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세번째(광덕고개~도성고개)
지금 우리 부부는 함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縱走) 중이다. 작년 봄 지리산(智異山)을 출발하여 해를 넘겼고 올해도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어 어느새 가을이다.
그동안 우리의 발길은 지리산권(智異山圈), 덕유산권(德裕山圈), 속리산권(俗離山圈), 월악산권(月岳山圈), 소백산권(小白山圈), 태백산권(太白山圈), 오대산권(五臺山圈)을 거쳐 설악산권(雪嶽山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발걸음 꾸준히 누적되었고 그만큼 지도 위를 걸은 흔적도 길어졌다. 흔적 길어졌으니 초보 산꾼들의 허벅지에도 힘이 좀 생겼고 산길 파악하는 능력도 조금은 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누가 보더라도 제법 산꾼의 냄새가 나고 눈빛도 산을 닮아 제법 그윽해졌다.
그러한 자칭타칭(自稱他稱)의 산꾼으로 자부심 높았는데 그것을 부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산행 도중에 뜻밖의 질병으로 산행을 멈춰야 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아직은 산 앞에 겸손하라는 일이고 아직은 멀었다는 뜻인 모양이다.
지난 9월 첫 주말에 같은 부부 산꾼인 해리님 내외와 야영 일정으로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다. 조침령을 출발해 단목령까지 걷고 산 아래로 내려가 야영한 후 점봉산을 넘어 한계령으로 갈 예정이었다.
일단 첫날 구간은 평소처럼 별일 없이 즐겁게 잘 끝냈다. 단목령 계곡에서 얼음같이 차가운 계곡물로 알탕까지 즐긴 후 곰배령 마을로 하산하였다.
그리고 방태산 휴양림에 텐트 치고 그곳에서 합류한 대명님과 막걸리 나누며 꽤 즐거운 숲속의 밤을 보냈다. 즐거운 산행과 야영, 그리고 동무들과의 연회는 산꾼들만이 즐길 수 있는 행복이다. 그런 행복한 밤을 보내고 뒷날 아침을 맞았는데, 갑자기 마눌이 갑자기 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가지고 다니는 응급약과 민간 처방 등 여러 조치를 했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부득이 자동차로 인근 고장을 뒤져 약국에서 약을 사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때문에 단목령 아래 설피밭 삼거리에서 눈물을 머금고 우리 부부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동무들 산행하러 단목령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보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하지만 마눌의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평소 대단히 건강한 사람인데 느닷없이 저런 통증을 호소하니 놀랍기도 하고 방법을 찾기도 어려웠다. 뒷날 병원에서 '역류성 식도염'이란 진단을 받고 투약으로 치료를 했다. 3일간 약을 먹었지만, 별 차도가 없어서 다시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위한 내시경 예약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금요일. 사무실에 있는데 마눌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많이 아프다고 한다. 전화 끊고 급히 집으로 달려갔더니 얼마나 아픈지 혼자서 울면서 뒹굴고 있다. 얼른 차에 태우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우리는 그동안 비교적 건강한 삶을 살았다. 때문에 응급실(應急室)에 올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종합병원 응급실은 그야말로 아우성 그 자체였다. 원래 응급실이란 것이 응급한 사람들의 최전선(最前線)인 까닭이다. 삼사십 분을 기다린 후에야 피로에 지친 젊은 의사의 문진을 겨우 받을 수 있었고, 각종 검사로 아픈 사람을 또 한 번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도 일단 검사 결과 큰 질병의 흔적은 없고 자세한 것은 예약한 날에 내시경을 제대로 해야만 알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일련의 치료를 받고서야 겨우 통증이 좀 가라앉고 링거 맞으며 한 잠 재웠더니 견딜만 하다고 했다.
잠든 마눌 곁에서 지키며 간호했다. 그녀가 자는 동안 지켜본 종합병원의 응급실은 병원 가기를 지옥 문턱 넘기쯤으로 생각하는 나의 혼을 쏙 빼놓기에 알맞았다. 이곳저곳에서 고함과 아우성이 난무하고 수시로 위급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연신 들이닥치는 구급차에서 온갖 환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술 먹고 길에서 자다가 실려 온 젊은 여인, 자전거 타다가 차와 충돌해서 갈비뼈가 부러진 외국인, 아프다고 신랑이며 간호사며 내도록 못살게 악쓰며 들들 볶다가 진통제 맞고 좀 나아지자 이제는 배고프다고 해서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든 담석증 걸린 새댁, 아프다는 말은 못하고 몇 시간 동안 울기만 하던 두살배기 꼬맹이, 한쪽 침상에서는 사고로 실려 온 사람이 심폐소생술을 받더니 결국 운명을 달리했다. 뒤늦게 달려 온 가족들은 느닷없는 날벼락에 울음바다를 이루고...
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 세상 한쪽에서는 갑자기 찾아 온 질병이나 사고로 편안한 삶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삶의 끝단에서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들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삶의 경계선을 걷는 이들이 많았다.
놀라웠다. 충격이었다. 새로운 각성(覺醒)이었다. 그리하여 건강에 대한 다짐이 새로이 생기게 되었다. 모두들 건강해야겠다. 병원 갈 일 없이 건강하고 안락하게 질 높은 삶을 살아야 하지않겠는가!
그나저나 이래서는 이번 주도 백두대간 나서기는 또 틀렸다. 우얄꼬~~
가을! 억새의 江에서 헤엄치다!!!
구간 : 한북정맥 제 3구간(광덕고개 ~ 도성고개) 거리 : 구간거리(21.7 km), 누적거리(45.3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6년 9월 10일, 해의 날 세부내용 : 광덕고개(06:35) ~ 670봉 ~ 전망대 ~ 762봉 ~ 770봉(07:45) ~ 870봉 ~ 백운산(08:16) ~ 890봉 ~ 삼각봉(08:57) ~ 850봉 ~ 도마치봉(09:30) ~ 샘터 ~ 도마봉/870봉(10:05) ~ 방화선 ~ 삼거리 ~ 삼거리 ~ 헬기장(11:28) ~ 헬리포트5 ~ 헬리포트4 ~ 신로봉 ~ 신로령(11:50) ~ 헬리포트3 ~ 휴양림갈림길 ~ 1102봉/헬리포트2(12:35) ~ 헬리포트1 ~ 국망봉(13:25)/점심 및 휴식 ~ 1150봉/H,안테나 ~ 잘루목이 갈림길 ~ 1130봉 ~ 개이빨산(14:25) ~ 용수목 갈림길 ~ 무명봉1,2,3,4 ~ 민드기봉(15:25)/H ~ 철쭉군락 ~ 방화선 ~ 폐헬기장 ~ 기관총진지 ~ 도성고개(16:45) ~ 불땅계곡 거쳐 연곡리로 탈출/구담사 ~ 군부대 ~ 47번도로(17:45).
총 소요시간 11시간 10분(접속시간 1시간 포함). 만보계 기준 42,668보(접속거리 포함).
9월 9일. 쯍꿔사람들은 이 날을 '중양절(重陽節)'이라 부르며 귀한 날이라 여기고 즐긴다. 중양절이란 양(陽)이 겹치는 날이란 뜻이다. 중국인들에게 9란 숫자는 양(陽)을 상징한다. 이것이 둘로 겹쳤으니 양기(陽氣)가 가장 센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양력 9월 9일의 대한민국은 전국이 오락가락하는 비 소식에 태양이 숨어버려 양기(陽氣)를 느끼기는 힘들다. 그래도 백두대간 졸업을 앞둔 대간꾼들이 갑자기 많이 늘어나서 모두들 얼마 남지 않은 백두대간의 마지막 발자국을 찍고자 너도나도 강원도로 몰리고 있다.
마눌 몸 상태가 좋아지면 대간 들어 가자고 할려고 하루종일 마눌 상태를 살펴보지만, 도통 나을 기미는 없고 서로 쳐다보며 미안해만 했다. 자기 때문에 대간 못 들어가서 마눌은 미안해 하고, 아픈 마눌 두고 대간 걱정이나 하고 있자니 난 그게 또 미안하고...
그래도 간만에 느긋하게 집에서 토요일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뒷날 마눌은 산보다 더 좋아하는 교회에 가기로 하고, 난 그동안 미뤄뒀던 한북정맥 한 구간 하기로 했다.
백운산/白雲山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백운산은 박달봉과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광덕산등의 크고 작은 연봉들이 어우러져 고산준령을 이루고 있다. 기암괴석과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옥수가 어우러저 취선대 등 절경이 사계절 모두 독특한 비경과 흥룡사란 이름난 절이 있다. 산행 기점이 되기도 하는 광덕고개에서 우측은 백운산, 좌측은 광덕산으로 구분이 되며,겨울철 설경이 뛰어나고 산세도 아기자기하여 찾는 이가 많다.겨울철 산행의 백미인 설경도 장관이다. 백운산은 수려한 백운계곡으로 더욱 유명하다. 1967년 교통부에서 관광지로 지정한 백운동계곡은 높이 904m의 백운산 꼭대기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모여 이룬 골짜기이다. 예로부터 영평 8경 중의 하나인 선유담과 연결되었으며, 계곡의 길이는 무려 10km나 되며, 연못과 기암괴석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동양화를 연상시킬 만큼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이 곳에는 신라시대 창건했다는 흥룡사가 있으며, 흥룡사 뒤쪽에는 약 1Km의 선유담 비경이 펼쳐져 있다. 계곡의 길이가 무려 10Km나 되며 연못과 기암 괴석이 한데 어울려 절묘한 아름다움을 빚어 내고 있다.
도마치봉/道馬峙峰
높이 937m. 이 산은 廣州山脈 줄기로 포천시의 동부를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 내린다. 도마치계곡이 통제되어 백운산, 신로령, 국망봉 길과 興龍寺가 있는 백운동계곡을 택한다. 산세와 산정이 닮아 광의의 백운산으로 많이 알고 있다. 솔숲과 비탈길을 오르면 계곡 너머로 朴達峰(800m)과 廣德山(1,046m)이 다가온다. 이동면 도평3리 도마치는 궁예가 왕건과의 명성산(鳴聲山:923m) 전투에서 패하여 도망할 때 이곳 산길이 험난하여 말에서 내려 끌고갔다 하여 '도마치'라 부른다는 전설이 있다. 흥룡봉 동쪽 능선을 내려와 도마치봉을 탈 수 있다. 선유담(仙遊潭)은 영평8경의 4경으로 양사언이 암벽에 글씨를 남긴 명소다. 솔숲 빽빽한 능선안부가 백운계곡의 오르막과 만나는 곳이다. 산정에서는 앞을 가리는 큰 나무가 없는 도마치계곡이 잘 보여도 금지구역이다. 도마치봉에서는 국망봉에서 가리산(加里山:774m)으로, 신로령에서 국망봉으로 뻗은 능선이 잘 보인다. 멀리 영평천(永平川)이 한탄강으로 합류하고 있다. 가평 북면의 도마치계곡 역시 가평8경의 5경인 적목용소(赤木龍沼)의 비경을 감추고 있다. 환경청이 고시한 경기도 유일의 청정지역으로 열목어가 서식하는 고시피계곡, 사냥바위골, 해근이골 등이 있는 깊은 계곡에는 가평의 나이아가라폭포라는 무주채[無主峙] 폭포가 가평천의 원류인 적목천을 흐른다.
신로봉/新路峰
신로봉은 흔히 국망봉과 함께 언급되는 산으로 국망봉에서 백운산방향으로 3km정도 북쪽에 있는 높이 999m의 산이다. 신로봉이란 국망봉으로 가는 길목인 한북정맥상의 신로령(안부)옆의 두리뭉실한 바위로 된 봉우리를 말한다. 신로령 안부에 올라서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면 국망봉이 3km 떨어진 곳에 있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바로 보이는 능선봉을 오르면 신로봉이다. 신로봉이 하나의 코스로서 완벽하다고 할만한 이유는 바로 신로봉에서 서쪽으로 가리산으로 뻗은 능선때문이다. 이 능선은 암릉과 단애가 연이어지고 단애와 암릉위에 노송이 그림처럼 서 있는 국망봉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선이다. 암릉에서 장암계곡으로 뻗은 능선위에 올라가 국망봉을 조망하면 국망봉에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었던가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국망봉/國望峰
높이 1,168m.국망봉은 포천군 이동면과 가평군 북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경기도 내에서는 화악산(1468), 명지산(1267)에 이어서 3번째로 높다. 또한 국망봉은 한북정맥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이다. 즉, 수피령을 넘어온 한북정맥은 복계산(1057)-복주산(1152)-회목봉(1027)-광덕산(1046)-백운산(904)-도마치봉(936)-신로봉(999)에 이어 국망봉을 일으킨다. 계속하여 한북정맥은 개이빨산(1120)-민드기봉(1023)-강씨봉(830)-청계산(849)-길매봉(735)-원통산(567)-운악산(935)으로 이어진다. 그 중 국망봉은 산정에서의 조망이 매우 빼어난 산으로 알려져 있어 사시사철 등산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정상부가 유난히 뾰족하게 솟아있어 정상에 서면 그야말로 사방이 막힘 없이 전개되고 있는 탓이다. 국망봉은 암봉이 거의 없는 육산으로 코스는 험하지 않으나 해발이 높아 산행이 쉽지만은 않은 산이다. 주능선의 길이만도 15㎞에 이를 정도로 산세가 웅장해서 일명 "경기의 지리산"이라고도 불린다. 태봉국왕 궁예와 부하장수이던 왕건이 싸우게 되었을 때 궁예왕의 부인 강씨가 현재의 강씨봉으로 피난을 와서 철원을 바라 보았다고 하여 국망봉이라 하였다는 전설도 있고, 궁예가 태봉국을 세우고 철원에 도읍을 정한 뒤 국기를 굳혀가는 과정에서 날로 폭정이 심해지자 그의 부인 강씨는 한사코 왕에게 간언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고 오히려 부인 강씨를 강씨봉 아래 마을로 귀양 보냈다. 그 후 왕건에 패한 궁예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강씨를 찾았다. 그러나 부인 강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 후 궁예가 회한에 잠겨 국망봉에 올라 도성 철원을 바라 보았다 하여 국망봉이라는 산 이름이 붙여졌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개이빨산/犬齒峰
높이 1110 M.경기도 포천군 이동면과 가평군 북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 국망봉(國望峰.1,168m)과 강씨봉(姜氏峰.830m) 사이에 위치해 있다. 멀리서 이 산 정상부를 바라보면 정상 일원의 능선 10여개가 톱니처럼 돌출돼 있어 마치 개이빨을 연상케해 이 산의 이름을 개이빨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산을 일명 견치산(犬齒山), 또는 견아산(犬牙山)이라 부른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한북정맥 제 3 구간 광덕고개 ~ 도성고개 개념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9월 10일 해의 날. 새벽 3시 40분에 기상했다. 가볍게 아침 먹고 산행준비를 했다. 이것 저것 챙겨 집을 나서니 4시 30분. 평촌으로 가 외곽 순환고속도로 타고 성남, 구리 거쳐 퇴계원 나들목으로 나갔다. 다시 안개 자욱한 47번 국도 타고 일동, 이동을 거쳐 달렸다. 자욱한 새벽 안개 때문에 운전이 조심스러운데, 언뜻언뜻 우측으로 한북정맥의 산줄기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개이빨산의 뾰족뾰족한 봉우리들이 오늘 이 길 잘 한 번 걸어봐라 한다.
도평 삼거리를 지나 구불구불한 광덕고갯길을 힘겹게 올라갔다. 광덕고개는 '캐러멜 고개'라고도 한다. 이 이름은 한국전쟁 당시 험하고 구불구불한 이 고개를 넘는 미군 지프 운전병이 피로에 지쳐 졸 때 상관이 운전병에게 캐러멜을 건네 주었다해 붙여진 별명이다.
"무슨 대단한 유래나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캐러멜을 줬다고 캐러멜고개라니? 그렇다면 당시 캐러멜이 아니고 쵸콜릿을 줬으면 쵸콜릿고개였겠네?" 별 의미없는 이름 유래에 실소가 나온다. 고개를 오르는 도중에 날이 밝아온다. 어느새 밤이 길어져서 6시가 넘어서야 해가 떠오른다.
이른 아침의 광덕고개는 인적 없이 고요한데 주차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휴게소 마당은 좁고 그나마 낮이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좌판을 온통 벌려 놓기 때문에 차를 세워 둘 수가 없다. 아랫쪽에 넓은 주차공간이 있지만 그곳 역시 시장터로 변하기 때문에 주차불가다. 결국 빙빙 돌다 아랫쪽 식당가 한쪽에 주차하고 고개를 걸어 올라 산행을 시작했다.
반팔 짚티에 토시를 차고 출발했는데, 기온이 너무 낮고 바람이 차가워 곧바로 윈드브레이크를 꺼내 입었다. 기온을 측정해보니 7도다. 불과 일주일만에 가을이 성큼 다가 왔다. 어느새 계절이 이렇게 깊어졌다. 광덕고개 휴게소 건물 뒷편 철계단에서 한북정맥 3구간의 산행을 시작했다.(06:35)
# 광덕고개는 오늘도 곰돌이가 지키고 있다. # 휴게소 뒷편 산줄기가 3구간 들머리다. # 철계단을 올라 오늘 산행을 시작했다. 철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뒤에 매표소가 있다. 평소에는 입장료를 받는지 잘 모르지만 시간이 일러서인지 지키는 사람은 없다.
잠시 가파른 돌길을 올라 마루금에 오르고 조금씩 고도를 높이며 나아갔다. 몇 분 후 '산악구조 백운2/광덕고개 0.3km,백운산정상 3.27km' 라고 적힌 이정목이 나온다. 이 이정목은 백운산 정상까지 300m 단위로 계속 등장한다.
선답자의 개념도에는 광덕고개에서 백운산까지 3.0km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정목과는 약간의 차이가 난다. 선답자가 지도의 거리를 측정했다고 하니 현지 이정목이 좀 더 정확할 듯하다. 아래로 내려서 서너 차례 가볍게 오르내렸다. 잠시 후 '히어리' 안내판이 나온다.
# 300m 단위로 세워져 있는 이정목.
# 봄철에 꽃을 피우는 녀석인지라 지금 꽃구경은 못한다.
안부에서 한 차례 위로 밀어 올려 고도계에 660m로 찍히는 무명봉 하나를 넘었다. 광덕고개에서 고도계를 세팅하지 않아 신뢰성은 없는 수치다. 아래로 내려 다시 위로 오르고 이번엔 제대로 한번 가파르게 밀어올렸다. 정상은 넓은 공터가 있는 '전망대'이다.(07:05)
# 가야 할 백운산 정상.
# 지나온 길. 광덕고개와 그 너머의 광덕산. 전망대에서는 조망이 좋아서 지나온 길과 가야 할 백운산 정상까지의 산줄기가 한 눈에 조망된다. 바람이 마루금을 넘어 강하게 불고 기온이 낮아 아주 춥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온다. 곧 겨울이 될 것 같은 그런 분위기다.
바람이 오른쪽 백운계곡 쪽에서 왼쪽으로 마루금을 넘어 불어와서 오른쪽 뺨이 얼얼하고 귀가 시렵다. 얼른 자전거 탈때 사용하는 마스크를 꺼내 착용했다. 바로 위로 조금 오르면 공터와 개인호가 있는 '762봉'이 나온다.(07:11)
762봉엔 '백운 5 구조/ 백운산 2km' 이정목이 서 있다. 아래로 떨어져 내려 안부에 이르고 편하고 길게 진행했다. 점점 고도를 낮춰가며 길게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꺾어 고도를 더욱 낮춰가며 진행했다. 길게 낮춘 후 위로 한차례 올라 '백운 6 구조 이정목'을 지나고, 곧바로 위로 쎄게 밀어 올린다.
안부를 가다가 이후 계단식으로 고도를 높였다. 그러다 한차례 위로 밀어올려 바위군(群)이 있는 '770봉'에 이른다.(07:45). 다시 한차례 찐하게 밀어올려 '공터가 있는 무명봉'에 오른다. 고도계에 820으로 찍히지만 신뢰성은 없다. 숲 너머로 백운산이 올려다 보인다.
아래로 길게 떨어져 내려 안부에 이르고 다시 제법 가파르게 치고 오른다. 헉헉대며 올라가니 경기소방청에서 위험 구간이라는 경고판을 세워 두었다. 암릉구간이라 동절기엔 위험지대로 바뀌는 모양이다.
암릉구간을 지나고 하얀 로프가 설치된 내리막을 내렸다. 잠시 아래로 내렸다가 몇차례 오르내린 후 한바탕 위로 밀어 올리니 '백운산 정상'이 나온다. 08:16.
# 백운산 전 위험구간의 로프. # 백운산 등로 따라 많이 피어 있던 며느리 밥풀. # 등골나물. # 붉은 빛이 강렬한 개여뀌. # 노란 짚신나물. 짚신과는 이미지가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 둥근 이질풀. # 헬기장이 있는 백운산 정상. # 광덕산 정상의 하얀 축구공이 건너다 보인다. 백운산(白雲山)이란 이름은 참 흔하다. 전국 곳곳에 백운이라는 이름을 단 산이 산재했다. 무릇 산이란 것이 흔구름 걸려있기 마련인 까닭이다. 백운산 정상엔 넓은 헬기장이 있고 지나온 길에 대한 조망도 훌륭하다. 백운산에서 처음으로 고도계를 세팅했다. 지도에는 904.4m로 나오는데 고도계엔 865m 로 찍힌다.
간식 먹고 20여 분 충분히 휴식한 후 출발했다.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가 안부를 만나 편하게 진행했다. 몇 차례 오르내리며 진행하다가 길게 밀어올리니 '삼각봉 정상'이 나온다.(08:57)
# 삼각봉 정상.
삼각봉엔 정상석은 없고 119 안내판과 '백운산, 도마치봉 각각 1km'라고 적힌 이정목이 서 있다. 건너편 백운산 정상에서 누군가 계속 고함을 지르고 있다.
"삼각봉은 왜 삼각봉이란 이름을 얻었을까? 삼각형 아닌 산이 있던가?" 이런 의문은 정상을 내려 오는 순간 바로 풀린다. 삼각봉 하산길은 아주 가파른 내리막이다. 내리막 가파르니 멀리서 보면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형상을 하고 있을 터였다.
가파른 내리막을 따라 하얀 로프를 설치해 두었지만, 간밤에 내린 비로 인하여 아주 미끄럽다. 내리막 중간에 시야가 확보되는 곳이 나오고 가야 할 능선과 도마치봉이 우뚝 서 있다. 길고 가파르게 내려 안부에 이르고 마루금을 편하게 오르내리며 진행하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고도를 낮춰 가는 추세다.
그러다 무명봉 하나를 넘고 다시 위로 밀어올려 '850봉'을 넘는다. 그곳에서 안부를 편하게 걷다가 위로 한차례 쎄게 밀어올린다. 중간에 군 벙커 두 개를 지나고 낑낑 올라가니 '도마치봉'이 나온다.(09:30)
# 아주 미끄럽고 위험한 삼각봉 하산길.
# 850봉과 너머의 도마치봉. # 도마치봉 정상. # 구절초. 구절초라는 이름은 한방 약재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절초 줄기나 잎이 부인병이나 위장병 치료에 효험이 있는데, 특히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채취한 것이 약효가 좋다 하여 구절초라고 한다.
# 이슬을 머금고 있는 벌개미취. # 미국쑥부쟁이(?) 개망초처럼 작은 놈이다.
# 가야 할 정맥길. 저 멀리 국망봉이 보인다. 도마치봉은 해발 937m이다. 정상엔 망초와 벌개미취가 가득 피어있는 헬기장이 있다. 도마치(道馬峙)는 궁예가 산길이 험해 말에서 내려 끌고 갔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라는데, 한자 이름과 바로 부합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말에서 내려 걸어야 할 산길이 어디 이곳 뿐이었겠는가? 좀더 그럴듯한 전설이나 얘기꺼리가 있을텐데...
정상에서는 조망이 좋아 가야 할 정맥길이 한 눈에 조망된다. 저 멀리 오늘 구간의 주봉인 국망봉과 그곳에 이르는 뾰족뾰족한 봉우리들이 위압적이다.
잠시 한숨 돌린 후 출발했다. 곧바로 길고 가파르게 떨어져 내린다. 길 따라 계속 내려 가는데 주변 풍광이 조금 이상하다. "우측 위로 산 마루금이 지나는데 자꾸만 산의 사면따라 계곡쪽으로 내려가네?" 그러나 잠시 후 '샘터'를 만나 그 의문은 풀린다.
# 도마치봉 아래 샘터.
# 가늘지만 꾸준히 물이 나오고 있다. # 고마리. 샘터는 서늘한 기운이 가득하고 습한 환경때문인지 물봉선과 고마리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주변엔 텐트 한 동 칠 정도의 공터도 있다. 샘물은 가늘지만 꾸준히 졸졸 흘러 나오고 있다. 물맛은 시원하고 좋은 편이다.
샘터 바로 아래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위쪽 길에 표지기들이 매달려 있어 그 길로 진행했다. 산의 사면을 휘감아 돌아 능선 마루금에 복귀하고 좀 전에 갈라졌던 갈림길과 다시 합류했다. 결국 어느 길로 가더라도 문제없단 얘기다.
아래로 더 내려 안부에서 곧바로 작은 무명봉 하나를 넘고 곧 무명봉 하나를 더 넘어 오르막 기울기가 점점 높아진다. 수풀이 우거진 곳이다. 등로가 잘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수풀은 간밤의 빗물을 잔뜩 매달고 있다가 좍좍 뿌린다. 전신이 순식간에 흠뻑 젖어버렸다. 축축하게 젖어 낑낑 위로 올라가니 넓은 헬기장이 있는 '도마봉'이 나온다.(10:05)
# 수풀이 우거져 등로를 막고 있다.
# 도마봉. 도마봉은 선답자의 개념도에는 등장하지 않는 산명(山名)이다. 아마도 개념도상 삼거리로 표현된 '870봉'과 같은 산인가 보다. 도마봉은 사방으로 조망이 툭 트여 시원한 산이다.
돌아보면 지나온 도마치봉의 암릉 구간이, 앞으로는 가야 할 국망봉까지의 멋진 능선이, 우측으로는 포천 이동 쪽의 인간세(人間世)가, 좌측으로는 도마치고개를 넘어 이어지는 산줄기가 멀리 군 시설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화악산까지 이어져 있다. 경치가 너무 좋아 계속 셔트를 누른다.
# 돌아본 도마치봉.
# 저렇게 멋진 암봉을 달고 있다. # 국망봉에 이르는 가야 할 정맥길. # 정맥에서 좌측으로 갈라져 도마치 고개를 넘어 화악산으로 이르는 산줄기. # 정상 헬기장 주변엔 억새들이 가을볕에 익어 가고 있다. # 오이풀. # 국망봉까지는 6.09km를 가야 한다. 도마봉 정상은 광덕고개에서 이곳까지 올 때와는 달리 숲을 벗어나 노출되어 있다. 이후의 정맥길 역시 방화선이 끝까지 길게 이어지므로 햇볕에 노출된 채 걸어야 했다. 혹서기에는 뙤약볕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한 구간이다.
백두대간의 태백산에서 긴 방화선을 만났었고, 대관령 가기 전 석두봉 가는 길에도 넓은 방화선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곳의 방화선들은 대간길 진행에 도움이 되는 편안한 길들이었지만, 이곳 한북의 방화선은 억새가 키높이로 자라고 무성하여 걷기가 힘들고 불편했다. 도마봉 정상을 나와 잠시 노출된 산 마루금을 따라 걷다가 아래로 급하게 떨어져 내린다.
# 잠시 노출된 마루금을 걷는다. 국망봉에 이르는 정맥길.
# 좌측의 도마치고개쪽 계곡. # 방화선이 끝까지 쭈욱 이어진다. # 방화선엔 키높이로 자란 억새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 가파르게 내려와서 언덕을 올려다 본 모습. 경사가 아주 가파르고 빗물에 젖어 미끄럽다. 스틱이 없다면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 와야 할 것 같다. 흙이 검은 진흙이어서 스틱으로 짚고 내려 와도 쭉~쭉~ 미끄러진다.
가파른 언덕을 다 내려와서는 본격적으로 방화선을 따라 진행했다. 키높이로 자란 억새들이 앞을 가로 막아 스틱을 앞세우고 좌우로 팔을 벌려 억새를 재끼며 앞으로 진행해야 했다.
한참 그렇게 나아가자니 수영 영법 중 평영의 손 자세처럼 느껴진다. "아, 내가 지금 억새의 강줄기를 헤엄쳐 나가고 있구나!" 낚시꾼 시절부터 사용해온 '강사랑물사랑'이란 닉네임이 오늘처럼 어울리는 날도 없다.
그러나 그런 낭만적인 생각도 잠시, 발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으니 아주 불안하다.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뱀이다. 이곳 방화선엔 각종 풀벌레가 많고 그넘들을 먹으려고 개구리들이 모일 것이고 그럼 당연히 뱀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게다가 간밤까지 비가 내렸고 따뜻한 햇볕아래 몸 말리기 좋아하는 뱀들이 억새밭으로 나들이 나올 가능성도 커 보인다. 손으로 억새를 헤칠 때마다 시력을 집중해서 발 아래를 살폈다. 제발 뱀이 나타나지 않기만 바라며...
어떤 곳은 가끔 등로 구분이 전혀 안돼서 길 찾아 헤매게 된다. 억새들은 몇 주만 더 있으면 몸을 부풀릴 모양이다. 간간이 성급한 넘들은 먼저 하얀 속살을 터뜨리고 있다.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억새줄기는 보기엔 이쁘고 좋지만 헤치고 나아 가기에는 너무 힘이 든다.
또한 햇볕에 노출된 억새의 윗부분은 바짝 말라 각종 이물질이 얼굴에 달라 붙어 귀찮게 만들고 아랫쪽은 물기를 듬뿍 머금고 있어 아랫도리가 금방 다시 흠뻑 젖어버렸다. 그렇게 억새 강(江)을 헤엄쳐 나아 가다가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 닿았다.
# 고려 엉겅퀴. 보라색꽃은 촛점잡기가 엄청 어려운데 용케 잡았다.
# 모싯대. # 몇 주만 지나면 이 길이 환상적으로 변할 것 같다. # 성급한 넘들은 벌써 하얀 꽃을 피워 올렸다. # 중간중간 길이 사라져버려 한참 헤매게 만든다.
# 삼거리 이정목. 이정목에는 '국망봉4.97km/ 도마치 2.79km/ 군부대(등산로 없음)'이라고 적혀 있다. 이후로도 계속 방화선을 따라 진행했다. 잔뜩 긴장하여 발 아래를 살피며 억새를 헤치고 나아 가자니 무척 힘이 든다.
잠시후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이른다.(10:51). 이곳도 좌측으로 군부대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갈림길이다. 직진해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다시 길게 억새 강(江)을 따라 헤엄쳐 나갔다. "이 넘의 방화선 참 길기도 하다!"
드디어 방화선이 끝나고 오름 하나를 치고 오른다. 1시간 넘게 억새강을 헤엄쳤다. 이곳 오르막 역시 햇볕에 완전히 노출된 터라 목덜미가 화끈거린다. 한차례 위로 밀어올려 '헬기장'에 오른다.(11:28)
# 방망이 종류인가?
# 황금빛 금마타리. # 분취. # 1년만에 만난 삽주. # 손가락 두 마디 만하게 작은 녀석. 이제 막 알에서 깬 듯하다. # 억새밭 방화선이 끝나고 돌아본 모습. 좌측 도마봉에서 방화선따라 1시간 넘게 걸렸다. 억새만 아니라면 20분 이상은 단축이 가능할 듯. # 국망봉 가는 길의 첫 헬기장. 신로봉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방화선이나 억새밭이 아니라서 걷기는 좋다. 그러나 햇살이 강렬해서 땀이 많이 나고 억새밭에서 각종 이물질이 많이 옷속에 들어와 가렵고 따갑다.
뙤약볕 아래 낑낑 대며 올라 산의 9부 능선쯤에서 갈림길을 만났다. 직진하면 정상을 넘어 가는데, 정상엔 군 콘크리트 벙커가 입을 딱 벌리고 있다. 표지기들이 좌측으로 산을 우회하는 갈림길 쪽에 많이 매달려 있다. 산의 사면을 우회하여 능선과 다시 만나고 잠시 내렸다가 바로 위로 올라가니 '헬리포트 4'가 나온다.
# 신로봉에서 포천 쪽으로 내려가는 능선상의 기묘하게 뾰족한 봉우리.
돌아보니 우회한 벙커가 있는 봉우리의 산꼭대기에도 헬기장이 하나 있다. '헬리포트 5'이다. 전방으론 신로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고 소나무 한 그루가 운치있게 서 있다.
신로봉을 낑낑 치고 올라가는데, 산의 8부 능선쯤에서 좌측으로 우회하게 길이 나 있다. 아무 생각없이 길따라 우회하여 나갔더니 곧바로 '신로령'이 나온다.(11:50). 좀 전의 우회하는 곳에 직진하는 갈림길이 있었나 보다. "못 봤는데... 그냥 길따라 왔는데..." 신로령엔 단체 산행객들이 주저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다.
# 신로봉 오름을 낑낑 올라 갔다. 꼭대기 8부 능선쯤에 좌측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어 무심코 그 길로 갔다.
# 땅겨본 신로봉 정상부. # 신로령. # 신로령에서 뒤쪽을 올라가보니 신로봉이 나온다. 정상 직전에서 무심코 길 따라 우회하는 바람에 신로봉 정상을 지나쳐 와 버렸다. 신로령에서 뒤쪽으로 올라가보니 신로령이 일반적인 산의 정상과는 다른 특이한 모습으로 (꼭 머리부분을 따로 만들어 올려 놓은 듯한) 서 있다. 뙤약볕 아래 두시간 가까이 노출되어 걸어 왔더니 다시 돌아가기가 싫다. 산 아래에서 눈으로만 도장을 찍고 출발했다.
신로령에는 우측으로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고 이정목이 서 있다. '국망봉 2.47km/ 도마치 5.29km/ 휴양림 2.50km' '실루봉, 실루령'이라고 적어 두었다. 어떤 자료에 '신로봉(新路峰)'이라고 적어둔 것을 본 것 같은데 유래에 관련된 자료를 찾을 길이 없다.
봉우리 하나를 힘겹게 치고 올라 정상부에서 우측으로 우회하여 가게 되고, 전방의 암봉도 우회한다. 안부에 내렸다가 위로 치고 올라 가자 금마타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헬리포트 3'이 나온다.(12:05)
# 헬리포트 3.
헬기장을 지나 위로 낑낑 올라 '무명봉' 하나를 치고 오른다. 이 무명봉은 전망이 아주 훌륭하다. 돌아보니 신로봉에서 포천쪽으로 떨어져 내리는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산줄기는 멋진 암릉으로 되어 있어 가히 절경(絶景)이라 할 만하다.
# 신로봉의 암릉구간.
# 포천쪽으로 떨어져 내린다. 전방으론 가야 할 국망봉과 그 앞에 있는 1102봉이 떡 버티고 있다. 그 사이에는 깊은 안부가 있고 그곳이 '휴양림 갈림길'이다. 무명봉에서 아래로 깊게 떨어져 내렸다. 안부에 이르니 '휴양림 갈림길'이란 이정목이 서 있다.
등로 양쪽으로 동그란 개인호가 파여 있어 위에서 바라보면 짐승의 눈 같은 모양이다. 안부에서 곧장 위쪽으로 가파르게 치고 올라야 한다. 길고 가파르게 올라 갔다. 오늘 구간 중 가장 길게 올라 가는 곳이다. 힘이 들었다. 배도 고프고...
중간중간 하산하는 등산객들과 교행하며 헉헉 낑낑 올라 진을 다 뺄 무렵 '헬리포트 2가 있는 1102봉'에 오른다.(12:35) # 신로봉 뒤 무명봉에서 바라 본 모습. 아래 안부가 휴양림 갈림길이고, 방화선을 따라 낑낑 길게 올라가면 1102봉에 오를 수 있다.
# 1102봉 정상. 헬리포트2. # 칼잎 용담. # 꽃잎 속을 들여다 본다. # 수리취. 스치면 아주 아프다. # 투구꽃. # 금강초롱. 오늘 구간의 대세다. 등로 곳곳 지천으로 피어 있다. 1102봉을 올랐지만 국망봉은 아직 저 너머에 있다. 헬기장을 나와 마루금을 길게 진행했다. 이곳 마루금은 암릉길이라 계속적으로 오르내리면서 길게도 간다. 멀다, 멀어!!!
(13:05)'헬리포트 1'에 도착했다. 다시 암릉 마루금을 오르내리다 길게 한바탕 힘들게 밀어 올렸다. 정상 30m 전임을 알리는 이정목이 나오고 이곳에서 아래로 갈김길도 있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 오늘 구간의 주봉인 '국망봉'에 오른다.(13:25) # 국망봉 정상. 국망봉(國望峰)은 고도 1,168m이고 경기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후삼국시대의 풍운아 궁예의 전설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궁예도 처음엔 뜻이 고상하였고 백성과 같이 호흡하는 자애로운 리더쉽을 보였던 인물이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대업(大業)을 이룬 인물들은 모두들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의 세 가지 덕목을 모두 갖췄음을 알 수 있다. 궁예의 경우 천시와 지리는 갖췄으되 인화에는 실패한 지도자다.
궁예가 끝까지 처음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인화(人和)에도 성공하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궁예가 애초에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하고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천명한 만큼 그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구려의 뜻을 이어갔다면 지금 뙤국놈들이 벌이는 동북공정 따윈 없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상엔 단체 산행객들로 시장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모두들 자리를 깔고 술이며 음식이며 푸짐하게 놓고 산상 잔치가 한창이다. 구수한 막걸리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한 잔 얻어 먹었으면 딱 좋으련만, 이런 내 맘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입맛만 다시며 한 쪽 구석에 배낭 내려 놓고 나도 점심식사를 했다. "다음엔 반드시 막걸리를 가져 가야쥐~"
# 가야 할 정맥길, 우측이 견치봉.
# 포천쪽 인간세. # 지나온 길. 좌측 끝에 광덕산의 하얀 축구공과 광덕고갯길이 보인다. #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이 좌측으로 건너다 보인다. 사람이 너무 많고 소란스러워 얼른 식사하고 출발했다.(13:50). 국망봉은 도마치에서 7.76km를 걸어 왔고 다음 포스트인 견치봉까지는 1.30km를 더 가야 한다. 아래로 내렸다가 안부에서 다시 위로 치고 올라 헬기장과 무인 산불감시탑이 있는 '1150봉'에 오른다. '적목리 3.0km(무주채폭포 방향)'이라고 적힌 갈림길 이정목이 서 있다.
# 1150봉.
헬기장을 나와 내리막길로 떨어져 내린다. 내리막 중간에 '잘루목이 갈림길' 이정목이 나온다.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달리 정상이나 안부에서 갈림길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리막 중간에서 갈라진다.
안부에 이르러 편하고 길게 진행하다가 꾸준히 오르내리며 진행했다. 수풀이 우거져 그 기능을 상실해버린 폐핼기장이 있는 '1130봉'을 지나고, 암릉구간을 만나 우회하면서 계속 오르내렸다.
이 능선 마루금은 개이빨산으로 가는 마루금이다. 포천 쪽에서 올려다 보면 개의 이빨처럼 봉우리들이 뾰족뾰족하게 늘어 서 있다고 해서 개이빨산이라고 부르는 곳인데, 그 개가 늙은 개여서 이빨이 다 빠져버렸는지 그다지 가파르지 않게 오르내린다.
아마도 암봉 부분에서는 우회하기 때문에 실제 산마루금에서 오르내림이 적은가 보다. 그래도 마지막 어금니 부분에서는 한바탕 가파르게 밀어올려 '견치봉' 정상에 선다.(14:25) # 견치봉 정상. '개이빨산'이란 이름이 너무 강렬했는지 한자로 음역한 '견치봉'이란 정상석이 서 있다. 이곳 역시 갈림길이 있어 '민둥산 1.70km/ 국망봉 1.30km/ 용수목 3.10km'라고 적힌 이정목이 서 있다.
좌측 용수목 방향에도 누군가 표지기를 몇 개 달아 두었다. 직진하여 꾸준히 마루금을 오르내리게 되는데 이젠 다시 숲속길이라 조망도 없고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중간에 약간 트인 바람골을 발견했다. 평소같으면 거풍을 할텐데 아직도 입에서 하얀 김이 날 정도로 기온이 낮고 바람이 너무 차가워 거풍은 생략햇다. 계속 길게 오르내려 '용수목 갈림길'을 만났다.(14:48)
# 용수목 갈림길. 마루금을 버리고 우측으로 떨어진다.
정맥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90도 꺾여 떨어져 내린다. 안부에 이르러 점점 고도를 낮춰 진행하다가 전방의 무명봉 하나를 치고 올라갔다. 고도계에 1,005가 찍히는 봉우리다.
잠시 우측으로 가다가 좌측으로 길게 떨어져 내렸다. 내리막 중간에 잠시 조망이 트인 곳이 나타나 다음 포스트인 민둥산(민드기봉)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외형으로는 전혀 민둥산스럽지 않다. 정선의 민둥산이 자기 이름을 엉터리로 흉내냈다고 화낼 것 같다.
길게 내려 안부에 이르고 이번에는 위로 올라 무명봉을 하나, 두 개 넘고 아래로 깊고 가파르게 떨어져 내린다. 깊게 떨어져 안부에서 다시 위로 무명봉 하나를 넘고 곧 바로 밀어 올린다.
민둥산 0.3km 남았다는 이정목을 보고는 힘든 것을 잊고자 발걸음을 세기 시작했다. 530까지 세고서야 '민드기봉' 정상에 오른다. 산길에서의 보폭이 60cm 정도 되나 보다.(15:25)
# 민드기봉. 전혀 민둥산으로 보이지 않는다.
# 민드기봉 정상. # 국망봉쪽 전경. # 이곳도 갈림길이 있어 좌측으로 용수목으로 내려 갔다. 민드기봉 정상엔 넓은 헬기장이 있고 억새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아마도 이 정상부 헬기장 때문에 민둥산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아니면 예전엔 정상부가 완전 민둥산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수풀이 우거지게 변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곳에서도 용수목 갈림길이 있고 역시 그 방향으로 표지기들이 몇 개 달려 있다. 정맥길은 우측으로 90도 꺾여 떨어져 내린다.
'철쭉 군락'지가 길게 이어져서 그 속으로 걸어야 했다. 철쭉 터널 속으로 걸어야 하는지라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숙이고 진행해야 했다. 철쭉가지에 긁혀 연신 아야야 소리가 난다.
한참을 걸어 철쭉 숲을 벗어나고 무명봉 하나를 넘자 바로 그 아래로 '방화선'이 다시 시작된다. 아이구야!!! 역시나 키보다 높게 자란 억새밭이 길게 이어진다. 가파른 억새밭 길을 힘겹게 조심조심 내려갔다. 역시 안부에 이르러 억새江을 길게 헤엄치며 지나게 된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길이 사라져 버린다. 방화선 속 억새 강물 속을 한참이나 헤맸지만 길을 찾을 수 없다. 좌측으로 강을 벗어나 숲속을 뒤져도 길은 없고... "이럴 때는 뒤로 물러나 원위치해서 길을 찾아야 한다!!" 지나온 억새길을 되짚어 가자니 우측 숲 가장자리에서 희미하게 직진길이 보인다. 10여 분 알바했다.
우측 나무에 표지기 하나 달아 뒷사람에게 알리고 다시 전진했다. 길게 아래로 내려 가는데 억새밭 속에서 풀벌레들이 합창을 해 댄다. 가을 햇살에 바짝 익어 가는 억새풀들과 차가운 가을 바람. 그야말로 가을냄새가 물씬 풍긴다. 안부에서 이정목을 하나 만난다.
# 이 구간은 이정목이 잘 되어 있다.
# 이정목에 매달려 있던 메뚜기. # 억새가 너무 무성해 길을 잃기 십상이다. # 송장풀. # 몸을 완전히 부풀린 억새꽃.
안부에서 다시 위로 가파르게 억새를 헤치며 헉헉 낑낑 올라간다. 잠시 후 형체가 없어져 버린 '폐헬기장'에 오른다. 폐 헬기장에서 다시 길이 갈라진다. 정맥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90도 꺾여 급격하게 떨어져 내린다.
도성고개까지는 0.7km 남았다. 아주 급한 내리막을 내려간다. 내리막 초입에 '위험 경고 안내판/사고 다발지역'이 서 있다. 아마도 동절기에는 아주 위험한 길인 모양이다.
아래로 길고 가파르게 내렸다가 안부에 이르러 이번에는 좌측으로 90도 꺾여 작은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올라 간다. '기관총 벙커'가 있고 아래로 교통호와 중간 중간 참호가 이어진다.
# 방화선은 끝까지 이어진다.
# 저 방화선을 따라 내려 왔다. 다른 계절엔 걷기 편한 길이겠지만 억새가 자란 뒤에는 진행이 어렵게 변한다. # 폐헬기장이 있는 갈림길. # 폐헬기장에서 아래로 가파르게 내려 좌로 꺾어 저 무명봉을 오른다. # 기관총 벙커에서 올려다 본 모습. 동절기에는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꼭대기에 폐헬기장이 있다. 다시 아래로 방화선을 따라 길게 내려갔다. 우측으로는 교통호와 개인호가 길게 이어진다. 잠시 후 오늘 구간의 종착점인 '도성고개'에 이른다.(16:45)
# 도성고개의 이정목.
도성고개에서 잠시 고민하였다. 차량이 지나가는 일반적인 다른 구간의 날머리와는 달리 이 도성고개는 산 속에 있고, 탈출로가 5km 에 이르기 때문에 탈출이나 다음 구간 접근이 아주 어렵다. 그래서 애초에 1박 2일쯤으로 진행하려고 했는데, 마눌이 아픈 바람에 계획에 없이 한북에 들어 오느라 골치 아프게 되어 버렸다.
"밤 늦게 끝날 각오하고 노채고개까지 내처 가 버릴까, 아니면 여기서 멈출까? 1시간만 빨리 끝났으면 고민할 것 없이 노채고개까지 가 보는건데..." 한참 고민하다가 눈물을 머금고 탈출하기로 했다. 전방에 우뚝 서 있는 강씨봉을 향해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고 우측 포천 방향으로 탈출했다. 좌측으로는 '논남기' 방향이며 4.5km 거리다. 숲속으로 들어가 편하게 아래로 내려 잠시 내려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 도성고개에서 올려다 본 강씨봉.
# 도성고개 갈림길. # 직진하면 사직리로 가고 연곡리는 우틀해야 한다. 직진 길은 능선을 따라 사직리로 가는 길이고, 빠른 길은 우틀해서 불땅계곡을 거쳐 연곡리로 가야 한다. 우틀하여 내려가니 시작부터 아주 급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오늘 정맥길에서 만난 그 어떤 길보다 길고 가파르게 내려 간다. 다음 구간 접근할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가파르고 미끄러워 스틱을 짚고도 자빠링을 하게 된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고 흙 털고 일어서지만, 밤 늦더라도 그냥 갈껄 하는 생각이 든다. 내리막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접근 거리가 5km라고 하니 어련하겠는가?
계속 아래로 내려 불땅계곡을 거쳐 갔다. 등로가 계곡을 건너는 지점에 여성 등산객 한 분이 씻느라 그랬는지 소피 보느라 그랬는지 바지를 내리고 올리지도 않고 있다. 느닷없는 광경이라 잠시 멍하였다. 잠시 기다리다 도로 올라 갈 수도 없고 스틱소리를 일부러 딱딱 내며 인기척을 했다. 바지 올리느라 정신없는 것을 민망해서 고개 돌려 외면하고 계속 길게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때문에 계곡을 만나고도 씻지도 못하고 지나쳐야 했다.
숲을 벗어나자 큰 건물을 짓고 있는 공사장이 나온다. 그 아래엔 민박이나 팬션 등도 몇 개 보인다. 계속 아래로 내려 '구담사'를 지나고, 더 아래로 내려 '군부대'도 지났다. 아스팔트 길을 더 내려 아침에 지난 47번 도로 '제비울상회' 앞에 도착했다.(17:45)
# 불땅계곡.
# 47번 도로 상의 제비울상회.
하산에만 한 시간이 걸렸다. 도성고개에서 625m를 기록했던 고도계가 제비울 상회 앞에서는 155m를 나타낸다. 결국 해발고도를 475m나 낮췄다는 말이다. 다음 구간하자면 시작부터 고도를 475나 올려야 한다는 얘기고. 아이구야~~~
백두대간도 단목령에서 끊어 둬서 만만치 않은 접속거리를 남겨 두었는데, 한북정맥에서도 또 이렇게 가파르고 긴 접속거리를 남겼다. 우얄꼬??
제비울 상회앞에서 히치를 시도했다. 47번 국도 상인지라 차는 씽씽 많이도 다니는데, 한 대도 세워주질 않는다. 30분 넘게 길가에 서서 헤매다가 마침 군부대에 애인 면회오는 처자 태우고 온 서울 택시가 있길래 세워서 이동까지 5,000원에 갔다.
이동 버스 정류소에서 한 시간에 한 대 밖에 없는 사창리행 버스를 타고 광덕고개로 가서 차 회수하고 졸린 눈 비비며 귀가했다. 집에 들어서니 10시가 넘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로 돌아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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