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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행]해협산/海峽山-귀여 귀여(歸歟 歸歟)! 본문
子在陳 曰 歸與歸與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자재진 왈 귀여귀여 오당지소자광간 비연성장 부지소이재지 ; 공자가 진나라에 머물 때 말씀하시기를 "돌아가야겠구나! 돌아가야겠구나! 우리 무리가 어린아이 같이 뜻은 크나 실천이 약하였구나. 찬란하게 문장은 이루었지만, 그것을 재단(裁斷)할 방법을 알지 못하였도다!") 이 글은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자는 자신의 도(道)를 천하에 실행하고자 '주유천하(周遊天下)' 하였다. 그러나 이때에 이르러 그의 뜻이 끝내 쓰여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고향인 노(魯)나라로 돌아가 후학을 성취시켜 도를 전하고자 하였다. '귀여(歸歟)'라고 할 때 '여(與)'는 어조사 '여(歟)'이다. 어조사는 뜻이 없이 감탄사처럼 다른 글자를 보조하는 한문의 토를 말한다. 즉 '귀여(歸與)'는 '귀여(歸歟)'이다. "돌아가자꾸나!" 혹은 "돌아가야겠구나!"의 뜻이다. 이를 '귀여탄(歸與歎)'이라 한다. 공자가 천하에 도를 행하고자 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향(歸鄕)을 결심하며 탄식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공자의 낙향을 '귀여행(歸與行)'이라고 한다. 훗날 동진(東晉)의 대시인 '도연명(陶淵明)'이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낙향하면서 읊은 '귀거래사(歸去來辭)'도 이와 같은 맥락의 글이다. 명문(名文)으로 알려진 귀거래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귀거래혜 전원장무호불귀 ; 돌아가리라, 전원이 황무지가 되었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이후 '귀여(歸歟)' 혹은 '귀거래(歸去來)'는 환로(宦路) 즉, 벼슬에서 벗어난 선비가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치거나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행위의 상징이 되었다. 한강(漢江)은 두 개의 물길이 만나 이뤄진 강이다. 여주 · 양평을 거쳐 뱀의 몸뚱이처럼 굽이쳐 휘감아(蛇行) 내린 남한강(南漢江)과 가평 · 남양주를 거쳐 곧게 흘러내린 북한강(北漢江)은 두물머리에서 비로소 온전한 한강이 된다. 두물머리에서 마침내 하나의 큰 강을 이룬 한수(漢水)가 다시 경안천(京安川)을 만나는 길목에 '귀여리(歸歟里)'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팔당호반의 맑은 물과 푸른 산 첩첩하여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이니 벼슬 그만둔 어느 선비가 낙향하기에 적합한 곳이겠다 싶었는데, 과연 그러하여서 조선 중종조(中宗朝)에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했던 '한승정(韓承貞)'이란 이가 낙향한 곳이다. 한승정은 본관이 청주(淸州)로 한성부 판관을 지낸 한사무(韓士武)의 아들이다. 중종 2년인 1507년 진사가 되고 1515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정언(正言), 전라도사(全羅都使), 장령(掌令) 등을 지냈다. 당시의 권신 김안로(金安老)와 동문이었으나 김안로가 세도를 부리자 절교하였고 지평(持平)으로 있을 때 김안로를 탄핵하여 미움을 받았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치다 대사간으로 특진된 뒤 예조참의(禮曹參議)를 지냈다. 청렴하여 죽은 뒤 집안에 남은 것이라고는 몇 권의 책뿐일 정도로 청빈(淸貧)한 선비였다고 기록에 전한다. 실록(實錄)을 찾아보니 70차례 이름이 등장하는데, 지평 시절 금혼(禁婚)의 령(令)을 어기고 현직에 있을 때 서둘러 아들의 혼인을 치른 문제로 체직(遞職)하였다는 기록 외에는 국사에 적극 관여한 내용과 대사간으로 올곧게 간언(諫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청주 한씨의 족보에 의하면 한승정은 '남석재'에 '귀여정(歸歟亭)'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남석재는 한강 남쪽 연안을 휘돌아가는 342번 지방도가 귀실과 요골에서 귀여리 본말로 넘어가는 길목의 고갯길이다. 지금은 팔당 물안개공원과 맞닿아 있다. 한승정의 낙향과 귀여정(歸歟亭)에 마을 이름의 유래를 가진 귀여리는 '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세거지(世居地)다. 이 동네는 앞으로는 한강의 큰 흐름과 강이 퇴적시킨 둔치의 농토를 가졌고 뒤로는 마을의 진산(鎭山)인 '해협산(海峽山)'과 '정암산(正岩山)'으로 병풍을 둘렀다. 물가의 좁은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라 부농(富農)이나 대농(大農)을 이루기는 힘들었어도 산자수명하여 대대손손 맑고 깊게는 살았을 고장이다. 해협산은 높이 529m의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남종면(南終面)과 퇴촌면(退村面)의 경계를 이루는 한편, 앵자지맥(鶯子支脈)의 마무리를 이루는 산이라 귀여리의 진산으로 손색이 없는 산이다. '해협(海峽)'이란 육지 사이에 위치한 폭이 좁고 긴 바다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 해협이 어찌하여 뭍에 있는 이 산의 이름이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전해지기를 원래 '바답산'이라 불렀고 조선지지자료에 '밧탑산' 혹은 한자로 '해탑산(海塔山)'이라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곳의 지형이 마치 바다의 해협처럼 남한강과 경안천을 동서로 끼고 있어 해협이라 불렀다고 한자 그대로를 해석하여 기록도 하고 있다. 흔히 지명을 한자 뜻 그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오류일 가능성이 많다. 우리 옛 지명은 지형이나 산세 등 자연의 형상이나 전설 등이 사람들 입에서 구전(口傳)되다가 변음되기도 하고, 나중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이두식(吏讀式)으로 음차(音借)하거나 뜻을 한자화(漢字化)하는 경향이 있다. 이곳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 구전되었다는 '바답'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흔하지 않은 단어라 광주의 옛 기록이나 관련 자료를 아무리 찾아도 그 답을 알 길이 없다. 다만 짐작하기를 '밭+앞'의 합성어가 아닐까 여길 따름이다. '밭 앞'이 소리 나는 대로 읽어져 '바답'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이 산속에서 옛날 화전민의 묵정밭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협산정에서 능선을 따라 정암산을 향하다 시각이 늦어 다람내골을 통해 귀여리로 탈출하였다. 그때 어두운 숲속에서 화전민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지금은 잡목들 우거져 밭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계단식으로 된 무수히 많은 밭의 흔적이 산속 곳곳에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된다. '밭 앞의 산'이라 바답산이 되었고 나중에 변음되어 밧탑산 혹은 한자로 해탑산이 된 것이다. 그것이 또 나중에 기록하면서 해협산으로 변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은 지명 연구에 전혀 지식이 없는 나의 짐작일 따름이다. 또 하나 짐작되는 유래는 '받달'의 변음이다. '받'은 '머리(頭)'를 의미하는 옛말이다. 머리로 박는 박치기는 원래 '받치기'에서 나온 말이다. '달'은 '산(山)'을 가리킨다. 결국 '받달'은 '머리산', 즉 '고을의 중심산'을 의미한다. 이 받달에서 '받'이 '발'로 변하고 나중에 다시 '팔'로 변하였다. 땅이름 연구가 '배우리 선생'의 주장에 의하면 수원 화성의 '팔달산(八達山)'은 '받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한편 '받달'의 '받'에서 'ㄷ'이 탈락하여 '바'가 되고, 산을 뜻하는 '달'이 '답'으로 변했을 수도 있다. '바답'의 탄생이다. 귀여리 마을의 중심산, 즉 진산(鎭山)이라는 의미의 '받달'이 '바답'으로 변하였다고 상정한 것이다. 그 바답이 '밧탑'으로 변음되고 한역하여 해탑(海塔)이 되었다가 완전히 다른 의미의 '해협(海峽)'으로 변한 것이다. 이것 역시 배우리 선생의 주장을 보고 내가 짐작한 것이다. 가을이 끝자락을 남기고 떠나가려는 계절이다. 늦가을과의 이별을 산정에서 맞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요즘 먼 곳 높은 산의 야영 산행에 나설 형편이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당일 산행지로 인근의 미답지가 필요하였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광주 남종면의 '해협산(海峽山)'이다. 두물머리의 물빛과 앵자지맥의 산빛을 보고 싶다 하고 찾은 해협산은 수풀 우거져 조망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쭝국발 미세먼지 가득한 날이라 대기마저 뿌옇게 흐려 더욱 조망은 나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빛 스며드는 숲속은 충분히 아름다웠고 오랜만의 산행이라 산과의 교감(交感)도 좋았다.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귀여 귀여(歸歟 歸歟)! 일시 : 2018년 11월 04일. 해의 날.
나는 요즘 조금 지나치다 싶게 많이 걸었다. 홀로 부산에서 생활하다 보니 저녁에 운동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잘 없어 매일 저녁 수영강변을 걷거나 달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 부쩍 탄력이 받기 시작한 해파랑길을 연속으로 걸어 누적 걸음 수가 아주 많다. 걷기운동 많이 하여 건강에 좋을 일이지만, "매사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너무 많이 걸었더니 오랜 지병인 장경인대염이 심해졌고 골반 통증까지 병증이다 싶게 나타났다. 반면 마눌은 홀로 집에 있으면서 운동과는 꽤 멀어진 생활을 계속하여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이런 우리 둘의 부조화가 먼 곳의 야영 산행에는 부적합하다는 아이러니한 조화를 이룬다. 때문에 이번 주는 먼 곳의 야영 산행보다는 가까운 곳의 미답(未踏) 산행지를 찾기로 했다. 이런 나의 레이다 망(網)에 '해협산'이 포착되었다. 해협산은 경기 광주의 남종면 한강 가에 있는 산이다. 퇴촌 일대의 강변을 걷거나 자동차로 달릴 때 멀리서 올려다보던 산이다. 이름 널리 알려진 산이 아니어서 그동안 지나치며 올려다만 보았지 그 산정에는 서보지 못하였다. 비록 해발고도 529 미터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앵자지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산이라 한 번쯤 올라볼 만한 가치는 있는 산이다. 그 해협을 찾아 길을 나섰다. 가을이 떠나가고 있는 즈음의 만남이다. 해협산/海峽山 경기도 광주시의 동북쪽 남종면 귀여리 · 수청리와 퇴촌면 도수리 · 영동리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529m). "남한강(南漢江)과 경안천(京安川)을 동서로 해협인 양 끼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팔당호(八堂湖) 안으로 내민 남종면의 반도형 지형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귀여리(歸歟里)의 진산(鎭山)이다. 북으로 정암산(403m)과 한강을 끼고, 남으로 관산(560m)과 양자산으로 이어진다. '바답산'이라고 부른다고도 전한다. 『조선지지자료』에 귀여리 밧탑산 · 해탑산(海塔山)으로 수록되어 있다.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해협산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가을이 끝나가는 시절이다. 그 가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죄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나왔다. 교외로 벗어나는 모든 고속도로는 차량으로 가득하다. 집에서 출발하기도 느긋하게 하였지만, 길에서 아주 오래 붙들려 있었다. 게다가 해협산 들머리도 엉뚱한 곳으로 가서 또 시간 낭비를 했다. 간밤에 졸린 상태로 내비를 찍어 두었는데, 해협산 등산로 입구를 찍었더니 귀여리가 아닌 수청리로 우리를 안내한 것이다. 지도를 확인하니 수청리에서 해협으로 올라가면 가깝기는 가깝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길은 아니어서 좁은 산길을 후진해서 겨우 빠져 나왔다. 342번 도로에 다시 올라 강변을 따라 크게 휘감아 도니 남석재를 넘게 되고 그 아래에 '팔당물안개공원'이 나온다. 가을빛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주차장은 만차 상태이다. 겨우 한 쪽에 주차하고 산행 짐을 챙겼다. # 주차장 뒤쪽으로 하남의 검단산과 한강 건너 예빈산, 예봉산이 보인다. # 가볍게 몸 풀고 귀여리로 들어섰다. 시각이 많이 늦었다. 출발할 때 이미 시각은 오후 1시 25분을 넘기고 있다. # 해협산까지는 7.14km로 되어 있다. 정암산 거쳐 가는 코스의 거리인 모양이다. 우리는 해협산을 먼저 들렀다가 좌측으로 크게 휘감아 정암산 거쳐 하산할 예정이다. 다만 출발 시각이 너무 늦어 정암산을 거치는 문제는 산속에서 결정할 생각이다. # 오룩스맵 작동시켜 길을 찾았다. 그런데 길가의 전원주택들 구경하다가 트랙을 놓쳤다. 우리 위치가 정상 트랙에서 왼쪽으로 벗어나 있다. 마을 길을 가로질러 올바른 길을 찾았다. # 마을 개들의 격렬한 환영을 받으며 정상 트랙으로 복귀했다. 우측에 금봉산이 오똑하다. # 마을 안으로 한참 들어가자 정암산 갈림길이 나온다. 계획한 대로 산행이 이뤄진다면 이곳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 비닐하우스 뒤로 정암산 들머리가 열려 있다. 중앙 멀리로 해협산 정상부가 보인다. # 이곳에는 가을빛이 아직 남아 있다. "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가을 동요 흥얼 거리며 마을 길을 따라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 마을 안 깊숙히 있는 귀여교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았다. # 이제 해협산은 3.85km로 거리를 줄였다. # 농로를 따라 잠시 오르자 해협산 들머리가 나온다. 이렇게 길게 걸어 들어올줄 알았으면 이곳까지 차를 몰고 왔어도 될 일이었다. 나중에 하산하여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 1km 정도 걸어 들어왔다. # 작은 계곡을 건너 들머리로 진입한다. # 이 산은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산이다. 잡목 많은 편이고 등로도 좁다. # 들머리에서 잠시 우측으로 산허리를 휘감던 등로는 등고선이 길어지는 끝자락에서 본격적으로 경사를 높이게 되어 있다. # 오랜만에 가파른 경사를 만나니 숨이 쉬 가파지는 모양이다. "천천히 잔걸음으로 경사의 가파르기에 맞는 리듬을 찾으시오!" # 잘 하고 있다 격려하고 다시 경사에 몸을 맡긴다. # 이 계절 숲바닥은 기름진 참나무류(類)의 낙엽으로 엄청나게 미끄럽다. 가파른 경사에서는 발이 산에 들러붙지 못하고 죽죽 밀린다. 그 미끌림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게 된다. 그리고 소리와 먼지의 공격도 감소해야 한다. 가을 볕에 바짝 마른 참나무 낙엽은 발밑에서 와삭와삭 부서지는 소리를 낸다. 하루종일 그 소리 들으며 걸었다. 와삭와삭! # 경사진 오르막에 누군가 돌탑을 쌓아두었다. #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르자 그곳에도 돌탑이 있다. # 정상 숲 너머로 봉우리가 우뚝하다. 해협산정일텐데 정상은 좀 더 뒤에 있지 싶다. # 이곳의 능선은 계단식으로 고도를 높이게 되어 있다. 그 계단 상단부는 잠시 편안한 평탄지이다. # 다시 계단식으로 밀어 올린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고사목이 드디어 넘어졌다. 그 방향이 등로 바로 위라 산객은 옆으로 돌아가야 한다. #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니 힘이 드는 모양이다. 관리가 필요하다. # 와삭와삭 낙엽 밟는 소리 워낙 커서 뭐라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 길게 밀어올려 204.1봉에 올라 섰다. 작은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전진한다. # 긴 오르막 끝에 다시 벤치가 있는 봉우리를 만났다. # 청포도 사탕 하나 입에 물었다. # 아직 갈 길이 멀다. 어서 어서 가 보세! # 계단식으로 이어진 잔봉들이 연달아 나타난다. 만만치 않은 산이다. # 해협의 이쪽 능선에는 세 군데의 돌탑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돌탑을 쌓은 모습이 거의 비슷하다. 누군가 한 사람의 작품인 듯하다. 누구의 손길인지 정보는 없다. # 지도에 기재되어 있는 371봉은 정상 끝부분에서 우측으로 우회하게 되어 있다. # 이제 정상부가 많이 가까워졌다. # 계단의 윗부분에는 평탄하여 낙엽이 더욱 많이 쌓여 있다. 깊은 곳은 발목 깊이를 넘는다. # 우리가 이동하는 내내 낙엽 밟는 소리 숲속에 가득하다. 와샥와샥, 와스스와스스, 샥샥~ 밟는 각도와 지형에 따라 여러 울림을 가졌다. # 금봉산과 국사봉 쪽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만났다. 도수3리에서 제법 긴 능선을 타고 와도 이곳으로 연결된다. # 정상까지는 이제 1km 남았다. 힘 내서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 경사는 점점 더 가팔라진다. 그 경사에 맞춰 로프를 설치해 두었다. 기름진 참나무 낙엽이 두터워 발이 죽죽 밀린다. # 한 차례 용을 쓰고 오르니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쉼터가 나온다. '소나무 쉼터'이다. 고도는 475m. # 비상하는 청룡이 용트림하듯 소나무 가지들이 구불구불 휘어져 있다. # 이제 500m 전이다. # 늦가을 햇볕이 숲속에 가득하다. 좋은 가을 숲이다. 그 숲냄새 만끽하며 정상으로 마지막 힘을 내서 오른다. # 정상 입구는 암릉이 대문처럼 열려 있다. 바위 구간만 만나면 쩔쩔 매는 마눌은 여지없이 어머어머 소리 연발한다. # 드디어 정상이다. 물안개공원에서 두 시간 반 쯤 걸렸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 정상석과 벤치 두어 개, 그리고 태양광 발전을 이용한 강우 관련 장치가 있다. 전체적으로 좁은 곳이라 야영할 곳은 없다. # 정암산을 거치는 하산길은 7.14km나 남아 있다. 이곳부터 정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앵자지맥의 마루금이다. 나중에 지맥 산행을 한다면 다시 걸어야 할 길인 것이다. 언제일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 해협산은 염치고개에서 오르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다음은 오전에 우리가 잘못 찾아간 수청리에서 오르는 길이고. # 남한강과 북한강, 그리고 두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등 강을 바라보는 조망과 그 인근의 검단산, 해명산, 운길산, 용문산 등의 산세 조망이 좋을 곳이다. 하지만 이곳 정상에는 수목이 높아 조망은 전혀 없다. 게다가 중국산 미세먼지가 대기를 채워 조망은 더욱 나쁘다. 아쉽다. # 햇살 좋은 벤치에 점심상을 펼쳤다. 어느새 그늘이 아니라 햇살을 찾는 계절이 되었다. # 마눌표 주먹밥과 사발면으로 마음에 점 하나 찍었다. 술안주는 닭가슴살 볶음이다. # 산정에서의 막걸리 한 잔은 언제나 옳다. # 점심 먹고 거풍(擧風)까지 즐겼다. 계절이 바뀌어 거풍도 오래 할 수가 없다. 이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정상에서 50분 정도 쉬었다. 해가 짧아진 계절이라 마음이 급하다. 자리 정리하고 정암산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 시작부터 가파른 내리막이다. # 경사에 낙엽까지 덮혀 아주 미끄럽다. 마눌의 몸이 한층 낮아지고 진행 속도는 뚝 떨어진다. # 숲 너머에 유명산, 중미산 등 한강 너머의 산들이 보이는데, 숲 우거지고 대기 나빠 마음껏 조망할 수 없다. # 스틱에 낙엽꼬치가 계속 꽂힌다. 무게 나가고 앞이 잘 안보여 계속 털어내야 한다. # 귀여리 쪽으로 능선 하나가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이정목이 서 있다. '등산로 아님'이라 적혀 있다. # 잠시 더 내려가면 능선 우측으로 우회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 우회로로 잠시 가면 다시 능선 마루금에 합치한다. 정상에 있는 안내판에는 다람내골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현장에서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오룩스맵에 있는 등로는 정암산을 넘는 길 하나만 표시된다. # 우리도 원래 계획은 정암산을 넘어 완전히 둥글게 한바퀴 휘감아 물안개공원으로 하산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고속도로에서 정체 때문에 너무 오래 붙들려 있었고, 수청리에서 다시 들머리를 찾아 헤매는 바람에 출발이 너무 늦었다. 이대로 정암산을 고집하다가는 어두운 숲속에서 헤맬 우려가 있는 것이다. 물론, 등불과 각종 장비는 충분히 챙겨 왔지만, 오랜만에 산행 따라온 마눌에게 너무 무리한 야간 산행을 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계속 귀여리 방향으로 탈출하는 갈림길을 찾고자 하였다. 길게 능선을 따라 내려가자 과연 잘록한 안부가 나오고 이정목이 서있다. 좌측은 다람내골 따라 귀여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은 오전에 우리가 길을 헤맨 수청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오룩스맵 확인하니 다람내골은 등로는 그려져 있지 않지만, 계곡이 그려져 있어 충분히 하산 가능한 코스다. # 이곳에서 긴급하게 길을 수정하여 귀여리로 탈출하기로 했다. 일단 목표는 어두워지기 전에 숲을 벗어나는 일이다. # 맞은편 산능선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두어 달 전 여름이면 아직 두 시간 이상 해가 남아 있을 시각인데, 벌써 계절이 이렇게 변했다. 다행인 것은 등로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 그런데 아래로 내려갈 수록 길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더욱이 낙엽까지 두텁게 깔려 있어 신경을 바짝 집중하지 않으면 길 잃기 딱 좋을 환경이다. # 해협산과 정암산에 이르는 이 능선의 좌우는 다람내골과 다락논골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다람쥐와 관련있는 듯하고 하나는 다락논과 관련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아마도 둘다 다락논 때문에 얻은 이름일 것이다. 다람내 역시 다락논 때문에 얻은 이름일 것이란 말이다. 하산하면서 보니 경사가 약해진 능선 사면에는 전부가 다락논 흔적이다. 예전에 화전민들이 개척한 농토일 것이다. 손바닥만한 논들이 계단식으로 골짜기 전체에 산재해 있다. 물론 지금은 잡목이 자라 농사의 기능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 다락논 때문에 골짜기는 다람내 혹은 다락논골로 불려지고 산은 바답산으로 부르다 밧탑산, 그리고 해협산으로 변음되었을 것이다. 짐작이기는 하지만... # 갈수록 길이 희미해져서 여러 번 멈추었다가 다시 길을 찾아야 했다. # 그러더니 계곡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길이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요근래 일이 년 사이에 이 길을 이용한 사람은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중간중간 멧돼지 목욕한 흔적 외에 인간의 발자취는 전혀 없다. 낙엽이 없었을 계절에는 희미하나마 길이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나마의 희미한 길조차 완전히 덮어버려 길은 사라졌다. 시각이 늦어 곧 어두워질 기세인데 길을 못 찾아 잠시 곤란하였다. # 오룩스맵을 진행 방향이 표시되게 조정한 후 계곡을 따라 길을 개척했다. 꽤 어러 번 길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누군가 붉은 포장용 줄로 방향 표시해 둔 것을 발견했다. 그 줄을 따르니 길이 다시 나타났다. 고마운 일이다. # 지도에 숯가마터로 표시된 곳은 모르고 지나쳤고 길이 완전해진 곳에서 밀양 김씨 묘역을 만났다. 다행이다. 이제 길 잃을 일은 없다. # 숲 너머로 정암산이 보인다. 저곳으로 갔다면 길은 찾기 쉬웠겠지만, 등불 밝혀야 했을 것이다. # 잠시 후 계곡을 건너 농장이 있는 곳으로 나왔다. 숲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마에 등불 달 각오를 했었는데 다행히도 어두워지기 전에 숲을 벗어났다. # 귀여천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데 농장들이 계속 이어지고 빈집들도 눈에 띈다. 오늘은 하루종일 산속에서 사람 구경을 못했다. 잘 알려진 산이 아닌 탓이다. 게다가 농장에도 주민들이 잘 안 보인다. 대신 인기척에 놀란 개들만이 발악하듯 짖어댄다. 해가 짧은 계절이다.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왔다. 우리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숲속에서 어둠을 맞을 뻔 했다. 둘이서 여러 번 이 감사한 사실을 얘기 나눴다. 예전 백두대간 종주 때 경험으로 우리 둘 다 길 없는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지 잘 아는 탓이다. # 어둡기 전에 숲을 벗어난 것은 감사한 일인데, 다람내골 날머리에서 주차장까지는 너무나 멀고 지루한 길이다. 내 지병인 장경인대와 골반 통증은 산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데, 이런 아스팔트 길에서는 늘 말썽을 일으킨다. 딱딱한 길의 충격이 그대로 몸에 전해져서 그런 모양이다. 중간중간 스트레칭하여 몸을 달래가며 길게 걸었다. 길게 걸어 물안개공원에 도착했다. 낮에 그렇게 많던 차량과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우리 차를 비롯한 서너 대의 차량만 넓은 주차장에 남아 있다. 몸에 묻은 먼지 털어내고 산행을 마무리했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오후 여섯 시 이십 분이다. 꼭 다섯 시간이 걸렸다. 당일 산행으로 좀 모자란다 싶은 코스고 시간이지만, 이런 계절에는 소소히 산냄새 맡는 여정으로는 적당하였다. 요근래 너무 많이 걸어 탈이 난 내 몸과 너무 적게 걸어 체력 약해진 마눌의 상태에 조화를 이룬 산행이기도 했다. 비록 소소한 산행이었지만, 산꾼이 산속에서 산의 냄새에 취해 있자니 제자리에 알맞게 서있다는 느낌도 좋았다.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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