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캠핑이야기]야영-고창 동호해변국민여가캠핑장 본문

산이야기/캠핑이야기

[캠핑이야기]야영-고창 동호해변국민여가캠핑장

강/사/랑 2022. 12. 18. 15:56
[캠핑이야기]야영-고창 동호해변국민여가캠핑장

1981년 가을 이야기다. 혼돈의 시기였고 암흑의 시대였다. 군인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고 캠퍼스에는 사복 경찰들이 공공연하게 드나들고 있었다.
 
피 끓는 청춘이었던 나는 시대와 조국의 엄혹한 현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배움 짧고 용기 적어 앞줄에 서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 젊은이들이 다 그렇듯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늘 신음하였다.
 
그해 가을 노년의 시인이 우리 학교로 강연을 왔다. 어떤 말이나 붙잡아 늘리면 그대로 시(詩)가 된다고 했고 마침내 '시의 정부(政府)'라고 까지 칭송되던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시인이었다.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 낼 줄 아는 큰 시인이지만 친일부역자였고 전두환정권을 칭송했던 사람이라 그에 대한 내 반감은 상상초월이었다. 그 분노는 내 손에 돌멩이를 들게 만들었다.
 
가로수 낙엽 지고 찬바람 이는 날이었다. 넓은 잔디밭 광장에는 꽤 많은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강연을 듣고 있었다. 강연 내용은 기억에 없다. 다만 그의 행적에 대한 분노만 넘쳤다. 강연 도중 뒤쪽에서 고함을 질렀다. "서정주, 물러가라! 물러가라!"
 
혼자의 돌발행동이었다. 사람들 시선이 쏠리고 진행팀인지 사복경찰인지 몇 명이 내 쪽으로 왔다. 무서웠다. 냅다 도망을 쳤다. 학교 바깥으로 나가 골목으로 한참 도망갔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정신 차리니 던지지 못한 돌멩이가 내손에 들려 있었다.
 
세월 많이 흘렀다. 이제 나도 환갑을 넘겨 미당(未堂) 시인이 우리 학교에 강연 왔을 때 나이 근처에 왔다. 개인의 삶이 시대와 역사의 소용돌이에 얼마나 취약하고 무력한지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미당 시인이 살았을 시대와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타자(他自)가 함부로 남의 인생을 단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리고 부당한지도 안다.
 
젊어 좌파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나이 들어 우파가 되지 않으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 한다. 꽤 급진 좌파로 혁명과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세상을 꿈꿨던 나도 생산하고 책임지는 우파의 가치를 아는 정도는 되었다. 그리하여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숭상하는 자유 우파의 세계관을 주위에 기꺼이 설파하기도 한다. 
 
이제 다시 미당 시인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이라 말할까? 철 모르던 젊은 시절 어설픈 치기(稚氣)로 시인의 강연을 망친 일을 말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무례를 사과할 수나 있을까?
 
시인은 191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고창은 먼 서해의 한적한 고장이다. 고창하면 미당과 선운사가 떠오른다. 그 외는 물산 부족하고 인구 줄어들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일 별로 없는 동네다.
 
그 동네에서 이번에 해변캠핑장을 조성하여 일반에게 공개하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일단 몇 개월간 무료로 시범운영한다는 소식이다.
 
미당 시인과 선운사는 개인적으로 여러 인연을 맺고 있다. 그 인연의 끝자락 더듬어 보아 나쁠 일 없었다. 마눌에게 소식 전하고 짐 꾸려 고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시 : 2022년 12월 07일~08일

동호해수욕장

부안 변산반도와 고창군 사이의 곰소만 남쪽에 자리한 해수욕장이다. 드넓은 백사장을 따라 수백년된 해송숲이 장관을 이루고, 이 숲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낙조가 아름답다. 길이 1km 가양의 백사장은 경사가 완만하며, 수심 또한0.5~1.5m로 어린이들도 안심하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이곳은 염도가 높아 피부병, 신경통 환자들의 해수욕과 모래찜질 장소로 유명하다. 해송숲 위의 언덕에는 이 고장 유일의 해신당인 수성당이 있어서, 해마다 어민들이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있다. 그리고 동호해수욕장 앞 바다인 칠산바다는 어종이 풍부하여 바다낚시터로도 유명하다.

# 고창 동호해변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고창은 먼 고장이다. 세 시간 넘게 달려야 겨우 도착할 수 있다. 해수욕장 조형물이 꽤 세련되었다. 해수욕장 출입구를 중심으로 좌측에 A구역, 우측에 B구역 캠핑장이 있다. 우리는 A구역을 예약했다. 관리사무소에 입실 신고하고 자리 배정받았다. 찬바람 강하게 부는 한겨울이라 캠핑장은 한가하다.

 
 

# 이곳 캠핑장은 듬성듬성한 소나무 사이에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곧바로 난바다를 향해 열려 있어 늘 바람에 취약한 곳이다. 이날도 찬바람 강하게 불고 있었다.

 
 

# 해수욕장 뒤쪽에 도로가 남북을 관통한다. 원래는 한가했을 이 도로가 이 날은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덤프 트럭의 왕래가 많아 소란했다. 아마 인근에 공사 현장이 있는 모양이다. 꽤 시끄럽고 위험했다.

 
 
# 해변을 따라 길게 형성된 해수욕장과 그 뒤에 설치된 캠핑장이다.

 
 
# 오늘 우리 집은 간편한 농협텐트가 베이스다. 찬바람 막을 스크린도 바다 방향으로 둘렀다.

 
 
# 빨간 실타프로 지붕도 얹었다. 그야말로 꽁꽁 싸맨 형국이다.

 
 
# 제주도 옛 움집 같은 분위기다.

 
 
# 집 짓고 짐 정리한 후 주변 산책에 나섰다.

 
 
# 부안 방향으로 길게 뻗은 모습의 해수욕장이다.

 
 
# 남쪽 구시포 앞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 바다가 밀고 들어오면서 바람도 함께 데리고 왔다. 제대로 설영 되지 못한 대형 쉘터들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 긴 세월 바람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소나무들이 모두 뒤로 반쯤 누워 있다.

 
 
# 관리동. 사무실과 샤워장이 있다.

 
 
# B구역 구경을 왔다.

 
 
# B구역은 폭이 좁고 소나무를 품고 있어 데크 규모가 아주 작다. 중대형 텐트는 설치할 수 없다.

 
 
# 주변 산책하는 동안 해는 점점 수면과 가까워지고 있다.

 
 
# A구역에는 대형 쉘터가 여럿 설치되어 있다. 중대형 쉘터 구입을 심각히 고민하는 중이라 이집저집 구경 다녔다.

 
 

# 에르젠 라운지쉘터 S5. 평소 너무 사이즈가 커서 논외로 두었던 녀석인데 이날 현지에서 보곤 반해버렸다. 이날 우리가 동호에서 본 여러 형태의 쉘터 중 가장 바람에 잘 버틴 데다 넓은 우레탄창을 통한 조망이 최고였다. 쉘터 구경하면서 찬바람 때문에 벌벌 떨고 있는 우리와 달리 젊은 커플이 의자에 반쯤 누워 느긋하게 차 마시면서 노을 구경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 노을 진다. 2022년 한 해도 저물어 간다. 경천동지 할 일 많았던 한 해였다. 저물어 가던 국운(國運)을 되살린 해이기도 하다.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오래오래 일몰 감상했다.

 

 
 

# 해가 넘어 가자 찬바람 더욱 강하게 불었다. 스크린이 바람을 한껏 먹었다. 하지만 튼튼하게 대비했더니 잘 버텨주었다.

 
 

# 인적 드문 곳이다. 밤이 되자 사람 발길은 완전히 끊겼다. 간혹 지나다니는 트럭들이 너무 빨리 달려 신경 쓰이는 것 제외하면 나무랄 데 없는 환경이었다.

 
 
# 달빛이 좋은 밤이었다. 보름달 높이 떴다. 달님과 막걸리 한 잔 대작하였다.

 
 
# 새벽에 소피 마려워 밖으로 나오니 보름달이 바다 위로 방향을 옮겨 밝게 빛나고 있었다.

 
 

# 찬바람 강하게 불었지만 편안히 잘 잤다. 이날 동호에서 야영한 10여 팀 중 우리만 유일하게 난로나 전기장판 등 화석연료의 도움 없이 밤을 보냈다. 평생 산정 야영에 익숙한 몸이라 동계 침낭 만으로도 우리는 거뜬하였다. 밤새 우리와 함께 했던 보름달은 상기 저물지 않았다.

 
 
# 소나무숲 뒤쪽으로 일출이 시작된다. 해돋이와 달넘이가 공존하는 곳이다. 아침이라 바다 방향으로 대문을 열었다.

 
 
# 버닝칸에서 제작한 저 멀티스크린은 설치가 귀찮은 단점은 있지만 활용도가 참 높다.

 
 

# 바다가 멀리 달아났다. 밤새 바람소리 파도소리 높더니 새벽에 조용해졌는데 바다가 물러나면서 바람도 가져가서 그런 모양이다.

 
 
# 아침 끓여 먹고 바다 구경하며 느긋하게 휴식했다.

 
 
# 저렴하게 직구한 저 농협텐트는 계절 가리지 않고 캠핑용으로 잘 쓰고 있다.

 
 

# 짐 정리한 후 뜨거운 물로 샤워까지 마쳤다. 시범 운영 중이라 아직 어수선한 면 있긴 해도 꽤 매력적인 캠핑장이다.

 
 
# 정리 모두 마치고 다시 한번 동호해변 곳곳을 돌아보았다.

 
 
# 썰물로 드러난 해변이 무척 넓다.

 
 
# 북쪽 부안 방향.

 
 
# 남쪽 구시포 방향.

 
 

# 저 멀리 바다 너머의 섬은 '위도'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로 참사가 있었던 곳이고 2000년대 초 방폐장 유치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곳이기도 하다.

 
 

# 동호해변을 나와 미당문학관을 찾았다. 고창은 미당 시인을 배출한 고장이다. 고창까지 와서 미당을 만나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미당 시인께 사과드릴 일이 있기 때문이다. 피 끓고 철 모르던 스무 살 시절 시인에게 공개적으로 무례를 범한 일에 대한 사과를 드려야 했다.

 
 

# 미당문학관은 시인의 생가 근처에 있는 폐교터에 세워져 있다. 찾는 이 드문지 관리인은 여럿인데 관람객은 우리뿐이다. 시인의 생애와 행적, 그리고 유품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시인이 생전에 사용했던 만년필과 질마재 이야기의 원고. 빠이롯트 잉크병이 옛 추억을 자극한다.

 
 

# 국어책과 시집에서 즐겨 암송했던 시들을 읊조리며 한 바퀴 돌아보았다. 옥상으로 올라가면 선운리 일대의 풍광과 곰소만 너머 부안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의 풍광이다. 이곳은 늘 바람이 많은 곳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이곳 풍광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이 옥상을 '바람의 전망대'라 불렀다.
 
시인은 일찍이 이렇게 노래했다. " 스물 세 햇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내 나이 어느새 갑(甲)을 넘겼다. 그 세월 동안 나를 키운 것 역시 팔 할은 바람이지 싶다.

 
 

# 문학관 곁에 시인의 생가가 있다. 이 땅 여느 정치인, 시인, 예술가의 생가와 다르지 않다. 새로 바른 황토벽, 새로 올린 초가지붕...

 
 
# 보수공사로 어수선하다.

 
우리말 시인 가운데 가장 큰 시인이라 칭송되지만, 친일 행적과 군사정권 예찬으로 비난을 동시에 받는 미당 서정주 시인. 
 
1915년 5월 18일 생이니 한일합방 5년 뒤에 태어났다. 태어나니 이미 조선 사람이 아니라 일본 식민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일본 신민지 국적으로 유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모두 보냈다. 나고 자라서 보고 배운 모든 것이 일본 식민지 국민의 사고방식 안에서 이뤄졌다는 말이다.
 
나는 그보다 50여 년 뒷세대 사람이다. 태어나니 해방된 대한민국이었고 자라니 경제발전 이뤄 먹고살 걱정 없었다. 웬만하면 고등교육받을 수 있었고 직장도 그럭저럭 잡을 수 있었다.
 
그런 내가 앞세대인 그를 향해 친일과 부역을 운운하며 돌을 던지려 했었다. 그가 살았던 엄혹한 세월을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렇게 살았냐고 질책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외람된 일이고 참담한 오지랖이다.
 
이제 철 모르던 청춘을 한참 지나 귀가 부드러워지는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었다. 사람을 세상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사실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잣대가 얼마나 오만하고 허망한 지도...
 
그 부드러워진 귀를 가지고 고창에서 미당 시인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 옛날 어린 시절의 무례하고 치기 어린 행동을 사과드렸다. 문학관을 돌아 나오는데 곰소만을 건너온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나를 키운 것도 상당수는 바람이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