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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캠핑이야기

[캠핑이야기]야영-하동 평사리공원 오토캠핑장

강/사/랑 2023. 3. 19. 19:06
[캠핑이야기]야영-하동 평사리공원 오토캠핑장

어릴 때부터 나는 꽤 글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부친 슬하에 팔 남매가 함께 자랐으니 항상 학생 많고 읽을거리 많았던 환경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형이나 누나들의 책을 읽다 보니 내 수준 이상의 글을 읽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이답지 않은 시건방진 소리도 꽤 조잘댔던 듯하다.
 
읽을거리 많은 환경이라고는 하나 옛 시절 시골 가정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이란 것이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 늘 새로운 읽을거리에 목말라 있었다.
 
당시 이웃집에 촌수로 아재뻘인 분이 교대를 다니고 있었다. 그분이 제법 여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어 책 빌리러 자주 놀러 가곤 했다. 
 
그때 그 아재 집에서 '박경리의 토지'를 만났다. 토지 1부가 삼성출판사에서 1973년에 출간되었으니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그리고 1년 뒤 중학교 1학년 때 토지를 만났다. 그러니까 초판본을 그 아재가 구입했고 내게도 그 귀한 초판본을 읽을 기회가 왔던 것이다.
 
놀라운 책이었다. 무수히 많은 등장인물이 제각각 주인공이 되어 저마다의 삶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 하나하나의 삶의 여정이 그 자체로 하나의 소설이자 이야기였다. 인생 경험 일천한 어린 내 가슴으로는 한 번에 품어내기 어려운 파란만장의 삶이 그 책 속에는 수십수백이었다.
 
밤새 책을 읽어 내고 다시 다음날 저녁에 그 댁에 찾아가서 다음 책을 빌려봤다. 까까머리 중학생 녀석이 책에 미쳐 매일 찾아오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그 아재는 싫어하지 않고 기꺼이 책을 빌려 주었다.
 
이후 토지는 내 독서 인생의 등대 같은 책이 되었다. 나중에 나이 들어 다시 그 책 전질을 읽었는데 그 감동에 조금의 손상도 없었다. 토지는 그런 깊이의 책이었다.
 
박경리 작가는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내 고향 진주 여고를 다녔다. 우리 누나들, 형수들이 모두 작가의 여고 후배들이다. 그래서인지 그이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어릴 적 엄마가 들려주시던 옛이야기 같은 느낌이었다.
 
육이오 전쟁 때 남편이 행방불명되고 아들까지 일찍 세상을 떠나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을 견디기 위해 글을 썼고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그리고 소설 토지를 집필했고 토지는 영원불멸의 명작으로 남았다.
 
토지는 1969년 집필하기 시작해 1994년 완성하여 무려 25년간 써낸 대하소설 중의 대하소설이다. 총 5부 25편으로 등장인물만 수백 명이라 그 흐름을 잃지 않고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다. 
 
그 긴 흐름 속에 개인과 가족, 그들이 속한 이 땅의 민중들이 휘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헤쳐나가는 일대기를 담아 우리 역사의 근현대를 책 속에 온전히 녹여내고 있다. 
 
세상사람 생각 대부분 비슷한 듯하여 많은 평론가들이 우리 문학사에 손꼽을 걸작으로 토지를 평가한다. 내 어린 가슴을 감동으로 물결치게 했던 이야기가 세상 모두와 같았다는 말이다.
 
토지는 하동 악양의 평사리를 주무대로 한다. 악양은 들이 넓은 곳이다. 뒤로는 지리산 연봉이 우뚝하고 앞으로는 섬진강 물줄기가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모랫벌이다.
 
만석꾼 최참판 집안의 소유지로 소설에는 그려지지만 실제 최참판댁은 소설가의 상상 속 산물이다. 원래 이 동네에 조참판댁이 존재하기는 했다는데 지금은 소설가의 이야기를 따라 최참판댁이 조성되어 있다. 
 
소설을 읽은 많은 이들이 그 감동을 확인하려 평사리를 찾는 모양인데 나는 그동안 그 앞을 지나 만 다녔지 정작 그 마을을 찾아볼 기회는 없었다.
 
이래저래 만남을 기대하고 있던 참에 평사리 강가에 야영장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강 건너 매화마을에 하얀 매화꽃 꽃구름 일어날 때라 매화꽃구경과 평사리 구경 그리고 섬진강변의 야영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생각 마눌에게 전하고 짐 챙겨 남도로 발길을 잡았다. 2023년 초봄의 이야기다.
 
 
 

 

2023년 3월 16~17일

평사리/平沙里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중국 샤오샹팔경(瀟湘八景)의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에 비유하여 붙인 이름이다. 평사리는 섬진강 포구로서 수운 및 육로 교통의 요충지이며, 마을 앞으로 넓은 악양들을 끼고 있어 일찍이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둔촌동(屯村洞), 평사동(平沙洞), 검두동(儉頭洞) 각 일부가 통합되어 악양면 평사리가 되었다. 서쪽으로 지리산 삼신봉에서 뻗어 나온 신선봉 줄기가 솟아 있고, 동쪽으로 악양천이 서북에서 동남 방향으로 흘러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평사리는 악양면 서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으며 봉대리와 이웃한다. 상평·외둔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산기슭에 상평마을이, 섬진강 변에 외둔마을이 터를 잡았다. 2011년 3월 31일 현재 면적은 4.19㎢로 이 중 밭이 0.33㎢, 논이 1.16㎢, 임야가 1.60㎢이며 총 100가구에 187명[남자 85명, 여자 10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하며, 평사리 305번지에 있는 동정호는 중국 샤오샹팔경의 하나인 동정추월(洞庭秋月)을 본뜬 경관이다. 문화 유적으로 사적 제151호인 하동 고소성이 있다.

# 평사리오토캠핑장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심춘(尋春)을 위해 남도로 여행 왔다. 광양 매화마을에 꽃구름 피었다는 소식 듣고 홍씨네 매화밭을 찾았다. 6년 만의 재방문이다. 이제는 완전히 기업이 되어버린 홍씨네 매화밭에는 봄소식 그리워 찾아온 사람들로 넘쳤다. 매화마을에서 섬진강 방향을 조망했다. 강 건너 구제봉 우뚝하다. 좌측 뒤로는 악양벌 뒤로 형제봉이 보인다.

 
 
 
# 매화꽃 향기에 취해 한 나절 노닐다가 섬진강 건너 평사리 공원 야영장을 찾았다. 이곳에 야영장이 생긴 줄은 최근에 알았다. 하동군에서 운영하는 야영장이라 가격은 착하다. 다만 시설은 비교적 낙후한 편이다. 관리사무실에 체크인 확인하고 입장했다.

 
 
 
# 입구 쪽에는 넓은 잔디밭 야영장이 있다. 이곳은 텐트 야영장이다. 총 25면의 사이트가 준비되어 있다. 이날은 섬진강 종주에 나선 듯한 자전거 족 몇 팀이 야영하고 있었다.

 
 
 
#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소나무 한 그루 나오고 그 뒤로 오토 야영장이 양 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 우측 사이트는 19번 도로 바로 곁에 있어 자동차 소리는 감수해야 한다.

 
 
# 좌측 사이트는 섬진강 조망이 열려 있다. 다만 강변을 바라보고 있어 늘 강풍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화장실과 개수대, 샤워장이 있다. 전체적으로 시설이 좋지 못하다. 특히 샤워실은 이동식 간이 건물이라 영 불편했다.

 
 
# 섬진강 쪽 조망은 멋지다. 강 건너의 산줄기는 호남정맥 쫓비산 일대의 산 흐름이다.

 
 
 
# 남쪽 광양 방향 조망. 섬진강은 이 땅에 남은 거의 유일의 모래톱이 살아 있는 자연 하천이다. 강 속으로 길게 걸어 들어가 강바닥을 발로 긁으면 굵은 재첩이 쏟아진다.

 
 
# 북쪽 구례 방면 조망. 평일인데도 꽤 여러 팀이 야영하고 있다.

 
 
 
# 우리는 입구 쪽 53번 사이트를 예약했다. 이곳은 데크가 없이 잔디밭에 그냥 설영하게 되어 있다. 이 시기 잔디는 말라 부서진 상태다. 작게 부서진 잔디가 정전기 일으킨 텐트에 달라붙어 아주 불편했다.
 
우리가 설영 하는 도중 옆집 52번에 이웃이 입주했다. 우리 또래의 부부가 백패킹 모드로 설영 했다. 아마 인근 지리산 산행을 했거나 둘레길을 걸은 모양이다. 

 
 
 
# 섬진강 강바람이 아주 거세다. 가이 라인을 견고하게 설치해서 바람에 대비했다.

 
 
 
# 비교적 일찍 설영을 마쳐 시간이 널널했다. 강둑을 따라 산책하고 책도 좀 읽고 느긋하게 휴식했다.

 
 
 
# 이윽고 땅거미 내려 저녁상을 차렸다. 오늘 마눌의 준비는 오리 훈제다. 이틀째 야영이라 상차림이 가벼워졌다.

 
 
 
# 나는 막걸리 한 잔이면 모든 것은 해결된다. 아주 맛나게 먹고 마셨다.

 
 
 
# 바람막이 챙겨 입고 야간 산책을 했다. 봄은 봄이다. 강바람 강하게 불었지만 덜덜 떨리는 추위는 아니다. 오랜만에 찾은 섬진강이라 오래 소요하며 거닐었다. 
 
이후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국도변에 위치한 야영장이라 자동차 소리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보다는 견딜만했다. 편안하게 잘 잤다.

 
 
 
# 야외에서는 일찍 눈이 떠진다. 가볍게 몸 풀 겸 아침 산책을 했다. 간밤 바람 때문에 고생 좀 하는 것 같았던 텐트 야영팀들은 상기 밤중이다.

 
 
 
# 저 팀은 간밤에 리어카를 세워 바람을 막고 있었다.

 
 
 
# 악양의 진산 형제봉이 우뚝하다. 저 산 좌측 아래에 고소산성이 있고 정상에는 활공장이 있다. 형제봉 정상 활공장에서의 야영을 오래전부터 계획했는데 아직 못하고 있다. 워낙 먼 동네라 그렇다.

 
 
 
# 누룽지 끓여 가볍게 아침 식사를 마쳤다.

 
 
 
# 짐 정리 후 다시 한번 주변 산책.

 
 
 
# 이후 악양벌 건너 평사리 마을 구경을 갔다. 악양벌에 들어서자 형제봉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무거운 박배낭 메고 저 산 정상에 설 날을 다시 그려본다.

 
 
 
# 토지의 흔적을 더듬어 평사리를 찾았다. 그런데 평사리는 소설의 고향이 아니라 관광과 접객의 고향이 되어 있다. 집집마다 비슷하여 특별한 상차림 없어 보이는 식당과 찻집, 노점들이 즐비하고 호객하는 소리 겹쳐 들렸다.

 
 
 
# 입장료까지 받고 있었다. 대충 한 바퀴 둘러보고 말았다. 기분 씁쓸했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관광지가 아니라 토지의 내용을 스토리로 풀어내는 구성이 필요해 보였다. 최참판댁만 만들어 입장료 받을 것이 아니라 월선네, 용이네, 임이네 등등의 흔적과 스토리를 형상화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입장료와 천편일률적인 상가 풍경, 시끄러운 호객소리에 기분이 상해 정작 박경리 문학관을 보지도 않고 내려와 버렸다. 쩝...! 다음을 기약해 본다.

 
 
 
# 악양 들판이 넓기는 하다.

 
 
# 악양 들판 초입에 있는 동정호를 찾았다. 많고 많은 이름 중에 동정호라 지은 이유가 뭘까? 동정호는 뙤국 호남성에 있는 그 나라 제2의 담수호인데 말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뙤국의 동정호는 호남성 악양지방에 있는 호수다. 결국 이곳 악양이라는 이름도 뙤국의 영향을 받은 것인 모양이다. 그래서 이렇게 작은 자연습지 호수를 정비해 이름조차 동정호라 베낀 듯하다. 제발 쫌~ 부끄러운 줄 알자! 독창적으로 좀 하자! 머리도 좀 쓰고!

 
 
 
# 씁쓸한 마음 안고 한 바퀴 돌아보았다.

 
 
 
# 그렇다면 이 정자의 이름도 악양루(岳陽樓) 일 터이다. 베끼려면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 한 구절도 적어놓지 그랬냐?
"昔聞洞庭水今上岳陽樓 예로부터 듣건 동정호수 오늘에야 악양루에 오르네..."

 
 
 
# 악양 들판의 상징 부부송을 찾아갔다. 매화밭에 둘러 싸여 있다.

 
 
# 하얀 매화꽃이 검푸른 부부송을 감싸고 있어 멋스러움을 더해준다. 아마도 좌측이 남편 나무이고 우측이 아내 나무인 듯하다. 토지 주인공의 이름을 따 서희 길상 나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토지에서 서희와 길상의 이야기보다는 용이와 월선의 가슴 아픈 사랑을 더 절절하게 느꼈던 사람이다. 맺어지지 못한 첫사랑, 자꾸만 어긋나기만 하는 사랑, 그러면서도 돌아서지 못하는 사랑... 그래서 나는 저 부부송을 '서희 길상 나무'가 아니라 '용이와 월선 소나무'라 부르고 싶다.

 
 
 
# 매화 향기 몸에 묻힌 채 부부송 가까이 갔다. 두 나무 번갈아 안으며 용이와 월선의 가슴 아픈 사랑을 되새겨 보았다. 

 
 
# 평사리 마을에서 어수선했던 마음이 악양벌 부부송과 함께 하며 차분히 가라앉았다.

 
 
 
# 그런 여운 안고 평사리 여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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