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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일반 산행

[일반산행]화악산/華岳山-춘일채향(春日菜香)!

강/사/랑 2018. 6. 12. 15:30

[일반산행]화악산/華岳山 



'水至清則無魚 人至察則無徒(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란 옛말이 있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이다. 예기는 중국 고대 주(周)나라 이후의 예(禮)에 관한 학설을 집대성한 것으로 오경(五經)에 속한다.


'지(至)'는 '이르다'란 뜻이다. 끝에 도달하였으니 '지극한 경지'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 옛말의 뜻은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고 사람이 지나치게 살피면 따르는 사람이 없다"란 것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숨을 곳이 없다. 따라서 그런 물에는 물고기가 없다. 사람이 지나치게 맑고 고상하여 매사에 옳고 그름을  따지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대하기 어려워한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고 실수도 하기 마련이다. 세상을 살며 너무나 깐깐하게 시시비비를 따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 불편해하고 숨 막혀 한다.


그리하여 적당히 약점을 보이기도 하고 다른 이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기도 하여야 한다. 그런 사람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모이고 교우관계가 원만하게 된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사람의 마음도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나는 꽤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내가 세운 원칙(原則)은 물론 사회의 규칙에도 꽤나 철저 하고자 하였다.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것이 그러하였고 나름 바른 생활의 삶을 살고자 작심(作心)하였던 탓도 있다. 그러다 보니 학창시절이나 직장생활 동안 "강고집"이란 소리를 자주 들었고 주위 사람들이 나 때문에 불편해한다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산꾼의 길에 들어서도 달라진바 적었다. 백두대간 종주는 멀고 험난한 고행(苦行)의 길이다. 그 길을 우리 부부는 종이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시작하였다. 지도 위의 길과 우리가 만나는 산속의 길은 자주 어긋났다. 초보 산꾼인 우리 부부는 지도 위의 길이 산속에 구현됨이 늘 새로웠다.


그리하여 늘 흔들리고 부딪히며 그 길을 걸었다. 거친 숨소리와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우리를 키우는 자양분(滋養分)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배우면서 성장하면서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그러했기에 우리에게는 일종의 구도자적(求道者的) 자기 절제가 절실하였다.


그 결과 백두대간을 마치고 아홉 개의 정맥을 연이어 종주(縱走)하면서 나는 자연과 이 땅의 산하(山河)를 청교도적(淸敎徒的) 신앙심(信仰心)으로 대하고자 했다. 신앙의 대상을 어찌 함부로 하겠는가? 1대간 9정맥을 걸은 십여 년 동안 나는 풀 한 포기 나뭇가지 하나 건드리지 않고 산길을 걷고자 하였다. 산길 걸을 때 나무뿌리는 되도록이면 밟지 않으려 했다. 사과와 포도 등 과일의 껍질과 씨앗은 씹어서 삼켰으며 대소변은 할 수 있는 한 참고 참아서 산 아래 인간세에서 해결하였다.


나는 태생이 홀로 산꾼이다. 홀로 계획하고 혼자 짐 꾸려 십 년 동안 산길을 걸었다. 이 땅에는 나 같은 홀로 산꾼이 꽤 된다. 같은 생각을 가졌으니 통하는 바 많다. 사람이 언제까지나 홀로일 수는 없다. 우리네 홀로 산꾼들도 가끔은 사발통문 돌려 함께 산길을 걷기도 한다. 일 년에 두세 차례를 넘기 어렵기는 해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산길을 걷는 이들이라 그 희소한 만남이 반갑고 진하기 마련이다.


산꾼들의 만남은 산에서 이뤄진다. 우리는 남들 다니지 않는 오지(奧地)의 산길을 좋아하고 인적 끊어진 산정(山頂)에서 별구경 하며 밤을 보내기 좋아한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홀로 산꾼들의 산속 만남은 늘 오가는 술잔으로 가득하다. 그럴 때에도 나의 원칙은 여전하다. 세상 사람이 다 한 가지 마음일 수는 없다. 나의 원칙이 타인들에게는 불편함일 수도 있었다.


나는 잘 몰랐다. 누구나 자신의 허물은 잘 모르는 법이다. 물 너무 맑아 물고기 다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나도 그러하였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알게 되었다. 동무들이 나 때문에 꽤 부담스러워 한다는 얘기를 마눌에게서 듣고서야 알았다.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마음을 바꿔야 했다. 독야청청(獨也靑靑)으로만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내려놓기로 했다. 꽉 조여 놓았던 나사를 약간은 느슨하게 풀기로 했다. 물고기가 찾아 들 정도의 수풀은 자라게 하고자 하였다. 그래야 내가 편하고 다른 이들이 나를 대함에 부담 없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랬더니 산길도 보이고 경치도 보이고 새소리도 들렸다. 목표 정하여 내달리기만 하던 일정에서 벗어나니 산속의 풍광이 온전히 나와 함께였다. 모든 것에 여유가 넘치고 너그러워졌다. 좋은 일이었다.


그런 생각이 쌓여갈 때 나물을 배우게 되었다. 수년을 배웠어도 구별 가능한 나물이 고작 두어 개에 불과했지만, 동무들과 깊은 산속에서 나물 한 움큼 구해 고기 쌈 싸 먹는 맛이 대단하였다. 배낭 가득 채울 일 아니니 자연에 해 끼치는 일 적고 깊은 산속의 나물이니 지역 주민에게 해될 일 아니었다. 딱 그런 수준으로만 즐기고자 하였다. 일 년에 딱 한 번으로.


그런 연례행사의 만남이 이번에는 화악(華岳)에서 있다는 사발통문이 돌았다. 올해도 잊지 않고 연락해 주는 산동무의 마음씀이 고마웠다. 다들 얼굴 본 지 일 년 가까이 된 격조했던 동무들이었다. 마눌 앞세워 동무들 만나러 길을 나섰다. 5월 봄날의 이야기다.

 



춘일채향(春日菜香)!


일시 : 2018년 5월 13일. 해의 날.

 

 

산냄시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물 냄새 맡고 싶거든 실운현으로 오라는 것이다.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었던 바였다. 마눌에게 짐 챙기라 이르고 자동차에 기름 채워 넣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무들이라 함께 먹을 먹거리도 이것저것 준비했다.


오랜만에 낙동 동지인 뚜벅도 함께 하는 모양이다. 반가운 일이다. 곰바우 부부도 오신단다. 부인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말이다. 더욱 반가운 일이다. 그들 만나러 실운현으로 방향을 잡았다.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화악산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출발이 늦었다. 동무들은 이미 화악으로 스며들었다 한다. 가평을 나와 구불구불 실운현으로 올라갔다. 작년에 나 혼자 화악 정상에서 야영할 때 올랐던 곳이고 산행 마친 후 차량회수 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곳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실운현 꼭대기에 거의 도착할 무렵 산냄시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군사도로가 열려 있으니 실운 터널이 아니라 옛 실운 고개로 곧장 올라 오라는 것이다. 자동차로는 처음 올라가보는 구절양장의 가파른 고갯길을 길게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 옛 실운고개 꼭대기에 도착했다.


길이 열려있어 우리 말고도 여러 팀이 자동차 편으로 올라와 있었다. 아마도 화악 중봉으로 산행차 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한 쪽에 주차하고 짐 챙겼다. 고도 높은 곳이라 날씨가 변화무쌍하였다. 갑자기 철원 사창리쪽에서 짙은 운무가 넘어오기 시작했다.




# 한 무리의 산객이 군사도로를 따라 중봉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 뒤에 낯익은 이가 손을 흔들었다. 곰바우님이었다. 이미 산중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들도 도착이 늦었던 모양이다.




# 여전하시다!




# 실운고개 우측 헬기장에도 몇몇 사람들이 휴식하고 있다. 응봉은 안갯속이다.




# 군사도로 따라 중봉으로 향하는 일반 산객들과 달리 우리는 화악지맥길로 방향을 잡았다. 곰바우님 부인과는 정말 오랜만에 산에서 뵌다. 그동안 건강 때문에 고생하셨는데 이제 좋아지셨단다. 다행이다. 의학 발달한 세상이니 관리 잘하면 될 일이다. 건강을 응원해 드렸다. 지맥길 따라 걷는데 먼저 산속으로 스며든 동무들이 좌표를 보내왔다. 좋은 세상이다. 지도에 좌표를 입력하면 정확한 지점이 공유된다.





# 시작이 가파르다. 화악지맥을 걸어볼 날이 있으려나? 나는 아직 지맥과 기맥에 대해 마음 정한 바 없다.





# 오래 걷지 않아 동무들이 보내온 좌표지점에 도착했다. 뚜벅과 산냄시님은 이미 나물을 한 웅큼 마련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라 인사가 반가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들 배가 고파 얼른 점심 차리는 일이 우선이었다.





# 얼른 보따리 내리고 점심상을 보았다. 각자의 보따리에서 여러가지 먹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먼저 도착한 이들이 장만한 나물이 주 메뉴였다.




# 괴기 구워서 나물에 싸먹으니 상큼한 봄산의 향이 입안에 가득하였다. 막걸리 곁들이니 금상첨화다. 정신없이 여러 잔을 주고 받았다.




# 이윽고  나물 잘게 뜯어 넣고 비빔밥을 만들었다.




# 이것은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맛이다.




# 점심 후 화악 옆구리에서 나물 구경을 좀 하였다. 내 눈에는 취나물이 주로 보였다. 곰취가 가끔 있기는 했지만, 아주 소량이었다. 박쥐나물은 너무 흔해 그냥 지나쳤다. 집에서 한두 번 먹을 정도만 취하고 하산하였다.




# 화악은 경기 제 1의 산이다. 군부대 때문에 접근이 어렵고 또 한편으로는 군부대 때문에 자동차로 접근이 더 쉬운 이중적인 산이 되어 버렸다.




# 곰바우님 부부는 먼저 하산하였다 했다. 모든 동무들이 전부 하산한 줄 알았다. 우리도 얼른 차 몰고 실운현으로 내려갔다.




# 철원쪽 조망이 열려 있다. 박무가 있어 깨끗하지는 않다.




# 실운현 터널 좌우로는 모두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가평과 철원 양 지자체에서 각자 자기 구역을 관리한 모양이다. 규모나 아늑하기로는 철원쪽 쉼터가 훨씬 더 낫다. 철원쪽 쉼터는 넓은 데크와 화장실, 정자는 물론 산에서 내려오는 얼음같은 지하수도 구비되어 있다.





# 길 건너에는 넓고 깨끗한 정자도 있다. 먼저 하산한 곰바우님께 들으니 산동무 둘은 아직 산중에 있다 한다. 아이구야! 그러면 그들은 옛 실운고개에서 이곳까지 다시 삼십여 분 걸어 내려와야 한다.





# 부랴부랴 차 시동 걸어 다시 실운고개로 올라갔다. 화악산 군용도로는 늙은 내차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파른 고갯길이다. 차 바닥에서 고무타는 냄새가 올라온다. 서둘러 실운고개로 올라가니 산 윗쪽에서 동무들이 내려온다.





# 그들은 우리가 나물 냄새 맡던 곳에서 한두어 봉우리 너머로 갔던 모양이다.




# 그들 태워 실운현으로 복귀했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실운현에서 다시 막걸리 두어 잔 돌렸다. 그들 손에는 귀한 병풍취가 들려있었다. 병풍취는 나물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는 이날 처음 보았다.




# 나물 캐는 주민들은 곰취 한 바구니 캐 가다가 병풍취를 만나면 곰취는 전부 버리고 병풍취를 담는다는 말도 있다. 오늘 나물 한 가지 또 배웠다. 하지만 다음에 산에서 만났을 때 기억한다는 보장은 없다.




실운현에서 작별 하는 것으로 화악에서의 봄날 나물 구경을 마무리했다. 청평 쯤에서 뒤풀이로 막걸리 한 잔 했으면 좋으련만 운전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고 낮에 산속에서 전작(前酌)이 좀 있었던 터라 다음을 기약했다. 이후 각자의 서식지로 돌아갔다.


우리의 이 봄날 나물 산행은 일 년에 딱 하루이다. 그것은 우리가 나물꾼이 아니라 산꾼인 까닭이다. 이제 내년 봄이 되어야 이 모임이 다시 이뤄질 것이다. 그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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