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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정맥]일곱번째(큰넉고개~축석령)-죽엽산엔 댓잎 대신 솔잎만 많더라! 본문

1대간 9정맥/한북정맥 종주기

[한북정맥]일곱번째(큰넉고개~축석령)-죽엽산엔 댓잎 대신 솔잎만 많더라!

강/사/랑 2007. 7. 8. 09:10
 [한북정맥]일곱번째(큰넉고개~축석령)

  


강/사/랑의 한북정맥(漢北正脈) 일곱 번째 나들이는 큰넉고개에서 축석령까지다. 이번 구간은 포천시 소흘읍(蘇屹邑)의 뒷덜미를 가로로 걸어 서남진(西南進)해야 한다. 

 

소흘읍(蘇屹邑)은 한자로 '되살아날 소(蘇)', '산 우뚝 솟을 흘(屹)'을 쓰고 있다. 한자어 그대로 해석을 하면 맥(脈)이 약해졌던 산줄기가 우뚝 솟았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한자의 지명(地名)은 뜻 그대로 해석되기보다는 음차(音借)된 경우가 많아 그냥 뜻대로 해석하기는 곤란하다.

 

이 땅의 지명 중에는  '소(蘇)' 자가 들어 있는 것이 종종 있다. 이들은 대부분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의 전설과 연결되어 있다. 한남정맥(漢南正脈)의 맥과 연결되어 있는 '소래포구(蘇來浦口)'나 '소래산(蘇來山)'이 바로 그런 곳이다. 이들은 삼국시대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군사를 이끌고 온 곳이라 해서 이름 지어졌다 전해진다. 해당 지자체에서 전하는 지명 유래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지명에 쓰이는 한자어 '소(蘇)'자는 우리 말 '솟(高)'의 음차(音借)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이나 마을이 높이 솟았거나 높은 곳에 위치했다는 의미이다. 소래포구나 소래산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일부 연구에서는 소정방의 전설이 아니라 그 산이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 산이라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지자체의 지명 유래나 일부 자료에는 소정방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소래(蘇來)가 되었다는 식으로 기록했을까?  그것은 지명 유래라는 것이 이것이다 라고 적시하여 기록된 정설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많은 경우 구전(口傳)되어 전해진데 원인이 있다.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 행정 기관이 지명을 기록하면서 한자로 음차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후대에 유래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자 이름 그대로 해석하는 우(愚)를 범하기도 하였던 탓이다.


이런저런 유래의 시비(是非)가 많지만, 소흘의 경우 어떤 방식의 유래이든 높은 곳이란 뜻은 분명하다. 한자음대로 해석하든 '솟'의 음차로 해석하든 어느 경우이든 '소흘'이란 지명은 '우뚝 솟은 높은 산이 있는 동네'란 뜻이 된다.

소흘에 대한 이런 지명 유래의 분석은 그냥 내가 혼자 유추해 본 것이라 엉터리 일 수도 있다. 나는 지명 유래나 인문 지리에 문외한이다. 그러니 정확한 정보나 지식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옛 기록이나 공식 자료에서 그 유래를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지명 유래를 알기 위해 각종 옛 기록이나 포천시나 소흘읍의 홈페이지 등 이곳저곳 자료를 찾아보지만 그 유래를 알 길이 없었다.


따라서 소흘에 대한 나만의 적당한 해석이 필요하였다. 위의 이야기는 그런 노력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신빙성에는 문제가 있다. 다만, 이름의 분석 외에 약간의 기초 정보는 있다. 그것은 소흘의 지형이다. 소흘은 넓다란 포천시의 남쪽에 위치한 산지형 고장이다.


고장의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는 소흘은 한양으로 넘어가는 높다란 축석고개가 남쪽 끝을 이루고 있고 동남쪽에는 죽엽산이 우뚝 솟아 길게 남으로 감싸고 있다. 동네 전체가 산지로 구성되어 있고 긴 산줄기 하나 읍을 감싸고 있으니 '높이 솟은 곳(蘇屹)'이라 불러 이상할 것 없는 고장인 것이다.

그런데 '죽엽산(竹葉山)'이란 이름이 영 생경하다. '댓잎산'이란 뜻이다. 푸른 대밭이 우거져 죽엽산(竹葉山)인가? 하지만 대나무가 원래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넘이고, 차령산맥이 북방한계선이라 한수(漢水) 이북(以北)의 이 포천땅에는 대밭이 있을 리가 없다.

자료를 찾아보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고 단지 지도를 보니 죽엽산의 등고선이 남북으로 길게 댓잎처럼 늘어져 있긴 하다. 결국 산의 모양이 댓잎처럼 길쭉하여 이름 지어졌다는 의미인데...

 


그러나 그렇게 유추하기엔 근거가 너무 희박하고 자의적(恣意的)이다. 좋다, 결국은 현지 답사만이 정답이니 산길 걸으며 죽엽산이 댓잎을 닮았는지? 죽엽산에 댓잎이 돋아나 있는지? 눈 크게 뜨고 한 번 찾아보자!!!

 

 


竹葉山엔 댓잎대신 솔잎만 많더라!


구간 : 한북정맥 제 7구간(큰넉고개~축석령)
거리 : 구간거리(13.6 km), 누적거리(99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7년 5월 5일, 흙의 날
세부내용 :


큰넉고개(11:00) ~ 87번 도로 ~ 작은넉고개(11:45) ~ 267.7봉(12:00) ~ 큰 바위 ~ 570봉(13:22) ~ 601봉(13:45) ~ 노송지대 ~ 헬기장 ~ 죽엽산(14:05)/점심식사 후 14:40 出 ~ 노송지대 ~ 갈림길 ~ 115번 송전탑(15:08) ~ 40번 송전탑 ~ 임도 ~ 갈림길 ~ 임도 ~ 전주이씨 묘지 ~ 117번 송전탑 ~ 비득재(15:30) ~ 암봉 ~ 노고산(16:04) ~ 임도 ~ 고개 ~ 쉼터 ~ 천도교공원묘역 ~ 군부대 ~ 군부대 후문 ~ 다름고개(17:25) ~ 군부대 철조망 ~ 귀락터널(18:00) ~ 축석령(18:20).

총 소요시간 7시간 20분. 만보계 기준 22,000보.

 

5월 5일 어린이날이다. 지난 산행기들을 훑어 보니까 해마다 5월 5일엔 산을 찾았다. 그리고 산행기에 쓴 문구도 같다. "어린이날이지만, 축하해 줄 어린이가 없는 난 오늘도 산엘 간다!"

오늘도 같은 이유로 짐 챙겨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일기예보에서 밤에 비가 내릴 거라 하더니 그 말이 맞는지 고속도로엔 안개가 자욱하다. 이 궂은 날씨에도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대한민국의 아빠들은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시달린 몸을 이끌고 일제히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나섰다. 불쌍타, 대한민국의 가장들이여!!

교통방송에서는 전국 모든 고속도로에서 정체가 심함을 알려 주고 외곽순환도로 역시 차들로 가득하다. 급기야 하남쪽 광암터널에서는 아예 움직이질 않는다. 아마도 중부고속도로로 빠지는 차들이 도로를 모두 점령한 모양이니다.

 

한참을 지체한 후 퇴계원 방향으로 나갈려고 하지만 이곳은 정체가 더 심하다. 할 수 없이 고속도로를 더 달려 의정부로 빠져 나와 포천 가는 국도에 올리지만 이곳도 정체는 여전하다.

축석령에서 98번 지방도로 우회하여 광릉수목원을 지났다. 시원한 광릉 숲속을 지나려니 오늘 산행은 그만두고 이곳에서 사진이나 찍을까 하는 꾀부리는 생각이 든다. 43번 국도에 비로소 합류하고 내촌 거쳐 큰넉고개에 도착하니 이미 11:00다. 집에서 세 시간이나 걸렸다.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얼른 산행준비를 마친다.


 

죽엽산/竹葉山

높이는 606.6m다. 죽엽산은 경기도 포천군의 산으로 광주산맥이 명지산과 운악산 이후로 점점 세력을 낮춰 나가다가 의정부 직전에 일군 600미터급의 산이다. 이 산은 북에서 서남으로 한일자 형태로 단조롭게 대각선을 그으면서 쭉 뻗어나간 굴곡이 별로 없는 형태의 육산이다. 언뜻 보기엔 밋밋하고 신통치않게 보이는 산이지만 이 산의 특징은 울창한 수림에 있다. 주능선상의 쭉쭉뻗은 울창한 수림사이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노라면 이 산의 매력이 충분히 느껴질 것이다.


축석령/祝石嶺

축석령은 천보산(天寶山) 기슭에 있는 고개로 포천군 소흘읍과 경계를 이루며 의정부시 북쪽 관문이 된다. 일명 2백리 고개라고도 하는데, 이 고개를 분수령으로 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포천천을 거쳐 한탄강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중랑천을 거쳐 한강에 이르므로 철원과 서울까지의 거리가 2백리가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축석령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3백여년전 포천 어룡리에 오백주(吳伯周)라는 효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가 龜城都護使로 있을 때 고향에 계신 부친이 병환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벼슬을 버린채 고향에 돌아와 부친의 병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약도 차도가 없어 하늘을 탓하며 탄식만 하고 있는데 꿈에서 산신령이 크게 꾸짖으며 "네 아비의 병은 石蜜을 먹으면 낫는데 게으름만 피우고 있느냐"하고 호령하자 그는 석밀을 구하기 위해 정과 망치를 들고 온 산을 헤매다가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내가 죽으면 부친을 누가 돌본단 말인가"하며 통곡하자 호랑이는 간데없고 바위만 남아 바위틈에서 석밀이 흘러 나왔다. 이에 부친의 병이 나으니 사람들이 오백주의 효성에 산신령이 가호를 베풀어 바위를 호랑이로 변신시켰다고 하여 그 바위를 범바위라고 불렸으며, 그 후 오백주가 매년 이 바위에 와서 고사를 지내고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다 하여 축석령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한북정맥 제 7구간 큰넉고개~축석령 개념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큰넉고개 '공장 철망'과 '작은 소류지', '나무 한 그루' 서 있는 곳에서 오늘의 산행을 시작한다. 지난 구간하면서 마무리하였던 곳이다. 무사한 산행을 빌며 출발지 나무에 표지기 하나 매달았다.


논길을 거쳐 올라가는데 전방에 공사중이라 직진을 못하고 좌측으로 우회해야 했다. 새로 조성된 '87번 도로'가 앞을 가로막고 있고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어 횡단하기가 만만치 않다.

주유소 옆에서 한참을 기회를 보다가 차들이 뜸한 틈을 타서 중앙분리대를 넘어 도로를 횡단하였다. 도로 절개지 시작점에서 들머리를 찾았다.

  


# 큰넉고개에 서 있는 넉넉한 표정의 장승들.
 

 

 

 

# 나무 한 그루 서 있는 곳이 오늘 구간의 들머리다.

 

 
# 87번 도로가는 공사 중이라 접근이 어렵다. 묘지가 위태로와 보인다.

 

 

 

# 중앙분리대 넘어 무단횡단 하였다.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 절개지 시작점에 들머리가 있다.

 

 

 

절개지 따라 위로 올라 가는데 햇살이 따가와 곤욕스럽다. 양지 바른 곳에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오늘도 야생화 구경하느라 시간 지체 꽤나 하겠군!"

묘지를 지나 낑낑 올라 잠시 오르나 싶더니 다시 올라온 방향으로 내려간다. "이거 이상타!" 일단 길 따라 가 보기로 하고 진행하였다. 편안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우측 숲 너머로 채석장이 있어 요란한 굉음이 계속 들린다. 묘지들이 자주 나온다. 계속 가다 보면 '작은넉 고개'에 도착한다. 제대로 온 것이다.(11:45)

 

 


# 햇살 아래 찬란한 조개나물. 이름에 나물이 들어있으니 봄철 여린 순을 나물로 먹는다.

 

 

 

# 양지꽃.

 

 

 

# 꽃잎이 기름진 미나리아재비.

 

 

 

# 오름 중간에 돌아보니 큰넉고개의 공장지대와 지난 구간의 정맥 줄기가 보인다.

 

 

 

# 편안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 보랏빛 각시붓꽃.

 

 

 

# 무더기로 피어 있는 넘들은 처음 만난다.

 



작은넉고개에는 검은 비닐 하우스와 가정집 형태의 사찰과 당산 나무가 있다. 작은넉고개를 가로질러 계속 올라가면 마루금을 만난다. 이후 편하게 오르내리며 계속 진행한다. 군데군데 야생화가 많아 시간 지체가 심하다. 잠시 후 '267.7봉'에 이른다.(12:00)



숲 너머로 570봉이 올려다 보이고 정맥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꺾인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 가다가 곧 가파르게 위로 밀어 올린다. 군 벙커들을 지나고 낑낑 오르면 등로 곁에 우뚝 선 '큰 바위'를 만난다. 바위가에는 매화 말발도리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꽃향기 맡고 한참 쉬다가 다시 낑낑 올라 '암봉'에 이른다. 이곳이 '570봉'이다. 제법 힘이 들었다. 배도 많이 고프고...

이곳에서 다시 아래로 내렸다가 601봉을 향해 다시 올라야 한다. 안부까지 내렸다가 위로 올리는데 좌측은 잣나무숲이 비탈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가파르게 위로 올리느라 헉헉 소리가 절로 난다. 그렇게 소삼각점이 있는 '601봉'에 올랐다.(13:45)


 


# 작은넉고개의 당산나무. 막걸리와 작은 제물이 올려져 있다.

 

 

 

# 가정집 형태의 사찰.

 

 

 

# 작은 넉고개.

  

 


# 큰애기나리.

 

 

 

# 묘지 너머로 267.7봉이 보인다.

 

 


# 운치있는 쉼터가 나타난다.

 

 

 

# 예쁜 족도리풀.

 

 

 

# 오름 중간에 큰 바위를 만난다.

 

 

 

# 바위가에 매화말발도리가 꽃을 피웠다.

 

 

 

# 작은 암릉을 지나 570봉에 오른다.

 

 

 

#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흰 각시붓꽃. 행운이다.

 

 

 

# 우산나물.

 

 

 

# 어느 하늘의 장수가 큰 칼로 바위를 일도양단(一刀兩斷)했나 보다.

 

 

 

# 601봉이 올려다 보인다.

 

 

 

# 안부에 이르면 입산통제 안내판이 서 있다.

 

 

 

# 좌측 사면은 온통 잣나무 숲이다.

 

 

 

# 소삼각점이 있는 601봉.

 

 

 

한숨 돌리고 사진 찍고 있는데 산객 한 분이 지나친다. 죽엽산을 만나러 왔단다. 아래로 내려 잠시 오르내리다가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노송지대'를 지난다. 그리고 헬기장을 지나고 잠시 후 아무 표식도 없는 '죽엽산 정상'에 오른다. (14:05)

 


# 잣나무숲 사이로 홀로 가는 산꾼.

 

 

 

# 소나무와 참나무가 몸을 붙이고 공존하고 있다. 연리지는 못 보고 대신 이들을 만났다.

 

 

 

# 죽엽산 직전 헬기장.

 

 

 

# 아무 표식없는 죽엽산 정상. 댓잎은 볼 수 없다.

 

 

 

역시 죽엽산 정상에는 댓잎은 하나도 없고 솔잎만 바닥 가득 떨어져 있다. 그래도 명색이 한북정맥상 주요 봉우리인데 아무 표식도 없이 민머리로 있는 것이 조금 허전하다.

정상 바로 너머 소나무 숲에서 배낭 벗고 마눌이 싸준 도시락으로 마음에 점 하나 찍었다. 601봉에서 만났던 홀로 산꾼이 다시 돌아 오며 죽엽산이 도대체 어디냐고 묻는다. 지금 바로 뒤에 있는 아무 특징없는 봉우리라고 했더니 실망의 기색이 역력하다.

"산꾼이여, 너무 실망마시오! 대간길의 수많은 유명산들이 1,000m가 넘는 높이를 가지고도 이름 하나 얻지 못해 그저 1024봉,1110봉 등으로 불리우는데 비해 죽엽산은 푸른 향기 그윽한 이름을 얻었으니 참으로 복 받은 산이라 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지금 그대는 그 복 받은 산정상에 서 있답니다."

점심 먹고 14:40에 출발했다. 곧바로 '노송지대'를 또 만나고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떨어져 내려야 한다. 길게 내려 '임도'를 만난다. 정맥길은 임도 한 켠 산복숭아 나무아래로 이어진다.

 

다시 급하고 길게 적송지대를 내려가면 다시 '임도'를 만난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다시 내려가 임도를 지나 '전주 이씨 묘지'에 서면 죽엽산이 돌아다 보인다. 곧 '117번 송전탑'을 지난다. 덥다 덥다 소리내며 길게 내려 가면 뙤약볕 강렬한 '비득재'에 내려 서게 된다.(15:30)

 


#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 간다.

 

 

 

# 쭉쭉 뻗은 노송지대를 따라 내려 간다.

 

 

 

# 넓은 임도를 만난다.

 

 

 

# 복숭아 나무 아래로 정맥길은 이어진다.

 

 

 

# 적송지대를 지나,

 

 

 

# 115번 송전탑을 만난다. 노고산이 건너다 보인다.

 

 

 

# 임도를,

 

 

 

# 연속으로 만난다.

 

 

 

# 청설모 한 마리 먹이를 찾고 있다.

 

 

 

# 제비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 전주 이씨 묘지에 서면 죽엽산이 돌아다 보인다.

 

 

 

# 비득재에 있는 음식점.

 

 

 

비득재는 노고산(老姑山) 기슭에 위치하여 고모리(古毛里)로 통한다. 그 모습이 흡사 비둘기가 나는 모습과 같아서 '비득재'라 일컫게 되었으며 한자로는 구현(鳩峴)이라 적는다고 한다. 주변을 돌아보지만 무얼 보고 비둘기를 닮았다고 하는 지는 알 수가 없다.

 

높은 고개이지만 차들이 심심찮게 지나 다닌다. 고도계 확인하니 235가 나온다. 죽엽산에서 400m 가까이 떨어져 내린 셈이다. 뙤약볕이 강렬해 얼른 고개 건너 숲으로 올라 갔다. 곧 바로 고도를 높여야 하고 송전탑을 지나 가파르게 올라간다.


뙤약볕에 노출된 지역을 계속 통과해야 하는 지라 무덥고 힘이 든다. 송전탑을 다시 만나는데 전방으로 툭 트인 조망을 제공한다. 저 아래 식당가에서 뽕짝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진다.

좀 더 위로 올라가면 표면이 구불구불한 바위가 하나 나오고, 다시 위로 낑낑 오르면 '노고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16:04)

 


# 햇살 아래 밝게 빛나는 둥글레.

 

 

 

# 수목원쪽 조망.

 

 

 

# 표면이 구불구불한 바위.

 

 

 

# 노고산 정상.

  

 

 

노고산은 지도상에는 없는 이름이다. 오히려 고모리에 위치한 산이라 하여 '고모산'으로 현지에는 알려져 있다. 잘 알려진 노고산은 삼각산 자락 솔고개 너머에 있다.

자료 찾아보니 이 지역에 혼자 살다 죽은 할머니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리고 고모리(古毛里)란 이름이 혹여 古母로 잘못 입소문이 전해지고 이것이 다시 할머니를 뜻하는 老姑로 변질되어 노고산이란 이름을 얻지 않았을까 혼자 짐작해 본다. '古毛 -> 古母(할머니) -> 老姑(할머니)'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름이야 원래부터 한가지로 정해져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여러 사람들이 널리 부르다 보면 새로운 이름이 탄생하기도 하고 그럴 것이다.

노고산 정상엔 통신 중계탑이 있고 정상 입구에 노고산이라 새긴 정상석도 세워져 있다. 그 바로 뒤에 암봉이 우뚝 서 있어 정상 다운 맛이 난다. 암봉에 올라 서면 사방 조망이 툭 트인 것이 제법 아취가 있다.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이 610m가 가까운 죽엽산을 마다하고 해발 380m에 불과한 이 산에다 정상석을 올렸나 보다.

정상을 내려 서면 고모산성터가 나온다. 삼국시대부터 있어 온 유서 깊은 산성이다. 조금 진행하면 수풀로 만들어진 터널이 나타나 시원하게 휴식하기 딱이다.

 


# 정상석과 정상의 암봉.

 

 

 

# 고모리산성 안내판.

 

 

 

# 정상에 서면 죽엽산이 건너다보인다. 누운 모습이 과연 댓잎처럼 길쭉하다. 죽엽이란 이름이 저 산의 형상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 수풀터널. 아주 시원하다.

 

 

 

수풀터널이 시원해서 한참이나 휴식했다. 쉬면서 지도를 확인하니 노고산 하산길의 등고선이 촘촘하다. 하산길이 가파르다는 얘기다.

과연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떨어져 내리는 길은 가파르고 하얀 로프가 매여 있다. 가파르고 길게 내려가다가 임도에 도착하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이내 편안하게 진행하게 되고 중간에 '퇴락한 고개'를 지나면 운동시설이 있는 쉼터가 나온다.

계속 길게 진행하면서 편안하게 오르내리다가 길게 올라가면 한순간 앞이 툭 트이면서 '천도교 공원묘역'이 나온다.

 


# 하얀 로프 따라 길게 내려갔다.

 

 

 

# 불행히도 나뭇잎 사이로 잎을 키운 둥글레녀석.

 

 

 

# 고개를 만났다.

 

 

 

# 천도교 공원묘지.

 

 

 

정맥길은 공원묘지 한가운데를 통과하게 되어 있고 길게 묘지따라 진행하면 '군부대 철조망'과 조우하게 된다. 정맥길은 군부대가 위치하고 있어 좌측으로 철조망을 따라 진행해야 한다.

철조망을 따라 길게 아래로 내려가면 군부대 후문을 지나게 된다. 이곳에서 다시 위로 미끄러운 마사토 길을 철조망 따라 올라가서 길게 진행하면 2차선 도로인 '다름고개'에 이른다.(17:25)

 


# 전방의 봉우리로 정맥길이 이어지지만 군부대가 있어 우회해야 한다.

 

 

 

# 군부대 후문을 지나 다시 위로 오른다.

 

 

 

# 다름고개.

 

 

 

다름고개엔 어린이날을 보내고 귀가하는 차들로 정체가 아주 심하다. 완전무장하고 숲에서 불쑥 나오는 모습이 괴이했던지 모두들 차안에서 일제히 쳐다본다.

다름고개엔 '삐노꼴레'란 피자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태리어로 '소나무 언덕'이란 뜻이란다. 과연 그집 입구엔 소나무 몇 그루가 우뚝 서 있다.

그런데 정작 다름고개가 무슨 뜻인지, 어떤 유래를 가지고 있는 지는 찾을 수가 없다. 한 달음에 넘을 수 있는 고개라 얻은 이름인가? 아니면 달음, 즉 月陰(달그림자)에서 얻은 이름인가? 혼자 몇가지 추측을 해 보면서 다름고개를 건넌다.

삐노꼴레 우측 숲으로 올라가면 곧 편안한 길이 나온다. 그런데 좌측 아래 민가에서 기르는 듯한 덩치 큰 흰색 진돗개 한 마리가 숲에서 뛰어나와 갑자기 이를 하얗게 드러내고 덤벼 든다. 스틱을 앞세워 휘둘러 보지만, 조금도 겁먹지 않고 최고의 적개심을 드러내며 덤빌려고 한다. 이럴 때는 돌을 집어 던지는 것이 최곤데 마침 주변엔 던질만한 아무 물건도 뵈질 않는다.

할 수 없이 개가 바로 덤비지 못하게 눈을 꼬나보며 뒷걸음 쳐서 작은 철조망 뒤로 피했다. 한참을 철조망 뒤에서 개를 피해 있었다. 개 따위에게 쫓긴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저렇게 크고 사나운 개를 묶어 두지 않고 방치한 개 주인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였다. 혹시 동네 아이들이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쩔려고 저런 짓을 하는지...

한참을 그 자리에 있던 개가 흥미를 잃고 자기 집으로 내려간 후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임도 따라 진행하다가 우측 숲으로 들어갔다. 다시 군부대 철조망과 조우한다. 잠시 진행하면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도 꼭 등장하는 악명 높은 삽삽개를 만난다. 털 때문에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조그만 녀석이 끝도 없이 짖어 재낀다. 오늘 이래저래 개때문에 곤욕을 치르는구만...

철조망을 따라 계속 오르내리게 되는데, 거의 산사태 일보 직전인 곳도 지나게 된다. 잠시후 철조망과 헤어져 좌측으로 진행하고 고개를 지나 잠시 가다가 아래로 내려 가면 '귀락터널'네 내려 선다.(18:00)

 


# 철 모르는 녀석이 벌써 붉은 빛을 띄고 있다.

 

 

 

# 임도를 따라가다가 숲으로 들어갔다.

 

 

 

# 엄청나게 짖어대는 군부대의 미니 군견 삽사리.

 

 

 

# 곧 산사태가 날듯이 위태로운 내리막.

 

 

# 귀락터널.

 

 

 

귀락터널 앞에서 배낭 벗고 휴식을 취했다. 몸에 묻은 흙도 털고 물도 마시고 오늘의 산행을 마감했다. 축석령까지는 아직 산길을 10여분 더 가야 하는데, 왜 산행을 다했다고 생각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귀락터널 고개 위에는 모텔과 음식점들이 서 있다. 도로따라 고개를 넘어 축석령쪽으로 내려가는데 허리가 허전하다. 어라? 만보계가 없어졌네? 귀락터널 내려서기 전 군벙커가 있는 봉우리에서 소변보고 어쩌고 하면서 흘린 모양이다.

재작년 백두대간 종주할 때 대야산 오르면서 만보계를 잃어버려서 한참을 산길을 되돌아가 헤맨 기억이 있다. 결국, 못 찾고 시간 지체만 했었지만... 그것은 물건 욕심 보다는 대간길, 정맥길을 함께 한 동반자적인 애착때문이었다. 어쨌든 산길을 다시 꺼이꺼이 올라 가 보니 군 벙커 입구에 얌전하게 떨어져 있는 만보계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다시 귀락터널로 내려와서 배낭 정리하는데, 문득 산길로 조금 더 가야 축석령이란 생각이 든다. 만보계 때문에 막판에 되돌이를 한 탓인가? 이상하게 산길 찾기가 싫어진다. 에이 오늘은 그만하자. 대신 다음에 귀락터널에서 시작하자! 도로따라 터덜터덜 내려오니 의정부에서 포천가는 43번 국도 상에 있는 축석령이 나온다.(18:20)

축석령에는 불꽃 모양의 조형탑이 서 있고 그 바로 옆에 祝石이란 이름을 얻게 한 '범바위', 일명 효자바위라고도 하는 큰 바위가 서 있다.

 



# 축석령. 우측 교회 뒤쪽이 다음 구간 들머리다.

 

 

 

# 축석령에 서 있는 불꽃 모양의 조형물.

 

 

 

# 효자바위. 저 바위에 빌면 석밀(石蜜)이 흘러 나올까?

 

 

 

축석령에서 33번 버스를 타면 큰넉고개까지 간다. 이 버스는 온갖 곳을 다 서고 도로에서 벗어난 마을까지 들렀다 가는 시골버스이지만, 시골버스 특유의 정이 흐르는 멋진 버스다. 친절한 버스기사는 모든 승객에게 인사를 먼저 건네고 특히 어르신들은 어느 마을에서 내리는지 모두 알아서 벨을 누르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세워준다.

情이 흐르는 33번 버스 타고 큰넉고개로 돌아가 한북정맥길 가장 적은 교통비 들이고 차량을 회수하였다. 그나저나 귀락터널을 또 한번 가야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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