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첫걸음(보구곶리~대곶사거리)
세상사 모든 일에는 명(明)과 암(暗)이 공존한다. 무슨 일이든 한 쪽으로만 치우친 경우는 없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행운이 있으면 불운도 따라 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백두대간 종주 역시 그렇다. 우리 땅의 근본 뼈대를 이루는 산줄기를 두 발로 구석구석 누비는 일이니 당연히 좋은 일 가득이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강력한 도전이라 정신적 성취감도 대단하다. 하지만 이 일에도 어두운 면은 필수이다. 이 일이라고 어찌 좋은 면(面)만 있겠는가?
그리하여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이후 좋아진 것이 많았던 만큼 나빠진 점도 여럿 있다. 갑자기 늘어난 운동량과 강도 높은 활동으로 인한 부상이나 야외활동으로 인한 피부 트러블 등 육체적 손상이나 집중된 종주 활동으로 인한 인간관계의 단절 등이 대표적 예이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괴롭히는 대간 도전의 후유증은 '강박관념(强迫觀念)'이다. 강박관념이란 마음속에서 떨쳐 버리려 해도 떠나지 않는 억눌린 생각을 말한다. 백두대간 종주꾼의 강박관념이란 무슨 일이 있어도 종주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생각, 무슨 일이 있어도 매 주말 대간 종주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 생각하고 활동하는 모든 행위의 최우선 순위로 대간을 선택하는 등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생활인(生活人)으로 살아야 하는 소시민이 어찌 모든 활동을 대간에만 집중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1년 52주의 매주말에 빠짐없이 산행에 나서기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의 행사나 활동이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생각이나 관심은 대간에 가 있는데 몸은 속세에 머물러야 하니 당연 여러 갈등(葛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대간에 대한 강박관념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대간에 몇 주 연속 못 들어가게 되면,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든지, 업무 성과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든지, 매사에 짜증이 많이 난다든지, 괜스레 주변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한다든지 등등...
우리네 대간꾼의 산행 방식은 일반인들의 등산과는 차원이 다른 형태로 진행된다. 보통 사람들은 산 하나를 목표로 하루의 산행 일정을 잡는다. 때문에 느긋하게 산행을 시작해서 정상에 머물렀다 원점회귀 한다. 하지만 종주 방식을 취하는 대간꾼의 산행 일정은 우리 땅의 산줄기를 남북으로 이어가는 방식이다. 우리가 걷는 산길은 대부분 마루금으로 이뤄져 있다. 그 마루금을 통해 하루 20km 내외의 산길을 걷고 그 하루 분량의 산길이 모여 백두대간 산줄기 전체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대간꾼의 산길 주행은 언제나 느긋한 즐김과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마음 속으로는 솔방솔방 산천경개(山川景槪) 구경하며 천천히 가자고 다짐하지만, 하루 동안 반드시 가야 하는 긴 종주 거리가 주는 지리적 제약과 어두워지기 전에 산을 내려와야 하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변 경치보다는 산길만 보고 걷게 되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이다.
산속 풍경을 즐기고 그 산속에서 머물다 하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나긴 산맥의 마루금을 이어 걷기가 목표라 늘 전체 산줄기의 연결 상태가 주관심사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늘 일정에 일정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는 산행을 하게 된다.
이런 강박적인 산행이 싫어서 대간 종주를 끝내고 나면 절대로 정맥(正脈)은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무언가에 쫓기는 방식의 산행은 백두대간 종주 2년이면 충분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신 100대 명산을 이름순(順)으로 가에서 하까지 순서대로 더듬어 가면서 그야말로 솔방솔방 경치구경도 하고 그 산자락의 사람살이도 느껴보고, 구비구비 서린 옛이야기도 들여다보자 계획했었다.
하지만 세상 사는 일이 마음 먹은대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궤도를 수정해야만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결혼 이후 장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원래 연세 높으신 분이라 건강이 썩 좋지는 않으셨는데, 언제부턴가 치매가 찾아왔다.
치매는 참으로 슬픈 질병이다. 당사자나 모시는 가족 모두에게 엄청난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러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모시면서 조심스레 간병했는데, 치매가 심해지시는 바람에 부득이 작년 말부터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워낙 기가 세신 분이라 요양원에서도 골목대장 노릇을 톡톡히 하고 계셨다. 그런데 근래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연락이 와서 긴급히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입원 당시는 금방 무슨 일이 날 듯 위독하시더니 다행히 이제는 많이 좋아지셔서 사람도 알아보고 의사소통도 가능해졌다. 지난 열흘 남짓 동안 마눌은 계속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고, 나 역시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해야 했다.
이런 사정이니 우리 부부의 대간종주는 당분간 올스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매주말 산으로 스며들던 산꾼이 산행을 멈추니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다. 주중에 회사일과 병원을 오가느라 스트레스 만발한데 주말에 조금이라도 해소할 방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백두대간 종주를 마눌하고 같이 시작했으니 단 한 걸음도 마눌과 따로 걸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마냥 동네 뒷산만 왔다 갔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러가지 대안을 놓고 고민이 많았다. 그 많았던 고민 끝에 한남정맥을 홀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한남정맥은 안성 칠장산에서 시작하여 한수(漢水)의 남쪽을 따라 용인, 수원, 의왕, 군포, 시흥, 부평, 인천을 거쳐 김포 보구곶리 까지 이어진 산줄기이다.
한남정맥이 지나는 고장은 모두 우리 집에서 가까운 동네이다. 가장 먼 곳도 한 시간 이내 거리다.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신속한 귀가가 가능한 곳이다. 게다가 산줄기 전체 거리가 도상으로 172.3km로 짧아 두세 달 정도면 끝낼 수 있는 점을 고려하였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한남정맥(漢南正脈) 종주가 시작되었다. "어쩔 수 없이!"
계획에 없던 한남정맥에 발을 들여놓다!!!
구간 : 한남정맥 제 1구간(보구곶리 ~ 대곶사거리) 거리 : 구간거리(21 km), 누적거리(21 km) 일시 : 2006년 3월 12일. 세부내용 : 보구곶리(09:40) ~ 무명봉 ~ 철조망 ~ 270봉(10:25) ~ 사거리안부 ~ 무명봉 ~ 무명봉 ~ 북문갈림길(11:17) ~ 암문 ~ 문수봉전봉(11:30) ~ 군부대경고판 ~ 교통호 ~ 헬기장/휴식 ~ 철문 ~ 문수봉(12:00) ~ 갈림길 ~ 22번 도로(12:38) ~ 군도로 ~ 헬기장 ~ 군도로 ~ 갈림길/숲으로 ~ 100봉 ~ 80봉 ~ 56번 도로(13:28) ~ 절개지 ~ 56번도로 ~ 아스팔트길 ~ 꿩요리간판 ~ 군부대 ~ 에덴농축 ~ 숲길 ~ 개인골프장 ~ 개사육장 ~ 무명봉 ~ 가족묘 ~ 비포장고개 ~ 12번도로 절개지 ~ 12번도로/금파가든(14:27) ~ 고정리지석묘(14:35) ~ 식사/휴식 ~ 계단/고개 ~ 해병부대 ~ 철조망 ~ 교통호 ~ 해병부대 ~ 교통호 ~ 승룡아파트(15:35) ~ 통진교회 ~ 황룡아파트 ~ 것고개/48번도로(115:45) ~ 잣나무군락 ~ 80봉/삼각점2 ~ 군부대 담 ~ 부대정문 ~ 철문 ~ 묘지 ~ 개사육장 ~ 공동묘지 ~ 포병부대철망 ~ 공원묘지 ~ 한성신약 ~ 금성공압 ~ 절개지 ~ 시멘트도로/철조망 개구멍 ~ 철조망2 ~ 철조망3 ~ 개발지 ~ 임도 ~ 이동통신안테나 ~ 밤나무밭 ~ 2차선 포장도(17:20) ~ 도로따라 계속 진행 ~ 팔거리부락 ~ (주)태솔 ~ (주)대기이엔씨 ~ 고개(17:55) ~ 90봉 ~ 헬기장 ~ 대곶초등학교 ~ 대곶사거리 ~ 대곶신사거리(16:20).
총 소요시간 8시간 40분. 만보계 기준 38,000보.
3월 12일 일요일. 알람을 5시에 맞춰 두었지만, 눈을 뜨니 시각은 이미 7시를 넘기고 있다. 간밤에 병원에서 12시 넘게까지 있다가 집에 돌아왔더니 둘 다 알람소리를 못 들었나 보다. 부랴부랴 샤워하고 컵라면 하나 더운물 부어 해치운 후 보따리 챙겨 길을 나섰다.
주차장에 내려가니 날씨가 쨍하게 춥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 어제 토요일엔 올해 들어 최악의 황사가 한반도를 덮쳤다는데, 오늘은 황사 대신 차가운 기온과 사나운 바람이 가득하다. 기온을 측정하니 영하 4도이다.
봄날이라 방풍자켓을 벗어 두고 폴라플리스 자켓 하나만 입었더니 살이 덜덜 떨린다. 다시 집에 올라가기도 귀찮고 우모복을 챙겨 왔으니 정 추우면 껴입자는 생각에 그냥 출발했다.
집 뒤의 외곽순환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냅다 달리니 어느새 김포 시내로 들어서지만 여기서 강화대교까지 가는 48번 국도는 신호가 많아 시간 지체가 된다. 계속 신호에 걸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멍해져 버렸는지 무심히 신호대기를 하고 있다가 오른쪽을 보니 모란각식당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구 놀래라!
급히 옆 차에 양해를 구하고 우측 갈림길로 차를 꺾어 모란각 식당 앞에 차를 세우니 십여 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고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연신 산으로 들어가고 있다.
모란각식당은 등산객 때문에 피해가 많은지 '등산객 주차금지'라고 커다란 현수막을 걸어 두었다. 차를 한쪽에 주차하고 스틱 빼다가 기분이 조금 이상해서 개념도를 꺼내 확인을 해보니 보구곶리는 여기서 아직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 한남정맥 지도를 못 구해서 진혁진님의 개념도만 프린트해서 가져 왔는데 마침 그 부분만 빠져 있다.
다시 차 시동 걸고 좁은 시멘트 도로 따라 올라가니 문수산으로 가는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걸어가고 있고 문수산 주차장을 지나 다시 한참을 올라갔다. 만약 모란각 앞에 주차했다면 오늘 하루 종일 이 길만 걸어야 했을 것 같다. 3km 정도 구불구불한 시멘트 길을 타고 문수골, 동막동, 보구곶리 마을회관을 지나 올라가니 해병대 검문소가 나온다. 민간인 출입금지라고 돌아가라 한다.
차를 돌려 길가 공터에 주차하고 짐 챙겨 출발 준비했다.
한남정맥/漢南正脈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한남금북정맥이 끝나는 칠장산에서 북서로 해발 200m 내외의 낮은 산들이 이어져 한강 본류와 남한강 남부 유역의 분수령을 이룬다. 도상거리 172.3km.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속리산 천황봉(1,508m)에서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여 칠장산(492m)으로 내려오다가 이곳에서 다시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이 나누어진다. 한남정맥은 칠장산(492m)에서 시작하여 북서쪽으로 이어지면서 한강 유역과 경기 서해안 지역을 분계한다. 이 산줄기를 이루고 있는 산들은 도덕산(366m), 국사봉(440m), 상봉(340m), 달기봉(415m),구봉산(456m), 함박산(349m), 부아산(403m), 할미성(349m), 형제봉(448m), 광교산(582m), 백운산(564m), 수리산(469m), 수암봉(398m)을 넘으며 김포평야의 낮은 등성이와 들판을 누비다 계양산(395m)과 가현산(215m)을 지나 강화도 앞 문수산에서 끝을 맺는다.
문수산/文殊山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에 위치한 해발 376m의 문수산은 강화도를 갈 때 쉽게 지나치는 산이다. 강화도를 가다가 보면 강화대교를 건너기 직전 우측으로 얼핏보기에도 대단해보이는 산성을 볼 수 있는데 이 것이 바로 문수산성이다. 문수산성은 문수산 정상을 중심에 두고 "⊃"자 모양으로 이루어진 총연장 6km의 산성으로 산성내에 문수사와 문수산 산림욕장이 위치해있다. 문수산 산행은 남쪽 김포대학 쪽에서도 오르는 길이 있으나 원점회귀를 할 수도 있고 문수산성을 따라 "⊃"자 모양으로 산행할 수 있는 문수산산림욕장 코스를 추천한다. 산행기점은 성동검문소에서 1.5km정도 떨어진 산림욕장 주차장에서 시작되는데 화장실옆으로 난 소로를 따라 걷다 야외교실이 있는 곳에서 왼쪽 능선으로 올라서서 팔각정을 거쳐 홍예문 - 중봉쉼터 - 정상 - 문수사 - 풍담대사부도 - 굴 - 북문 - 도로변을 거쳐 산림욕장 주차장으로 돌아오면 되고 소요시간은 대략 두시간 정도면 족하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1 구간 보구곶리 ~ 대곶사거리 개념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한남정맥 들머리는 하얀색 '해병부대 경고 안내판' 앞의 작은 '전봇대'에서 시작된다. 경고판 뒤로는 저수지로 이어지는 도수로와 길이 있다. 들머리 건너편 논두렁에 개 우리가 길게 이어져 있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느라 시끄럽게 짖어댄다. 이것이 하루종일 개 짖는 소리를 계속 듣게 되는 시작이다.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데, 개 짖는 소리가 하도 요란해서 스트레칭도 못 하고 그냥 들머리로 들어섰다. (09:40)
# 이 팻말 이후로는 못 들어 간다.
# 전봇대 옆으로 한남정맥 들머리가 시작된다. 빛줄기가 카메라 속에 들어 왔다. 지금 시각쯤이면 전체 구간의 삼 분의 일쯤 끝냈어야 할 시각인데, 출발이 너무 늦어 마음이 급하다. 꽁꽁 언 등로엔 낙엽이 수북하고 얼마나 건조했는지 먼지가 풀풀 날린다. 10여 분 춥다 추워 소리를 계속하며 오르니 'TV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봉우리에 오르고, 좌측으로 새파란 저수지 물이 눈이 시리게 시야에 들어온다.
첫 번째 포스트인 270봉까지는 계속된 오름인데, 해발고도 0에서 순수하게 270m를 올라야 하니 준비 덜 된 몸이 제법 헉헉 소리를 낸다. 벙커들이 중간중간에 있고 평상시는 사용하지 않는지 정돈되어 있지는 않다. 40여 분 낑낑 오르니 벙커 위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270봉'에 오른다.(10:25)
찬바람이 쌩쌩 불기는 하나 조망은 아주 훌륭하여 바다 건너 강화도 땅, 강 건너 북녘땅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 강 건너 강화도.
# 한강 상류 방향의 조망. # 강화대교의 모습. 고려 왕실은 백성을 버리고 저 섬으로 도피했었다. 이 좁은 해협이 고려 왕실과 귀족들에게는 뭍에 내팽겨치고 온 백성의 목숨을 담보로 한 자신들 만의 목숨줄이었다.
# 이곳이 한강의 최하류가 된다. 유도와 강 건너 북녘땅 개풍군이 보인다. 바로 앞 산줄기가 군부대 때문에 출입이 금지된 원정맥길이다.
# 줌으로 당겨 본 북녘땅. 산들이 죄 벌거숭이다. # 가야 할 역광 속의 문수산.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북녘땅이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이 땅의 산줄기를 모두 두 발로 느낄 즈음엔 통일이 되어 있을까? 준비 없는 통일이 가져올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혼란 보다는 백두대간을 온전히 다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니 이 또한 단순하고 감상적 통일지상주의 일 터.
차가운 바람이 얼치기 산꾼의 감상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게다가 오늘도 배낭 속의 물백을 꽁꽁 얼려 버린다. 물을 마시고 나서 훅하고 불어 호스의 물을 비워 두면 괜찮다고 해서 그렇게 했지만 물백과 호스의 연결 부분이 얼어 버렸는지 아무리 빨아도 물이 나오질 않는다.
큰일 났다, 물이라곤 이것밖에 없는데... 물을 자주 섭취하지 않으면 쉬 지쳐 버리는 스타일인데...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일단은 출발!
아래로 내려가던 정맥길은 다시 무명봉 하나를 넘게 되고 '동막동'으로 이어지는 '사거리 안부'를 지난다. 안부를 지나 오름 중간에 철탑을 해체한 곳이 나오고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좌측길'은 산 마루금이고 우측길은 우회로인듯한데 우측길로 표지기 하나가 팔랑이고 있다. 일단은 표지기를 따르기로 하고 잠시 가 보지만 더이상 표지기도 없고 분위기가 별로다. 이럴 때는 얼른 원위치하는 것이 상책.
능선길로 낑낑 올라서니 '군 벙커'가 있는 무명봉이다. 고도계엔 310m로 잡히는데 정확하지는 않고, 태극기를 꽂아 두었던 듯 깃발 받침대가 있지만 오래 버려져 있었는지 귤껍질만 가득하다. 이곳 역시 사방으로 조망이 아주 훌륭하다.
# 지나온 정맥 마루금. 좌측 검은 봉우리가 270봉.
내리막에서 오늘 처음으로 한 무리의 가족 등반객을 만나고, 이후 문수산을 벗어날 때까지 사람 공해에 시달린다. 잠시 내리막을 내리자 '북문 갈림길'이 나오고 다시 잠시 후 '문수산성'의 성벽과 암문이 나타난다.
# 북문 갈림길. # 문수산성의 암문(暗門). 암문을 지나 가파르게 전방의 봉우리를 향해 치고 오른다. 봉우리에서는 산성이 길게 이어져 있고 정맥길은 산성 위로 이어지는데, 맞은편 봉우리에서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아마도 문수산 정상인 듯하다. 다시 한차례 낑낑 올라서니 문수산 정상인 듯한데 십여 명의 사람들이 돼지머리와 떡, 막걸리를 차려 놓고 시산제 준비가 한창이다. (11:30)
정맥길 들머리에서 물을 마신 후 지금까지 한 모금도 물을 못 마신 터라 막걸리 한 잔 생각이 간절한데 아직 제를 지내지도 않았으니 한 잔 달라고 하기가 어렵다. 입맛만 쩍쩍 다시고 이내 출발했다.
바로 앞에는 '군부대 초소'가 위치하여 더 이상 전진을 할 수 없고 등로는 우측으로 꺾여 내려가야 한다. 가파르게 아래로 내렸다가 산의 사면을 가로지르는 '교통호'를 따라 길게 진행했다. 교통호가 끝나는 자리에 좌측으로 산의 정상 쪽으로 철문이 나 있다. 바로 아래에 넓은 '헬기장'이 있는데 5, 60여 명의 사람들이 와글와글 북새통을 이루고 있고 통제가 잘 안되는지 연방 호각을 불고 야단이다.
헬기장의 사람들은 산악회 사람들로 이곳에서 시산제를 지낸 모양이다. 떼거지로 모여서 도떼기 시장을 연출하더니 호각을 연신 불어대던 대장을 따라 일제히 하산한다. 아이구 살 것 같다. 저렇게 시끄럽게 뭉쳐 다니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산악회 사람들 때문에 가려서 안보이더니 헬기장 한쪽에서 막걸리를 팔고 있다. 아이구, 반갑다!! 목말라 죽는 줄 알았는데... 한 잔 가득 달라고 해서 벌컥벌컥 들이키니 시원하니 너무나 좋다. 평소 산에서 무단으로 장사하는 사람들 것은 이용하지 말자는 주의인데, 오늘 같은 경우엔 구세주가 따로 없다.
산을 더럽히지만 않는다면 묵인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다. 아침에 컵라면 하나 먹고 처음으로 먹은 거여서인지 한 잔에 알딸딸해진다. 이제는 짐 챙겨 출발해야지.
그런데 헬기장 앞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어느 쪽이 정맥길인지 알 수가 없다. 지도가 아닌 개념도를 가져 왔더니 나침반도 별무소용이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정맥길을 물으니 정맥에 무슨 길이 있냐는 표정이고, 매일 그 장소에서 막걸리를 판다는 사람도 정맥이 뭔지 모른다.
"그럼 전방의 저 길은 어디로 갑니까?" "저 곳은 문수산성 하산길인데요." "옛? 그럼 저 뒷산은 뭔가요?" "거긴 문수산 정상입니다." 이런! 그럼 아까 그 봉우리는 문수산 정상이 아니란 말인가? 시산제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가려서 정상석을 못 본 줄 알았더니 정작 문수산 정상은 따로 있었다.
엉뚱한 헬기장에서 20분이나 쉬었다. 부랴부랴 짐 챙겨 내려온 산길을 다시 접어들었다. '철문'을 지나 가파른 오름길에 접어드는데 그제서야 선답자의 종주기에 철문 얘기가 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밧줄이 설치된 가파른 오름을 잠시 낑낑대며 오르니, 넓은 헬기장이 있는 진짜 '문수산' 정상이 나온다. (12:00)
# 정상으로 착각한 문수산 前峰.
# 문수산성길. # 문수사와 저수지 그리고 강화도가 한눈에 조망된다. # 정상의 군초소. 입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야 한다. # 시장통 같은 헬기장. 한 바탕 소란을 피운 후 우루루 빠져 나가는 산악회 사람들. # 이곳에서 시산제를 지내는 모양이다.
# 진짜 문수산 정상은 이곳으로 다시 올라야 한다.
# 헬기장이 있는 문수산 정상. 한 쪽에 정상석이 있다. 문수산 정상은 오늘 구간 중 조망이 가장 훌륭하다. 동서남북 거칠 것이 없이 너무나 시원하고 가슴이 탁 트인다. 북동쪽으로 한강 줄기가 구비구비 이어지는 모습이 보이는데, 저곳을 할아버지의 江, '조강(祖江)' 이라고 부른다. 한강이 임진강, 예성강과 만나는 곳이다.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여행2'에서 조강을, "할아버지의 강이고 조국의 강이며 소멸의 힘으로 신생(新生)을 이끄는 새로운 시간의 강이다." 라고 표현했다.
임연태 시인은 또 이렇게 노래했다.
祖江의 바람
서울을 빠져나온 바람은 조강에 이르러 눈을 감는다.
임진강 굽이돌아 온 바람도 조강에 이르러 눈을 감는다.
누군가의 간절한 기다림 없어도 물보다 빨리 당도한 조강에서 서로 만나 부둥켜 안고 눈을 감는다.
깊이를 나누어 밀물을 받아들이고 넓이를 나누어 썰물을 흘려 내리는 강은 말이 없어도 바람은 눈 감고 흐느낀다.
남과 북의 강둑마다 엎드린 초병들 눈감지 못하는 총구멍이 있는 한 남쪽의 바람도 북쪽의 바람도 조강에 이르러 눈감아야 한다. 질끈 감아야 한다.
하나의 강물이 하나로 흐를 때까지
- 米眼 임연태
굽이쳐 흐르는 한강이, 역사의 고향 강화가 얼치기 산꾼으로 하여금 깊이 있는 감상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는 최고다!" 라는 고함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주황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해병대원 둘이 강을 보고 고함을 지르고 있다. 그래, 그런 자부심으로 세상을 살아라.
헬기장 아래 구석구석엔 사람들이 바람을 피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이곳에도 막걸리 장수가 구수한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유혹한다. 한 잔 더 했으면 좋겠지만, 배낭 내리기 귀찮아 그냥 진행했다. # 할아버지의 강, 祖江. 막걸리의 유혹을 뿌리치고 문수산 내림을 내려갔다. 376m인 문수산 높이를 모두 다 까먹을 모양이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위쪽으로 올라오는 산꾼 세 사람을 조우했다. 무심코 안녕하십니까! 인사하고 지나치다가 그중 한 사람이 문득 안면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저기...혹시 임호빈님 아니십니까?" "그런데요, 누구신지?" "아, 저 강/사/랑입니다." "아이구, 반갑습니다."
세상에나! 우리 홀대모의 열성 산꾼 중 한 분인 임호빈님을 여기서 만나다니! 그것도 같은 날 한남정맥을 시작하고 같은 구간을 걷다니! 너무나 반가워 악수하고, 안부 주고받고, 대간꾼들이 정맥에서 만난 사연 주고받고, 기념사진도 한 방 같이 남겼다.
우리는 오늘 같은 구간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서로 갈 길이 바쁘니 다음 기회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순간 저 분들도 보구곶리로 내려가면 대중교통이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불러서 들머리에 세워 둔 내 차를 몰고 나오시는 것이 어떠냐고 하니, OK!
자기들은 12번 도로에 차를 세워 뒀지만, 어차피 내가 가고자 하는 대곶사거리를 지나야 하니 그곳에 차를 세워 두고 열쇠를 택시 사무실에 맡겨 두겠단다. 시간이 늦어 대곶사거리엔 밤에 도착할 것 같다면서, 이후 독도가 어려워 길 잃을 곳이 많으니 주의하라고 알려 준다.
평소 백두대간에서 솔방솔방 가는 내 시간 진행 상황을 잘 아는 탓에 하는 걱정이다. 염려에 감사드리고 임호빈님은 산 위로 나는 산 아래로 각각 헤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출발 시각이 아주 늦었고 문수산에서 노느라 지체도 많아서 걱정되기는 하지만, 까짓것 이 구간은 기껏해야 해발 300m 이하의 산들이고 마을을 지나다닐 거니 크게 걱정은 안 된다.
# 임호빈님과 기념사진. 친구분이 찍었는데 역광이라 아주 어둡다. 그래도 강/사/랑이 부피가 더 나간다는 것은 한 눈에 알아 볼 수가 있다.
임호빈님과 헤어져 계속 내려가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잠시 후 '갈림길'이 나와 임도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 해발고도를 거의 다 까먹자 '22번 도로'가 나타난다.(12:38)
해병대 특유의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로 '쌍용대로'라고 쓴 안내판이 있고 우측으로 비포장 군용도로 두 개가 있는데, 정맥길은 둘 중 '좌측 길'로 가야 한다.
# 22번 도로. 가운데 길로 가야 한다.
넓은 군용 도로가 길게 이어지고 중간중간 폐타이어로 만든 커다란 '진지'가 있다. 한참을 올라 아주 넓은 헬기장이 나오고 정맥길은 계속 '직진'이다. 길 따라 계속 진행하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넓은 군용도로를 버리고 '좌측 숲길'로 접어든다. 숲속엔 군용 전투식량 쓰레기가 가득하고 한참을 올라가니 군벙커가 있는 '100봉'에 오른다.(13:05)
삼각점이 있는 100봉을 지나면 이후 내리막은 '각개전투 교장'이다. 규모는 그다지 크질 않아 여기서 무슨 훈련이 될까 하는 의심이 든다. 내리막 끝자락에 '검은 차양막'으로 가린 군부대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는다.
정맥길은 철조망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철조망 너머엔 연탄재 쓰레기가 그득하다. 한참 오르다 무덤 두 기가 있는 곳에서 군부대 철조망과 헤어져 좌측 숲으로 들어갔다. 이내 삼각점이 있는 '80봉'에 오르고 잠시 내려 밭 가장자리를 내려서자, '56번 도로'와 만났다. 13:28
# 군용도로 중간의 아주 넓은 헬기장.
# 갈림길에서 좌측 숲으로 들어간다. # 56번 도로. 직진하여 숲으로 들어간다. # 아래의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가도 된다. 56번 도로에서는 바로 길 건너 숲으로 들어가게 표지기가 붙어 있는데, 숲속으로 들어가자 좌측으로 넓은 '절개지'가 나오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가면 아래쪽 삼거리에서 올라오는 '아스팔트 도로'와 만난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꿩요리 샤브샤브'라고 적힌 입간판이 서 있고 정맥길은 이 아스팔트를 따라 계속 나아 가야 하는데, 공사장이 있는지 덤프 트럭의 왕래가 잦아 먼지가 많이 나서 걷기가 불편하다. 한참을 걸어 '해병부대 정문'을 지나 10여 분 계속 걸으니 '에덴농축' 공장이 나온다.
에덴농축을 지나 고개에서 쓰레기가 가득한 우측 숲길로 들어갔다. 잠시 후 '개인 골프연습장'이 나오고 자그마한 개들만 기르는 '개 사육장'을 만난다.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러워 걸음을 빨리해 숲속으로 들어갔다.
아무 특징 없는 '80봉'을 지나면 '가족묘'들이 있는 곳이 나온다. 기독교 공동묘지인 듯한데 청송 심씨의 묘는 철조망으로 둘러놓았다. 돌아가신 분이 감옥살이하는 기분이겠다 싶다. 숲을 벗어나자 아주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비포장 고개'가 나오는데, 고개 오른쪽엔 공장이 있고 정맥길은 다시 '건너편 숲길'로 올라가야 한다. 한바탕 낑낑대며 올라가자 삼각점과 벙커가 있는 '95봉'이다. (14:17)
95봉에서 숲길로 잠시 진행하자 한순간 깎아지른 '도로 절개지'가 앞을 가로막는다. '12번 도로'다. 절개지를 타고 좌측으로 한참을 진행해야 하는데 야간이나 동절기, 우천시에는 아주 위험할 것 같다.
절개지가 끝나는 부분에 독립가옥이 있고 큰 진돗개 한 마리가 잡아먹을 듯이 달려든다. 다행히 줄에 묶여 있지만 아주 위협적이다. 12번 도로 건너엔 '금파가든'이 있다. (14:27)
# 56번도로에서 숲을 지나 꿩요리 간판이 있는 아스팔트 길로 진행.
# 에덴농축을 지나 고개까지 가야 한다. # 개인 골프장 지나 개 사육장을 만난다. # 바람이 아주 강했던 비포장 고개. 직진해서 숲으로 올라야 한다. # 12번 도로가의 금파가든. 우측 절개지의 가장자리로 내려온다. 금파가든 앞마당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 임도가 나 있고, 정맥길은 '우측 묘지' 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 방향으로 표지기가 전혀 없다. 임호빈님도 이 구간이 길 찾기가 아주 어렵다고 걱정해 준 곳이다.
오르막을 올라 정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철책으로 보호막을 둘러 둔 '고정리 지석묘'가 나온다. 청동기시대 유물이다. 잠시 둘러 보고 내려가니 '비포장 고개'로 내려가는 '계단길'이 나온다. 햇살이 따스하길래 계단에 앉아 행동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중간에 식당이 있으면 사 먹을 생각이었는데 마땅한 집이 없어 여기까지 계속 참고 왔더니 배가 너무 고팠다.
혼자 오니까 이렇게 가볍게 먹고 빨리 이동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마눌과 같이 다닐 때는 되도록이면 먹을 것을 많이 챙기고, 특히 점심은 좀 푸짐히 먹자는 주의였는데... 개념도 꺼내서 앞으로 갈 길도 점검하고 25분 정도 휴식하고 출발했다.
금파가든 뒤 임도가 아마 이 고개와 연결되는 듯하다. 고개를 넘어 잠시 진행하자 해병부대 '철조망'이 나오고 이 철조망을 따라 계속 가야 한다. 철조망 바깥쪽으로 원형 철조망을 계속 길게 설치해 두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옷을 찢어 먹기 십상이고, 중간중간 잘려나간 철조망 잔해물과 삐삐선들이 널려 있어 발이 걸릴 우려도 많다. 이 구간엔 새 옷을 입고 오면 안 되겠다.
부대와 헤어져 '105봉'을 오르고 다시 '폐타이어 교통호'를 따라 계속 전진해야 한다. 무명봉에서 조망하니 금파가든에서 C자 형태로 빙 돌아 우회하는 형국이다. 이 구간은 아무 생각없이 교통호만 따라 계속 나아 가야 한다. 중간중간 갈림길이 나오지만 교통호만 고집하면 된다.
군부대 바깥쪽엔 각종 쓰레기가 지천인데 병사들이 내다 버린 모양이다. 군인에게도 환경교육이 필수이겠다 싶다. 아주 길게 교통호를 따라가다 보면 '무덤 2기'가 있는 '승룡아파트 후문'과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길은 막혀 버린다. (15:35)
승룡아파트 후문은 잠겨 있고 바로 옆 철망을 누군가 뚫어 '개구멍'을 만들어 두었습. 엎드린 자세로 개구멍을 통과하는데 아파트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 기분이 묘하다.
# 고정리 지석묘.
# 탁자식 고인돌이다. # 나산적님과 늦바람님의 표지기가 나란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 승룡아파트 후문.
# 개구멍을 뚫어 두었다. 승룡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서 어느 쪽으로 갈까 한참 고민하다가 우측으로 계단이 있어 올라 가보니 언덕 위에 해병부대 후문이 있고 그 옆에 '통진교회'가 있다. 통진교회는 해병부대에서 세운 것이다. 교회를 지나자 그 아래에 '황룡아파트'가 있다. 황룡아파트 앞길로 나가면 차량통행이 아주 많은 4차선 도로인 '것고개'이다.(15:45)
# 통진교회.
# 차량통행이 아주 많은 것고개.
것고개엔 건널목이 한참 아랫쪽에 있어 무단횡단을 해야 한다. 신호에 막혀 차량 통행이 끊어질 때 잽싸게 건너갔다. 건너와서 돌아보니 해병부대 정문이 있고 "젊은이여 해병대로 오라!"고 크게 적어 두었다.
들머리엔 금파가든 이후 없었던 것을 보상하듯 표지기가 아주 많이 붙어 있다. 오름에 들어서자 무연고 묘지群이 나오고 관리가 되질 않아 수풀이 우거져 있는 묘들이 산재해 있고 각 묘지마다 번호가 적힌 팻말을 꽂아 두었다.
묘지 이후는 잣나무 군락이 시원스레 이어지는데, 여름에 이곳 주민들이 여기서 피서를 한 흔적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쌓여 있다. 결국은 자신들에게 곧바로 피해로 돌아오는데 이런 짓을 하는 인간들의 머리속엔 도대체 어떤 생각이 박여 있는지 궁금타.
오름의 경사가 급해 헉헉 소리가 절로 나고 잠시 오르니 삼각점이 두 개나 있는 '80봉'이 나온다. 정맥길은 이곳에서 정면으로 잘 나 있는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꺾여 나간다. 잠시 내리니 오름 중간에서 만났던 우회로와 만나게 되고 다시 능선을 따라 군부대 담장과 나란히 진행한다.
그러나 곧 길이 없어져 버리고 표지기도 전혀 없다. 한참 주변을 둘러 보다 일단 부대 담장을 목표로 잡풀 길을 헤치고 나간다. 언덕을 치고 오르자 작은 '부대 정문'이 나오고 초병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 본다. 정문 앞엔 좁은 길에 담장과 철망이 있어 건너편으로 갈 수가 없어 길 따라 조금 앞으로 나가자 우측으로 '철문'이 나온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넓은 '묘지'가 나오고 뒤쪽 숲속에 표지기 하나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표지기 이후론 '과수원 철망'이 나오고 계속 진행하니 '개사육농장'이 나온다. 개들이 달려들 듯이 짖어대고 계속 진행하여 한순간 숲을 벗어나자 확 트인 사면에 넓은 '공동묘지'가 나온다.
이곳이 선답자들이 집중적으로 알바를 많이 한 구간이라 정신을 차리고 길을 찾아야 한다. 표지기가 전혀 없어 이곳저곳 계속 찾아다니다 선답자의 종주기를 찾아보니 부대 철조망을 왼쪽에 두고 진행하라고 되어 있다. 그냥 '우회전'하라고 하면 될 것을...
공동묘지 우측으로 내려와서 우회전하여 철조망을 따라 계속 나아 갔다. 부대는 '포병부대'인 듯 곳곳에 대포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세우고 있다. 부대 철조망을 따라 길게 가다 보니 우측에 '개 사육장'이 나오고, 큰 개들이 발광하듯 짖어 댄다. 아이구! 무셔라! 빨리 가자!
부대 철조망과 헤어져 우측으로 잠시 나아가니 다시 한순간 전방이 툭 트이면서 '공동묘지'가 나오고 전방에 '한성신약'의 연분홍빛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 것고개 잣나무 숲의 쓰레기 더미.
# 부대앞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묘지와 과수원이 나온다.
# 공동묘지, 알바 위험구간. 내려가서 우회전. # 두 번째 공동묘지. 연분홍빛 건물이 한성신약. 공동묘지 위에 서니 전망은 툭 트였지만 길을 몰라 막막하다. 선답자의 종주기에도 특별한 설명이 없고 표지기도 전혀 없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우측으로 내려가서 잠시 알바했다.
공장들 사이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표지기도 전혀 없고 방향 구분이 잘 안 된다. 이럴 때는 바로 원점 회귀해야 하는데 강아지 한 마리 앞장서서 쫄래쫄래 가길래 무작정 그놈을 따라갔다. 요놈 처음에는 꼬리를 흔들며 가다가 돌아보고 가다가 돌아보고 하더니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는 갑자기 나를 보고 멍멍 짖어 댄다. 그래 요놈아, 너희 집에 왔다 이거지. 변견도 자기 집에서는 50점 먹고 들어간다는 고스톱판의 속설을 요놈이 증명해 준다.
강아지네 옆으로 길이 있길래 그 길로 갔더니 다음 포스트인 '금성공압' 공장이 바로 앞에 있네? 강아지 따라 와서 많이 헤매지 않고 바로 길을 찾았다. 금성공압 옆 공장의 뒤로 '전봇대'가 있고 그 전봇대에 표지기 하나가 붙어 있다. 전봇대 사이로 들어서니 새로이 공장을 짓는 듯 공사장이 있고 '공사장 절개지' 위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아주 가파르게 절개지를 잘라 놓아 산사태 우려가 있어 보이는데 절개지 끝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유턴해서 아래로 내려갔다가 좌측으로 진행한다.
# 금성공압 옆 공장의 담벼락과 전봇대 사이로 들어간다. # 건축공사장 절개지를 따라 올랐다가 우측으로 유턴. 야산으로 난 길을 따라 잠시 진행한 후 '시멘트 포장된 마을 길'이 나오고, '녹색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습는. 철조망은 사유지라고 막아 둔 모양이고 아래위 쪽으로 조금씩 뜯어 두었는데, 지나가기엔 너무 좁다. 선답자의 종주기엔 우측으로 내려가면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는데, 그곳엔 철문으로 막혀 있고 자물쇠로 잠가 두었다.
다시 철망 뚫어 둔 곳으로 돌아와서 철망을 들어 올리고 진입을 시도했다. 그런데 배낭이 걸려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버렸다. 혼자서 발버둥을 쳐 보지만 어디가 어떻게 걸렸는지 꼼짝을 못하겠다.
남들이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우스울까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별수 없이 엎드린 채로 배낭을 벗어서 겨우 철망을 탈출해 보니 철망의 고리가 배낭에 걸려 있다.
며칠 전 FOX TV의 What were you thinking?(너 정신 있냐?)란 프로에 기묘한 광경이 방영되었다. 남의 집에 침입한 도둑이 철망 사이로 통과하기 위해 팬티만 입고 철망 속에 들어갔다가 골반 부위가 끼어서 밤새도록 꼼짝 못 하게 되었다. 그 모습 그대로 아침에 일어난 주인에게 들켜 체포되는 장면이었다. 오늘 내가 자칫 그 꼴이 날 뻔했다. 우습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뭐 묘한 기분이다. 부끄러워서 배낭을 손에 들고 숲속으로 뛰어들어가 흙투성이 옷을 털고 배낭도 다시 점검했다.
조금 진행하자 다시 '철조망'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누군가 완전히 절단을 해 두었다. 다시 '철조망'이 나오지만 이번 것은 키가 낮아 그냥 위로 넘어가면 된다. 여긴 특별하게 가꾸거나 중요한 것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이렇게 철조망으로 막아 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사유지라고 이렇게 막는다면, 정맥길은 우회로를 만들어 우회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 개인 사유지 철조망. 배낭을 벗어 두고 밑으로 기어서 지나가야 한다. 완전히 강아지 흉내를 내야 했다. 지나가서 "멍멍" 한마디 해 주는 센스! 숲을 벗어나자 개간을 해둔 넓은 나대지가 나오고 나대지 끝엔 또 '개 사육장'이 나온다. 커다란 개들이 무섭게 짖어대서 은근히 겁이 났다. 만약 줄이라도 풀린다면 큰 사고가 나겠다 싶어 빨리 그곳을 벗어났다. 오늘 개 구경 실컷 하고, 개 짖는 소리 원 없이 듣는다.
임도를 따라 한참 오르자 '이동통신 안테나'가 우측으로 나온다. 다시 그 앞에는 공장이 나오는데 공장 철조망을 따라 잠시 가다가 끝나는 부분에서 좌측 '밤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밤나무 숲은 상당히 규모가 커서 한참을 진행해야 하고, 수확철에는 주인과 통과문제로 시비거리가 되겠다 싶다. 밤나무 숲을 벗어나자 차량통행이 많은 '2차선 포장도로'가 나온다. (17:20)
# 밤나무 숲.
# 밤나무 숲 너머의 2차선 포장도로와 산골마을. 산골 마을 길가엔 "正道를 걷자!" 란 비석이 서 있다. 그래야지, 정말 정도를 걸어야지! 산골 마을 포장도로 너머에 슈퍼가 보이길래 얼른 달려가서 시원한 생수 한 병을 사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슈퍼와 식당을 겸하는데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해도 될 듯하지만 갈 길이 바빠 이내 길을 나섰다.
잠시 방향감각을 잃고 두리번거리다가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출발했다. 이제부터는 이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야 한다. 선답자 중엔 지나가는 차를 히치해서 갔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 길도 정맥길이 분명할진대 구간 끝마칠 때 까지 계속 걸어야 할 일이다.
중간중간 표지기들이 도로 가에 붙어 있어 이 길이 정맥길임을 알려 주지만 팍팍한 아스팔트길 걷기가 영 불편하다.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어 바람, 추위, 매연, 먼지 등 오늘 구간 중 최악의 조건이다. 마주 오는 차 안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가고, 갓길이 없어 상당히 위험하다.
아스팔트 길을 걷고 걷고 또 걸어 '송마1리 팔거리 마을' 표지석 있는 곳까지 갔다. 마을 사거리엔 음식점, 노래방, 술집과 공장들이 산재해 있고 중앙아시아 사람들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일요일을 즐기고 있다. 사거리를 지나 한참 가니 포스트 중 하나인 '(주)태솔' 공장이 나오고, 다시 한참을 가니 '(주)대원이엔씨' 공장이 길가에 있다. 저 멀리 고개가 이 아스팔트와 이별하는 곳이다.
삼거리로 갈라지는 '고개'에 전봇대가 서 있고 바로 옆에 숲으로 들어가는 '임도'가 있다. (17:55). 아스팔트 길을 25분 넘게 걸었다.
# 아스팔트 길을 따라 25분 이상 걸어 가야 한다.
# 팔거리 부락 중심가. # 팔거리부락에서 한참을 더 올라가야 고개가 나온다. 임도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우측 숲길'로 들어가야 하고 잠시 고도를 높여 '90봉'을 지난다. 잠시 더 진행하면 쓰레기가 널려 있는 '헬기장'이 나오고, 잠시 숲길을 더 걸어 숲을 벗어 나자 '대곶어린이집'이 있는 고개로 나오게 된다.
이제 다 왔다. 고개에서 우측으로 내려 가자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길로 접어 들어 바로 '대곶 초등학교' 담장을 지난다. 이내 대곶 사거리를 지나 오늘 종점인 '대곶 신사거리'에 도착했다. (18:20). 8시간 40분이 걸렸다. 문수산에서 솔방솔방 거리느라 시간 지체 많았고 중간중간 길찾느라 헤맨 것에 비하면 양호하게 끝낸 셈이다. 무엇보다 이마에 등불 달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어린이집 아래 갈림길에서 좌측길로 갔다.
# 대곶초등학교 담벼락에서 잠시 장난 샷. 임호빈님이 내 차를 대곶 택시부에 세워 뒀는데 택시부에서 키를 맡지 않으려고 해서 옆에 있는 제과점에 맡겨 두었다고 한다. 제과점을 찾아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답례로 빵도 이것저것 구입했다.
# 임호빈님이 내 차를 곱게 모셔 두었다.
# 유근상 베이커리. 선전해 줘야지~~ ^^* # 다음 구간 들머리, 수안산 가는 길. 느닷없는 계획 수정으로 한남정맥을 시작했는데, 한남정맥 길은 산 잘 타는 능력 보다는 길 잘 찾는 능력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맥길 처음 시작부터 문수산에서 임호빈님을 만나 너무나 반가웠고, 또 임호빈님 덕분에 차 회수하러 보구곶리까지 갈 필요 없어 너무나 편했다. 임호빈님도 내 차 덕분에 보구곶리에서 쉽게 나올 수 있었다니 그 또한 좋은 일이다.
두 팀이 같이 산행을 할 때, 대부분 날머리에 차를 한 대 세워 두고 같이 차를 타고 와서 들머리에서 산행한 후 다시 산행을 마치고 날머리에서 들머리로 차 회수하러 돌아가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두 팀이 각자 들머리와 날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중간에 만나 서로 키를 교환하고 산행마친 후 귀가하는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것도 한 방식일 수 있겠다.
따로 하는 산행이라 재미가 적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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