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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일반 산행

[일반산행]원적산/圓寂山-선택은 늘 어렵다!

강/사/랑 2023. 4. 6. 17:04
[일반산행]원적산/圓寂山-선택은 늘 어렵다!

 

인터넷에는 숱한 가짜 명언이 난무한다. 출처도 불분명한 각종 명언이 제각기 그 말을 했다는 유명 인물의 사진과 함께 사이버 공간 곳곳을 점령한 채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인물인 발언자의 사진이 친절하게 내 걸리고 잘 조화된 폰트의 글씨체로 장식되었으니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그 말을 명언으로 여기고 즐겨 인용하곤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출처불명의 그 명언들은 가짜 명언일 확률이 높다. 누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사이버 공간의 은밀한 익명성은 이런 가짜의 온상으로 안성맞춤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누군가 유명한 인물의 사진과 이름을 내걸고 그럴듯한 문장 하나 갈기면 곧바로 그 사람의 명언으로 둔갑하게 된다. 흑백의 사진과 고딕이나 궁서체의 고풍스러운 폰트는 필수다. 잠시 후 웹서핑하던 또 다른 이들이 그 말을 퍼 나르면 이제 그 가짜 명언은 확대 재생산되어 진실로 굳어지게 된다.

 

그런 가짜 명언 중에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란 말이 있다. 영어로는 "Life is C(choice) betweeen B(Birth) and D(Death)."라고 표현된다.

 

장 폴 사르트르의 명언이라고 알려진 이 말은 사실 사르트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말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저런 콩글리쉬 표현의 말을 할 리가 없고 사르트르의 저술이나 발언 어디에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저 가짜 명언은 몇 해 전 무한도전이라는 인기 TV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며 널리 알려졌고 이제는 주요 언론에까지 사르트르의 명언으로 인용되는 실정이다.

 

삶이라는 것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기 마련이라 그 파급력이 더 컷을 것이다. 게다가 압도적 팬덤을 가지고있던 무한도전에서 거론하였으니 가짜 명언이 진짜로 둔갑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저 문장이 비록 사르트르의 명언이 아닐 지라도 선택은 우리네 인생에서 마주치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B와 D 사이의 C"라는 말은 널리 알려 이상할 일 없고 자주 곱씹어 나쁠 일 없다. 다만 사르트르라는 발언자는 제외하고 말이다.

 

나 역시 늘 선택 장애로 고생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내 삶의 숱한 선택은 모두 작고 큰 고민의 산물이고 그 선택의 결과가 오늘 현재의 내 모습이다. 이번  초봄 이천 나들이에서도 선택은 어김없었고 그 선택의 결과는 엄중했다.

 

올봄 심춘 나들이의 콘셉트는 산행이었다. 첫날은 용인청소년수련원에서 야영하면서 독조봉 산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뒷날 이천으로 이동해 원적산 산행과 함께 산수유마을의 노란 꽃물결을 보자 하였다.

 

원적산은 이천과 여주 광주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들판 넓은 이천과 여주 경계에 우뚝 솟아 사방 조망 좋고 그 품에 산수유마을을 품고 있어 봄날 정취를 꿈꾸는 산꾼들의 백패킹 명소로도 유명하다.

 

나는 꼭 십 년 전에 산수유 꽃구경을 하고자 찾았고 산정에서 막걸리 한 잔 마시며 나름 원적의 정취를 즐겨본 바 있다. 그때의 기억이 좋았는지 마눌의 주장도 이번 산행지 선택에 한 몫했다.

 

나는 원래 평범한 인물이나 늘 비범을 꿈꾸는 품성의 소유자다. 남들 다 하는 방식은 재미없게 여겨져 자주 다른 방식을 꾀한다. 산길을 걸어도 남들 다 가는 길은 피하고자 하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산행을 계획한다.

 

원적산은 영원사에서 오르는 길과 산수유 마을에서 오르는 길이 대표적이다. 십년 전에는 영원사 코스를 택했으니 이번에는 당연히 산수유마을 코스가 선택지다. 다만 올랐던 길 그대로 하산하면 재미가 없어 하산길을 다르게 택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내가 가지고있는 오룩스맵의 트랙에는 길이 분명히 있어 택했는데 막상 현지 산길은 달랐다. 사람 다니지 않아 등로는 사라졌고 가파른 내리막에 기름진 활엽수 낙엽이 쌓여 미끄럼틀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신발 마저 전문 등산화가 아니라 가벼운 트래킹화를 신어 더욱 미끄럽고 발끝에 체중이 몰려 통증이 심했다. 마지막 삼십여 분은 꽤 악전고투였다. 그동안 산행이 뜸했던 마눌의 고생이 심했다.

 

웃음기 사라지고 힘들어하는 마눌의 모습을 보며 내 선택을 많이 후회했다. 그리고 많이 미안했다. 등로 상태 확인하지 않고 지도만 믿은 섣부른 선택의 결과였다. 

 

먼지투성이가 되어 임도에 내려섰다. 땀범벅에 먼지 뒤집어쓴 모습이 가관이었다. 허탈한 웃음 웃으며 서로 위로했다. 야트막한 산이라 별 고민 없이 한 선택의 결과치고는 혹독했다. 

 

힘겨워하는 마눌에게 여러 번 사과했다. 그리고 여러 번 되뇌었다. "아, 선택은 늘 어렵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혹독하다."

 

 

일시 : 2023년 4월 4일

 

원적산/圓寂山

높이 634m이다. 이천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동으로는 여주시, 서로는 광주시와 경계를 이루며 동서로 길게 이어진다. 무적산(無寂山)이라고도 한다. 동쪽 원적봉(563.5m) 기슭에 638년(선덕여왕 7년)에 창건했다는 영원사(靈源寺)라는 사찰이 있으며, 주봉인 천덕봉 기슭에는 율수폭이라는 폭포가 있다. 고려말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다는 전설이 전한다. 신둔면 장동리 쪽에는 군사훈련장이 있어 입산이 제한되므로 산행은 백사면 경사리 쪽에서 시작한다.

 

# 원적산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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