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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산행]건달산/乾達山-건달이 건달산에서 하룻밤 유하다 본문

산이야기/일반 산행

[야영산행]건달산/乾達山-건달이 건달산에서 하룻밤 유하다

강/사/랑 2023. 4. 2. 19:13
[야영산행]건달산/乾達山

건달 (乾達)  
[명사]
1.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짓. 또는 그런 사람.
2.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
3.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
[유의어] 난봉꾼, 낭인, 놈팡이

 

국어사전에서는 '건달'을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달리 '백수건달(白手乾達)'이라고도 부른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 신세로 집에서 빈둥대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건달이라는 말은 인도 신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불교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중(八部衆)'이란 호법신이 있다. 악마나 귀신에 해당하나 부처님께 교화된 뒤 불법을 수호하는 선신(善神)이 되어 부처님의 설법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은 여덟 명의 신이다.

 

그중 제석천의 음악을 담당하는 신이 '간다르바'이다. 천상의 신성한 물 '소마(Soma)'를 지키는 신으로 소마의 향만을 먹었지 술과 고기를 일절 먹지 않았다. 항상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에 나타나 정법을 찬탄하고 불법을 수호했다. 이 간다르바를 중국에서 한역(漢譯)하여 '건달바(乾闥婆)'라 불렀다.

 

그러면 건달바가 왜 건달이 되었을까? 건달바는 향을 먹고사는 신으로 허공을 날아다니며 노래만 즐겼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간다르바라고도 불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가는 생산에 참여하지 않고 노는 사람이라는 평판이 있었던 모양이다. 불교문화권에서도 그러하여서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을 건달바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전해져 '건달(乾達)'이라는 용어가 탄생하였다.

 

하늘의 뜻을 통달하였다고 해석되니 한자말의 뜻을 참 좋다. 그래서 건달들은 깡패나 놈팡이 같은 말은 싫어하고 건달 혹은 협객(俠客)이라 불리길 좋아한다. 

 

영화 넘버 쓰리에서 송강호가 분한 불사파 두목 조필은 똘마니들에게 늘 어쭙잖은 훈화를 남발했다. 삼류 건달인 불사파는 자주 생활고에 시달렸다. 부하 하나가 노가다라도 뛰겠다고 하자 조필의 훈화가 다시 시작됐다.

 

“건달을 불한당이라고도 한다. 불한당. ‘아닐 불’ ‘땀 한’ 땀을 안 흘린다는 뜻이야.” 이윽고 헝그리 정신을 설파한다. 그리고는 "내 말에 토토토토토다는 새끼는 전부 배반형이야 배반형. 배신! 배반형!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앞으로 직사 시켜 버리겠어. 직사!"의 명대사가 나온다.

 

'불한당(不汗黨)'의 등장이다. 불한당은 '부랑당'이다. 무리 지어 다니며 강도 짓이나 남의 재물을 빼앗고 행패를 부리는 집단을 말한다. 

 

건달이나 불한당이나 깡패나 양아치나 그 명칭이 무어 중요하겠는가? 오늘날은 조폭이고 깡패집단이고 정치 건달이고 정당이고를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끼리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며 자식들 가짜 스펙 위조하고 국민 세금 빼먹고 내 편이면 무슨 죄를 짓든 방탄하는 자들이 국가 권력을 희롱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경기도 화성에는 '건달산(乾達山)'이라는 희한한 이름의 산이 있다. 발안천의 발원이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서부터 명칭이 등장하여 이후 각종 고지도에 빠짐없이 기록되고 있다.

 

수원부 읍지에 “예전에 기우제를 지냈고 1710년(숙종 36)에 뇌성과 지진으로 큰 바위가 붕괴되었다(在府西十五里 加叱荨面 自古祈雨有靈 康熙四十九年庚寅夏 雷震大岩崩落 自後無驗仍廢).”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화성지'에는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봉수(烽燧)가 있었던 것(在府西三十五里 葛潭面 祈雨祭設行處 有烽燧今廢 有古蹟)"으로 기록하고 있다.

 

두 가지 기록 모두에 봉수가 있었다 적고 있다. 봉수는 원래 막힘 없이 우뚝한 산에 조성하여 지역 간 소통을 목적으로 설치한다. 그리고 기우제를 지냈다는 것은 하늘과 연결되는 명산으로 대접받았다는 뜻이다. 비록 높이 328m로 그다지 높지 않으나 역사 깊고 지역에서 꽤 의미 있는 산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건달이라는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산에 돌이 많고 나무가 적어 산다운 맛이 없다 하여 ‘건달’이라 불렀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산의 형태가 멀리서 보면 잘 생긴 모습이나 가깝게 보면 난봉 부리는 남정네 같다 하여 ‘건달’이라 불렀다는 설이다. 

 

난봉 부리는 남정네 같은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떤 설이든 그다지 좋은 의미의 유래는 아니다. 오래전에 화성 일대 낚시터를 모두 섭렵하였는데 이 산 근처에 있는 발안지와 기천지에서 늘 올려다보던 산이다.

 

그때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바라보던 산인데 산꾼으로 변신하여 이곳저곳 명산대첩을 두루 다니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곳이다. 게다가 몇 해 전 이 산 정상에 데크가 설치되면서 큰 힘 들이지 않고 가볍게 올라 멋진 조망을 감상할 수 있는 백패킹 명소로 이름나면서 더욱 그러했다.

 

나는 지금 백수건달이다. 삼십 수년 열심히 다니던 직장에서 물러나 명함에 특별한 직책 새겨 넣을 수 없는 하얀 손(白手)이 된 것이다. 매일 반복적으로 이뤄지던 출퇴근이 중단되고 한 몸처럼 익숙했던 양복과 넥타이, 가방에서 멀어지니 손은 물론 마음도 비어 그야말로 하얗게(白) 되었다.

 

그렇게 여러 달을 보냈다. 계획하기는 은퇴하는 순간 그동안 미뤄두었던 각종 산길과 들길 탐방을 위해 보따리 싸들고 나서리라 하였는데 여러 상황이 녹록지 않아 오래 칩거하였다.

 

이러다가는 몸과 마음 모두에 녹이 낄 것 같은 느낌이다. 정리가 필요하고 다짐과 실행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문득 건달산이 떠올랐다. 건달이 되었으니 건달산에 올라 건달 되었음을 신고하고 이런저런 정리와 계획도 세워보자 싶었다.

 

건달은 불한당이다. 땀을 흘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수선한 세상사 핑계로 꽤 오래 땀을 흘리지 않았다. 진짜 불한당이 된 것이다. 땀을 좀 흘릴 필요도 있었다. 그러한 마음 다잡고 보따리 챙겨 건달산으로 향했다.

 

 

 

일시 : 2023년 3월 30 ~ 31일

건달산/建達山

화성시 중앙부에 위치한 높이 336m의 산으로 화성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봉담읍 세곡리와 팔탄면 기천리에 걸쳐 있다. 천연기념물 제324호 소쩍새를 비롯한 다양한 조류, 멸종 위기에 처한 두꺼비와 맹꽁이 등의 양서류, 살모사와 도롱뇽 등의 파충류가 서식하는, 아직까지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청정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산 정상에는 1821년(순조 21)에 설치했던 봉수대 터가 남아 있는데 현재도 그 잔재인 기와 파편을 쉽게 볼 수 있다. 산 중턱에는 산신령을 모시던 산신각 등이 남아 있다. 날씨가 맑을 때에는 산 정상에서 서해의 아름다운 섬들을 바라볼 수 있으며 등산로가 잘 조성되어 있는 편이다.

 

 

# 건달산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옛 지도인 광여도 수원부에 등장한 건달산. 부의 서남쪽에 서봉산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름이 오래된 산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때는 한자로 '세울 建'을 써서 '建達山'이라 적혀 있다.

 

#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버스 두 번 갈아타고 한 시간 정도만에 도착했다. 자차로 갔으면 20여 분 정도면 충분할 거리다.

 

 

# 봉담읍 세곡리 가구 거리에 하차했다. 버스 정류소 이름은 '흰돌산 기도원 앞'이다. 편의점에 들러 막걸리 한 통 구입했다.

 

 

# 세곡리 마을 안으로 들어가 흰돌산 기도원으로 갔다. 화성시는 작은 규모의 공장이 아주 많다. 아마 전국 최고 규모가 아닐까 싶다. 이 동네도 마주치는 모든 건물이 소규모 공장이다.

 

 

 

# 어느 식당 담벼락에 커다란 벚나무 한 그루 만개하였다. 담 바깥으로 긴 가지를 드리웠는데 그 모습이 아주 고풍스럽다.

 

 

 

# 목련도 절정이다. 나는 매년 사월이면 목련꽃 몸살을 앓는다. 옛 기억의 흔적이리라... 올해는 시절이 일러 삼월에 벌써 목련이 활짝 피었다. 그만큼 빨리 봄 앓이를 겪는 증이다.

 

 

 

# 흰색에 지지 않겠다고 노란 개나리도 제 몸 전체 에너지를 노란빛에 집중시켰다.

 

 

# 마을 길을 한참이나 구불구불 돌아 흰돌산 기도원에 도착했다. 건달산 산행기를 보면 대부분 이곳 흰돌산 기도원에 주차하고 출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른 코스로는 이 산 너머 기천지 저수지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우측 멀리 수원여대에서 시작하는 코스도 있다.

 

 

 

# 지도에는 기도원 안으로 들어가 입구 좌측 산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등산객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서 있다. 하이구야! 한참 돌게 생겼구나!

 

 

# 도로 따라 아래로 내려가자 우측으로 갈림길이 열려 있다. 그 입구에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 몇 가지 등산 코스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나는 B코스를 따를 생각이다. 세곡리 흰돌산 기도원을 기점으로 좌측으로 올라갔다가 내일 우측 달봉산 쪽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 고개를 넘어가자 골짜기가 하나 나온다. 오르막 위로 제법 넓은 골짜기가 있고 공단이 형성되어 있다. 등산로는 오르막 초입 우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 벌써 진달래가 만개했다. 봄이 참 빨리도 왔다.

 

 

 

# 작은 봉우리 옆 고개를 한 차례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흰돌산 기도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기도원에서 막지 않았다면 바로 쉽게 올라왔을 곳이다.

 

 

 

# 오랜만에 솔숲에 들어왔다. 솔향기 그윽하다. 좋다!

 

 

 

# 배낭 내리고 한숨 돌렸다. 오늘 나는 MR 그리즐리를 메고 왔다. 원래 삼계절 백패킹으로는 그레고리 발토로 75를 사용한다. 그런데 산행 짐 꾸리면서 배낭을 행거에서 내렸더니 배낭 내부 코팅이 모두 일어나 있다. 뙤국발 역병 때문에 삼 년 동안 백패킹을 쉬느라 장비 관리에 소홀했던 탓이다. 애초 그레고리에서 코팅 설계를 잘못한 탓이 더 크겠지만 말이다.

 

아직 새것인데 버릴 수 없어 며칠 뒤 코팅을 모두 벗겨냈다. 하루가 꼬박 걸렸다. 코팅 벗겨내고 햇볕에 바싹 말렸더니 웬만큼 쓸 수 있게는 되었다. 다만 코팅이 모두 사라져 방수 성능도 함께 사라졌다. 배낭 내구성도 약해졌을 것이고. 그 대책은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오랜만에 무거운 그리즐리를 맸더니 처음에는 허리가 휘청거렸다. 등짐 무게에 적응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이제 자주 착용하면 차츰 몸이 옛 기억을 되찾지 않겠나 싶다.

 

 

 

# 정상까지는 1킬로미터 남짓이다. 가까운 거리다. 그렇지만 삼 년만의 백패킹이라 허약해진 내 체력에는 만만치 않다.

 

 

 

# 한 숨 돌린 뒤 다시 오르막에 몸을 맡겼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길게 이어진다. 오르막 중간에 하산하는 등산객들을 만났다.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거리라 평소 찾는 이 많은 산이다.

 

 

 

# 묘지를 둘러싼 수풀 너머로 정상부가 보인다. 한 차례 가파르게 올랐다가 능선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되는 코스다.

 

 

 

#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난다. 오랜만에 무거운 등짐을 졌더니 무릎이 휘청휘청한다. 등짐 무게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다. 이번에 야영짐 꾸리면서 보니 허약해진 내 몸만큼이나 장비들도 허약해져 있다. 등산화 세 켤레 중 두 켤레는 바닥창이 가수분해되어 녹아내린 상태다. 지금 이 등산화도 바닥이 위태위태하다.

 

산행 마치고 내 신발 두 개와 마눌 신발 한 개를 부산에 있는 캠프라인 본사로 A/S 보냈다. 일주일 만에 새 신발 세 켤레가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 새 신발이 되어 있다. 지금 내가 신고 있는 이 신발은 두 번째 창갈이다. 그래도 외피가 쌩쌩하여 아직 한참은 더 신어도 문제없겠다. 캠프라인은 품질도 좋고 A/S도 아주 좋다. 칭찬한다.

 

 

 

# 헉헉 소리 몇 번 지르면 능선 마루금에 도착한다.

 

 

 

# 기천저수지가 있는 기천리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이다. 이제 우측 능선을 따라 편하게 가면 곧 정상이다.

 

 

# 정상은 저 봉우리 다음 봉우리다.

 

 

# 편하게 진행한다. 능선을 넘는 바람 좋고 주변으로 진진이 만발하여 꽃항기도 좋다.

 

 

 

# 건불사 갈림길. 채석장이 있는 모양이다. 옛 기록에는 지진으로 큰 바위가 붕괴했다는데 지금은 인공으로 바위를 무너뜨리고 있다.

 

 

 

# 이 동네도 소나무 재선충 공격이 시작된 듯하다. 나무들이 방재 약을 먹었다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 기천3리로 이어지는 능선 갈림길이 나온다.

 

 

 

# 작고 아담한 철계단을 오르기도 한다. 있을 것은 다 있다.

 

 

# 좀 전에 보았던 봉우리 통과.

 

 

 

# 정상은 곧바로 다음 봉우리다. 어렵지 않은 코스다. 그래도 오랜만에 무거운 등짐 짊어지고 산길 걸었더니 제법 힘도 들고 숨소리도 헉헉 높았다. 

 

 

 

 

# 옛 봉수의 기록이 팻말로 남아 있다.

 

 

 

# 오랜만의 등짐 산행이라 기분은 최고다. 정상석 안고 기념사진 한 방 남겼다.

 

 

 

# 건달산은 사방 최고의 조망을 자랑하는 산이다. 이 산에 봉수를 설치할 이유 충분하다. 기천저수지와 팔탄 방향 조망.

 

 

 

# 동북쪽 수원 방향 조망. 청요리의 태행산과 삼봉산이 가로로 길게 누워 있다. 우측 멀리로 광교산도 보인다.

 

 

# 봉담읍과 그 너머 수원 남서부 도심이 보인다.

 

 

 

# 발안 향남 일대.

 

 

 

# 바로 아래로 덕우리에 있는 발안저수지가 보인다. 덕우저수지라고도 부른다. 예전 낚시꾼 시절 내가 즐겨 찾던 저수지다. 떡붕어가 우점하는 곳이다. 저곳에 낚시 다닐 때는 화성 연쇄 살인이 한참이었다. 낚시 오갈 때나 밤낚시 하노라면 검문검색이 많아 주민등록증을 아예 목에 걸고 다녔다.

 

 

 

# 화성시는 규모가 아주 큰 도농 복합도시다. 아마 소규모 공장 많기는 전국 최고이지 싶다. 

 

 

 

# 좌측 너머 칠보산 뒤로 우리 집이 있을 건데 미세먼지 있어 희미하다.

 

 

 

# 기천지가 바로 발아래다. 기천저수지는 발안저수지의 수원공급지로 계곡형 저수지다. 저곳도 내 단골 낚시터였다. 물고기 개체수는 적어도 계곡형 답게 물고기의 힘이 아주 좋은 곳이다. 잠깐 한눈팔면 낚싯대를 끌고 가버린다.

 

어느 해인가? 마눌과 함께 낚시하는데 담배 무는 잠깐 사이에 낚싯대가 저수지 중앙으로 끌려가버렸다. 장비가 아깝기도 하였지만 큰 고기에 대한 기대 때문에 보트 불러 낚싯대를 회수했다. 고기는 아직 달려 있었다. 예상하기는 월척을 훨씬 넘는 대물이리라 했는데 막상 건져내 보니 손바닥만 한 녀석이었다. 그런 넘이 세 칸 대를 끌고 간 것이다. 그만큼 저곳은 물고기 힘이 좋은 곳이다.

 

 

 

# 건달산에는 넓은 데크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덕분에 조망도 좋고 야영 환경도 좋다. 오르기도 쉬우니 백패킹 처음 시작하는 이들이 필수로 찾는 곳이 되었다. 

 

 

 

# 미니 삼각대 세워 증명사진 한 장 남겼다.

 

 

 

# 시간이 일러 야영 짐을 펼치지 못했다. 등산객이 자주 찾는 산이라 조심스러웠다. 책 읽으며 한 시간 넘게 여유를 즐겼다.

 

 

 

# 책 백 페이지 읽고 다시 조망 감상하며 소요하는 동안 딱 한 사람 등산객이 올라왔다. 지역 주민이라는 그분과 잠시 환담하였다. 이윽고 등산객 내려간 후 집 한 채 뚝딱 지었다. 

 

 

 

# 이번에 다시 백패킹을 시작하면서 1인용 텐트를 하나 장만했다. 내 마눌은 역병 때문에 오래 쉬는 동안 무거운 등짐 거부감이 더욱 커졌다. 아무래도 앞으로 홀로 들길, 산길 걸을 일 많을 듯하여 가벼운 텐트가 절실했다.

 

처음에는 폴대 없는 스틱용 티피형 텐트를 검색했는데 좁은 공간과 비자립이라는 약점 때문에 포기했다. 그러던 차에 농협표 초경량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비록 홑겹이지만 자립되는 형태에 무게 1킬로그램 초반이라 내게 최적의 물건이었다.

 

알리 직구로 샀더니 십만 원 미만으로 구입 가능했다. 홑겹이지만 전실 공간이 있어 짐 두기도 편하다. 혼자 쓰기에 공간도 넉넉했다. 

 

 

 

# 마눌과 함께 야영할 때 내 배낭 무게는 기본이 20킬로 이상이었다. 동계에 이것저것 넣다 보면 삼십 킬로를 넘기기도 했다. 그런 등짐을 짊어지고 종주 산행하거나 설산을 올랐는데 이제 그렇게는 못하겠다.

 

BPL(BackPacking Light)이 절실했다. 저 텐트와 기타 장비 경량화를 동반하면 십 킬로그램 초반으로 가능해 보인다. 조금씩 시도해 봐야겠다. 노을 지는 산하를 배경으로 우윳빛 스킨이 잘 어울린다.

 

 

 

# 이윽고 노을이 시작된다. 기천저수지 너머로 오늘 하루 수고한 태양이 저물고 있다.

 

 

 

# 태행산 정상이 노을에 물들고 있다. 저 산 정상에도 넓은 데크 전망대가 있다. 조망도 아주 좋은 곳이다. 다음 야영 1번 후보 중 하나다. 지금 저 정상에서도 불타는 노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어허! 저기 하늘이 불타고 있구나!

 

 

 

# 하늘과 물 모두에 붉은 노을 가득하다.

 

 

 

# 건달산 정상도 내 하룻밤 보금자리도 내 얼굴도 모두 노을빛에 물들고 있다.

 

 

 

# 근래 최고의 석양이었다. 오래오래 그 자리에 서서 노을을 감상했다. 난간을 짚고 있는 내 손이 붉은 물감으로 염색된 듯하다.

 

 

 

# 이제 퇴직하여 흰 손이 된 내 노년이 아름다운 노을로 물들 수 있기를 오래 빌었다. 물론 빌어 될 일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혹시 아는가? 건달산 산신령이 감응하여 기운 한 가닥이라도 나눠 주실지!

 

 

 

오래오래 노을빛에 물들며 그 빛깔 속으로 침잠했다. 온몸이 으슬으슬 추워질 때쯤 해는 산 너머로 넘어가고 채운만 오래 남았다. 그 감동 아련하여 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참 좋다!

 

 

 

# 역대급 노을 감상을 마치고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물수건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 마눌이 챙겨 준 닭갈비 안주하여 막걸리 한 잔 마셨다.

 

 

 

# 달이 없는 날이었다. 세상의 불빛과 하늘의 별빛에 건배하며 홀로 그러나 함께 막걸리 잔 나눴다.

 

 

 

# 편안히 잘 잤다. 원래 이곳 건달산은 백패커들 사이에 음기가 좀 센 곳으로 유명하다. 가위눌렸다는 이들이나 귀신에게 시달렸다는 이들의 얘기가 종종 들리는 곳이다. 나는 뭐... 별일 없었다.

 

 

 

# 아침 일찍 일어나 몸 풀었다.

 

 

 

# 네이처하이크 빅1, 저 텐트는 싱글월 텐트라 가벼운 대신 결로에 취약하다. 그런데 간밤에는 결로가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이곳 건달산 데크는 허공에 떠 있는 형태다. 밤새 바람이 데크 방부목 사이로 올라왔다. 적절하게 공기 순환이 잘 되어 결로 생길 환경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일출 맞이하러 정상에 올랐다. 동쪽 하늘이 붉어져 온다. 우측의 산이 서봉산이다.

 

 

 

# 비행기 한 대가 높은 하늘에서 아침 햇살을 미리 받았다. 빛나는 비행운 꼬리가 혜성의 꼬리처럼 뒤로 이어진다.

 

 

 

# 당하리 태봉산 위로 붉은 색깔이 칠해진다.

 

 

 

# 이윽고 붉고 작은 원 하나 모습을 드러낸다.

 

 

 

# 점점 제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일출은 올해 첫 감상이다. 가슴 벅찬 감동이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 표현은 허술해도 직접 일출 감상하는 느낌은 황홀했다. 팔 벌려 태양의 뜨거운 기운 마음껏 들이켰다.

 

 

 

# 이곳 건달산은 일출과 일몰을 한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사방 막힘없이 조망 좋은 곳이라 가능한 일이다.

 

 

 

# 처음 올라올 때는 느리고 더뎌 애를 태우더니 막상 올라온 뒤엔 금세 온 세상을 빛으로 덮어버린다. 오늘도 미세먼지 많을 모양이다. 햇빛 산란된 먼 데 조망이 흐리다.

 

 

 

# 건너편 11시 방향의 산이 태행산이다. 저곳 정상은 민둥산으로 원래 조망 거리낄 일 없는데 높고 넓은 데크 전망대까지 갖추고 있다. 조만간 야영 들어갈 작정이다.

 

 

 

# 저 멀리 광교산이 아침 안갯속에 희미하다.

 

 

 

# 부지런한 등산객들 올라오기 전에 서둘러 자리 정리했다.

 

 

 

# 무려 삼 년만의 백패킹이다. 어제 처음 저 그리즐리 배낭을 멨을 때는 무겁고 어색하여 난망했었다. 삼 년 간의 공백이 제법 경력을 갖췄다 자부하는 산꾼에게도 무시할 수 없었던 탓이다. 중국 역병 핑계로 칩거했더니 정신은 물론 몸에도 녹이 잔뜩 끼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땀 좀 흘리고 헉헉 비명 몇 번 질렀더니 이내 적응되기는 하더라. 이십 수년 무거운 짐 짊어지고 돌아다닌 경력이 어디 가기야 하겠는가. 편안한 하룻밤을 선사해 준 건달산 산신령께 감사드리고 산정을 떠났다.

 

 

 

# 떠나기 전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 하산은 좌측 달봉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제는 힘들어 그냥 지나친 진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인사했다. 연분홍 진진이 꽃향기 그윽하다. 몇 주 뒤 진진이 만발할 때 강화도 고려산에 진진이 꽃구름 보러 가야겠다.

 

 

 

# 참나무 새 잎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연초록 새잎이 밝게 빛나고 있다. 

 

 

 

# 하얀 제비꽃 구경도 하고...

 

 

 

# 갈림길에서 세곡리 방향으로 우틀하였다. 직진하면 수원여대 쪽으로 가게 된다.

 

 

 

# 세곡리 마을에 내려왔다. 오를 때는 흰돌산 기도원을 방향으로 가면 되어 길 찾는데 어려움 없었는데 내려와서는 제법 헤맸다. 공장들 사이 갈림길이 많았다. 

 

세곡리 정류소에서 먼지 털어내고 버스 기다렸다. 어제 왔던 코스 그대로 버스 두 번 갈아타고 귀가했다. 가까운 곳이라 오전 중에 귀가해서 샤워할 수 있었다. 

 

건달산은 비록 야트막한 산이지만 넓은 화성 벌판에 우뚝하여 제 역할을 다하는 산이다. 옛 왕조시절 기우제를 지내는 하늘의 통로이기도 했고 봉수를 세워 적의 내습을 알리는 소통의 통로이기도 했다.

 

인간세 천변만화해도 자연은 의구한 법이다. 문명 발달한 지금 올라도 건달산정의 조망은 사방 막힘없고 먼 곳으로 눈길 넓게 둘 수 있다. 높지 않아도 제 역할 다함에 거리낄 일 없는 산이다. 좋은 산이다. 추천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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