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열번째(대교아파트~울대고개)
한자어(漢字語)에 '名不虛傳(명불허전)'이란 말이 있다. "명예나 명성이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이 있다면 이름날 만한 까닭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시쳇말로 '이름값'을 한다는 뜻이다.
이름이야 흔히 우리 인간의 상징(象徵)이라 명불허전은 유명인(有名人)의 자격을 논할 때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이름이란 것이 어디 사람만의 전유물(專有物)이겠는가? 때문에 이름값은 각종 사물(事物)이나 명승지(名勝地)의 가치를 평가할 때도 많이 사용된다.
사람들은 늘 자기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지금 내 눈에는 '백두대간(白頭大幹)'과 아홉 '정맥(正脈)'이 제일 우선(優先)이다. 따라서 이름값도 우리들 종주 산꾼들이 걷는 산길에서 그 예(例)가 제일 먼저 찾아진다.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의 여러 산길에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곳이 여럿 있다.
구간 거리가 길고 오르내림이 강하며 힘들기로 유명한 백두대간의 두타(頭陀), 청옥(靑玉), 고적대(鼓笛臺) 구간이나 삼단 직벽 내리막을 밧줄 타고 내려야 하는 대야산(大耶山) 구간, 1대간 9정맥 중 가장 강력한 직벽이 있는 한북정맥의 운악산(雲岳山) 등이 이름에 걸맞게 충분한 땀과 눈물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에 일치한다 할 것이다.
댓재에서 출발하여 백봉령을 향해 가다가 두타산, 청옥산을 넘어 고적대 높이 솟은 산 꼭대기에 꺼이꺼이 올라 섰을때, 100여 미터에 이르는 삼단 직벽(直壁)을 밧줄 하나에 매달려 아둥바둥 내려와 지나온 그 직벽을 올려다 볼때, 그리고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깎아지른 절벽을 슬링줄에 의지해 낑낑 내려와 위가 재대로 보이지 않는 절벽을 올려다 볼때 우리 종주 산꾼들은 '명불허전'이란 말을 실감한다.
그것은 평소 이 구간들에 대한 악명(惡名)이 자자한데다 이곳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사고들의 이야기가 워낙 널리 펴져 있기 때문이고 미리 철저한 준비와 마음의 각오를 사전에 다들 하고 시작함은 물론, 막상 겪어보면 소문대로 엄청난 노고(勞苦)를 요구하는데서 연유한다. 하지만, 세상사 모든 일에는 언제나 예외(例外)가 있기 마련이다. 명불허전과는 반대로 이름없어 방심하게 만든 뒤 느닷없는 어려움을 선사하는 경우도 간혹 만날 때가 있다. 백두대간의 산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간혹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산에서 난데없는 어려움에 봉착(逢着)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 곤욕을 치르곤 한다.
대표적인 곳이 백두대간의 진고개~구룡령 구간에 있는 '1261봉'이랄 수 있다. 동대산, 두로봉, 만월봉, 응복산, 마늘봉 등 이름을 가진 산과, 이름도 없는 1,000m가 넘는 산을 15개나 넘고, 이제 약수산과 몇 개의 봉우리만 넘으면 끝이다 싶을 때, 앞을 딱 가로막고 나타나서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줄기차게 위로 가파르게 밀어 올리게 만드는 산이 1261봉이다..
이 구간쯤에서는 체력이 거의 바닥을 보이기 시작할 무렵인데, 이런 넘이 앞을 가로막고 냅다 밀어 올리기만 하면 반쯤 사망에 이르게 된다. 애초에 이름이 있었다면 각오라고 제대로 했을 텐데 이렇게 느닷없이 어려움으로 다가오면 그 데미지가 더욱 크게되는 것이다.
작년 여름 백두대간 종주할 때 1261봉을 만났다. 무척 더운 날이었고 오르내림 많아 체력이 부치는 구간이었다. 그러다 1261봉을 만났다. 사전에 이 산이 힘들다는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군더더기 하나 없이 곧장 위로 솟아 있는 산이었다. 그 산을 꺼이꺼이 오르면서 "뭐 이런 놈의 산이 있나? 이렇게 줄기차게 오르기만 하는 산이 어딨냐? 이런 산이 이름도 없어?" 하며 혀를 찼던 기억이 난다.
한북정맥(漢北正脈) 열 번째 구간엔 '호명산', '한강봉', '챌봉' 등 그다지 높지 않은 세 개의 산이 나란히 서서 산꾼을 맞이한다. 셋 모두 4~5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담한 산이고 그다지 힘들다고 알려지지도 않은 산이다. 그러나 그 산들은 지난 6월 20일 아주 무더웠던 날 강/사/랑에게는 의외의 어려움을 선사한 숨은 복병(伏兵) 같은 산이었다.
간밤에 잠을 설친 탓인가? 무더운 날씨 탓인가? 아무튼, 심장 박동소리에 내내 신경 쓰며 산길을 올라야 했다. 특별하게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알려져 있지도 않은 산이 심박수(心拍數)에 신경 써야 할 만큼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명불허전이 아니라 복병의 산이었다.
소리없이 강하다고 할까? 나름대로 이름을 가질 이유가 충분한 산들이었다.
소리 없이 강한 호명,한강,챌봉!
구간 : 한북정맥 제 10구간(대교아파트~울대고개) 거리 : 구간거리(11.2 km), 누적거리(129.8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7년 6월 10일. 해의 날. 세부내용 : 대교아파트/오산삼거리(10:30) ~ 정자 ~ 산성터(10:50) ~ 석총 ~ 송전탑 ~ 작고개(11:20) ~ 송전탑/벤치 ~ 호명산(12:28) ~ 고개 ~ 홍복산 갈림길 ~ 헬기장 ~ 홍복고개(13:17) ~ 갈림길 ~ 한강봉(14:07)/점심 및 휴식 14:55 出 ~ 오두지맥 갈림길(15:12) ~ 꾀꼬리봉 ~ 첼봉(15:40) ~ 옛고개 ~ 임도 ~ 425봉(16:35) ~ 항공 무선표시국 ~ 정문 ~ 시멘트 도로 ~ 무명봉 ~ 천주교 공원 묘지(17:15) ~ 임도 ~ 철조망 ~ 울대고개(17:30).
총 소요시간 7시간. 만보계 기준 15,830보.
6월 10일 해의 날. 요즘 계속 잠자리에 늦게 드는 바람에 오늘도 기상이 늦다. 아무래도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올빼미형 인간인가 보다. 지금이야 술을 끊어 다르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해만 꼴깍 넘어가면 뱃속의 술 귀신들이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하는 것을 매일 느꼈다.
그럴 때면 누가 술 한잔하자고 전화 안 하나? 괜히 전화기만 만지작만지작하다가는 결국 이곳저곳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를 거는 자신을 발견한니다. 여~ 뭐해? 퇴근 안 해? 한 잔 하~알~까~아?
일기예보에서는 올여름 들어 가장 무더운 날씨를 예보했다. 출발이 늦어 고속도로에 올리자마자 냅다 속도를 올리는데 의외로 고속도로가 한산해서 1시간 조금 더 걸려 백석읍 오산삼거리에 도착했다.
이제는 차 주차하기가 겁난다! (지난 구간 산행 중에 차 빼주러 하산한 경험 때문에...) 몇 바퀴 주변을 돌다가 오늘 구간 들머리 주요 포스트인 느티나무 아래에 공터가 있어 그곳에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마쳤다.
홍복산/洪福山
홍복산은 황골산이라고도 한다. 이곳에 살던 홍씨가 잘 살게 되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임진왜란 당시 月沙 이정귀(李廷龜)가 이곳에서 왜병과 15일 이상 전투를 하였는데 다리에 총상을 입었지만 살아 남게 되어서 황골산의 명칭을 홍복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 얘기는 『월사문집(月沙文集)』에 전한다.
백석/白石
백석이란 땅이름은 방성리와 양주읍 유양리/어둔리에 걸쳐 있는 대모산성(大母山城)에 흰돌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원래 백석은 조선시대부터 사용된 용어로 전국 어디에나 존재하고, 백석이란 땅이름이 존재하는 대부분의 지역을 보면 흰돌이라는 자연물을 그대로 한자로 옮겨 白石이라고 했다기 보다는 큰 들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흔들이 변하여 흔들 -> 흰돌 -> 백석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울대고개
울대리는 울터 또는 울띄라고도 부르며, 장흥면에서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동쪽으로 의정부시 가능동, 호원동, 서쪽으로 부곡리, 남쪽으로 교현리, 북쪽으로 백석읍 복지리와 접해 있다. 울대리라는 땅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① 울대고개 밑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② 오봉산이 이 마을의 뒤쪽을, 삼각산이 남쪽을, 일영산맥이 서쪽을 감싸 사방이 막혀 있어 답답한 마을이라는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 ③ 예부터 숲이 우거진 땅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지금의 의정부에서 울대리로 올라가는 가파른 고갯길인 울대고개는 이 마을의 이름 생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한북정맥 제10구간 대교아파트~울대고개 개념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가볍게 몸 풀고 산행을 시작했다.(10:30) 시멘트로 된 마을길을 길게 올라 위로 향하는데, 뙤약볕이 내려 쬐여 무지 덥고 힘들다. 한참을 걸어 올랐더니 수풀로 뒤덮인 넓은 공터가 나오고 방치된 '정자'가 나온다. 정자 우측으로 들머리가 이어진다. 잡풀이 우거져 들머리 찾는데 신경 써야 했다. 뙤약볕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서 좋기는 한데, 산행 시작이 으례 그렇듯이 한차례 가파르게 밀어 올린다. 곧 허물어진 '산성터'에 이른다.(10:50)
# 삼거리 건재철물상 옆 도로가 오늘 구간의 들머리다. # 밭에선 감자꽃이 한풀 꺾이는 중이다. # 돌아보면 양주시청 쪽으로 가는 98번 도로와 불곡산, 임꺽정봉이 건너다보인다. # 인동덩쿨. # 같은 줄기에 노란놈도 있다. # 잡초 우거진 공터와 정자가 있다. 정맥은 우측 숲으로 들어간다. # 허물어져 흔적만 남은 산성터.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이 '대모산성(大母山城)'터 인 듯하다. 자연석으로 귀퉁이를 다듬어 쌓아 올린 성이다. 이 성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민초(民草)들이 공역에 동원되었을까? 또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이 산성을 쌓기 위해 또 이 산성으로 인해 그 피와 땀을 보존하였을까?
그러나, 이제는 천년 세월에 무너져 내리고, 역사를 소홀히 하는 후손들은 성을 보수 유지하기는커녕 어느 시대의 산물인지 기록조차 남겨 두지 않았다.
성을 넘어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한다. 조림지를 편안하게 진행하다가 산성의 돌을 주워 모아 만든 '석총'을 만난다. 잡풀이 아주 무성하게 뒤덮여 있어 처음에는 산성인 줄 알았다.
조금 더 진행하면 산성이 끝나며 성 아래로 떨어져 내려야 하는데, 표지기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잡목이 우거져 조망조차 없어 맞는 길인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되돌아 석총 쪽으로 돌아와 주변을 살피니 석총 앞에서 우측으로 희미하게 이어지는 등로가 보인다.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니 산성을 따라가게 되고 표지기들이 나타난다. 잠시 후 산성이 끝나고 '18번 송전탑'을 만난다.
아래로 내려 계속 진행하면 다시 송전탑을 지나고 잠시 후 언덕을 하나 넘자 차량통행이 많은 '작고개'에 도착한다.(11:20)
# 송전탑 아래 서면 작고개와 호명산이 건너다보인다. # 7번 도로가 지나는 작고개. 작고개는 '까치 鵲'자를 쓰는데 까치를 닮아서인지 까치가 많아서인 지는 알 수 없다. 채소를 가꾸는 비닐하우스와 그것을 판매하는 가로 판매대가 있고 버스 정류소도 있다. 고개 위에는 '어둔동'이라는 이정목이 서 있다.
어둔동이라면 한자로 '御屯洞'이라고 표기할 텐데, 아마도 북벌정책으로 유명한 효종임금이 군사 주둔을 시킨 곳과 관련이 있는 지명인 듯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효종임금이 물을 마신 우물이 '어수정(御水井)'이요, 군사 훈련을 시찰한 곳이 '어립(御立)개'라고 불리우는 것으로 봐서 어둔동 역시 그와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길 건너 절개지에 철조망이 쳐저 있고 노란 표지기 하나가 매달려 있다. 그래서 그 표지기를 믿고 아주 무성한 잡풀을 헤치고 올라갔다. 그곳엔 군 교통호가 있다. 교통호를 넘어 잠시 진행하는데, 앞의 농장에서 갑자기 개떼들이 무더기로 덤벼든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모두 덩치가 작은 소형견들이다. 마침 주변에 돌맹이도 많길래 한 줌 쥐고 냅다 집어 던지며 고함을 질렀더니 전부 뒷걸음을 친다.
개들을 쫓아버리기는 했지만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 전방에는 농장이 있어 직진하는 것은 아닌 듯한데 표지기는 이 방향으로 달려있고... 한참 주변 지형을 살피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조림지 속으로 들어가 보니 숲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인다. 결국 작고개 철조망에 매달아 놓은 표지기는 후답자 골탕 먹이는 낚싯밥인 셈이다.
작고개에 내려 서면 철조망에 있는 노란 표지기는 무시하고 도로 건너 버스정류소 뒤 조림지로 들어가면 등로와 만날 수 있다.
호명산 오름은 벌목지 가장자리를 따라 올라야 한다. 햇볕에 바로 노출이 되어 뜨겁고 힘들다. 다행히 중간에 숲으로 들어가게 되어 뙤약볕은 면하게 되었는데, 길은 한사코 위로 밀어 올리라 한다.
지도 꺼내 등고선을 확인하니 고도를 곧장 300m는 올리게 되어 있다. 힘이 아주 많이 든다. 간밤에 잠을 못잤더니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 중간중간 휴식을 자주 하면서 올라 갔다.
군진지를 지나며 계속 위로 밀어 올리다가 마루금을 타고 오르는 등로와 합류하여 좌측으로 꺾어 오르게 된다. 잠시후 벤치가 있는 송전탑을 만난다.
# 벌목지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는데 뙤약볕에 노출되어 아주 힘이 들었다.
# 상당히 가파르게 고도를 높인다. # 벤치가 있는 송전탑. # 백석에도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 섰다. # 돌아보면 대교아파트와 임꺽정봉이 건너다보인다. # 꽃가루를 머금고 있는 족제비싸리. 송전탑 아래엔 벤치가 설치되어 있고 조망이 아주 훌륭하다. 바람은 시원하지만 역시 뙤약볕이라 다시 위로 낑낑 올라 갔다. 그런데 좀처럼 정상이 나타나질 않는다. 아휴~ 이제 지친다~ 할 때쯤 돌탑과 이정목이 있는 '호명산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12:28)
# 이곳에도 산성이 있었나 보다.
# 호명산 정상. '호명산(虎鳴山)'은 호랑이가 많이 울었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그러나 정작 같은 이름인 호명산으로 유명한 산은 경기도 가평 땅에 있다. 높이도 이곳보다 200여m 더 높다.
정상 바로 너머에 쉼터로 활용되는 바위와 등산 안내판이 있어 바위에 걸터 앉아 20여 분 휴식을 취했다.
# 정상 너머의 쉼터. 간식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내리막 길이 곧바로 이어진다. 그러다 다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면 '고개'가 나오고, 직진과 우측 방향에 모두 표지기들이 매달려 있다. 지도 확인하고 '직진'하여 작은 봉우리를 오르면 '홍복산 갈림길'이 나온다. 홍복산은 정맥길에서 벗어나 있다.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떨어져 내린다. 곧 헬기장을 지나고 사계정리가 되어 있는 묘지에 서면 전방으로 가야 할 한강봉과 챌봉이 올려다 보인다. 땀 꽤나 또 흘리겠구만!!
계속 길게 내리면 차량통행이 간간이 있는 아스팔트 도로에 서게 된다. '홍복고개'다.(13:17)
# 로프 내리막을 내리고.
# 안부사거리. # 홍복산 갈림길. # 묘지에서 올려다 본 챌봉. # 햇살 뜨거운 아스팔트 도로를 만난다. 홍복고개에서 우측으로 길 따라 잠시 가면 임도로 올라가는 철문 입구가 나오는데, 철조망으로 입구를 막아 두었다. 좌측으로 우회하여 올라가면 묘지가 한 기 나오고 정면으로 무인 산불 감시카메라가 있는 챌봉이 올려다보인다.
이곳 역시 산의 형세가 前 구간 임꺽정봉 오름과 마찬가지로 우측으로 한강봉을 힘겹게 치고 올랐다가 좌측으로 빙 돌아 다시 챌봉으로 올라가야 하는 지형이다. 한 바퀴 휘감아야 하는 산줄기가 전방에 보인다. 에~ 휴~~
한강봉 오름을 오르는데, 아주 힘이 많이 든다. 어제 잠을 거의 못 자서 그런가? 오늘 날이 너무 더워선가? 심박수가 너무 빠르고 심장 뛰는 소리가 쿵쿵 들릴 지경이다. 잠시 멈춰 서서 시계 보며 심박수를 체크했다.
온몸으로 심장 뛰는 것이 느껴져서 따로 맥박을 짚을 필요가 없다. 하나, 둘, 셋... 분당 120회 정도다. 이 정도면 문제없다. 휴식하면 금방 정상으로 돌아오고... 심박수는 휴식했을 때 얼마나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느냐도 중요하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때 심장이 쿵쿵 빨리 뛰는 것은 누구나 그런 건가?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가?
다시 낑낑 올라가는데 갈림길이 나타난다. 우회로인 듯하다. 잠시 우회해 버릴까 고민하다가 직진하여 오르는 데 너무 힘이 드니까 금방 후회가 된다. 그냥 우회할걸...
한참 후에야 공터, 돌탑, 삼각점과 이정목이 있는 '한강봉 정상'에 오른다.(14:07)
# 철문을 우회해서 한강봉으로 오른다. # 우측 봉우리가 챌봉이다. 좌측은 425봉. # 완만한 삼각형 모양의 챌봉. 정상에 무인 산불 감시카메라가 있다. # 소나무와 참나무가 몸을 맞대고 공존하고 있다. # 한강봉 정상. '한강봉'은 정상에 서면 한강이 바라다 보인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오늘은 저 멀리 장흥 땅 너머로 한강이 보이기는 하나 스모그 때문에 희미하다. 대신 가까운 사패산,도봉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한강봉 오름 오르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배가 고파 그랬나? 얼른 밥 먹자! 정상 우측 바로 너머에 통나무로 만든 낡은 벤치가 있길래 배낭 벗고 마음에 점 하나 찍었다.
밥 먹고 났더니 갑자기 가기 싫고 졸음이 막 밀려 온다. 울퉁불퉁하여 불편한 벤치에 몸을 눕히는데 금방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러나 10여 분도 채 못 자서 단체 산행객들이 들이 닥쳐 떠들어 대는 통에 곧바로 잠을 깨고 말았다. 좀 더 잤으면 좋으련만 떼로 뭉쳐 고함을 질러 대니 잠을 잘 수가 있나?
# 한강봉 정상에 서면 사패산과 도봉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 가야 할 챌봉. 10분이지만 조금 잤다고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 14:55에 출발. 곧바로 아래로 가파르게 내렸다가 안부에 이르고, 이후 길게 오르락내리락 하며 진행한다. 15:12에 '한북/도봉지맥 갈림길'이라고 적힌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갈림길에 이른다. 지도상 '오두지맥 갈림길'이다.
세간에는 한북정맥을 지금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는 사패~도봉~장명산 구간이 아니라, 장군봉~앵무봉~오두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장명산 구간의 끝자락은 산길이 완전히 없어져 버리고 쓰레기 더미 한켠에 장명산만 오똑 솟아 있는 모양인 데다 마지막 정맥길이 소멸하는 곳 역시 한강이 아니라 지류인 곡릉천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이 안내판을 세운 한강봉 산사랑 산우회라는 곳은 이 지역 사람 몇몇이 모여 한북정맥의 방향을 오두산쪽으로 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나 보다.
그러나 나는 정맥길 원류에 대한 지식과 연구가 부족하고, 이미 많은 이들이 답사한 장명산 구간을 굳이 거부할 만큼 소신을 갖추지 못한 지라 일단 선답자들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나중에 저 오두지맥을 다시 한번 밟아 보면 답이 나오겠지!!!
한강봉 산사랑산우회 사람들이 표지기들을 모두 오두지맥 쪽으로 매달아 두어서 자칫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겠다. 표지기들을 무시하고 직진하여 갔다. 오름 하나를 오르자 '꾀꼬리봉'이라고 적힌 팻말이 있는 봉우리같지 않은 봉우리가 나온다.
# 어느 방향이 진짜 정맥길이냐?
# 장명산이냐? 오두산이냐? # 봉우리같지 않은 꾀꼬리봉. 꾀꼬리봉을 지나 아래로 내렸다가 본격적으로 챌봉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10분 동안의 오수(午睡) 덕분인지 비교적 쉽게 군벙커가 있는 '챌봉 정상'에 올랐다.(15:40)
# 챌봉 정상. # 정상 바로 너머에 있는 산불감시카메라. 자료를 찾아보니 챌봉은 "산의 모양이 채로 친듯한 모양"이라고 해서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채로 친 모양? 그게 뭐야?
그러나 그 보다는 다른 지방에도 '챌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들이 간혹 있고, 이들은 모두 산의 모양이 잔치 마당이나 장마당에 세우는 '차일(遮日)'처럼 생겼다고 해서 '차일봉'이라고 부르던 것이 축약되어 '챌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곳 챌봉도 그런 연유로 얻은 이름이지 않을까 짐작된다. 실제 호명산이나 한강봉에서 건너다 본 챌봉의 모습은 뾰족한 삼각형이 아니라 완만한 경사의 삼각형 모양인 것이 꼭 차일을 친 듯한 모습이다.
정상 바로 너머엔 산불감시카메라와 헬기장이 있다. 헬기장에 서면 조망이 아주 훌륭하다. 전방으로는 수락, 사패, 도봉, 북한산의 연봉들이 죽 늘어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우측으로는 앵무봉에서 오두산으로 이어지는 오두지맥의 산줄기가 병풍을 두른 듯 길게 이어져 있다. 과연 산세가 늠름한 것이 저곳 역시 가벼이 여길 곳은 아니다.
# 수락, 사패, 도봉, 삼각산의 위용. # 멀리 삼각산부터 땡겨보고. # 다음은 도봉의 포대능선과 오봉능선. # 사패산도 땡겨보고. # 바로 앞의 항공표지국과 저 멀리 수락산의 모습도 감상한다. # 산불감시카메라와 헬기장. # 좌측엔 홍복산의 모습이... # 오두지맥의 늠름한 모습. 한참을 조망 감상하다가 길을 나섰다. 곧바로 길고 가파르게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해발고도를 180m나 까먹고서야 '옛고개'에 도착했다. 고개를 가로 질러 올라가자 '화장실이 있는 임도'에 이르고, 임도는 또 다른 고개와 만난다.
직진하여 길게 길게 올라가는데 힘들다 소리가 나올 즈음 군진지와 공터가 있는 '425봉'에 오른다.(16:35)
# 딱따구리의 보금자리. # 산딸나무. # 옛 고개를 지난다. 숲을 벗어나자 한순간 앞이 툭 트이며 아주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공터를 가로질러 가면 '무선항공표지국'이 있다. 거대하고 둥그런 원 모양인 것이 외계인과 교신이라도 취하려는 듯한 형상이다.
항공무선표지국 철조망을 만나 좌측으로 돌아갔다. 곧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표지기들이 달려 있다. 그런데 선답자의 산행기에 좌측은 골짜기로 떨어지는 곳이고, 직진하여 정문 쪽으로 가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어 선답자의 말을 따랐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칡넝쿨과 잡풀이 철조망 바깥을 완전히 점령해서 파고들 수가 없다. 몇 번 시도해보다 결국 팔다리에 상처만 입고 바로 아래 잣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나무들이 키가 낮고 촘촘해서 온몸이 긁히고 아프다. 몸을 잔뜩 낮추고 억지로 헤치고 나가니 '정문'이 나온다.
정문 앞은 시멘트 포장도로다. 시멘트 도로 따라 조금 내려가니 좌측으로 숲에서 나오는 샛길이 나온다. 좀 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우회하면 이곳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선답자 산행기 믿다가 팔다리에 상처만 입었다. 포장도로를 따라 아래로 백여 미터 내려가면 좌측 숲으로 들어가는 들머리가 나온다.
# 넓은 공터와 무선항공표지국. # 정문 아래에 우회로 날머리가 나온다. # 전방의 산줄기를 타고 울대고개로 내려가야 한다. # 다음 구간 사패산과 도봉 주능선. # 도로 따라 내려가면 좌측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표지기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면 이내 무명봉 하나가 나타난다. 이 봉우리는 2단으로 올라 가게 되어 있다. 이후 길게 내려 가다보면 한순간 앞이 툭 트이며 '천주교 교원 묘역'이 나타난다.(17:15)
묘지 좌측으로 임도 따라 내려갔다. 5,60미터 전진하다가 좌측 숲으로 들어간다. 가파르게 길게 길게 내려가다 보면 간이 화장실과 철조망이 나타난다. 그 아래 마을길로 내려가 아래로 가면 39번 도로가 지나는 울대고개가 있다.(17:30)
# 으아리. # 천주교 공원묘지.
# 아이스 바 하나 물고 더위를 식힌다. # 차량 통행이 아주 많은 울대고개. 노채고개에서 멈춰있던 한북을 다시 시작해서 솔방솔방 걷다 보니 어느듯 울대고개까지 내려왔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중간중간 탈출할 수 있는 곳이 많아 별 걱정없이 진행했는데, 사패와 도봉 구간엔 한번 들어가면 끝까지 가야 해서 은근히 걱정이 된다.
사패, 도봉이라!!! 설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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