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야영산행]서리산/霜山-오랜 동무들과의 야영! 본문
나는 길 위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행만리로(行萬里路)'하여 이 땅의 모든 산길과 들길, 그리고 물길을 온전히 내 두 발로 걸어 내리라 작정한 지 오래다. 십수 년 한 장 두 장 쌓여가는 이 일기장은 그 여러 길에서 겪은 이야기와 스친 생각들의 모음이다. 행만리로를 맨발로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하여 내 신발장에는 런닝화, 트레킹화, 경등산화, 중등산화 등 여러 종류의 신발이 꽤 많다. 그중에는 구입하여 두어 번밖에 안 신은 신발이 있는가 하면 하도 많이 신어 고색창연한 신발도 있다. 운동화야 신다 낡으면 버리고 새 신발로 바꿔 신게 되지만, 등산화의 경우는 조금 다른 패턴을 겪게 된다. 산행은 원래 운동 강도가 높은 행위이다. 우리 같은 종주 산꾼이 만나는 산길은 그 강도가 더 심하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의 산길을 걸어내자면 등산화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법이다. 발에 딱 맞고 적당한 무게와 착화감을 가진 등산화는 안전 산행의 필수이다. 요즘은 문명 발달하고 좋은 제품 넘쳐나는 세상이다. 각양각색의 브랜드에서 좋은 기능성의 신제품을 하루가 멀다하고 시장에 론칭한다. 그런 제품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구매 버튼을 누르게 되고 어느새 신발장에 떡하니 자리한 신제품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산행을 갈 때면 욕심 부려 구매한 새 신발보다는 오래되고 낡은 신발에 저절로 손이 가는 경우가 많다. 비싼 돈 들여 장만한 새 신발 대신 낡은 헌신발을 더 자주 신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낡고 퇴색하긴 했지만, 익숙한 편안함 탓일 것이다. 고강도의 산행을 하자면 작은 편안함의 차이가 크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내 발에 딱 맞아 불편함이 없어야 산길 걷기에 알맞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헌 신발에 손이 가는 까닭이다. 이처럼 내 발에 딱 맞는 신발은 대개 오래 신어 길들여진 신발이다. 그런 신발은 설혹 밑창이 떨어지거나 낡더라도 몇 차례나 수선하여 신게 된다. 이런 경향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산꾼이 그러할 것이다. 오래되고 익숙한 신발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새로운 만남이 주는 신선함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오래 묵어 된장 맛 나는 관계가 주는 편안함은 더욱 소중한 법이다. 세월은 원래 힘이 세다. 모난 부분은 깎아내고 거친 부분은 갈아낸다. 인간관계도 그러하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날카로운 데가 있기 마련이다. 젊은 날엔 그 날카로움이 개성이라 여기기도 하였다. 뾰족한 개성으로 남에게 상처 주기도 하고 상처 입기도 하였다. 해답은 세월이 가져다주었다. 시간은 사람 사이의 모난 부분을 모두 다듬어준다. 그리하여 둥글고 원만해져서 서로 부딪히는 일 없이 둥글둥글 잘 지내게 만들어준다. 경향각지(京鄕各地)의 서식지에 웅거한 채 홀로 산길을 누비던 산꾼들이 디지털 공간에 모여 서로 정보도 주고받고 소식도 전하는 느슨한 모임을 만든 게 십오륙 년 전이다. 그때는 다들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에 미쳐 있던 때라 열정 넘치고 활동력도 최고였던 시절이다. 따라서 카페 사랑방은 늘 활력이 넘치고 정보도 봇물 같았다. 그러나 세월 흐르면서 1대간 9정맥 졸업한 산꾼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나이 들어 몸과 마음도 무거워지고, 팍팍한 시절에 돈 벌어 가정 건사하기 쉽지 않게 되면서 산에 대한 열정도 무뎌지고 여건도 만만치 않아 사랑방엔 인기척 드물고 찬바람 도는 날이 많아지게 되었다. 세월 흘러 열정 줄어들고 활동력 적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순리라는 것은 낮은 곳을 향하는 물의 흐름과 같은 것이다. 흐르는 물길을 어찌 인위적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다만 한가지 위안은 있다. 열정 줄어들어 사랑방에 온기 사라지고 만남도 소원해졌지만, 오랜 세월이 주는 묵은 정은 더 깊어졌다는 점이다. 십수 년 동안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다 보니 한결같을 수 있고 이해타산 없으니 과한 욕심 낼 일 없었던 점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세월의 무게가 가져다준 곰삭은 정의 힘이 컸다. 십수 년 서로 지켜보다 보니 둥글둥글 모날 일 없이 서로 적응하고 오래되고 낡은 신발처럼 서로 편안하게 되어 상처 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참으로 세월은 힘이 세다. 이십 대 청춘이던 청년이 어느새 사십 대가 되었다 하고 아빠 손 잡고 산길 걷던 꼬맹이들은 군인을 마치기도 하고 대학생이 되었다고도 한다. 장년(壯年)의 활력 넘치던 이들 머리에 흰 서리 가득하고 현역에서 은퇴하여 손주 뒷바라지하는 이들도 늘어간다. 조여청사모성설(朝如靑絲暮成雪)이라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서럽기는 하나 그 세월만큼 오래 묵어 곰삭은 맛 나는 사람 사이는 편안하고 맛깔난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만남은 세월의 힘에 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길이다. 그런 순응의 만남이 있었다. 오래 묵어 구수하고 편안한 산 동무 끼리 하룻밤 잣숲에서 야영하자는 사발통문이 바람결에 들려온 것이다. 오랜만의 야영 모임이라 이곳저곳 손드는 이 여럿 되어 꽤 성대한 모임이 되었다. 장소는 가평의 서리산이었다. 편안하고 구수한 만남이었다. 오랜 동무들과의 야영! 일시 : 2019년 2월 23, 24일. 흙과 해의 날.
갑작스런 다리 부상으로 야영 못 들어간 지 꽤 오래되었다. 매해 이맘때면 어느 잣숲에 들어가거나 산정에 올라 콧구멍에 찬바람 한가득 마시고는 했는데, 올해는 눈 구경도 제대로 못 하고 보내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홀로 산꾼 사랑방에 근교 야영 이야기가 나오더니 나에게 야영지 알아봐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꽤 여러 해 동안 이곳저곳 싸돌아다녔더니 야영지 정보가 나에게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야영지는 서리산으로 결정되고 제법 여러 명의 동무들이 참여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애초에 야영지만 알아봐 주기로 했던 나까지 엉겁결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잘 되었다. 오래 야영 갈증이 있던 참이다. 그리고 한동안 격조했던 동무들과 막걸리 한 잔 나눌 기회도 참 의미 있는 일이기는 하다. 서리산/霜山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가평군 상면에 걸쳐 있으며 높이는 832m이다. 서리산은 북서쪽이 급경사로 이루어져 항상 응달이 져 서리가 내려도 쉽게 녹지 않아 늘 서리가 있는 것 같아 보여 서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상산(霜山)이라고도 한다. 서리산은 축령산 북서쪽으로 절고개를 사이에 두고 3km 정도 거리에 있으며 이 두 산이 축령산 자연휴양림을 분지처럼 휘감고 있다. 축령산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리산이 정상 300여미터 아래 철쭉동산의 철쭉지대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철쭉철에 찾기 시작하였다. 수령 20여년이 넘는 키가 큰 철쭉은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 철쭉이다. 철쭉은 철쭉동산 언덕에 면적은 크지 않지만 서울에서 별로 멀지 않고 교통이 편해 수도권에서 멀리가지 않고도 철쭉을 즐길 수 있는 철쭉산행지 이다. 산행은 교통이 비교적 편리한 축령산자연휴양림-서리산-축령산-축령산자연휴양림 원점회귀산행을 하는게 일반적이다. 서리산만 산행은 3시간, 서리산, 축령산 연계산행은 5-6시간이 소요된다. 초보자나 체력이 약한 사람도 경관을 보면 즐길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에는 비금리에서 동북쪽 계곡을 통해 주능선 안부로 올랐다가 정상을 경유 동능을 따라 행현리로 하산하는 코스가 전망이 뛰어나다. 정상은 나무 하나 없이 시야가 탁 트이며 축령산이 가깝게 보인다.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축령산으로 오를 수 있는데 절고개 부근은 가을이면 억새가 가득하여 볼만하다.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서리산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동무들에게 우리 동네에 있는 수리산 잣숲을 추천했었다. 수리산 임도 B코스 중간에 아담한 잣숲이 있는 것을 산악자전거 타면서 오래 전에 발견했던 것이다. 한적한 오지의 잣숲이 아니라 도시 외곽의 산에 있는 것이라 주말에는 임도 걷는 이 많아 야영에는 적당치 않으나 동절기에 인적 끊어지면 살짝 쉬었다 오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 다리 부상오면서 자전거 타지 못한 지 오래라 잣숲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동무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자면 답사가 필요했다. 운동삼아 수리산 임도를 홀로 찾아갔다. 텐트 서너 동은 칠 수 있는 공간이 여전히 있었다. # 건너편 산기슭의 잣숲은 상황이 더 좋았다. 평평한 싸이트가 두어 곳 숨어 있다. 양쪽으로 나눠 집을 지으면 너댓 동은 무난해 보였다. 다만 이곳이 산책 코스로 꽤 유명하여 동절기라고 해도 아침 일찍 자리 정리해야 하는 아쉬움은 있는 곳이다. # 내가 이 동네에 꽤 오랜만에 오기는 한 모양이다. 싸이트 답사 마치고 내려오니 예전에 없던 시설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도립공원 관리소가 자리하고 있다. 수리산이 도립공원이 된 것은 꽤 오래 전 이야기인데 저 관리사무소는 근래에 세워진 듯하다. 잣숲은 이곳에서 꺾여 산길로 올라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라 저들과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긴 해도 영 찝찝하다. 오랜만의 잣숲야영인데 불안한 마음으로 밤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동무들에게 수리산 야영불가 소식을 전하였다. # 긴급 대안으로 서리산이 선택되었다. 서리산은 일등급 야영지였던 곳이다. 계단식으로 잘 조성된 잣숲은 오랜 세월 백패커들의 성지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떼지어 몰려다니며 개판을 만들어 버리는 한국인의 무근본, 무배려, 무공공성 탓에 잣숲이 엉망이 되어 버렸고 급기야 주인이 출입통제를 선언하게 된 곳이다. 다행인 것은 주인이 주변 정리를 한 후 입장료를 받고 다시 잣숲을 개방한 것이다. 요금을 받으니 어중이 떠중이가 찾지 않게 되고 청소 및 관리를 하니 환경이 쾌적해졌다. 좋은 방법이다. 전국 곳곳에 문제가 되고 있는 야영지들도 이런 방식이 대안이 되리라 싶다. 주말의 가평은 멀다. 막히는 도로를 돌고 돌아 서리산에 도착하니 다른 동무들도 막 도착하고 있다. 간만의 만남이라 인사가 길고 요란하다. 이윽고 짐 챙겨 잣숲으로 올라갔다. 제일 먼저 본부 동을 세우고 각자의 집도 주변에 지었다. # 내 빨갱이 텐트는 참으로 오랜만에 제 역할을 한다. # 어둠 깃들기 시작하는 잣숲이 아주 아늑하다. 저 아래쪽에는 우리 보다 먼저 들어온 한 팀이 진작에 설영 마치고 저녁 준비가 한창이다. 여성 세 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 서리산 잣숲의 파노라마 샷이다. 이곳은 야영 환경이 최상인 곳이다. 잘 정비된 싸이트, 깨끗한 계곡, 그리고 야영 후 뒷날 가벼운 차림으로 다녀올 수 있는 서리산 정상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일급 야영지다. # 여성팀의 야영 싸이트 모습. # 이윽고 문경의 달총각이 도착했다. 참으로 먼 길을 달려 왔다. # 달총각과는 인연이 참 오래되었다. 강산이 거진 두 번 가까이 변할 세월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이십 대 풋내나던 청년이 어느새 삼십 대를 넘기고 장년에 접어들고 있다. # 성원이 되었으므로 만찬을 시작했다. 차가운 회로부터 출발한다. # 많은 종류의 먹거리와 술이 쏟아져 나온다. 오래된 동무들이라 그만큼 나눌 이야기도 많다. 술잔 오가며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이 줄줄이 나온다. 산 이야기, 해외 트레킹 이야기, 세상이야기 등등... 우리 동무들 인연이 참 오래된 일이라 청년은 장년이 되고 장년은 어느새 머리에 흰눈이 가득하다. 꼬맹이였던 아이들은 자라 군인이 되기도 하고 졸업하여 사회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무심한 세월 참 빠르기도 하다. # 달총각 사진을 빌려왔다. # 이 사진도 달총각 사진이다. 술이 힘겨울 무렵 따뜻한 커피 한 잔씩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 긴 밤이었다. 나도 꽤 많이 마셨다. 제법 취하여 텐트로 돌아왔다. 탕파 물 덥혀 품고 잤다. 아늑하게 잘 잤다. 텐트 안이 결로 하나 없이 뽀송뽀송하다. 쾌적한 밤이었다는 얘기다. # 마음껏 게으름 피우고 늦잠 잤다. 잣숲을 찾아온 햇살이 텐트를 두드려 어쩔수 없이 털고 일어났다. # 텐트 밖으로 나와 기지개 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쭉쭉 뻗은 잣나무 위로 하늘이 푸르다. # 하나둘 텐트 지퍼 열고 쉘터로 집합했다. 숙취에 쓰린 속을 따뜻한 국물로 달래줘야 한다. # 아침 끓여 먹고 느긋하게 잣숲의 아침을 즐겼다. 빨간 내 텐트를 찾아온 햇살이 참 좋다. # 그 햇살과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잣숲을 한바퀴 돌았다. 참으로 좋은 곳이다. #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기는 하지만, 그 단점 때문에 얻는 장점이 훨씬 더 많은 곳이다. # 짐 정리할 무렵 대명님이 찾아왔다. 자기 서식지 인근에 모인 동무들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저이와는 간만의 만남이다. 동계 야영짐으로 한껏 키가 높아진 내 그리즐리가 위풍당당하다. # 서리산 정상을 다녀오고 싶었는데 동조하는 이가 없다. 간밤의 야연(夜宴)이 자못 은성하였던 탓이다. 좀 아쉽기는 해도 지금 내 부상 정도를 따지면 오히려 잘 되었다 싶었다. 그렇게 모두 짐을 정리했다. # 찍는 이와 찍히는 이. # 단체 사진 한 방 남겼다. 인원은 적어도 제법 전국구 모임이다. 서울, 수원, 안성, 남양주, 익산, 문경. # 주변 정리하고 잣숲을 떠났다. # 달총각 사진에서 내 뒷모습 사진 한 장 더 빌렸다. 이윽고 남양주로 이동해서 뒷풀이 하고 각자의 서식지로 돌아갔다. # 서리산 잣숲. 좋은 곳이다. 이번처럼 갑자기 야영지 결정해야 할 경우나 산행보다는 모임에 더 의미를 둘 때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야영지이다. 마치 아껴둔 곶감 빼 먹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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