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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정맥]네번째(도성고개~노채고개)-姜氏! 귀 빠진 날 姜氏峰에 서다! 본문

1대간 9정맥/한북정맥 종주기

[한북정맥]네번째(도성고개~노채고개)-姜氏! 귀 빠진 날 姜氏峰에 서다!

강/사/랑 2007. 6. 28. 14:59
[한북정맥]네번째(도성고개~노채고개)



한북정맥(漢北正脈) 3구간은 광덕고개에서 도성고개까지의 21.7km 코스이다. 이 구간은 백운산, 도마치봉, 국망봉, 견치산 등 천 미터급의 고산이 즐비하게 이어진다. 구간 내내 단 한 차례도 높이를 잃지 않고 우뚝하여 한북정맥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구간이다.  


또 이 구간은 구간 내내 방화선(防火線)이 마루금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산불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마루금을 따라 수목을 제거한 것인데 세월 흐르면서 그 방화선을 따라 억새밭이 길게 형성되었다.


내가 지난 3구간을 걸은 그날은 가을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가을 냄새 가득했고 가을 햇살에 억새 익어가는 소리 자작자작 들렸다. 그 억새의 강을 헤엄치듯 걸었다. 그러면서 내내 후삼국(後三國) 시대 비운의 풍운아(風雲兒) '궁예(弓裔)'를 생각했다. 한북 3구간의 주요 봉우리인 도마치봉, 국망봉 등이 모두 궁예의 몰락과 관련된 전설을 안고 있는 산(山)들인 탓이다.

궁예는 신라 47대 헌안왕(憲安王)과 후궁(後宮) 사이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일설(一說)에는 헌안왕이 아니라 48대 경문왕(景文王)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음력 5월 5일인 중오일(重五日)에 외가에서 났는데, 태어날 때 지붕에 무지개 같은 흰빛이 있어 하늘에 닿았고 날 때부터 이빨이 있었다.

 

이 모든 출생의 일이 괴이한지라 나라에 이롭지 못하리라 여겨 왕이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사자(使者)가 아이를 누각 아래로 집어 던졌는데 유모가 몰래 받아 도망쳤다. 하지만 유모가 아이를 받을 때 당황하여 눈을 찌르는 바람에 애꾸가 되고 말았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궁벽(窮僻)한 시골에서 유모가 고생스레 키웠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장난이 몹시 심하였던 모양이다. 혹시나 신분이 드러나 화를 입을까봐 유모의 꾸중이 잦았는데, 어머니의 꾸중에 궁예는 근심이 되지 않겠다 하고 집을 떠나 세달사(世達寺)에서 중이 되었다. 그후 환속(還俗)하여 신라 말기의 어지러운 난세에 세력을 모아 나라를 세워 왕이 되었다.

후고구려(後高句麗), 마진(摩震), 태봉(泰封) 등으로 국호(國號)를 바꾸고 지방 호족들을 규합하여 한때 삼한통일(三韓統一)을 꿈꾸기도 하였지만, 말년(末年)에 폭군으로 변하여 사치를 일삼았다 전해진다. 또, 스스로 미륵보살이라 칭하여 신격화(神格化)하며 부인 강씨(康氏)와 두 아들까지 죽이는 등 폭정(暴政)이 심해졌다. 그러다 결국 왕건(王建) 세력의 쿠데타로 왕위에서 쫓겨나 부양(斧壤) 주민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란 언제나 승자(勝者)들의 주관적 기록이다. 궁예에 관련된 기록들이 삼국사기(三國史記)나 고려사(高麗史) 등 궁예를 제거한 후 역사의 승자로 등장한 세력에 의해서 기록된 점을 볼 때 궁예가 폭군이었다는 기록은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실제 궁예를 포악한 군주로 묘사한 삼국사기에조차 궁예가 처음 몸을 일으켜 세력을 키워나갈 때 언제나 병사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문집인 '기언(記言)'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裔善鬪 與士同甘苦 得衆心(예선투 여사동감고 득중심 : 궁예가 싸움을 잘하고 병사들과 고락을 함께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이러한 기록들로 보아 궁예는 단순히 포악한 군주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을을 끌어모으고 나라를 이끌어 나갈만한 리더의 자질을 충분히 갖춘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늘 포악한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그가 패자(敗者)이기 때문이다.


유추하건대 궁예는 지방 호족(豪族)들의 연합체 성격인 태봉의 내부 결속에 실패했고, 그 결과 왕건 세력에 의한 쿠데타를 불러일으켰으며 그들이 작성한 역사에 의해 포악한 군주로 역사에 자리매김 되어진 것이라 짐작된다.

개인적으로는 궁예가 처음 몸을 일으켜서 세력을 모으고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보인 리더십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는 늘 병사들과 함께 먹고 자며 함께 싸웠다. 전공(戰功)을 홀로 차지하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 나누니 모두가 그를 따랐다. 이러한 그의 리더십은 현시점 우리나라의 가장 큰 당면 과제인 리더십 부재(不在)를 해결하는 데 바람직한 사표(師表)가 되리라 생각된다.

한북정맥 4구간에도 궁예에 관련된 전설이 많다. 특히 이 구간에는 '강씨봉(姜氏峰)'이 있다. 강씨봉은 궁예의 황후였던 강씨 부인의 슬픈 전설이 깃든 산이다. 역사에는 강씨 부인이 궁예에 의해 처형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전설(傳說)에는 이곳 강씨봉에서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자료를 확인해보니 이곳의 강씨봉은 진주 강씨의 '姜氏峰'으로 기록되어 있고, 궁예의 부인은 편안할 '康'을 쓰는 강씨(康氏) 부인이다. 뒷사람들의 성씨에 대한 기록 실수이든지 애초에 다른 유래를 가졌든지 했을 것이다.


강씨에 관련된 다른 기록도 있다. 이 산자락인 가평 논남부락에 강씨(姜氏)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 숙종 시절 논남에 강영천(姜永天)이란 효자가 어머니의 간질병을 낫게 하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공양해 병을 낫게 했고, 왕으로부터 효자문(孝子門)을 하사받았다는 것이다.


결국, 궁예왕과 부인에 얽힌 옛 전설은 말 만들기 좋아하는 호사가(好事家)들의 입담이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강씨라 하면 무조건 진주 강(姜)씨만 있다 착각했던지. 그나저나 우리 진주 강씨 중에도 저런 효자가 있었구나 싶다. 효자하곤 거리가 원체 먼 몸인지라 감회가 새삼스럽다.

마침 10월 1일은 불효자 姜氏의 귀빠진 날이다. 불효자 姜氏가 귀빠진 날 姜氏峰에 홀로 서게 되었다. 강씨봉 일대는 비운의 영웅 궁예의 전설로 가득한 곳이다. 천하 통일을 꿈꾸며 난세에 몸을 일으켰던 풍운아 궁예. 그러나 끝내 내부 결속을 이루지 못해 패배하고 만 비운의 사나이가 바로 궁예였다.


궁예는 집권 기간 국가 기강 확립과 내부 결속을 위해 스스로 미륵불(彌勒佛)임을 자처했다. 나라와 백성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미륵불이 미래불이고 민중의 척박한 현실을 극복하게 하는 믿음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따르는 신하와 백성의 결속을 위해 궁예는 늘 단순하고 명료한 진언(眞言)을 되뇌었다. 그것은 육자진언(六字眞言)으로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나타내는 주문이었다. 이 주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나도 강씨봉 정상에 홀로 서서 가만이 따라 외워 보았다.

"옴마니반메훔!"


姜氏! 귀 빠진 날 姜氏峰에 서다!!!


구간 : 한북정맥 제 4구간(도성고개~노채고개)
거리 : 구간거리(16.1 km), 누적거리(61.4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6년 10월 1일. 해의 날.
세부내용 :


연곡4리(09:00) ~ 도성고개 갈림길 ~ 도성고개(10:09) ~ 강씨봉(11:03) ~ 헬기장 ~ 가짜 강씨봉 ~ 한나무골 갈림길(11:52) ~ 바위전망대(12:02) ~ 공터있는 무명봉(12:25) ~ 한나무봉(12:30) ~ 오뚜기령(12:41) ~ 무명봉 점심후 출발(13:20) ~ 귀목봉 갈림길(13:55) ~ 850봉 갈림길(14:19) ~ 망구대 분기점(14:38) ~ 큰골 갈림길(15:00) ~ 청계산(15:09) ~ 길매재 ~ 770봉(15:25) ~ 안부 갈림길(15:48) ~ 길매봉(16:24) ~ 갈림길 ~ 노채고개(17:20)/ 약수터까지 탈출해서 일동 택시로 차량회수.

총 소요시간 8시간 20분(접속시간 1시간 포함). 만보계 기준 31,000보(접속거리 포함).


9월 30일. 마지막 주 흙의 날. 원래 계획은 토, 일 이틀간 백두대간 설악 구간을 마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회사일이 영 엉망이라 토요일에 출근해야 했다. 결국 설악 구간은 추석 연휴때 하기로 하고 일요일에 한북이나 한 구간 해야겠다 마음 먹는다.

일요일 10월 1일이 姜某氏 귀 빠진 날이라 마눌은 산에 가지 말고 같이 쉬면서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하자고 한다. "그러나 회사일 때문에 꼬일대로 꼬여버린 이 심사를 땀 뻘뻘 흘리며 걷고 또 걸어서, 이윽고 산 정상에서 수만년 세월 침묵(默默)한 우리 山河를 보며 풀어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아픔이, 끓어 오르는 분노가 얼마나 허망한가를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다녀 오마, 마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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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靑溪山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과 가평군 하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849m.청계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경기도에만 세 곳이 있다. 양평군 양서면의 청계산(658m)과 과천시와 성남시의 경계를 이루는 청계산(618m), 그리고 포천군 일동면과 가평군 하면의 경계를 이루는 청계산(849m)으로 그 중에서 포천 청계산이 가장 높고, 산세가 커 산행코스도 다양하다. 포천 방면에 있는 청계저수지와 가평군 방면인 상판리가 산행기점으로 이용되고 있다. 상판리 방면에서 갈매재로 올라가는 길은 1990년부터 입산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강씨봉/姜氏峰

경기도 포천시와 가평군 경계에 있는 산. 높이 830m이다. 경기도의 고산들이 가까이에 늘어 서 있고 아래로는 귀목봉을 거쳐 명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동으로 뻗어 있어 사방으로 수려한 경관이 펼쳐진다. 정상에 서면 국망봉, 명지산(明智山:1,267m), 청계산,  운악산이 보인다. 특히 겨울설경이 아름다워 주능선 아래에 위치한 한나무골의 맑고 깨끗한 계곡들과 마지막 능선의 억새밭과 싸리나무, 봄철에 어우러지는 진달래와 철쭉의 장관이 볼 만하다. 한나무골로 들어가서 주능선에 이르는 데 2시간 정도가 걸리고 주능선 삼거리에서 정상까지는 40분이 걸린다.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다. 강씨봉의 동쪽계곡인 가평천은 경기도 내에서 물 맑기로 유명한 곳으로 계곡도 깊고 수량도 풍부하다.

길매봉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및 가평군 하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735m. 길매고개를 사이에 두고 청계산(849m)과 운악산(935.5m) 사이에 있는 산으로 주능선과 지능선 상에 암릉지대가 많고 주능선 북쪽 경사면에 하단부 높이 10m, 중단부 10m, 상단부 20m나 되는 복계폭포가 있다. 시원한 계곡과 울창한 수림으로 휴식처가 많아 여름철 피서지로 안성맞춤인 산이다. 암릉산행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으며 아찔한 바위지대를 지나는 스릴도 만끽할 수 있다. 산행기점은 나산골프장에서 1.2km 떨어져 있는 청계산장에서 시작한다. 이 곳에는 청계저수지가 있어 등산과 낚시를 겸할 수 있는 가족 산행지로 적당하다. 길매재를 기준으로 동쪽은 軍 사격장으로 출입이 통제되는 지역이므로 유의해야 한다. 길매재를 거쳐 바위능선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시계가 확 트이고 시원한 조망에 청계산·명지산(1,267m)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조종천계곡, 그 오른쪽으로는 운악산이 우뚝 솟아 있다. 하산은 서릉을 탄다. 안부삼거리에서 복계폭포 쪽으로 내려가거나 암릉길인 서봉으로 올라 청계산장으로 내려간다. 산행 시간은 약 4시간 30분이 걸리며 교통이 조금 불편하다는 것이 흠이며 일동면에서 청계산장까지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한북정맥 제 4 구간 도성고개 ~ 노채고개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9월 10일. 해의 날.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부랴부랴 씻고 나와서 마눌이 끓여주는 미역국 한 그릇 먹고 출발했다. 외곽순환도로 타고 퇴계원으로 빠져 나와 포천 가는 47번 도로에 올라섰다. 이 길은 새롭게 단장되어 씽씽 잘만 달려 간다. 기존에는 일동에서 길이 막혀 빠져 나와야 하는데 길이 새롭게 개통되어 이동 지나 김화까지 뻥 뚫렸다.

이동 표지판 보고 빠져 나와 우틀하여 일동 방향으로 잠시 달렸다. 연곡 2, 3리를 지나 연곡 4리 '제비울 상회' 앞에서 좌틀하여 올라 갔다. 군부대를 지나고 구담사를 지나 한참 올라가 '불땅계곡' 입구 공터에 주차했다. '불땅계곡'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곳 저곳 자료를 찾아 보지만 제대로 된 기록이 없다.

다만 전국 곳곳에 '불땅골'이란 지명이 많이 등장하고,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 있던 곳이란 이유로 얻은 이름들이다. '불당골'이 '불땅골'로 발음이 강해진 것이다. 이곳 역시 계곡 입구에 구담사란 절이 있는 걸로 봐서 같은 사연으로 얻은 이름인 듯하다.

(09:00)가볍게 몸 풀고 불땅계곡 표지석을 지나 오늘 산행을 시작했다.

 

 


# 불땅계곡 표지석.

 

  

오늘 구간의 시작점인 도성고개까지는 제비울 상회에서 5km나 떨어져 있고 본격적인 도성고개 오르막은 아주 가파르고 길게 올라 가야하므로 시작부터 부담이 많이 되는 구간이다. 백두대간의 속리산 구간 갈령에서 갈령삼거리까지 접속거리보다 더 멀고 가파르다.

 

그래서 전 구간인 광덕고개에서 아예 노채고개까지 내처 가버리든지 중간에 1박하면서 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구간 계획하면서 노채고개에서 역주행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오늘 한번 빡세게 걸어보자 생각하고 그냥 불땅계곡에서 출발했다.

잠시 위로 오르면 우측으론 이미 지어진 팬션들이 서 있고 등산로 들머리 바로 옆에 팬션으로 보이는 건물 신축작업이 한창이다. 등산로 들머리엔 지난 번에 하산하면서 걸어 둔 내 표지기가 얌전히 매달려 있다. 표지기 한번 매만져 주고 출발했다.

편안하게 고도를 높여 가는 수준인데, 금방 숨이 가빠지고 힘이 든다. 근래 몇 주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담배를 조금 많이 피웠더니 그런 모양이다. 가능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번 하산할 때 바지를 홀랑 벗고 있다가 나를 보고 기겁을 하던 아주머니가 있던 계곡을 지난다. 나도 몰래 그때의 장면이 떠올라 실없는 웃음을 짓는다.

서서히 경사를 높여 올라 가다가 본격적으로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한다. 지난번 도성고개에서 하산하면서 아주 가파르고 급한 경사의 내리막을 1시간 이상 걸어서 내려 오면서 다음에 이 구간 어프로치할려면 고생 꽤나 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실망시키지 않고 가파르고 길게 밀어 올려 재낀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콕콕 찌르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이구야~ 혼자 산행하면서 무슨 일 당할라... 얼른 휴식 취하며 쉼호흡을 크게 해 본다. 그리고 일부러 밭은 기침을 어흠! 어흠! 하며 심장을 자극하였다. 스트레스가 무섭기는 정말 무섭구나! 아무리 몸이 덜 풀린 상태라고 하지만 이런 증상은 처음인데...

잠시 한 숨 돌린 후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밀어 올렸다. 마른 계곡 두 개를 지나고 아주 가파르게 오른다. 마사토 토질이어서 죽~죽~ 아래로 미끄러진다.

급한 경사지 한쪽에서 잠시 휴식했다. 지난 번 하산때에도 같은 장소에서 휴식했는데, 그때 이 자리에 하얀 산형과(傘形科) 꽃이 피어 있더니 오늘은 꽃 대신 열매가 매달려 있다. 계절 변화가 피부에 바로 와 닿는다.

'도성고개 8부 능선' 팻말을 지나 더욱 가파르게 위로 밀어 올리니,'도성고개 갈림길'이 나온다. 10:00. 이곳에서 부터는 편안하게 산을 휘감아 돌아 올라 간다. 잠시 후 오늘 구간의 출발점인 '도성고개'에 도착했다.(10:09)

 

 


# 도성고개 갈림길.

 

 

 

# 도성고개 헬기장.

 

 

 

# 도성고개에서 내려다 본 포천 일동쪽 풍광.

 

 

 

도성고개엔 햇살이 강렬하게 내려 쬐고 있다. 헬기장과 군 매복호가 있고 매복호 위에 서니 포천 일동 쪽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헬기장 너머로 가야 할 정맥길이 펼쳐지는데, 이곳 역시 방화선의 연속이다. 방화선은 도마치봉에서 시작되어 이 곳을 지나 계속 이어진다. 좌측으로 논남기로 내려가는 길이 뚜렷하다. 논남기쪽은 경사도 완만하다는데...

10여 분 휴식 후 강씨봉을 향해 출발했다. 강씨봉까지는 방화선을 따라 1.54km 가야 한다. 이곳 방화선 역시 억새로 뒤덮여 있다. 억새들이 가을 햇살 아래 몸을 바짝 익혀 가고 있다. 벌레소리가 아주 요란하다. 추위가 몰려 오기 전에 짝짓기를 마치고 삶의 최대의 목표인 종족번식을 이루고자 하는 몸부림일 것이다.

키높이의 억새가 방화선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지난 구간과는 달리 등로는 비교적 뚜렷해 지나기가 쉽다. 잠시후 경사가 급해지면서 덩달아 억새도 짙어진다. 다시 억새밭에서 헤엄치기 시작했다. 낑낑 올라 개념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무명봉' 하나를 오른다.

 



# 도마치봉에서 시작된 방화선이 계속 이어진다.

 

 

 

# 무명봉에서 바라본 가야 할 정맥길. 전방에 강씨봉이 보인다.

 

 

 

무명봉에서는 의외로 조망이 좋아 가야 할 정맥길과 지나온 길이 한 눈에 조망된다. 한숨 돌린 후 모자 챙을 늘려 햇빛을 가리고 다시 출발했다. 방화선을 따라 편하게 오르내리며 전진했다. 대신 억새밭에서 헤엄을 계속 쳐야 했다. (11:03)'강씨봉(姜氏峰) 정상'에 오른다.

 

 


# 강씨봉 정상에는 헬기장과 이정목이 있다. 사방 조망이 훌륭한 곳이다. 강씨봉을 비롯한 이곳 한북정맥에는 궁예왕의 전설이 많은 곳이다. 철원, 포천 일대가 예전 궁예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궁예는 뛰어난 리더였다. 처음 몸을 일으켰을 때 그는 늘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그의 리더십은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특히 요즘처럼 리더십 부재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 지나온 정맥길. 저 멀리 국망봉과 희미하게 광덕산도 조망된다.

 

 

 

# 광덕산을 줌으로 땡겨본다. 광덕산 정상의 축구공이 하얗다.

 

 

 

# 좌측으로 화악산의 군사기지도 보인다.

 

 

 

# 가야 할 정맥길. 우측 능선따라 가다가 다시 우측으로 가야 한다.

 

 

 

# 뾰족한 귀목봉. 정맥길은 귀목봉 앞에서 우측으로 꺾인다.

 

 

 

# 억새들이 속살을 터뜨리고 있다.

 

 

 

# 산허리를 휘감아 오뚜기령으로 올라가는 군사도로가 보인다.

 

  

강씨봉 정상엔 헬기장과 이정목(오뚜기령 2.53km/ 도성고개 1.54km)이 있다. 이정목 기둥에 누군가 강씨봉이라고 적어 두었다. "姜某氏가 자기 귀빠진 날 姜氏峰에 섰구나!" 이정목 쓰다듬어 스스로 자축하였다.

강씨봉은 조망이 너무나 훌륭하여 전후좌우 모든 방향이 시원스레 눈 앞에 펼쳐진다. 뒤쪽으로는 지나온 정맥길의 국망봉, 도마치봉과 방화선의 긴 행렬과 저 멀리 광덕산의 하얀 축구공도 보인다.

좌측으론 화악산이 구름을 이마에 지고 서 있고, 우측으론 포천 쪽 인간세의 모습이 펼쳐진다. 전방으론 가야 할 정맥길이 쭈욱 이어져 있다. 한나무봉, 청계산, 저 멀리 운악산까지 보이고 전방 좌측으로 귀목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귀목봉은 정맥길이 아니고 좌측으로 약간 비켜나 있다.

간식 먹으며 16분간 휴식 취한 후 다시 출발했다. 역시 방화선 억새밭을 헤엄쳐야 했다. 길게 길게 억새를 헤치며 진행하는데 바로 눈앞에서 등산객 두 명이 불쑥 나타난다. 억새가 짙고 키가 높아 바로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앞쪽에서 오던 사람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뒤로 벌렁 넘어진다. 너무나 크게 놀라는 모습에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든다. 검은 옷으로 무장하고 억새밭에서 불쑥 나타나니까 큰 짐승인 줄 알았나 보다. "그렇다고 그렇게나 놀래냐? 내가 그렇게 험악하게 생겼나? 둘이서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놀래면 혼자 다니는 나는 얼마나 놀래야 하나? 큰 짐승 없으니 너무 놀래지 마시고 조심해서 가십시오!"

잠시 후 억새로 뒤덮인 '헬기장'에 오른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 산부추.

 

 

 

# 미역취.

 

 

 

# 용담.

 

 

 

# 자주쓴풀.

 

 

 

# 미국 쑥부쟁이.

 

  

다시 방화선을 따라 가다가 작은 봉우리 하나를 오르자 '姜氏峰'이라고 적힌 정상석이 있는 가짜 강씨봉이 나온다. 이곳의 정상석은 가평군수가 98년 8월 1일에 새웠다고 적혀 있다. 해발 830m라고 적어 두었지만 고도계엔 795m밖에 안나온다. 강씨봉으로 들고 가다가 힘들어서 그냥 이곳에 세웠나?


이후 방화선을 따라 가다가 무명봉 하나를 오르고 곧 바로 급경사로 떨어져 내린다. 다시 마루금에 복귀해서 방화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진행한다. 그러다 점차로 경사를 낮춰 가다가 조금 올라 '한나무골 갈림길'에 이른다.(11:52)



# 가짜 강씨봉.

 


# 방화선을 따라 오르내린다. 전방에 한나무골 갈림길이 있고 저 멀리 운악산이 보인다.

 

 

 

# 한나무골 갈림길.

 

 

 

오뚜기령까지는 아직 1.3km를 더 가야 한다. 정맥길보다는 한나무골 쪽으로 표지기들이 많이 붙어 있다. 청계산 단일 산행하는 산악회의 표지기인 듯하다.

정맥길은 직진하여 잠시 내렸다가 위로 한차례 밀어 올려 무명봉에 오른다. 봉우리엔 아무 표식도 없고 우측에 '바위 전망대'가 있다.(12:02) 전망대엔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고 일동 쪽의 한나무골, 무리울 등의 마을이 눈 앞에 펼쳐진다.

 



#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한나무골.

 

 

 

# 멀리 포천 일동 쪽의 人間世도 보인다.

 

  

전망대를 나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가 바로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른다. 봉우리의 9부 능선에서 우측으로 우회하여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방화선을 따라 가다가 길게 위로 올라 무명봉 하나를 오른다. 계속 방화선을 따라 오르내리다 '공터가 있는 무명봉'에 도착한다.(12:25)

이곳 역시 우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고 역시나 우측 한나무골로 내려가는 방향에 표지기들이 매달려 있다. 그러나 정맥길은 그곳이 아니라 직진길이다. 전방 숲 너머에서 예초기 소리가 들려온다. 조상 산소에 벌초하러 온 사람들이 있나 보다. 잠시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조금 올라 봉우리 하나를 오르자 '한나무봉'이 나온다.(12:30)


 


# 한나무봉.

 

 

 

# 오뚜기령과 좌측의 뾰족한 귀목봉이 보인다.

 

 

 

안내판 형식으로 된 정상 표지는 '강씨봉 1-3 정상'이라고 적혀 있다. 강씨봉의 세 번째 봉우리란 뜻인가? 그 아래 누군가 펜으로 한나무봉이라고 적어 두었다.

해발 768m인데 고도계에도 근사치가 나온다. 전방 아래로 오뚜기령으로 오르는 고갯길과 헬기장이 보이고 좌측으로 귀목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정맥길은 오뚜기령를 지나 산줄기를 타고 올라서 귀목봉 갈림길에 이르고 그곳에서 우틀해서 가야 한다.

잠시 쉬었다 한나무봉 정상을 나오면 급경사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다. 스틱에 의지해 쭈욱쭈욱 미끄러지며 아래로 내리자 곧바로 '오뚜기령'에 이른다.(12:41)

 


# 오뚜기령.

 

  

오뚜기령은 오뚜기부대가 건설한 군사도로이다. 백두대간 조침령도 군부대가 건설한 군사도로이다. 우리나라 군인들은 곳곳에서 열일을 한다.

오뚜기령은 사륜구동 동호인들 사이에 오프로드 훈련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일반 승용차로는 올라 올 수가 없는 곳이다. 또한 MTB 동호인들 사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코스다. 일동에서 승용차로 올라올 수 있는 곳까지 와서는 자전거를 타고 오뚜기령을 넘어 논남기 쪽으로 넘어 간다. 논남기쪽에 유명한 음식점도 있다고 잔차 동호회나 사륜 동호회 싸이트에 나와 있다.

처음 한북정맥 구간을 계획하면서 도성고개 어프로치가 어렵고 귀찮아 이곳 오뚜기령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승용차로 광덕고개까지 가서 구간 시작을 하려고 했다. 그리곤 도성고개를 지나 오뚜기령까지 내쳐 걸어 구간을 끊고 잔차 타고 하산하여 광덕고개로 돌아가 차량회수하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일반 승용차로는 이곳 오뚜기령까지 올라 올 수가 없어서 그 계획은 포기했다. 사륜구동 차량만 있다면 시도해 볼만한 방법이다.

오뚜기령은 정맥길을 좌우로 가로 질러 일동에서 논남기로 넘어가는 곳이다. 오뚜기부대에서 도로 건설을 기념하는 기념탑을 세워 두었다. 청계산까지는 3.34km를 가야 하고, 강씨봉에서는 2.52km를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헬기장으로 올라가는 도로 따라 올라 가다가 좌측 방화선으로 좌틀하여 올라간다. 억새가 너무 우거져서 잠시 길찾기에 헷깔려 하다가 방화선 따라 올라 갔다. 방화선을 따라 길게 위로 올라가며 좌측에 있다는 '강씨봉 마을터'를 찾아보려 하지만 수풀이 우거져 찾을 수가 없다. 길게 올라 무명봉 하나를 오른다.(12:58) 마침 바람도 시원하길래 배낭 벗고 점심식사를 했다.



# 오뚜기령의 이정목.

 

 

 

# 헬기장 오름에서 좌측 방화선으로 꺾어 올라 갔다.

 

 

 

(13:20)점심 식사 마치고 출발. 전방에 귀목봉이 뾰족하게 우뚝 서 있지만 정맥길은 아니고 마루금까지 밀어 올려서 우측능선을 타야 한다. 귀목봉은 귀신의 모가지란 뜻일까? 눈이란 뜻일까? 혼자 짐작만 해보고 아래로 급하게 떨어져 내린다.

잠시 후 이내 위로 가파르게 올라야 하고 좌측으로 낙엽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계절이 좀 더 깊어지면 온통 노란 물이 들겠군..." 계단식으로 찐하게 밀어 올리는데 점심식사 직후라서 그런지 아주 힘이 든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귀목봉 갈림길'에 도착했다.(13:55)

 



# 귀목봉 갈림길.

 

 

 

# 정맥길 좌측에 뾰족하게 솟아있는 귀목봉.

 

 

 

# 귀목봉 사면의 작은 암봉과 단풍숲.

 

 

 

"청계산 2.1km/ 오뚜기령 0.7km/ 귀목봉 1.1km" 라고 적힌 이정목이 서 있고 나무로 만든 벤치도 있다. 선답자들이 한결같이 놀리던 이상한 자연보호 표지목도 서 있다.

벤치에서 한숨 돌리는데 정맥꾼 네 명이 다가온다. '비실이 부부'들이다. 이분들 백두대간 하면서 세 번 정도 만났었는데 이곳에서도 만났다. 그렇지만 사람 기억력 지독히도 없는 나는 이분들이 그때 대간에서 만난 분들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작년 초봄에 백두대간 중재에서 많은 무리를 지어서 비실이 부부란 모임 이름과는 달리 냅다 내달려 나가더니 오늘은 네 분만 오셨다. 역시 오늘도 이분들 비실이란 이름과는 달리 속도를 냅다 내면서 달려나간다. "비실이들 먼저 가시오, 나는 솔방솔방 가렵니다!!"

귀목봉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떨어져 내리다 곧바로 편하게 잠시 가더니 이내 길고 가파르게 떨어져 내린다. 그러다 안부에 이르러 마루금을 오르내리며 진행하고, 로프가 설치된 암릉구간을 만난다.

 


# 로프 구간.

 

 

 

잠시 후 헬기로 투하된 철계단 설치 장비 묶음이 나타난다.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는데 철계단을 설치할 모양이다. 위로 넘기도 아래로 통과하기도 어렵게 어중간한 고사목 하나가 정맥길을 가로막고 있다.


서서히 고도를 올리면서 가다가 한차례 진하게 밀어 올린다. (14:19)고도가 870으로 찍히는 '바위가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으로 내려 가는 길에는 로프로 막아 두었는데, 누군가 또 그 쪽에 표지기 하나를 달아 두었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후 마루금을 따라 오르내리며 길고 길게 진행한다. 귀목봉 갈림길에서부터 방화선을 벗어나 억새밭 헤엄칠 필요가 없어 걷기가 편하다. (14:38)"청계산 3-1(망구대 분기점)"이란 안내판이 나타난다.

이후 계속 오르내리며 마루금을 진행했다. 그러다 오름 하나를 쎄게 밀어올리자 '하얀 로프가 매달린 암봉'이 나온다. '전망대'다.

 


# 로프가 있는 바위전망대.

 

 

 

# 일동쪽 인간세의 모습.

 

 

 

# 지나온 정맥길. 뾰족한 것이 귀목봉.

 

 

 

# 청계산 정상. 사진 찍는 동안 비실이팀은 벌써 정상에 올라가 있다.

 

 

 

전망대는 조망이 아주 훌륭하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있어 간식 먹고 잠시 휴식하며 사진촬영에 열중하는데 비실이팀은 어느새 청계산 정상에 올라 서 있다. "경치 구경도 하면서 쉬엄쉬엄 가시오~"

다시 오르내리다 아래로 내려 '큰골 갈림길'을 지났다. 큰골까지는 3km 거리라는데 급경사 내리막이라 아주 위험해 보였다.

곧바로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된다. 정상까지 500m 거리라고 해서 숫자세기를 하며 오른다. 암릉구간과 로프구간을 지나 가파르게 올라 숫자 300에 '청계산 정상'에 도착했다. 결국 큰골 갈림길에서 200여m 밖에 되지 않는 거리다.(15:09)

 

 


# 큰골 갈림길.

 

 

 

# 청계산 정상. 이곳도 건설 장비를 헬기로 투하해 두었다.

 

 

 

# 지나온 정맥길.

 

 

 

# 맨 뒷쪽 산이 국망봉.

 

 

 

# 푸른 닭이 맑은 시내로 바뀌었다.

 

 

 

청계산 정상엔 암반 지형에 정상석도 세워져 있다. 이곳에도 헬기로 투하된 철계단 건설 장비가 두 개나 있다. 청계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곳곳에 많기도 한데, 이곳의 지명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동쪽을 뜻하는 동청룡(東靑龍)인 푸른 닭, '靑鷄' 가 맑은 시내, '靑溪'로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잠시 한숨 돌린 후 출발했다. 시작부터 가파르게 내려간다. 로프를 매어 둔 통나무 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통나무 계단의 상태가 좋아 굳이 철계단으로 바꾸지 않아도 무난할 듯 싶은 곳이다.

길게 내려 안부에 이르고 몇 차례 오르내리다 능선 안부의 '갈림길'에 닿는다. 개념도 상 '길마재'인 듯하다. 양쪽으로 내려 가는 길이 있다. 길마재를 지나 전방의 바위 봉우리 하나를 오르자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청계저수지 갈림길'이다.

 



# 청계산 하산길의 로프가 설치된 통나무계단.

 

 

 

# 청계저수지 갈림길.

 

 

 

직진하여 아래로 내렸다가 전방의 봉우리 하나를 찐하게 치고 오른다. '돌탑이 있는 무명봉'이 나온다. '770봉'이다.(15:25) 개념도에는 이 봉우리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 길매봉인줄 착각했다.


 


# 돌탑이 있는 770봉.

 

 

 

# 770봉 사면은 단풍이 불타고 있다.

 

 

 

# 단풍에 취한 산객.

 

 

 

# 전방엔 고사목 하나가 서 있다.

 

 

 

# 멀리 운악산의 위용.

 

 

  

# 전방에 길매봉이 떡 버티고 있다. 암봉이 위압적이다.

 

 

 

개념도에는 길매재 바로 뒤에 길매봉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어 770봉을 한참이나 길매봉으로 착각했다. 770봉은 조망이 오늘 구간 중 가장 좋고 주변 경치도 뛰어나다. 770봉 사면은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고 전후좌우 툭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그런데 바로 전방에 높은 산 하나가 떡 버티고 서 있다. 개념도를 꺼내 확인해 보지만 길매봉에서 깊은 안부로 떨어져 내려 올라가야 하는 산은 없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꺼내 확인해보니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길매봉이 아니고 770봉이고 전방에 우뚝 서 있는 저 암봉이 길매봉이다. 그리고 길매봉을 가기 위해서는 가파르게 안부까지 떨어져 내렸다가 다시 암봉을 치고 올라가야 한다. 아이구야~ 실망이지만 우짤것인가, 가 봐야지!

770봉 하산길은 시작부터 가파른 암릉길이다. 위험해 뵈는 로프 구간을 내려서자 철계단이 나오고, 이후 가파르고 위험한 로프구간이 연속으로 나온다. 이곳을 역주행해서 오르기도 장난이 아닐 것 같다. 미끄럽고 위험한 길을 암벽사이로 또 스틱에 의지해 가며 길고 가파르게 내려 갔다. (15:45)'안부 갈림길'에 도착했다.

 

 


# 하산 시작부터 암봉 로프 구간이 나온다.

 

 

 

# 철계단도 내린다.

 

 

 

# 미끄럽고 위험한 로프구간이 연속으로 나온다.

 

 

 

# 안부갈림길. 청계저수지로 내려 가는 곳이다.

 

 

 

# 770봉의 위용. 우측으로 가파르게 내려왔다.

 

 

 

# 770봉 정상부의 암봉.

 

 

 

# 안부를 지나 길매봉으로 또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힘들게 내려 왔다. 하산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용을 쓰며 내려왔더니 종아리가 땡긴다. 돌아보니 770봉의 위용이 대단하다. 내려오는 하산길도 대단하지만 770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예사롭지가 않다. 이런 산이 이름도 없이 묵묵히 서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안부에는 갈림길임을 알리는 이정목이 서 있고, 청계저수지로 내려가는 길 안내가 있다.

이제 전방의 길매봉을 다시 치고 올라야 한다. 길매봉 사면은 온통 암봉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형 착각에 따른 실망감과 전방의 암봉을 치고 올라야 한다는 중압감에 곧바로 출발하지 않고 안부에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한 무리의 단체산행객들이 770봉에서 내려온다. 주위 의식하지 않고 떠들고 고함지르고 야단이다. 단체로 다니면 꼭 저 따위 행동들을 한다.

좌측으로 군 철조망이 쳐 있는 안부를 지나 암봉을 치고 오른다. 아주 힘들고 위험한 구간이다. 한걸음 한걸음 힘을 주어 오른다. 바위사이로 낑낑 올라 9부 능선에 도착했다. 돌아보면 770봉의 위용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길매봉의 정상부는 암봉인데 그 방향으로 표지기 몇 개가 매달려 있다. 암봉으로 직진하려고 하는데 좌측 우회로에서 내려 오던 등산객 세 사람이 위험하다며 말린다. 좌측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으니 우회하라고 한다.

좌측으로 우회해서 가는데 이 길도 위험하기는 매 한가지다. 등로 좌측으론 천길 낭떠리지인데 발길에 차여 돌이 떨어지면 돌 구르는 소리가 끝도 없이 쿠당탕탕 이어진다. "조심하자!"

산의 좌측 사면을 휘감아 돌다가 위로 치고 오르자 마루금에 복귀하게 되고 아까 갈라진 암봉을 넘어 오는 길과 합류한다. 다시 위로 조금 낑낑 오르면 '길매봉 정상'이다.(16:24)


 


# 길매봉 오름은 가파른 암릉길이다.

 

 

 

# 길매봉 9부 능선에서 돌아 본 770봉의 위용.

 

 

 

# 이 암봉을 넘어 가는 길과 좌측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다.

 

 

 

# 우회로엔 이런 비박굴도 있다.

 

 

 

# 우회로 역시 암릉길이라 위험하다.

 

 

 

# 산사태로 산줄기가 끊어졌다.

 

 

 

# 9부 능선에서 직진하면 저 암봉을 넘어온다.

 

 

 

# 길매봉 정상.

 

 

 

길매봉 정상에는 서울 구로 기미산악회에서 정상석을 세워두었다. 선답자는 개념도에 '길마봉'이라 기록해 두었지만 이곳엔 '길매봉'이라 기록되어 있다.

길매봉 정상도 주변 조망이 좋은 곳이다. 하지만, 단체산행객들이 점령하고 있어 단체 산행객들과 잠시 대화 나누고 쉬다가 출발했다. 정상을 나오자 바로 뒤에 마사토가 곱게 깔려 있는 헬기장이 있다. 헬기장 바로 뒤에는 다시 마사토 재질의 공터가 나온다. 공터를 지나 아래로 내렸다가 오르내리다 봉우리 하나를 휘감아 우측으로 길게 내려 갔다.

그러다 다시 오르막 하나를 오르자 '길매재'라고 적힌 안내판이 나온다. "아니 길매재가 왜 여기에 있지? 개념도에는 770봉 이전에 나오는 걸로 되어있고 그곳에서 재의 위치도 확인했는데..."

 

 


# 길매봉 정상의 헬기장.

 

 

 

# 길매재라고 적힌 안내판.

 

 

 

안내판 바로 우측 아래에 암봉(710봉)이 하나 앞을 가로 막는다. 암봉 직전은 고개인데 우측으로 내려가는 안내판이 매달려 있다. 복계폭포로 내려 가는 길이다.

그러나 정맥길은 좌측으로 암봉을 우회해야 한다. 표지기가 전혀 없어서 내 것으로 하나 매달아 둔다. 위험한 하산길을 내려 다시 오르내리며 고도를 낮춰 가는데, 등로가 마사토 재질이라 아주 미끄럽고 위험하다. 군 매복호가 연속으로 나온다.

미끄러운 마사토 길을 길고 길게 내려가다 '봉우리에서 갈림길'을 만났다. 정맥길은 '우측길'이다. 방향을 우측으로 90도 꺾어 내려 갔다.

이후 길고 긴 내리막을 끝도 없이 내려갔다. 군 교통호가 길게 이어져 그곳을 따라 내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 깎아지른 절개지가 앞을 가로막는 노채고개에 도착했다. 노채고개는 도로공사 중이다. 절개지 사면은 미끄럽고 먼지가 풀석풀석 난다. (17:20)'노채고개'에 내려섰다.

 

 

 

# 다음 구간의 주봉인 운악산이 우뚝하다.

 

 

 

# 깍아지른 절개지가 앞을 막는 노채고개.

 

 

 

# 도로공사 중인 노채고개.

 

 

 

노채고개는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와 가평군 하면 하판리를 이어주는 339번 지방도이다. 이곳에서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잠시 주변 구경하기로 하고 노채고개를 넘어갔다. 도로공사 중인 노채고개를 넘어 내려가자 우측에 산신령을 모시는 기도터가 나온다.

잠시 아래로 내려 '약수터'에 도착했다. 마을 주민들이 약수터를 관리하고 있다. 약수물 한 잔 마시고 일동택시를 불렀다.

 

 

 

# 호랑이를 탄 산신령을 모셔두었다.

 

 

 

# 노채고개의 약수터.

 


우리 동네인 산본에서 오랫동안 택시운전을 했다는 일동택시(011-473-3504) 기사님과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불땅계곡으로 차량회수하러 복귀했다. 택시비 15,000원.

군부대에서 식사 시간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들으며 불땅계곡을 출발했다. 퇴계원 근처에서 20여분 정체를 겪은 뒤 외곽순환도로 달려 귀가했다. 다음 구간은 1대간 9정맥 중 가장 위험하다는 운악산 암릉 구간이 버티고 있다. "어째야 쓰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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