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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정맥]여덟번째(양고개~영진골프랜드)-아까시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본문

1대간 9정맥/한남정맥 종주기

[한남정맥]여덟번째(양고개~영진골프랜드)-아까시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강/사/랑 2007. 6. 28. 23:09
 [한남정맥]여덟번째(양고개~영진골프랜드)

  

내 유년시절(幼年時節)의 5월은 온 마을을 뒤덮은 아까시꽃의 하얀 꽃 잔치와 아찔할 정도의 강렬한 꽃향기로 기억된다. 춥고 배고팠던 그 시절, 뚜렷한 놀이시설도 여유도 없던 우리는 오월이면 그저 아까시 꽃그늘 아래 몰려다니며 갖가지 옛놀이들을 즐겼다.

당시 우리 마을의 산들은 온통 아까시나무 천지였다. 그 산들도 원래는 우리나라 여느 산들처럼 소나무가 많은 산이었다. 하지만, 땔감으로 소나무들을 많이 베어내는 바람에
마을에서 가까운 쪽의 야산들은 대부분 소나무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선 아까시나무들 뿐이었다.

 

부지런하셨던 우리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산에 땔나무를 장만하러 가셨다. 그때야 화목(火木)이 유일한 보온과 취사의 열원(熱源)이었다. 아까시나무를 한 짐 짊어지고 귀가하시는 할아버지의 손에는 언제나 핏자국이 맺혀 있었다. 아까시용으로 제작된 가죽 장갑을 끼고 나무를 하시지만, 아까시의 날카로운 가시는 싸구려 가죽 장갑을 꿰뚫기 일쑤였다.


아까시나무는 쓸모가 약한 나무다. 곧고 단단하게 자라는 소나무와 달리 휘어지고 갈라지기 쉬운 줄기를 가졌다. 따라서 건축재로 쓸 수 없다. 게다가 가시 많은 줄기를 번성시켜 산길을 막고 소나무 자랄 공간을 차지하였다. 할아버진 아까시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베어서 땔나무로 써야 한다고 했다.

어린 우리야 아까시나무의 해독성 따윈 관심도 없고 산으로 들로
아까시 향기에 취해 뛰어다니다 배고프면 아까시꽃 한 움큼 쥐고 우물우물 씹곤 했었다. 그러면 달콤 쌉싸름한 물이 한입 가득 고였다.

물론 그때야 '아카시아'라고 불렀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아까시나무의 이름을 아카시아라고 알고 있지만, 아카시아는 열대지방이 원산지여서 우리나라에선 살 수 없는 나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까시나무는 북미가 원산인 'false acasia'라고 한다. 말 그대로 '가짜 아카시아'인 셈이다.

아까시나무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심어진 것은 일제 시대다. 자료를 찾아보니 1890년 인천의 우선회사(郵船會社) 지점장 '사카키'란 사람이
중국 상하이에서 묘목을 구입하여 인천공원에 심은 것이 시초였다는 얘기도 있고, 초대 총독인 테라우치가 독일 총영사 크루거의 자문을 받고 중국에서 대량으로 들여와 식재(植栽)했다는 자료도 있다.

아까시는 콩과 식물이다. 수목 사라져 흙과 모래가 흘러내릴 정도로 황폐해진 민둥산에도 금세 뿌리를 내릴 만큼 생명력이 강하다. 잘라 버려도 곧 싹이 나와 새로운 군락을 만든다. 가볍고 불에 잘 타 땔나무로도 적합했다. 광복 후에도 아카시 심기가 계속 이어져서 한때는 우리나라에 심은 전체 나무의 10%에 육박할 때도 있었다.

아까시나무는 오랜 세월 유해목(有害木)으로 알려져 왔다. 소나무 등 우리 토종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며, 장소를 가리지 않고 뿌리를 마구 내려 우점(優占)하는 습성 때문이다. 성장력이 너무나 왕성하여 주위의 다른 나무를 제치고 월등한 성장 속도로 숲을 이룬다. 심지어 조상님 묘소에까지 뿌리를 뻗어 봉분을 망치는 일이 잦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산림을 망칠 목적으로 들여 왔다고 믿기도 했다.

그러나 아까시나무는 원래 햇빛을 좋아하는 녀석이다. 따라서 햇빛 잘 드는 널찍한 산소 곁은 녀석들의 좋은 생육환경이었다. 자라기 쉬운 곳에 뿌리내렸으니 아까시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아까시 들여올 당시의 우리나라 산의 상태는 헐벗고 황량했다. 생육 빠른 수목의 선택은 필수였다. 그 대상이 아까시였다.


또한, 독성을 뿜어 다른 나무를 못살게 하는 문제도 땅이 척박할 때뿐이고, 토양이 비옥해지면 서서히 주위의 토종나무에게 자리를 다시 내주게 된다고 한다. 어느 한 종류의 수종이 자연을 독점할 수 없는 것이다. 자연의 균형(均衡)이다.

아까시의 덕성(德性)은 무엇보다도 아까시 꿀의 밀원(蜜源)으로서의 역할이 크고, 산자락을 뒤덮는 하얀 꽃과 강렬하고 향긋한 꽃향기로 우리네 심성을 달래주는 공이 크다 하겠다. 꽃소식과 함께 우리나라 남도에서 강원도까지 이동하는 양봉업자들은 아까시 꽃의 북상(北上)에 맞춰 북쪽으로 이동한다.

아까시는 무리지어 꽃을 피운다. 화려하지 않지만 무리진 아까시 꽃은 산자락 전체를 눈내린 듯 하얗게 뒤덮는다. 무리지어 피는 그 꽃향기는 강렬하고 아찔하다. 아까시꽃 아래서 사랑을 고백하면 꽃향기에 취한 여성으로부터 OK 싸인을 받기 쉽다고 한다. 아까시 꽃 속에 페로몬 성분이 있어서 그렇다.


페로몬(Pheromone)은 사랑의 호르몬이다. 상대에게 성적(性的) 유혹의 신호를 보내는 물질이다. 오월의 산하를 홀로 걷노라면 아까시 꽃향기 바람 속에 가득하다. 그러나, 사랑을 고백할 청춘(靑春)이 다 지나가 버린 이 몸에게 아까시 꽃향기는 무용지물이다. 오호애재(嗚呼哀哉)라!

 

 


아까시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구간 : 한남정맥 제 8 구간(양고개~영진골프랜드)
거리 : 구간거리(16 km), 누적거리(133 km)
일시 : 2006년 5월 20일
세부내용 :

양고개(08:45) ~ 주공104동/절개지 ~ 고속도로 방음벽 ~ 푸르지오APT 철망 ~ 2차선도로(09:18) ~ 언남초교 ~ 새천년그린빌 5단지 ~ 갈림길 ~ 약수터 ~ 골프장철망 ~ 200.2봉(10:05) ~ 삼거리/운동기구(10:17) ~ 묘지/갈림길 ~ 묘지 ~ 임도사거리(10:25) ~ 철망갈림길(10:39) ~ 아차지고개(10:37) ~ 철조망 ~ 민가 ~ 알바 20분 ~ 밭/절개지 ~ 182.4(11:32) ~ 고속도로 지하통로 ~ 알바 1시간(램프 횡단) ~ U턴 도로 ~ 88골프장 PAR 3홀 ~ 골프장 도로 ~ 향린촌도로 복귀) ~ 다시 임도 10분 ~ 향린촌 경비실 ~ 철재문/갈림길(13:00)/점심식사 ~ 삼거리(13:41) ~ 향수산갈림길 ~ 안현(14:02) ~ 할미성/350봉(14:22) ~ 작고개(14:45) ~ 삼각점/삼거리(15:24) ~ 무명봉 ~ 석성산(15:52)/휴식 ~ 헬기장 ~ 통화사갈림길 ~ 군부대진입로(16:30) ~ 철탑 ~ 324봉(16:50) ~ 철탑 ~ 철탑(17:08) ~ 멱조고개(17:14) ~ 용인배수지 ~ 무명봉/갈림길 ~ 철탑/공터 ~ 42번국도 ~ 절개지 ~ 철탑 ~ 임도 철탑, 임도 철탑 반복 ~ 철계단/영진골프랜드(19:00)


총 소요시간 10시간 15분.(휴식, 알바 포함). 만보계 기준 39,100보.

 


5월 19일 쇠의 날. 퇴근하고 밤 늦게 산행보따리 싸고 있었더니 마눌은 주말에 이사 준비하지 않고 산에 간다고 방방 뜬다. 이 집이 나 혼자 사는 집이냐, 최소한 자기 짐이라도 정리해야 되는 것 아니냐? 등등... 토요일 정맥 한 동가리 하고 일요일에 도와주리다!

강고집 성격 잘 아는 지라 말려봐야 헛일이란 걸 잘 아는 마눌은 한참을 혼자 씩씩대더니 안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자기 남편이라고 다음 날 아침에 밥 차려 주고, 도시락으로 유부초밥도 챙겨 주고 수박도 잘라서 작은 밀폐용기에 담아 준다.

음~~ 고맙소, 잘 갔다 오리다!!

 


 

석성산/石城山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동백리, 포곡면 마성리, 유림동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471m이다. 용인시에서 10번째 높은 산으로 성산, 구성산, 보개산으로도 부른다. 烏山川이 이 산에서 발원하여 기흥읍 중앙을 가로질러 신갈저수지로 흘러든다. 영동고속도로의 마성터널이 뚫려 있으며, 산 북쪽 능선 끝에는 마성톨게이트가 있고 그 뒤쪽으로 에버랜드가 펼쳐져 있다. 동쪽은 경사가 완만한데 비해, 서쪽인 구성면 동백리 방면은 산세가 가파르고 거대한 경사면의 큰 암벽을 이루며, 남쪽이나 북쪽에서 보면 뾰족한 삼각형을 나타낸다. 산세가 육중하고 아름다우며 갖가지 기암괴석과 약수, 여러 전통사찰 등이 어우러져 있고 용인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또한 숲이 울창하고 물도 풍부하며 고속도로변에 있어 찾기 쉬우므로 가족 나들이나 도보, 하이킹, 시산제를 지내기 적합하다. 산 서쪽 사면의 통화사 주위에는 자연석성(보개산성)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는데, 축성연대는 475년경이며 길이는 약 2km이다. 험악한 산세를 이용한 천혜의 요새로서 경사가 완만한 동쪽에만 반원형으로 남아 있다.

할미성

용인 석성산에는 할미산성이 있었고 할미산성은 전하는 설화에 의하면 마고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성을 반씩 맡아서 누가 먼저 쌓는가를 내기했는데 할아버지는 돌을 잘 다듬어서 제대로 성을 쌓고 있었고 할미는 치마자락에 잔돌을 줏어 담아서 성을 쌓았다고 한다. 결국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해 성을 쌓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내기에서 졌다고 한다. 마가실 서낭이라고 하는 할미성 대동굿은 주변에 서낭이 있어서 그 곳을 한바퀴 도는 돌돌이를 한 후에 버드실로 올라와 굿을 했으나 재현 당시 용인시 김량장동 거주 유성관(남, 34세)에 의해서 석성산에 할미산성이 있었던 유래로 복원 후 할미성 대동굿이라고 명칭했다.

아차지고개

'자린고비'의 전설에서 나온 지명. 전하는 말로는 충북 충주에 사는 고비란 사람은 조선조 중엽에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先祖의 제삿날마다 '지방'을 다시 쓰는 종이가 아까워서 한번 썼던 것은 기름에 절여서 두고두고 다시 썼다 하여 '절인 고비'로 불렸는데 이 말이 변해서 '자린고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독한 구두쇠인 자린고비가 며느리에게 지키도록 한 간장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이상히 여겨 스스로 지키고 있노라니 파리가 앉았다 날아가는 양을 보고 용인땅까지 쫓아가 결국 파리를 잡아 뒷자리에 묻은 장을 빨아먹고 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도망가던 파리가 어정대던 곳이라서 '어정개', 자린고비 영감이 파리를 놓치고 "아차 이제 놓쳤구나!"하였다고 해서 '아차지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한남정맥 제 8 구간 양고개 ~ 영진골프랜드 개념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2주 전에 내려섰던 신갈 면허시험장 앞에 도착해서 바로 앞에 있는 주공 1단지 한 쪽에 주차하였다. 경비들에게 들킬까 봐 스트레칭도 생략하고 얼른 짐 챙겨 양고개에 올라 들머리를 찾았다. 한참을 찾아 보지만 뚜렷한 들머리는 뵈질 않고 절개지 상단에 표지기 한 개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이번 구간 들머리는,
양고개 지하도 나와서 바로 '좌측 주공 104동 쪽 절개지'를 차고 올라야 한다. 현재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고 내가 표지기 하나 매달아 두었다.

 

 


# 용인면허시험장이 있는 양고개의 주공 104동. 

 

 

 

# 연속 진행시 지하도 나와서 바로 좌측 절개지. 사진 상으로는 우측 바위 화단 위로 올라야 한다.

 

 

 

# 강/사/랑 표지기 보고 이 길로 올라 가면 된다.

 

 

 

(08:45)  절개지가 미끄러워 올라서기가 힘들다. 절개지 상단에 다시 표지기 하나 부착해서 뒷사람에게 알리고 산책로를 따라 계속 직진했다. 이곳의 원칙은 좌측 영동고속도로와 우측 아파트 단지 사이의 산책로를 따라 계속 전진한다는 것이다.

잠시 후 수목 대신 '고속도로 방음벽'을 만난다. 양쪽으로 길이 갈라져서 좌측 고속도로 쪽의 무단 경작지를 따라 가 보지만 이내 방음벽은 끝나고 좌우측 어느 길로 가더라도 이곳에서 만난다.

산책로이다 보니 중간중간 갈림길이 많이 나오지만, 뚜렷하고 좋은 길 따라 계속 '직진'한다. 이정목을 만나고 '체육시설 방향'으로 가다가 학교 철망을 따라 계속 나아간다. 다시 '푸르지오 아파트 펜스'를 따라 전진하는데 수풀이 너무 우거져서 길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곳곳에 야생화가 만발하고, 아까시꽃향기가 가득하여 너무나 향기롭다. 아까시꽃은 아직 만개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 강렬한 꽃향기는 온 숲에 가득하다. 

 

 


# 고속도로 방음벽. 고속도로쪽으로 걸어 간다.
 

 

 

 

# 하얀 꽃이 예쁜 이팝나무.

 

 

 

# 고들빼기. 씀바귀와 구별이 쉽지 않지만 잎을 보고 판정한다.

 

 

 

# 윗 사진보다 몇배나 크기가 크지만 이 넘도 고들빼기다.

 

 

 

# 오동나무 꽃.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자더니...

 

 

 

# 향기가 아찔한 아까시 꽃. 오늘 구간의 대세이다.

 

 

 

# 땅비싸리.

 

 

 

# 푸르지오 아파트 철망을 따라 전진한다.

 

 

 

이어서 학교 철망을 만나는데, 잡목이 우거져 길을 찾을 수 없다. 한참 헤매다가 스틱을 앞 세워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다. 철망이 우측으로 꺾이는 부분에서는 아예 진행하기가 어렵다. 고개를 숙이고 냅다 밀어 붙여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니 철망에 둘러 싸인 '경작지'가 나온다. 전방에 '초원마을 아파트'가 보이고 경작지 끝에 작은 '철문'이 하나 있다.


 


# 수풀이 우거져 진행이 어렵다.
 

 

 

 

# 철망에 싸인 경작지. 우측 끝에 출입문이 있다.

 

 

 

경작지 철문을 나와 '2차선 아파트 도로'와 만난다. 이곳에서 우틀하여 '육교'를 지나고 '언남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건널목'을 건너면 '녹원마을 새천년 그린빌 아파트'정문이 나온다. 이 2차선 도로는 오늘 구간 처음 출발지인 양고개와 연결되어 있어 양고개에서 그냥 도로따라 이쪽으로 와도 된다.

그린빌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서 509동을 지나 노인정을 지나자 508동 바로 뒤에 숲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나온다. 아파트 조경공사를 하면서 이쪽에다 대나무를 심어 '대숲'을 조성하고 그 대숲 속으로 나무계단을 설치해 두었다.

상당히 깔끔하고 운치있게 만들어 두었지만, 대나무의 북방한계선이 차령산맥인 것은 몰랐나 보다. 많은 대나무들이 말라 죽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대숲 속으로 난 나무계단을 지그재그로 올라가자 갈림길이 있는 '쉼터'가 나온다.(09:35)


 


# 새천년 그린빌 안으로 들어간다. 

 

 

 

# 508동 뒤에 대숲과 나무계단이 있다.

 

 

 

쉼터에서 잠시 휴식한 뒤, 좌틀하여 잠시 진행하자 갈림길이 나온다. 그린빌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와서 508동 쪽으로 가지 않고, 506동 쪽으로 해서 바로 이쪽으로 와도 되는 지름길이다. 잠시 더 진행하자 '약수터'가 나온다. 약수터엔 배드민턴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약수터를 지나 철망 사이의 골목처럼 생긴 길을 따라 올라서자 우측엔 수원골프장의 철망, 좌측엔 아파트 나무 펜스 사이의 길 따라 계속 나아가게 된다. 인근 주민들이 많이 나와서 운동을 하고 있다.

 

이 동네 신갈지점에 2년을 근무했는데 이런 산책로가 있는지 몰랐다. 숲속엔 아까시꽃 향기가 그득하다. 간만에 긴 오르막을 만나 제법 헉헉대며 올라가니 '200.2봉'이 나온다.(10:05)

 

 


#  200.2봉 정상.
 

 

 

 

# 수원골프장과 구갈지구 아파트들이 보인다.

 

 

 

# 골프장을 줌인해 보니 요런 모양이다.

 

 

 

200.2봉 정상엔 피뢰침과 약간 넓은 공터와 쉼터, 그리고 전망대가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체조도 하고 담소도 나누고 있다. 전방으로 수원골프장과 구갈 아파트단지가 한 눈에 조망된다. 신갈에 2년을 살면서도 모르는 곳이 많았다.

전망대에서 한숨 돌리고 물도 먹고 휴식을 취했다. 좀 오래 쉬었으면 좋겠지만 완전무장한 모습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와 곧 출발했다. 이곳에서 정맥길은 골프장 철망과 헤어져 좌측으로 꺾여 내려가다가 체육시설과 쉼터가 있는 '갈림길' 을 만난다.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공터 한가운데 이정목이 서 있는데, 좌측은 강남대, 우측은 원일사 방향이라고 적혀 있다. 누군가 '좌측 방향'에 펜으로 한남정맥이라고 적어 두었다.

 

좌틀해서 한참을 내려 가자 한순간 앞이 툭트이는 '임도 갈림길'이 나오고 전방엔 넓은 '묘지'가 있다. 이곳에서 다시 좌틀해서 내려가면 다시 묘지를 만나고, 잠시 후 고개에 내려서게 된다.(10:25)

 

 


# 체육시설이 있는 갈림길. 좌틀해야.
 

 

 

 

# 고개, 산책나온 여성들.

 

 

 

고개 우측엔 아파트 단지가 있고 좌측엔 건축폐기물 처리장이 있다. 건축폐기물 처리장에선 쉴새없이 기계소리가 들리고 있다.

고개 아래쪽에서 여성 두 분이 올라 오더니 그린빌아파트 가는 방향을 물어본다. 내가 내려 온 쪽으로 제법 헉헉 소리 내며 올라 가셔야 된다고 알려주고, 고개를 가로질러 완만한 오름을 올라갔다.

잠시 후 '무명봉' 하나를 오르고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 방향에 표지기들이 많이 매달려 있다. 좌측으로 떨어져 내리다가 '철조망'을 만난다.

이곳에서 길은 양갈래로 나뉘는데, 좌측 표지기들이 많이 붙어 있는 쪽으로 접어즌다. 수풀이 너무 우거져 진행하기가 어렵다. 지금이 이 지경인데 나중 7,8월 이후엔 진행하자면 땀 꽤나 흘릴 것 같다.

수풀을 억지로 헤치고 진행하는데, 송홧가루가 수풀에 잔뜩 묻어 있다가 일제히 달려든다. 금세 온몸이 노랗게 변하고 기침이 연방 나온다.

 

그렇게 한참 가다가 철망이 우측으로 꺾이는 곳에서 등로는 철망과 헤어져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우측 철망쪽'으로 표지기가 보인다. 이곳 역시 철망쪽은 수풀이 우거져 길의 모양이 아니다. 송홧가루 풀풀 날리는 수풀을 헤치고 철망을 따라 계속 진행하는데, 좌측 아래에선 강력한 기계음이 계속 들려 온다. 그러다 절개지가 나오고 '어정가구단지'로 내려가는 '아차지고개'가 나온다.(10:38)


 


# 철망을 만나 좌틀하는데 수풀이 우거져 진행이 어렵다. 

 

 

 

# 자린고비의 전설이 있는 아차지고개.

 

 

 

이곳도 숱하게 넘나들던 고개이지만 이름이 아차지고개인 것도, 자린고비의 전설이 있는 지도 이번에야 알았다. 어정가구단지의 이름이 장을 먹고 도망가던 파리가 어정댄 곳이란 것도...

절개지를 내려가자 넓은 공터에 간이매점이 있고 개 한마리가 자지러지게 짖어댄. 아차지고개엔 평소에도 차량통행이 많은 곳이라 얼른 건너 가서 간이화장실 뒤쪽으로 올라가서 정맥길에 복귀했다.

무명봉을 넘어 나무에 그냥 칭칭 감아 둔 낡은 '철조망'을 만난다. 얼마나 오래 된 것인지 나무 몸통을 완전히 파고 들어가 있다. 철조망을 따라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좋은 길이 이어지나 정맥길이 아니고, 좌측 철망을 따라가야 하는데 길의 형태가 아니다.

표지가 하나 달아 뒷사람에게 알리고 철망을 따라 가다가 무명봉을 올라 서니, 한순간 앞이 툭 트이며 '민가' 몇 채가 전방에 나타난다.(11:06)


 


# 민가들. 큰 진돗개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민가 뒤쪽으로 진행하는데 두 번째 집에서 키우는 큰 진돗개가 미친듯이 짖어대며 엄청난 공격성을 보인다. 목줄이 매여 있기는 하지만 만약 떨어지는 순간 최소한 중상이라는 생각에 발길을 재촉하는데, 이 때문에 알바를 하게 된다.

세 번째 집은 하얀 목장 건물인데 후문에 "등산로 아님. 출입금지"라고 코팅된 종이를 붙여 두었다.진돗개가 하도 덜컥거리며 짖어대서 좌측으로 급히 철조망을 따라 내려갔다. 그러자 숲을 벗어나게 되고 절개지 아래 도로가 나온다. 우측 아래 쪽에 창덕아파트가 나와서 바로 왔나 보다 싶지만, 맞은 편 절개지 쪽으로는 표지기는 물론 등로도 보이질 않는다.

일단 창덕아파트 쪽으로 내려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창덕아파트 뒤쪽으로도 산줄기가 연결된 것이 보인다. 이런~~ 알바다!!!

다시 절개지쪽으로 돌아오니 목장의 정문이 나오는데, 나처럼 알바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 정문에도 "등산객 출입금지" 라고 붙여 두었다. 절개지를 다시 올라 숲을 지나 목장 후문으로 복귀했다. 20분 알바했다.

우측으로 내려가 도로를 따라 가라고 선답자의 산행기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쪽에도 시커먼 개 한마리가 매여 있는데 역시나 덤빌려 날띈다. 결국 목장 파란 철망을 따라 '직진'해서 '밭'으로 내려서면 된다. 밭 우측 절개지를 올라서자 조진대님을 비롯한 표지기들이 반기고 있고, 마루금에 복귀하였다.

좌측 아래에 창덕아파트가 보이고 잠시 진행하자 누군가 등로 한가운데 커다란 지뢰를 매설해 두었다. 사람의 것이 분명한데 정맥꾼의 짓인지 마을 주민의 것인지는 알 수 없고 단지 뒷사람에게 조심하라고 주의만 전한다.

잠시후 삼각점이 있는 '182.4봉'을 지나고, 이 산은 창덕아파트를 휘감고 있다. 개인 소유의 산인지 묘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조망과 경고판을 군데군데 세워 두었다. 아마도 평소에 창덕아파트 사람들이 묘지 주변에서 고기 꽤나 구워먹는 모양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숲이나 잔듸밭만 보면 꼭 고기를 구워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으로 바꼈나 보다.

오래전 박세리가 미국에서 처음 활약하던 시절의 얘기다. 국내에서 로라 데이비스와 소렌스탐 등 탑 랭크들과 같이 시합을 했는데, 그 골프장에 온 갤러리 중 그린 옆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려는 사람이 있어 대회 관계자들을 경악케 했다는 기사를 본 일이 생각난다.


이 산 소유자도 오죽했으면 저런 팻말을 붙혀 두었을까 싶은 생각에 씁슬한 생각에 공감을 하게 된다. 잠시후 산을 내려 와 영동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는 '지하차도'를 만난다.(11:44)

 

 


#  "등산로 아님" 이라고 적어 두었다. 
 

 

 

 

# 민들레 홀씨. 훅 불어서 바람의 역할을 대신해 본다. 

 

 

 

# 이 도로로 내려 와서 전방 창덕아파트 주변에서 헤맸다. 알바다.

 

 

 

#  "등산로 아님" 팻말로 복귀해서 담장 따라 직진하면 된다.

 

 

 

# 182.4봉을 내려 와 영동고속도로 지하차도를 만난다.

 

 

 

지하차도엔 차량 통행이 많아 조심스레 지난다. 지하도를 나오자 낯선 도로들이 앞을 가로막는데, 여기부터가 오늘 구간의 가장 하일라이트이자 앞이 막막해지는 곳이다.

이곳은 최근에 도로공사와 택지공사 등 개발 때문에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서 선답자들의 산행기나 개념도, 지도 등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는 곳이다. 그래서 참소리님께서 '홀대모 사랑방'에 올려 놓으신 지도를 따로 종이에 그려 왔지만, 현장하고 정확하게 일치가 되질 않아 애를 먹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곳에서 1시간 이상 또 알바를 했다.

 

 


# 참소리님의 그림을 베이스로 해서 현지 상황을 재구성해 보았다.
 

 

 

 

 창덕마을에서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면 신설도로 밑으로 이어지는 램프로 변형이 되어 있으나, 현재는 차량이 많지 않은 관계로 보행에 지장이 없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동백에서 분당으로 이어지는 도로 위의 유턴지점을 통과하여 택지지구 신설도로 밑으로 통과를 해야만 정맥길로 진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 참소리님의 글.

위 지도와 참소리님의 글을 가지고 갔는데 현장에서는 도저히 매치를 시킬 수가 없었다. 지하차도를 지나자 도로 곁에 반사경이 나오고 향린촌으로 가는 신설도로에서 갈라져 나오는 램프가 바로 앞에 나온다.

이곳도 바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지하차도를 나와 반사경을 지나고 신설도로에서 갈라져 내려오는 램프를 만난다. 램프를 거슬러 올라가 신설도로 위에 올라가 동진교를 건너 도로 따라 진행해서  향린촌으로 바로 올라가든지, 지하차도를 나와 램프를 따라 내려가서 분당동백간 도로를 무단횡단(차량통행이 많고, 중앙분리대가 높아 극도로 주의해야 함.) 해서 신설도로와 합류해서 향린촌으로 올라가는 방법이 좋을 듯하다.

램프를 따라 내려가다가 '동진교' 아래에 섰다. 저기 위쪽으로 유턴하는 도로가 보인다. 반대 방향 아래쪽에도 유턴다리가 있고 주유소가 보인다.

그냥 무단횡단을 해버릴까 생각도 해 보지만, 중앙분리대가 높고 차량통행이 많을 뿐더러 무엇보다 주변 지형에 대한 확신이 전혀 서질 않아 일단 '유턴다리'까지 올라가 보았다.

유턴다리에는 '법화산터널'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유턴다리를 지나 도로 따라 계속 갔다. 참소리님은 세 번째 도로, 즉 택지지구 진입도로 아래로 내려 와야 한다고 기록해 두었는데, 유턴다리에서부터 도로 옆에 높은 울타리가 쳐 있어 내려갈 수가 없다.

잠시 가자 공사현장이 나오고 도로는 계속 좌측으로 올라간다. 참소리님의 기록대로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공사장에서 절개를 해두어서 갈 수가 없다. 일단 길 따라 가 보기로 하고 계속 올라갔다.

절개지 터널 공사 중인 곳을 지났다. 아파트 분양 현장을 지나 뜨거운 뙤약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니 골프연습장이 나타난다. 주변을 한참 둘러 보지만 여기가 도대체 어딘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이럴 때는 유턴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 많이 올라와서 그것도 어렵다. 주변을 헤매다가 컨테이너 박스 안에 있는 사람에게 향린촌 가는 길을 물어보니, 88골프장 PAR 3 연습장의 도로를 따라 올라 가라고 한다.

일단 골프장 안으로 들어가서 우측을 확인한다. 우측 산줄기가 원정맥길인가 보다. 골프장 도로를 뙤약볕 아래 낑낑대며 구불구불 올라갔다. 고급차들이 가끔씩 지나 간다. 묵묵히 걸어 올라갔다. 좌측 파란 골프 코스에선 라운딩하는 남녀들이 공 날리기에 여념이 없다.

땀을 뻘뻘 흘린 뒤에야 아래에서 올라오는 '도로'와 합류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곳 위치 파악이 정확히 되지 않고 있다. 향린촌 이야기는 없고 '88골프장' 가는 길이란 '이정표'가 있다. 개념도에 의하면 88골프장은 정맥길에서 한참 좌측에 위치하던데?

합류지점에서 잠시 망설이다 위로 올라 가 보았다. 잠시 후 우측으로 갈라지는 '비포장 임도가 나온다. 개념도대로라면 이 산이 아니고 건너편 산이 정맥길인 것 같아 임도로 들어가 본다.

임도는 우측으로 들어가다가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리는데, 승용차 한 대가 앞문을 열어 둔 채 주차되어 있고 중년 남녀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 아니 도대체 한남정맥 여덟 번 진행하는 동안 네 번이나 이런 모습을 보게 된다.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내가 이상해서 이런 모습이 자꾸 눈에 띄는 건가? 얼른 지나쳐서 아래로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서 개활지가 나오는데, 주변 지형을 살피니 영 이상하다. 전방 아래쪽에 건물들이 있는 거로 봐서 아까 그 아스팔트 도로가 정확한 길인가 보다. 개념도가 쬐끔 어긋난 건지, 내가 독도능력이 떨어지는 건지... 이럴 때 정밀지도가 필요한 법인데... 일단 원위치!

아스팔트로 되돌아가는데 참 많이도 내려왔네? 낑낑 올라가는데 하얀 승용차를 다시 만났다. 작업(?)이 다 끝났는지 남자는 바지를 입고 있고 여자는 입술을 그리고 있다. 좋았수?

아스팔트 도로로 돌아와서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자 비로소 '향린촌 경비실'이 모습을 나타낸다. 반갑다 향린촌아!!! 다시 길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니 '88 CC'와 '금호베스트빌리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나온다. 더 올라가자 갈림길이 나오고 철문으로 막아둔 금호 베스트 빌리지 가는 길이 나온다. 철문 우측에 철조망이 터진 곳이 있어 안으로 돌아 들어갔다.(13:00)

지하차도에서 여기까지 1시간 20분이 걸렸네요. 1시간여 엉뚱한 곳에서 헤맨 모양이다. 힘들다! 좀 쉬자!!!

 


# 지하차도를 나오면 바로 이런 모습이 나온다. 향린촌 가는 그림 상의 가운데 길. 동진교와 신설도로다. 일단 동진교 위에 올라가서 그 도로 따라 가는 것이 제일 좋을 듯. 바로 앞 도로는 신설도로에서 갈라져 내려오는 램프. 나는 저 램프로 내려 갔다. 그리고 동진교 아래에서 고민하다가 다리 아래를 지나 위쪽으로 올라갔다. 

           

 

 

# 사진을 가로지르는 공사 중인 다리가 그림상 제일 윗 도로, 택지지구 진입로다. 윗쪽에 유턴다리가 보인다. 참소리님 말씀은 저 유턴다리를 건너서 이 진입로 아래로 도로 내려오라는 것이다.

 

 

 

# 유턴도로. 법화산 터널이라고 적혀 있고 뒤쪽에 터널이 입을 벌리고 있다. 여길 건너서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철망을 막아 두었다.

 

 

 

# 유턴다리 지나서 아래쪽으로 바라본 모습. 철망 위로 손을 올려 찍은 사진이다. 창덕아파트와 뒤쪽의 정맥줄기가 도로에 의해 끊긴 모습이 보인다. 전방의 다리가 그림상 제일 위쪽 도로인 택지지구 진입로다. 참소리님은 저 다리 아래로 내려 가라는 것이다.

  


# 유턴다리 지나 길 따라 가면 공사장이 나오고 이렇게 전개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서 길을 찾아봐야 하는데 공사장에서 절개를 해두어 포기하고 길 따라 올라 갔다. 이것이 알바의 시작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서 길을 찾으면 향린촌 올라가는 길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제일 좋은 방법은 이곳까지 오지 말고 그림상 가운데 도로인 동진교에 올라서서 향린촌 방향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물론 이 길따라 애가 알바한 대로 가도 향린촌으로 가기는 하다.


 

# 88 PAR 3 연습장. 좌측 산줄기가 정맥길다.

 

 

 

# 어렵게 도착한 향린촌 경비실.

 

 

 

# 경비실에서 잠시 오르면 이 안내판을 만난다.

 

 

 

# 갈림길. 우틀해야 한다.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도로에서 1시간 이상 헤맸더니 너무나 지치고 힘이 들었다. 나무 그늘 아래 배낭 벗어 두고 쉬면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마눌이 싸준 도시락을 꺼내 식사를 하려는데, 정맥꾼 한 사람이 철문을 우회해서 들어 온다.

"아이구! 반갑습니다! 저 아래에서 헤매지 않으셨나요?" 자기도 잠시 헤매긴 했지만, 공사장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정맥길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한다. 어슬프게 준비한 것이 오히려 알바를 부추겼다. 식사 같이 하자니까 먼저 가시겠단다. 악수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마음(心)에 점(點) 하나 찍고 푹 쉰 후 시멘트 길을 걸어 올라갔다.(13:40) 잠시 후 '갈림길'을 만나는데 '정상로, 순환로' 갈림길이다.

 

 


# 향린동산 정상 갈림길. 

 

 

 

갈림길에서 바로 좌측으로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바로 또 두 갈래로 나뉜다. 좌측 위쪽으론 철대문이 보이고 우측 길은 숲속으로 들어 간다. 조진대님 표지기가 붙어 있다.

숲길로 들어가 한참을 진행하니 '향수산 등산로'란 오래된 팻말이 붙은 '갈림길'이 나온다. 무심코 좋은 길 따라 가기 쉽지만 정맥길은 이쪽에서 우틀해야 한다. 잠시 후 철조망이 터진 곳이 나오면서 아래로 향린동산 순환로가 보인다. 이후 계속 진행하면 이런 철조망이 터진 곳이 몇 군데 나온다.결국 순환로 따라 계속 가다가 철조망 터진 곳으로 해서 숲으로 들어 가도 된다는 얘기다.

잠시 가파르게 올랐다가 길게 내려서 다시 오르내리면 나무가 우거져 통행이 어려울 듯한 오래된 고개인 '안현'이 나온다.(14:02)

 

 


# '향수산 등산로' 갈림길. 절대로 직진하면 안됨. 우틀!!!

 

 

 

# 오래된 고개인 '안현'.




안현을 가로질러 직진하면 편안한 등로가 나온다. 등로 따라 오르내리다가 산을 넘어가는 전봇대 때문에 수풀이 제거되어 방화선이 형성된 곳을 지나자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된다.


가파르게 오르다가 로프구간을 지나 올라가자 무너진 성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할미성'이다. 성벽을 올라서자 넓은 공터에 산불감시초소와 안테나가 있는 '350봉'이 나온다.(14:22)


 


#  할미성. 

 

 

 

# 이곳은 아직 성벽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350봉.

 

 

 

# 고광나무. 꽃잎은 배꽃을 닮았다.

 

 

 

# 양지꽃.

 

 

 

 

# 향린촌의 모습이 조망된다. 부자들의 전원주택단지인가 보다.

 

 

 

 

370봉을 내려 잠시 직진하자 다시 잡풀이 무성한 '헬기장'을 지나고, 이후 무너진 할미성 성벽을 따라 길고 가파르게 내려간다. 중간중간 무너진 성벽 돌을 모아서 군 참호를 만들어 두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목슴을 걸고 내기를 한 성벽이 이제는 다 허물어져 버렸다. 성 쌓기에 관련된 전설은 보통 오누이가 목숨을 걸고내기하기 마련인데, 이곳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기를 하였다. 할미성에 관한 전설은 문경이나 육십령 등에도 있다.

무릎이 시큰시큰해질 무렵, 안부에 내려선다. 편안하게 진행하다가 '갈림길'을 만나 우틀하여 내려간다. 잠시후 다시 '갈림길'을 만나는데, 어느 쪽에도 표지기가 없다. 개념도나 선답자 산행기에도 안나오는 곳이다.

잠시 주변을 둘러 보며 고민을 하는데 직진길은 좋은 길이긴 하지만 거미줄이 처져 있다. 우측길이다!!! 표지기 하나 붙여 뒷사람에게 알리고, 우측길로 떨어져 내려가자 아니나 다를까 표지기가 하나 나타난다. 다시 길고 가파르게 내려가다가 낙엽이 가득 찬 시멘트 배수로를 만나고, 배수로 따라 내려가니 차량통행이 많은 '작고개'에 도착한다.(14:45)


 

 


# 갈림길. 우틀해야 한다. 

 

 

 

# 작고개. 건너편에 터키군 참전비가 보인다.

 

 

 

작고개 방호벽이 높아서 조심해서 내려선다. 차량 통행이 많다. 흐름이 끊긴 틈을 타 횡단하였다. 까치의 전설이 있어 '작고개'인가? 자료를 찾아 보지만 알 수가 없고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터키군을 기리는 기념비만 서 있다.


투르크의 전사들이 이 먼 나라까지 와서 목숨을 바쳤다. 2002년 올림픽 4강전이 아니었다면 우리 국민 중 터키군이 우리나라 전쟁에 참전했었다는 사실을 몇 명이나 알까?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참 은혜를 모르는 나라이다.

 


 


# 이 먼나라에 와서 3,000여명이나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 고마운 투르크의 전사들.

 

 

 

터키군 참전비를 잠시 둘러보고 좌측으로 진행하니 영동고속도로 위를 지나게 된다. 건너편에 에버랜드로 가는 마성 나들목이 보인다. 이 고개가 마성터널이 막힐 때 우회하는 바로 그 길이다.

도로 우측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곳도 방호벽이 높아 끙차~ 하고 매달려 올라야 했다. 바로 위에 '마가실서낭' 이라는 비석이 서 있고 그 옆 별로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나무가 서낭목인가 보다. 용인 도당굿이 유명하고 이 마가실 서낭이 굿을 하는 장소라고 한다.

한바탕 가파르게 치고 올라 바위가 있는 '무명봉'에 오른다. 이후 고만고만한 무명봉을 2~3개 넘은 후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된다. 동백지구에서 뙤약볕 아래 알바하느라 몸이 지친 탓인지 아주 힘이 들었다.

청포도사탕을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헉헉! 낑낑! 아이구, 죽것다! 소리를 하며 오름을 오르고, 청포도 사탕이 다 녹을 쯤 '바위와 소나무'가 있는 봉우리에 오른다.(15:24)

아이구~ 여기가 석성산인가? 상당히 힘들구만! 수첩에 석성산으로 기록하고 고도계를 확인하니 얼라? 360m 밖에 안되네? 석성산은 471m 인데? 선답자의 산행기 꺼내 확인해보니 석성산이 아니라 '삼거리'다.

 

 


# 도로 바로 위에 있는 마가실 서낭. 

 

 

 

# 오늘 구간은 송충이류의 애벌레가 얼마나 많은지 머리에 어깨에 목 안에 들어오는 것은 예사이고, 등로가 온통 애벌레의 똥으로 까맣게 뒤덮혔다.

 

 

 

#  천남성.

 

 

 

# 노린재나무.

 

 

 

# 괴불나무.

 

 

 

# 광대수염.

 

 

 

# 미나리 냉이(?)

 

 

 

# 바위와 소나무가 있는 삼거리.

 

 

 

주변을 확인하니 우측으로 동백리로 내려간다는 팻말이 붙어 있고 정맥길은 좌측길이다. 너무 힘들어서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자 석성산으로 믿고 싶었나 보다. 잠시 내렸다가 다시 가파르게 낑낑 오름을 오른다. 겨우 471m 산에서 이렇게 헤매다니...

암봉 전망대를 하나 오르지만 아직 고도계는 410m를 가리키고 있다. 아직 고도를 60m나 올려야 한다. 이곳도 아래 동백리 쪽으로 급하게 떨어져 내리는 갈림길이 있다. 다시 가파르게 낑낑 오르니 '무명봉'이 나오는데, 전방에 석성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하고 정상 전망대에 서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잠시 내렸다가 다시 올라가는데 어느 미술 학원에서 산상전시회를 하고 있다. 꼬맹이들의 작품들이 코팅되어 나무에 계속 매달려 있다. 로프 구간이 나타나고 잠시 후 쉼터와 전망대가 있는 '석성산 정상'에 도착했다.(15:52)

 

 


# 무명봉에서 줌으로 땡겨본 석성산 정상.
 

 

 

 

# 어린 화가들의 그림솜씨.

 

 

 

# 절대 포기하지 말란다. 그래야지!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는 법이다. '포기하지 않기' 요즘 나의 화두이다.

 

 

 

 

# 석성산 정상부 로프구간.

 

 

 

# 정상엔 쉼터가 있다.

 

 

 

# 정상 바로 앞의 무명봉과 저 멀리 뒤쪽의 정맥 줄기.

 

 

 

# 용인 지역은 한때 골프장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으로 이름을 얻더니, 이제는 아파트 수가 가장 많은 곳으로 이름을 얻으려고 하나 보다. 끊임없이 짓고 또 짓는다.

 

 

 

석성산은 용인의 진산답게 사방 조망이 훌륭하다. 할미성에서 석성산에 이르는 산줄기만 본다면 대간길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만큼 힘도 든 구간이었다.

쉼터에 앉아 간식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가족 단위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간간이 있다. 모두들 완전무장한 내 차림을 보곤 힐끔힐끔 쳐다 본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짐 챙겨 떠났다. 잠시 내려가자 바로 '헬기장'을 만난다. 정맥길은 직진해야 하지만 군부대가 있고 위험구간이라 우회해야 한다고 선답자의 산행기에 기록되어 있다. 좌측 우회로인 통나무계단길을 내려갔다.

상당히 가파르게 내려가다가 '쉼터'를 만나고, 이 하산길에도 애기들의 그림전시회는 계속 이어진다. 나중에 저 그림들을 회수할 지는 의문이다.

계속 가파른 내리막을 길게 내려가다가 '통화사 갈림길'을 만나고, 이곳에서 우틀하여 '시멘트 길'로 계속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 통화사 대문 역활을 하는 듯한 '돌기둥'이 나오고 군부대쪽 하산길인 시멘트길과 합류한다.

 

합류한 바로 아래에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 숲길' 쪽으로 표지기들이 붙어 있다. 좌틀하여 아주 길고 오래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나뭇잎을 갉아먹는 애벌레들이 얼마나 많은지 벌레똥이 떨어지는 소리가 자르륵 자르륵 들려온다.

송전탑을 지나자 긴 통나무 계단길이 앞에 나타난다. 낑낑 소리내며 나무계단을 올라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 우회로가 길이 더 좋지만 정맥길은 우측길로 올라가야 한다. '324봉'이다.(16:50)

 



# 통화사길과 군부대 길이 합류하는 곳. 바로 아래에서 좌틀. 
 

 

 

 

 

# 송전탑을 지나고,

 

 

 

# 긴 통나무계단을 오르면 324봉에 오르게 된다.

 

 

 

알바하느라 시간지체가 많아 걱정이 많다. 오늘 하고개까지 가야 하는데... 325봉 하산길은 아주 가파르고 길게 이어진다. '송전탑'을 지나 계속 내려가면 '묘지'를 만나게 되고, '갈림길'에서 좌측길로 내려가다 보면 좌측에 넓은 비닐하우스 단지가 숲 아래에 보인다. 우측으로는 난방공사의 높은 굴뚝이 보인다.

다시 송전탑을 만나고 우측길에 표지기가 있어 그 쪽으로 내려가면 안부를 지나게 되고 낡아서 글자 해독이 어려운 나무 팻말에 '멱조고개'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무명봉 하나를 올랐다가 길게 내려가자 한순간 절개지가 앞을 가로막고, 무시무시한 '철계단'이 눈 앞에 펼쳐진다. '멱조고개'다.(17:14)


         
# 4차선 도로인 멱조고개. 길 건너편에 용인배수지가 보인다. 

 

 

 

'멱조고개'는 이름이 특이하여 무슨 전설이 있을 법한데 자료를 찾아 보지만 알 수가 없다. 단지 한자로 '찾을 覓' '할애비 祖' 자로 추측하여 조상의 자취를 찾거나 할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전설이 있지 않을까 짐작만 해본다.

절개지에서 건너다 보니 길 건너 용인배수지와 뒤쪽의 송전탑이 보인다. 저 두 곳을 기준으로 가야 한다. 철계단이 길고 가파르게 고개까지 이어져 있어 조심스레 내려갔다. 고개 위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던 차들이 일제히 창을 내리고 올려다 본다. 절개지엔 패랭이꽃들이 인공 식재되어 있다.

고개에 내려서서 차량 흐름이 끊긴 틈을 타서 건너고 좌측으로 가서 용인배수지 철망으로 올라 갔다. 철망을 따라 올라 가다가 철망과 헤어져 무명봉 하나를 힘들게 올라간다. 안부로 내렸다가 더욱 낑낑거리며 무명봉 하나를 오른다. 우회로가 있지만 그쪽으로 가면 엉뚱한 길로 가게 되므로 정상으로 오른다.(17:38)

잠시 내려가자 앞이 툭 트이며 송전탑 공사장이 나오고 인부들이 공사를 막 끝냈는지 모여서 장비를 정리하고 있고 갤로퍼가 여기까지 올라 왔다. 송전탑 공사를 위해 진입도로를 만들었나 보다. 인부들에게 수고하신다 인사하고 계속 직진하여 숲길로 들어섰다. 우측으로 송전탑 진입도로가 보인다.

계속 내려가자 한순간 42번 도로의 무시무시하게 높은 절개지가 앞을 가로막는다. 절개지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서 오일뱅크주유소 뒤쪽으로 내려갔다. 절개지를 내려가는 길이 미끄럽고 가팔라 조심해서 내려가야 하고, 이윽고 '42번 도로'에 내려선다.(17:50)

 

 

# 송전탑 공사장에서 용인정신병원과 건너편 정맥줄기를 본다. 

 

 

 

# 42번 도로와 건너편 절개지.

 

 

 

이곳에서 구간을 끊을까 잠시 고민하였다. 알바하느라 시간 지체가 심해 하고개에 8시가 넘어 도착할 것 같기도 하고, 이곳은 차를 세워 둔 신갈로 한번에 넘어가는 버스가 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힘이 조금 남아 있어 일단 가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42번 도로는 차량 통행이 많아 건너기가 쉽지 않다. 이 도로는 강원도에서 넘어 오는 차들이 문막 ~ 여주구간에서 막힐 때 대체 수단으로 이용해서 용인 거쳐 신갈로 넘어 갔다가 분당과 서울로 가거나 수원과 안양으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차량통행이 아주 많다.

때문에 선답자들은 도로를 길게 내려가서 용인정신병원 앞에서 건널목을 건너서 다시 고개 위로 올라오는 모양이지만, 도로가에서 물 마시고 쉬면서 양쪽 방향 모두 신호가 맞아 차량 흐름이 끊길 때를 기다렸다가 중앙 분리대 사이 빈틈과 도로 공사 분리대를 넘어 건너 갔다.

그런데 건너편 절개지가 무지하게 높아 올라가는 길을 찾기 어렵고 절개지 사면을 차고 오른다는 것도 왠지 망설여진다. 그래서 '임도'를 따라 조금 올라가다가 '계곡방향'으로 해서 길 없는 숲을 가파르게 차고 올라갔다. 길이 없어 미끄러운데 바로 '절개지 상단'으로 연결된다.

앞이 툭 트여서 지나온 정맥길과 건너온 42번 도로가 발 아래 보인다. 뒤쪽으로 등로가 연결되어 있고 표지기들이 붙어 있다. 
 

 

 


# 공사 중이어서 절개지 사면을 차고 올라가기 미안해서 숲으로 올라갔다.

 

 

 

# 절개지 정상에서 건너다 본 고개 너머 무명봉.

 

 

 

# 주유소 쪽으로 내려서기 조심스럽고 차량 흐름이 끊길 때 중앙분리대 빈 곳으로 재빨리 건넜다.

 

 

 

숲길로 들어서서 잠시 올라가자 '송전탑'이 나오고 '임도'가 나타난다. 42번 도로에서 올라오는 송전탑용 진입도로인 모양이다. 결국 42번 도로에서 임도따라 올라와도 된다는 얘기다.

이후는 임도와 송전탑 숲길이 번갈아 나오면서 서로 교차되는 형국이다. 송전탑 구경을 실컷 한다. 봉우리 위에 서면 정맥길 따라 길게 이어진 송전탑을 볼 수 있다. 임도따라 길게 내려 가다 보면 사거리 안부에 닿게 되고, 맞은편 숲속으로 표지기들이 많이 붙어 있다. 숲속으로 들어가 낑낑 올라가다 보면 우측 숲 아래에 임도가 계속 따라 올라오고 있다.

습도가 높아서 땀이 뻘뻘 난다. 오늘 땀 정말 많이 흘리는 날이다. 잠시 후 '65번 송전탑'을 만난다.(18:32). 임도 따라 먼지를 펄펄 일으키며 갤로퍼 한 대가 올라오더니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아니, 아저씨 건너편 산에 있더니 언제 여기까지 왔어요?" 라며 아는 체를 한다. 건너편에서 송전탑 공사를 하던 사람이다.

 

 


# 건너편에 영진골프랜드와 부아산이 보인다. 저 산을 넘어야 한다. 

 

 

 

# 송전탑이 정맥길을 따라 길게 늘어 서 있다.

 

 

 

# 임도 사거리에서 정면 숲으로 들어간다.

 

 

 

송전탑과 임도를 반복해서 만났다가 2번 송전탑 좌측 숲에 표지기들이 지친 정맥꾼을 숲속으로 불러 들인다. 그래봤자 이내 임도와 만날 거면서... 아니나 다를까 이내 임도와 만나게 된다.

임도를 계속 올라 '24/5번' 이라고 적혀 있는 송전탑을 지나고, 다시 송전탑을 지나 계속 나아가다 보면 절개지가 나온다. 이곳에도 고개로 내려가는 철계단이 있다. 철계단을 내려 '영진골프랜드'가 있는 무명고개에 내려선다.(19:00)

 

 


# 저 부아산을 넘고 다시 부이산을 넘어야 하고개에 닿는다. 

 

 

 

# 다시 철계단을 내려 영진골프랜드가 있는 무명고개.

 

 

 

이 고개는 용인에서 신갈 지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왕복 2차선 샛길같은 도로인지라 아는 사람들만 다니는 길이다. 당연히 노선버스는 없다.

이곳에서 오늘 계획했던 하고개까지 가려면 정면의 부아산을 넘고 다시 부이산을 넘어야 한다. 지금이 일곱시이니까 여덟시쯤이나 되어야 도착할 수 있다. 해가 많이 길어졌으니 막판에 조금만 등불을 켜면 될 터이지만, 마눌이 이사준비 때문에 빨리 돌아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하고개엔 넓은 공동묘지가 있어 어두워진 구간 마지막을 공동묘지를 거쳐 내려 올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꾀름직하다.

결국 이곳에서 오늘 구간을 끊기로 결정했다. 좁은 고갯길이지만 지나 다니는 차들이 곧잘 있어서 봉고차 하나 히치해서 지곡리까지 내려 왔다가 택시타고 출발지인 용인 면허시험장으로 돌아 왔다.

오늘 구간은 구성 동백지구에서 길을 잃고 1시간 이상 헤매는 바람에 애초 계획했던 하고개까지 가지도 못했고, 개발때문에 점점 정맥길의 의미를 잃어가는 한남정맥의 심각성을 절감할 수 있는 구간이었다.

이러다간 한남정맥은 산길 걷는 것보다는 아스팔트나 아파트 안을 걷는 시간이 더 많아질 지도 모른다. 1대간 9정맥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남정맥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하루빨리 그 맥을 두 발로 더듬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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