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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정맥]여덟번째(축석령~샘내고개)-서울의 관문, 축석령(祝石嶺)!! 본문
'축석령(祝石嶺)'은 포천 소흘에서 의정부로 넘어가는 오래된 고개이다. 두 고장의 경계인 이 고개를 지금은 충청도 전의에서 강원도 고성을 잇는 43번 국도가 넘어가고 있다. 인간의 길이 남북으로 이어진 고개를 산맥이 동서로 가로지른다. 백두대간(白頭大幹) 추가령(楸哥嶺)에서 갈래쳐 한수(漢水)의 북쪽 울타리가 되는 한북정맥(漢北正脈)이 이 축석고개를 거쳐 도봉산과 삼각산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 고개는 서울 외곽의 울타리이자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關門)인 셈이다. 서울의 관문이니 역사적으로도 한양(漢陽)으로 들어가는 주요 침투로였다. 삼국시대 한강 일대를 둘러싼 전투를 위해 삼국의 군대가 넘나들었던 곳이고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략도 이 고개를 통해 이뤄졌다. 조선의 왜란(倭亂)과 호란(胡亂) 때도 이 고개는 주둔지였거나 통과지였고 육이오 전쟁때 북한군도 이곳 축석령을 통해 전차를 앞세워 서울을 침공하였다. 실록(實錄)에는 정조대왕(正祖大王)이 축석령을 넘어 세조(世祖)의 능인 광릉(光陵)을 참배하였다고 적혀 있다. 기록에 의하면 재위 16년인 1792년 정조대왕은 광릉 참배를 위해 양주목을 거쳐 축석령을 올랐다. 고개 정상에 올라 왕은 말에서 내려 쉬었다. 이때 새벽비가 살짝 지나가고 아침 햇살이 깨끗하였는데, 사방의 산들이 수려함을 다투는 듯 영롱히 빛났다. 축석 고개의 맑고 깨끗한 경치에 기분이 좋았던 왕이 승지(承旨) 서영보(徐榮輔)에게 말했다. "이 축석령은 백두산(白頭山)의 정간룡(正幹龍)이요, 한양(漢陽)으로 들어서는 골짜기이다. 산의 기세가 여기에서 한 번 크게 머물렀다가 다시 일어나 도봉산(道峰山)이 되고 또 골짜기를 지나 다시 일어나 삼각산(三角山)이 되는데, 그 기복(起伏)이 봉황이 날아오르는 듯하고 용이 뛰어오르는 듯하여 온 정신이 모두 왕성(王城) 한 지역에 모여 있다. 산천은 사람의 외모와도 같은 것이어서 외모가 좋은 산천은 기색(氣色) 또한 좋다. 어제 오늘 지나온 산천은 모두가 좋은 기색이거니와 더구나 아침에 비가 개인 모습은 더욱 명랑하고 수려함을 깨닫게 한다. 예전 병진년 행행 때에도 마치 이번처럼 아침에 비가 내리다 금방 개였는데 이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上謂承旨徐榮輔曰 "此嶺 卽白頭正幹龍 漢陽都過峽 山氣於此 一番大渟滀 而復起爲道峰 又過峽而復起爲三角 起起伏伏 鳳翥龍騰 一段精神 都湊於王城一區 山川 如人相貌 相貌好者 氣色亦好 昨今所經山川 莫非好氣色 而況當朝霽 尤覺明秀 在昔丙辰幸行時 朝雨旋霽 亦如今番 是亦不偶矣" 정조대왕이 외모가 좋은 산천(山川)이라 칭찬한 축석령은 따로 '이백리 고개', 혹은 '벽석령(碧石嶺)고개'라고도 불렀다. 이백리고개라 부른 이유는 이 축석령이 분수계(分水界)이기 때문이다. 축석고개에 떨어진 빗물이 북쪽으로는 포천천을 거쳐서 한탄강으로 유입되고 남쪽으로는 중량천을 거쳐 한강에 이르는데, 한 고개에서 출발한 빗물이 남북으로 나뉘어 머문 철원과 서울 까지의 거리가 2백리가 된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대동지지(大東地志)' 에는 "축석령의 옛날 이름은 '벽석령(碧石嶺)'으로 양주 동쪽 25리에 있는데 포천으로 가는 길이다(楊洲 嶺路 條 祝石領古傳碧石嶺東二十五里砲川路)"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개 정상에 흰 바위가 있었나 보다. 벽석령이란 바위가 희다는 뜻이다. 축석령(祝石嶺)이란 이름은 포천 지역 효자(孝子) 오백주(吳伯周)의 전설에서 유래하였다. 오백주는 부친의 병간호를 위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한 인물이다. 석밀(石蜜)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듣고 꿀을 구하기 위해 온산을 헤메다가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다. 두렵고 낙심하여 "내가 죽으면 누가 부친을 돌볼것인가"하고 통곡하자, 호랑이는 간데없고 바위만 남았는데, 바위틈에서 석밀이 흘러나왔다. 이에 석밀을 먹은 부친의 병이 나으니 사람들이 오백주의 효성에 산신령이 가호를 베풀어 바위를 호랑이로 변신시켰다고 하였다. 그후 이 바위를 범바위라고 불렀으며 오백주가 매년 이 바위에 와서 고사를 지내고 축원(祝願)하였다 하여 축석령(祝石領) 고개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축석고개는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역사 깊은 고개이다. 그만큼 여러 사연 얽혀 있고 의미 또한 깊다. 효자의 효심이 깃든 고개, 한북정맥으로 분수령의 고개, 서울의 관문으로 숱한 외침의 고난과 함께한 역사의 고개, 그리고 정조대왕이 외모 좋은 사람처럼 기색이 좋다고 칭찬한 고개 등 축석고개의 역사와 의미는 깊고 다양하다. 강/사/랑의 한북정맥(漢北正脈) 여덞 번째 걸음은 서울의 관문 축석고개에서 출발한다. 그 팔방미인(八方美人) 축석고개를 만나러 간다. 좋은 산천을 만나러 가는 길은 좋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다. 두근거리는 가슴 안고 길을 나선다. 구간 : 한북정맥 제 8구간(축석령~샘내고개) 귀락터널(10:00) ~ 축석령(10:25) ~ C-2참호/무명봉 ~ 287봉(11:18) ~ 전망대 ~ 백석이고개(11:33) ~ 능선갈림길 ~ 조망 좋은 암봉 ~ 골프장 철조망 ~ 점심식사 후 13:50出 ~ 로얄CC 4번 홀 ~ 5번 홀 ~ 오리동 도로 ~ 골재공장 ~ 양주 고읍지구 택지공사장 ~ 360번 도로(14:45) ~ 4차선도로 공사장 ~ 막은고개(15:00) ~ 주내 순복음 교회 ~ 성황당고개 ~ 군부대 철조망 ~ 체육시설 있는 공터/큰테미(15:53) ~ 무명봉/갈림길 ~ 한승APT(16:45) ~ 경원선 철길 ~ 공장지대 ~ 샘내고개(17:00). 5월 20일. 해의 날. 한북정맥 축석령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7개월 동안 노채고개에서 멈춰 있던 한북정맥길은 다시 나서기 시작하자 연속해서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백석이 고개
차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양주시와 의정부시 경계인 천보산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백석이고개는 축석에서 마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예전에는 많이 이용하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다.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오늘도 극심한 정체를 겪은 후에야 축석령에 도착할 수 있다. 지난 구간 귀락 터널에서 축석령까지 내려오면서 산길이 아닌 도로따라 내려와 버리는 바람에 오늘 출발은 축석령이 아닌 '귀락터널'에서 해야 한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내 마음이 그렇지 않다. 정맥길 어느 한 곳도 빼먹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도로공사 때문에 절개하고 나무들을 베어 버려 표지기가 전혀 없다. 그래서 터널과 연결된 산줄기로 올라가 작은 소로를 만나 한참을 진행했다. 5분여 진행했더니 숲을 벗어나고 모내기 준비가 한창인 논을 만난다. "이런 잘못왔다. 여긴 정맥길이 아니다. 시작부터 알바닷!"
축석교회는 일요일인데도 조용하기만 하다. "교인이 별로 없나? 우리 마눌은 오늘도 새벽부터 일어나 교회로 달려 갔는데..." 교회 뒷마당 부서진 농구대 옆에 들머리가 있다. 교회가 너무 조용하길래 한참을 휴식하다가 10:38에 출발했다.
10:50에 다시 출발했다. 두 번의 알바 때문에 50분을 소비하고서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산길은 구불구불하게 꾸준히 밀어올린다.
# 참호와 이정목이 있는 무명봉.
무명봉엔 갈림길이 있어 주의가 필요한데, 양주시에서 이정목을 세워 두었다. " <- 탑고개/ 어하고개 ->" 라고 적혀 있고 비어 있는 곳에 누군가 한북정맥이라고 펜으로 적어 둔 것을 또다른 누군가가 틀렸다고 지웠다.
# 로얄골프장과 택지개발지구. 나중에 저곳이 또 엄청난 알바를 제공한다. 그 뒤쪽으로 임꺽정봉과 불곡산이 보인다.
조망이 훌륭하고 바람이 너무나 시원해 가기가 싫다. 한참을 휴식한 후 억지로 출발했다. 곧 로프가 매어져 있는 가파른 하산길이 나온다. 반대쪽 오름은 편안한 육산(肉山)이더니 하산길은 암릉길이다. 잠시 내리자 큰 너럭바위가 있는 전망대가 다시 나온다. 전망대에 서면 전방의 255봉과 내려온 287봉이 앞뒤로 올려다 보인다.
# 전망대에 서면 지나온 287봉이 올려다 보인다.
# 올라야 할 255봉도...
숨보산 숨보산... 혼자 중얼 대며 아래로 내리면 돌탑이 있는 고개에 도착한다.(11:33). '백석이 고개'다. 하얀 차돌이 많아 '백석(白石)'이란 이름을 얻었다 한다. 예전엔 통행이 많았던 유명한 고개였던 모양이다. 지금이야 정맥꾼이나 동네 산책 나온 사람들이나 지날 뿐이다.
고개 건너 위로 낑낑 올라 무명봉을 하나 넘는다. 잠시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위로 밀어 올리면 '능선 갈림길'이 나온다. 정맥길은 '우측으로 꺾어야' 하지만 좌측에 암봉이 하나 솟아 있어 먼저 좌측으로 올라가 본다.
# 좌측에 암봉이 올려다 보인다.
# 암봉엔 지역 주민 한 분이 먼저 올라 있다.
# 암봉은 조망이 너무나 훌륭한 곳이다. 우측으로 임꺽정봉과 불곡산이 건너다 보인다.
# 전방으론 천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천보지맥 길이다.
# 지나온 정맥길. 이 정도면 '진보산'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다.
'255봉'(강/사/랑이 마음대로 지어준 진보산) 조망에 도취되어 한참을 휴식하다가 암봉을 내려와 갈림길로 복귀했다. 정맥길은 올라 오는 방향에서 우측으로 가야 한다. 우측에도 암봉이 하나 더 있고 이곳 역시 똑같은 조망을 제공한다.
# 두 번째 원형철조망이 있는 무명봉 갈림길.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 가야 한다.
# 봉우리 한 켠에 서면 택지개발지와 막은고개, 큰테미, 그리고 임꺽정봉이 보인다.
이곳이 정맥길이란 것이 확연한데 아까는 왜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그것 참~~~!! 철조망을 넘어 우측으로 떨어져 내린다. 급경사 내리막이 길게 이어진다. 알바하느라 체력소모가 많아 허기가 많이 졌다. "배 고파서 도저히 더 못가겠다, 밥 먹고 가자!"
# 솜방망이.
내리막 중간 숲속에서 배낭 벗고 마음에 점 하나 찍었다. 알바를 너무 많이 했더니 허탈해서 입맛도 쓰다. 밥 먹고 휴식하다 13:50에 출발했다.
# 로얄골프장 4번 홀
# 싸모님~~ 미스 샷~~~.^^
# 5번 홀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 큰 묘지를 지난다.
# 세월이 느껴지는 문인석.
# 2차선 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따라 위쪽으로 올라 가는데 한참을 오르니 골프장 정문이 나타난다. 선답자의 산행기에 '청송가든'이라는 포스트가 있어 그 곳을 찾지만, 그런 간판을 가진 식당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 골재 공장을 만난다.
# 넓은 택지공사장 한켠에 모형헬기가 날고 있다.
# 저 멀리 아파트 단지 앞에 덕현초등학교가 보인다.
# 공사 중인 도로를 따라 올라 갔다.
# 막은고개. 좌측 절개지를 치고 올라야 한다.
엄청난 알바의 연속이었다. 한남정맥 용인동백지구 지날 때도 오늘처럼 무더운 날씨와 뙤약볕 아래 긴 알바를 했었는데... 막은고개 위에 서니 축석에서 천보산으로 흐르는 산줄기와 이곳까지 연결되어야 하나 택지에 의해 무참히 깔아 뭉개져 버린, 그리하여 황량한 사막같이 변한 공사장이 넓게 펼쳐져 보인다.
# 숲속엔 아까시향기가 가득하다.
뒤쪽 숲속으로 들어가 진행하는데, 산길 들어와 좋다고 웃었더니 금방 숲을 벗어나고 마을이 나타난다. 절개지를 내려서자 '주내 순복음 교회'가 있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면 우측 숲으로 들어가는 들머리가 나타난다. 이곳이 '성황당 고개'인가 보다.
# 편안한 등로를 따라 오른다.
철조망이 전방을 가로 막고 있는 형상이어서 좌측으로 가야 할지 우측으로 가야 할지 잠시 헷갈리게 된다.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그냥 "철조망을 만나 25분간 간다."고만 적혀 있다.
# 큰테미. 운동하러 올라온 지역 주민이 거대한 훌라후프를 씽씽 돌리고 있다.
# 큰테미에서 돌아 본 모습.
엄청나게 큰 훌라후프를 능숙하게 돌리는 아주머니가 있어 신기하게 구경하며 뙤약볕에 바짝 익은 몸을 식혔다. 난 도대체 저 넘의 훌라후프가 돌려지질 않던데...
# 안부에서 돌아 본 큰테미.
# 바위 쉼터가 있는 무명봉.
무명봉에는 갈림길이 있다. 우틀하여 내려갔다. 다시 갈림길이 나와 좌측으로 내려가면 묘지와 '동서토건' 뒷길이 나온다. 건물 좌측으로 산길이 이어져 있고 곧 '한승아파트'를 만난다. 아파트 상가에 들러 아이스 바 하나를 사 먹고 출구를 몰라 잠시 헤매다 농가 사이로 진행하니 '경원선 철길'이 나타난다.
# 동서토건 뒷길을 만난다.
# 한승아파트.
# 경원선 철길.
# 철길 아래로 통과.
주변을 살피다가 공장들 사이 길 없는 곳을 헤치고 올라가니 곧 공장지대 도로가 나타난다. 그 도로 따라 진행한다. 구불구불 좁은 길을 잠시 가다보면 곧 3번 도로가 지나는 '샘내고개'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마치게 된다.(17:00)
오늘 구간은 시작부터 알바를 하더니 끝까지 정신없이 알바를 많이 한 구간이었다. 다 끝내고 생각해보니 특별하게 알바를 하지 않아도 될 곳인데, 무엇에 홀린듯 정신없이 길을 잃고 헤맸다. "그것 참~ 더위를 먹었나?"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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