다. '석방렴(石防簾)'이 원 명칭이고 뭍에서는 '독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주 일부 지역에서는 '개'라고도 한다. 이곳 금능 원담은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어로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 원담 안에 물이 가득하다 물고기 몇 마리 들어 있을 법해 보인다.




# 원담 우측에 금능해수욕장이 있다.




# 금능해수욕장은 물이 얕고 물빛이 고와 가족단위로 즐기기 좋아 보였다.





# 인근에 협재라는 명소를 접하고 있어 이곳은 한산하였다.




# 그래도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즐기는 모습은 꽤 있다.




# 사실 우리도 바쁠 것 없는 사람이라 그냥 이 쯤에서 자리 펴고 해수욕도 하고 그랬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늘 일정한 구간 정해 놓고 당일에 마치는 것이 버릇되다 보니 느긋하게 즐기지를 못한다.





# 금능해수욕장은 협재해수욕장과 바로 인접해 있다. 소철과 야자 우거진 길을 따라 협재로 넘어갔다.




# 어디 먼 남국의 해변을 걷는 기분이다.




# 언덕을 돌아가자 협재해수욕장이 나온다. 그 길목에 문주란이 꽃을 피웠다.




# 협재는 금능과는 달리 피서객으로 붐빈다. 협재가 제주 제일의 해수욕장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협재해수욕장은 에메랄드빛 바닷물과 산호 가루로 된 백사장, 깊지 않은 수심 등 자연조건이 수려해 외부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주의 해수욕장이다.




# 협재 해수욕장 입구에 화장실과 관리사무소가 있다. 그곳 그늘에 짐 내리고 쉬었다. 그런데 문득 사타구니가 엄청 쓰라렸다. 화장실에서 확인하니 한쪽 사타구니 피부가 벌겋게 까져있다. 보통 장거리 산행이나 트레킹을 할 때는 무봉재의 사각 드로즈를 입어야 피부가 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 생각없이 삼각으로 입고 왔더니 봉재선이 땀에 부풀어 올라 사포처럼 연한 피부를 깎은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 온 바셀린을 듬뿍 발라 마찰을 조금 막았다. 바셀린은 챙기면서 왜 사각을 입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배낭 속에 가져왔으면서 말이다. 두 번째 부상이다.


한참 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런데 몇 걸음 걷지 않아 이번에는 종아리가 따가워 햇볕 속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종아리가 마치 능금처럼 빨갛게 익어 있다. 하루종일 뙤약볕에 노출된 종아리가 화상을 입은 것이다. 같은 칠부 바지 복장으로 함께 걸은 마눌은 붉게 탔을 뿐인데, 유독 나는 화상을 입었으니 내 피부가 더 연약했던 모양이다. 편의점에서 얼음을 구입해 한참을 얼음 찜질하고 자외선 차단제를 듬뿍 발랐다. 세 번째 부상.




# 두 가지의 부상을 더 당한 후 협재를 출발했다.




# 협재의 멋진 풍광에 취한 사람들의 웃음 소리 넘쳐났다. 그러나 나는 현무암에 찍힌 상처와 사타구니 부상, 그리고 종아리 화상까지 삼 중의 부상으로 꺼이꺼이 신음소리 참으며 걸었다.




# 협재해수욕장에서 비양도를 좌측 앞에 두고 걸어 상가촌과 포구를 휘감아 돌았다.



# 협재를 빠져 나가는데 커다란 정자나무 아래 마을 표지석이 작별을 고한다. 협재는 '낄 협(挾)'을 쓰고 있다. 원래 이 고장 이름은 '섭재리'이다. 땔감으로 쓰는 섶나무가 많아 '섶재리'라 불렀다는데 편하게 '섭재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한역하면서 협재가 되었다.



# 부상으로 인한 통증을 참으며 한참을 가다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는 비양도가 우측 뒤쪽에 있다.



# 협재와 작별하는데 저 멀리 옹포 포구가 보인다. 그 너머에 목적지인 한림항이 있다.




# 옹포에 접어드는데 다리의 세 군데 부상 모두가 견디기 힘들게 아프다. 이대로는 남아 있는 이틀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치료가 필요했다. 일단 약국을 찾기로 했다. 옹포에서 해안길을 버리고 한림읍으로 들어갔다.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며 약국을 찾아 보는데 도대체 보이지를 않는다. 지도 검색하니 두 블록 바깥에 약국이 몇 개 있다. 아픈 내색을 별로 안했더니 마눌은 내 상태의 심각성을 잘 몰랐다. 곧바로 구간을 끝내지 않고 자동차 다니는 길을 헤매는 것에 불평이다. "내가 좀 아프다. 약국 찾아야 해!" 


1.5km 쯤 걸어 약국을 만났다. 그런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집은 모두 저녁 먹으러 가고 약사가 없다. 일이 꼬인다. 다시 도로 따라 조금 더 가자 자그마한 약국이 불을 밝히고 있다. 바위에 찍히고 긁힌 상처, 사타구니 헐은 상처, 종아리 화상 모두 세 곳의 상처에 쓸 약을 한 보따리 구입했다. 그리고 다시 해안으로 나가 조금 더 걸어 한림항에 도착했다.




# 한림항교 통과.




# 항구의 자전기길을 따라 길게 내려갔다.




# 항구에는 하루 일을 마치고 휴식 중인 한치잡이 배들이 나래비로 정박하고 있다. 그 배에 선원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는데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 항구 끝부분에 한림항 도선대합실과 해양경찰서가 있다. 14코스는 이곳이 종착지다.




# 인증도장 찍은 후 경찰서와 대합실 사이에 있는 벤치에 짐 내려 길고 사연 많았던 14코스를 마무리 했다.



# 원래 우리는 야영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야영자리 확보가 우선이다. 화장실도 있고 경찰서도 있어 이 주변을 찾으면 우리 텐트 한 동 칠 정도의 조용한 공간은 있지 싶었다. 하지만 마눌은 조금 전 항구를 지나면 마주친 외국인 선원들의 우리를 보는 눈빛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일단 저녁부터 먹고 야영자리는 그때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 하니 마땅한 식당은 마눌이 찾기로 하고 항구쪽으로 내려갔다.  마눌 떠난 후 나는 벤치에 앉아 한 숨 돌렸다.



나는 원래 땀을 좀 많이 흘리는 편이다. 그런데 부상까지 삼 중으로 당했더니 더욱 힘 들었고 온몸은 땀범벅이었다. 당연히 옷은 전부 속옷까지 완전히 젖은 상태였다.


그 상태로 바람골의 벤치에서 두 건물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한여름인데 별 일 있으랴 싶었던 것이다. 한참 있자니 체온이 떨어지며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후는 앞의 이야기처럼 저체온증이 찾아왔다.


한여름 바닷가에서 심각한 저체온증을 만난 것이다. 처음에는 마눌도 나도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그냥 좀 피곤하고 상처 때문엔 아픈 데다 찬바람 쐬어 좀 떨릴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태는 더 나빠져 갔다. 옷을 있는대로 껴입고 따스한 식당에서 뜨거운 국물을 앞에 두고도 먹을 수가 없고 몸의 기력은 더 빠져나갔다.


손발이 차갑고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몸은 떨리고 어지러우며 자꾸 졸립기만 했다. 야외였다면 의식을 잃을 순간이었다. 식사를 그만 두고 항구 뒤쪽에 있는 모텔로 들어갔다. 병원이 없으니 그 방법 밖에 없었다.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 몸을 담갔다. 따뜻하게 씻고 한 잠 자고나니 비로소 몸이 회복되었다.


심각한 저체온증을 한여름 제주에서 겪은 것이다. 방심이 가져온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다. 첫 번째 다리 부상이야 어쩔 수 없었다 해도 나머지 두 가지 부상은 대비책을 다 준비했으면서 당하였다. 그런 방심이 이어져 마침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뻔한 저체온증으로 연결된 것이다.


아마 세 가지의 부상이 없었다면 저렇게 심각한 저체온증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달아 겹친 부상으로 몸의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태에서 저체온증의 정도가 더 심해진 듯하였다. 하지만 모든 일의 시작은 방심이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대형 사고는 방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경계할 일이다.




# 한여름 제주 햇볕의 강력한 공격력에 이 지경이 되었다. 그냥 햇볕에 탄 것이 아니라 화상을 입은 것이다. 이후 두어 주 정도 햇볕에 닿기만 해도 쓰라리고 아팠다. 



# 해안도로의 바위가 무너져 내리면서 오른쪽 무릎 아래로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뼈는 이상이 없었지만, 두 군데 움푹 파이고 넓게 살갗이 벗겨졌다. 이후 몇 달 고생했다.



힘든 하루였다. 기억에 남을 하루였고.


 

 

 

 

*아래 배너를 클릭하면 강사랑물사랑의 다음 블로그 "하쿠나마타타"로 이동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