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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행]서봉산/棲鳳山 본문

산이야기/일반 산행

[일반산행]서봉산/棲鳳山

강/사/랑 2022. 2. 5. 21:52
[일반산행]서봉산/棲鳳山

 
예로부터 봉황(鳳凰)은 상서롭고 귀한 상상 속의 동물이었다. 상상 속의 동물이라 그 모습도 예사롭지 않았다.

앞모습은 기러기를 닮았고 뒷모습은 기린과 같았다. 목은 뱀이요 꼬리는 물고기 형상을 하였다.  용의 비늘과 제비의 턱, 그리고 거북이의 등을 닮았다 하니 과히 현실을 초월한  '새 중의 왕'이라 할만하였다.
 
게다가 오동나무에만 깃들고 대나무 열매만 먹고살아 고귀함의 표상이었고 무리 지어 머물지 않고 난잡하게 날지 않아 제왕(帝王)의 상징이자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의미였다.
 
봉황이 나타나면 군자가 나오거나 성인이 나온다 하여 풍수지리에서도 봉황은 길지(吉地)의 상징이었다.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 '봉황귀소형(鳳凰歸巢形)' 등의 명당이 봉황과 관련된 길지로 널리 알려진 지형이다.
 
오늘날 봉황풍수는 지명(地名)에 반영되어 그 면면을 유지하고 있는데, 특히나 산 이름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그 예는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해 있다. 봉황산(鳳凰山), 비봉산(飛鳳山), 봉명산(鳳鳴山), 봉두산(鳳頭山), 봉미산(鳳尾山)...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화성시는 옛 수원부에 속한 고을이다. 수원, 군포, 안양으로 휘감아 흐르는  한남정맥(漢南正脈)의 산맥이  수리산(修理山)에서 작은 산줄기 하나를 길게 남으로 뻗어 내린 지맥(枝脈)을 뼈대로 하고, 정맥에서 발원한 여러 물길로 혈맥을 이루고 있다.
 
그 지맥이 '서봉지맥(棲鳳枝脈)'이다. 이 지맥은 한남정맥 수리산을 출발해 구봉산, 칠보산, 서봉산, 덕지산을 거쳐 남진하다가 안성천에 잠기며 그 맥을 다한다.

원래 산길은 물길을 동행한다. 그래서 이 지맥 역시 황구지천, 진위천, 안성천의 흐름과 나란히 남하하다가 아산만 입구에서 합일(合一)한다.
 
이 산길과 물길이 동행하는 중간에 산 하나 우뚝하여 '서봉산(棲鳳山)'이라 불리고 이 지맥의 대표산이라 이름을 '서봉지맥'이라 하였다. 따라서 서봉산은 서봉지맥의 주산이자 화성의 진산으로 명예로운 이름을 얻었다.
 
'서봉산(棲鳳山)'이라는 이름은 이 산이 '봉황이 둥지로 날아드는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의 명당'이라 봉황이 깃든 곳이라 알려져 그리 되었다 한다. 인근에 봉황이 춤을 추었다는 '무봉산(舞鳳山)'이 있고, 이 지맥의 원산맥인 한남정맥의 주산인 수원 광교산(光敎山)의 또 다른 이름이 '서봉산((棲鳳山)'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아 허튼소리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250m의 낮은 산이라 널리 알려진 산은 아니지만, 수원부의 옛지도에 빠짐없이 나타나고 지리지 등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적으로 중요도가 높았던 곳이다.
 
"棲鳳山 在府南三十五里 南谷面 亦陵園所火巢內" 화성의 옛기록인 '화성지(華城志)'에는 서봉산을 "부의 남쪽 35리 남곡면에 있다. 또한 건릉과 현륭원의 화소 내에 있다."라고 적고 있다. '화소(火巢)'란 화재가 났을 때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목을 제거하거나 불에 강한 수종으로 완충대를 만든 일종의 방화선(防火線)을 말한다. 
 
낮은 산이지만 역사 깊고 의미 깊은 산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 이 산을 오르지 못했다. 우리 동네 근처에 있어 수십 년 오가며 늘 눈으로 보는 산이기는 하여도 여태 오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산이 높고 깊은 명산으로 알려진 곳이 아닌데다 먼 곳의 명산들 찾는데 몰두하였던 탓이다. 다만 이 산이 서봉지맥의 주산이라 언젠가 지맥을 걸을 때 당연히 만나게 되리라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만남이 의외로 엉뚱하고 뜻밖에 이뤄지게 되었다. 2022년 2월 첫 주말의 일이다.
 

뜻밖의 산행

일시 : 2022년 2월 5일. 흙의 날
 
정신없이 보낸 1월을 보내고 맞이한 첫 주말이다. 바다 보고싶다는 마눌의 얘기에 자동차 몰고 화성 매향리 바다로 나갔다. 매향리 긴 방조제를 달려 궁평항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 세우고 바닷가 좀 걷자 하고 밖으로 나갔다. 한 10여 분 걸었나? 2월의 겨울바다는 살을 에이는 추위와 강풍으로 시베리아를 방불케 하고 있다. 
 
도저히 더 이상 걸을 수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덜덜덜 떨며 차로 복귀했다. 얼른 시동 걸고 히터 올렸다. 산책하려다 얼어 죽을 판이었다. 차 안에 온기가 돌았지만 한참이나 멍한 상태였다.
 
이윽고 정신 차리고 나니 한 시간 넘게 달려온 보람 없이 아무 할 일이 없게 되었다. 플랜B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찬바람 피하고 가벼운 산책도 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다. 바다에 찬바람 이렇게 강하니 산으로 가야 했다. 
 
지도 검색하니 가까운 거리에 서봉산자연휴양림이 검색된다. 서봉산에 휴양림이 있었나? 그 곁을 오래 여러 번 지나다녔지만 금시초문인데 지도에 나와있으니 한번 가보기로 했다. 산행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지만 휴양림 산책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목적지를 서봉산 자연휴양림으로 잡았다.

서봉산/棲鳳山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문학리에 위치한 산이다(고도:250m). 경부고속철도 서봉터널이 이곳에 있고 산림욕장도 조성되어 있다. 서봉산은 『여지대전도』부터 각종 고지도에 거의 빠짐없이 표시될 정도로 옛 수원부에서는 중요하게 여겼던 산이다. 『화성지』에 "부(府)의 남쪽 35리 남곡면(南谷面)에 있으며 능원의 화소 내에 포함된다."는 기록이 있다. 즉 현륭원(지금의 융건릉)을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그린 벨트에 해당하는 능역(陵域)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능역에 포함되면 개간, 벌채, 가축 사육 등이 금지된다. 이 때문에 서봉산을 '화소산(火消山)'이라고도 부른다. 산 이름은 멀리서 보면 봉화을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는 설과 예전에 봉황이 깃들어 살았다는 설도 함께 전해진다.

 

# 서봉산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현지 지형도

 

# 조선후기에 제작된 고지도 '광여도(廣輿圖) 수원부(水原府)'에 건달산과 함께 서봉산이 표기되어 있다. 서봉산은 한남정맥의 지맥인 서봉지맥의 주산으로 예부터 이름이 알려졌던 산이다. 

 

# 서봉산 자연휴양림을 못찾아 한참 방황했다. 네비양은 우리를 엉뚱한 산자락으로 안내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개인 소유지였다. 차를 돌려 내려오다 주위 둘러보니 작은 골목 입구에 서봉산이라 적혀 있다.

 
 

# 한쪽에 주차하고 그 골목으로 들어갔다. 서봉산 입구가 맞았다. 그런데 자연휴양림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산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 장승들이 나래비를 서있다. 장승 하나가 살벌하고 상스런 팻말을 달고 있다. 입으로 짓는 죄업이 무겁고 중하여 늘 조심하기는 해야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말하면 그 또한 입으로 죄를 짓는 일이다.

 
 

# 서봉산 입구는 여러 고물을 이용해 장식되어 있다. 고급스러운 맛은 없고 정신 사납다. 초입의 살벌한 문구와는 달리 이곳 문패는 긍정적 문구로 되어 있다. "다 잘될 거야" 

 
 
# 입구를 지나면 곧 작은 오르막이 나온다. 등로는 야자매트를 깔아 두어 미끄럽지 않고 좋다.

 
 
# 아마도 이 인근이 자연휴양림인 듯한데 어디에도 표지가 없다. 일단 좀 더 올라보기로 했다.

 
 

# 운동시설과 정자가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온다. 이 일대가 자연휴양림인가 보다. 특별한 산책 코스 보이지 않아 위로 계속 올라갔다. 위로 갈수록 찬바람 강하게 분다. 겨울바람 피해서 바다를 떠나 숲으로 왔는데 숲에서도 찬바람은 피할 길 없다. 게다가 기온까지 아주 낮다. 추운 날이다.

 
 
# 두번째 운동시설 공터를 만났다. 춥고 찬바람 강한데 운동 나온 동네 사람들이 많다.

 
 

# 그만 올라가고 주변 산책이나 하자는 마눌을 달래서 정상으로 향했다. 이왕 찬바람 맞은 김에 정상 구경이나 하자 싶었다. 올해 첫 산행이니 정상 구경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오늘 우리는 산행 준비 없이 그냥 나들이 차림이라 찬바람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 특히 추위에 약한 마눌은 힘들어했다. 목도리 풀어 머리 감싸게 하고 위로 올랐다.

 
 

# 지도에 기록되어 있는 그늘막을 만났다. 좁고 의자도 없어 활용도 낮아 보였다. 이곳부터 능선 오르막이 시작된다. 능선을 타고 넘어가는 찬바람이 아주 강하다. 

 
 

# 그만 돌아가자는 마눌 달래서 정상으로 향했다. 긴 오르막이 앞을 가로막는다. 찬바람 아주 강하다. 노출된 얼굴과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뜻밖의 산행이라 어쩔 도리 없다.

 
 
# 오르막 하나를 오르면 숲 너머로 정상부가 건너다 보인다.

 
 
# 힘내시오! 이제 마지막 오름이오! 원래 손발 차가운 사람이라 이쯤에서 많이 힘들어했다.

 
 
# 정상은 좌측으로 휘감아 오르라 한다.

 
 
# 공단이 있는 문학리로 연결된 능선을 만난다.

 
 
# 화성 발안 쪽 조망이 열렸다.

 
 
# 바위 산재한 정상은 팔각정으로 되어 있다.

 
 
# 팔각정 뒤에 정상석이 있다. 태극기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 서봉산. 해발 250m의 아담한 산이다. 정상석에는 249m라 적혀 있다.

 
 
# 정상석 뒤는 툭 트인 조망이 허락된다. 덕우리, 기천리 방향이다.

 
 

# 전방의 저수지는 '덕우지'다. '발안 저수지'라고도 한다. 나는 원래 낚시꾼 출신이다. 저곳 발안지는 내 젊은 시절 단골 낚시터였다. 저곳은 떡붕어 천국이었다. 내가 한참 낚시 다닐 때는 화성 연쇄살인범이 활발히 움직일 때다. 낚시터 오고 가며 혹은 낚시할 때 하도 검문검색을 많이 당해 항상 주민등록증을 앞가슴에 매달고 다녔다.
 
지금이야 해병대 사령부도 들어오고 주택, 공장, 아파트 등이 많이 있지만 예전에는 인적 드물고 한적한 시골 동네였다. 마눌도 여러 차례 동행해서 낚시를 하던 곳이고 작은 낚싯대로 "어머 어머"하며 붕어 몇 마리 낚아내곤 했었다. 옛날 얘기다.
 
저수지 뒤쪽 산은 256.2봉이고 그 뒷산은 백패킹족들에게 잘 알려진 건달산(建達山)이다. 정상에 야영하기 좋은 데크가 설치되어 있는 산이다. 건달산에서 홀로 야영한 사람들에게는 가끔 귀신도 방문하는 모양이다. 잠자다가 헛것을 봤다는 얘기가 간혹 들린다. 나중에 건달 되고 나서 한번 확인해 볼 참이다.

 
 
# 건달산 뒤쪽 멀리 광교산, 청계산, 수리산 등 우리 동네의 산들이 건너다 보인다.

 
 

# 자연휴양림에서 가벼운 산책하는 줄 알고 따라왔다가 뜻밖의 산행을 하게 되어 꽤 고생하였다. 준비 없는 산행이라 목도리 둘러 "굳세어라 금순이" 모드로 산길을 걸었다. 그래도 올해 첫 산행이니 충분히 의미 있는 일 아니겠소? 기념사진이나 한 장 남기시오!

 
 

# 서봉산 정상에는 '쉰길 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군(群)이 있다. 그 쉰길 바위에 얽힌 전설이 적혀 있다. 역시나 이 땅 곳곳에 서 흔히 볼 수 있는 승려와 젊은 여자, 그리고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주체하지 못한 욕망으로 자신을 망친 이들이다. 욕망이라는 것이 워낙 원초적이어서 그런가?

 
 

# 통영 욕지도 옥녀봉 전설은 딸에게 음욕을 품은 아비가 산정에서 개 짖는 소리를 내서 절망한 딸이 자진하여 바위가 되었는데, 이곳 쉰길 바위 전설은 현대적이어서 턱걸이를 99개나 했다고 적혀 있다. 전설 속 승려가 몸짱이었던 모양이다. 턱걸이 99개는 거의 초인적 실력이다.

 
 
# 정자에 올라 보았다.

 
 
# 정상 입구에 잘 단정된 묘가 한 기 있다. 경치 하나는 기가 막히는 곳에 자리 잡으셨다.

 
 
# 삼각점은 정상부 좌측 봉우리에 박혀 있다.

 
 

# 이곳 서봉산은 서봉 지맥이 지나는 곳이고 이 산의 이름이 서봉 지맥의 근원이 되었다. 지맥 산행하는 이들의 표지기가 지맥 방향으로 매달려 있다. 나도 우리 동네 근처인 이 지맥 정도는 걸어볼 작정이다. 나중을 기약한다.

 
 

# 이십여 년 전 홀대모에서 같이 활동하던 이의 표지기가 매달려 있다. 저이는 여전히 활발히 산길을 걷고 있는 모양이다. 엽기적인 저 닉네임도 여전하다. 청년 시절의 모습 이후 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저이도 나이가 꽤 되었겠다. 

 
 

# 이후 올라왔던 길 그대로 돌아 내려 하산하였다. 지도에 자연 휴양림이라 표시되어 있어 산책하러 왔다가 뜻밖의 산행을 하게 되었다. 준비 없는 산행이고 춥고 찬바람 아주 강하게 부는 날이라 마눌의 고생이 많았다.

 
 
# 하산 후 우리 동네의 유명한 식당을 찾았다. 서너 시간 추위에 꽁꽁 얼은 후라 뜨끈한 국물이 필요했다. 막걸리 한 잔 곁들이니 만사 근심 걱정이 없다. "좋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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