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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열일곱번째(윗갈치~붉은재)-우리나라 운하의 원조 굴포운하! 본문
지금 온 나라가 '한반도 대운하(大運河)' 문제 때문에 찬반양론으로 갈려 국론 분열이 심각하다. 대운하는 수십 년 전 박정희정권 시절부터 일부 학자들이나 관료들 사이에서 연구 수준으로 검토되어왔던 일이다. 그랬던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청계천 개발 후속탄으로 들고나오면서 본격적으로 국가적인 화두(話頭)로 떠올랐다. 그들은 반대할 적당한 곳이 나타나면 어디든 '출몰(出沒)'한다. 그들의 열정적 반대로 인해 대규모 국책사업은 늘 지연되거나 무산된다. 그로인한 엄청난 액수의 혈세 낭비는 반복적으로 되풀이된다. 만약 그 아까운 세금으로 유용한 곳에 사용했다면 수십 수백 명의 목숨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어지러운 일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반대를 수용하고 극복하는 것 역시 국가공동체를 운영하는 이들의 의무이다.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계획과 민주적 절차에 따른 과정, 그리고 엄정한 적법 절차의 시행으로 국가 정책을 운영할 의무와 권한은 국민이 그들에게 부여한 책무이다. 분발이 필요하다. 한편, 문외한인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다. 이렇게 논란이 많은 대역사를 그냥 밀어붙이거나 무작정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모든 일에는 사전 테스트가 필요한 법이다. 우리에겐 이미 운하에 관한 시행착오의 기록이 있다. 그것은 '경인운하(京仁運河)'이다. 경인운하 역시 진행하다가 반대로 인해 중단했던 사업이다. 그 경인운하(京仁運河)를 먼저 완공하여 시험 운행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을 듯하다.
경인운하는 한남정맥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어 지난 2006년 한남정맥 종주 시 그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곳이다. 김포 보구곶리를 출발한 한남정맥은 대곶과 검단을 거쳐 굴포천을 만난다. '굴포(掘浦)'라는 이름은 인위적으로 땅을 파서 하천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곳 굴포는 세곡미의 안전한 운반을 위해 운하 개척을 시도했던 곳이다. 고려 고종 때 최우(崔瑀)가 시작한 이래 조선 중동 때 김안로(金安老)가 다시 시도하는 등 여러 차례 운하 개발을 시도했으나 부평 원통이고개를 뚫지 못해 실패한 역사를 가졌다.
그런데 충청도 내포(內浦) 지방의 바닷가에도 같은 역사의 흔적이 있다. 그곳 역시 고려 시대부터 운하개발의 시도가 있었고, 경인운하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술적 이유로 인해 완공하지는 못했던 곳이다. 공교롭게도 이름까지 똑같이 '굴포(掘浦)'이다. 그 역시 인위적으로 운하를 팠음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굴포운하는 태안의 천수만(淺水灣)과 서산의 가로림만(加露林灣)을 연결하고자 하였던 옛 왕조시절 숙원(宿願)의 토목공사였다. 그 시작은 고려 인종 12년 1134년이다. 원래 국가의 운영과 유지는 조세(組稅)와 국방(國防)이 최우선이다. 삼남지방(三南地方)의 세곡(稅穀)을 안흥량의 험한 수로와 많은 암초로부터 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운반하고자 하는 시도가 굴포운하의 착공이다. 하지만 암반이 많고 조수의 왕래로 굴착지점이 다시 허물어지기를 반복해 공사 마무리는 실패했다. 이후 공양왕 3년에 다시 공사를 재개했으나 실패했고, 왕조가 바뀐 후 태종, 세종, 세조, 중종, 현종 때에도 여러차례 검토 혹은 시도를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실록에도 굴포의 기록은 허다(許多)하다. 특히 세조 10년 3월의 기록이 굴포운하 실패의 이유를 그대로 보여준다. "臨瀛大君 璆 領議政申叔舟等自堀浦復命 上御西閤 問開鑿利害 璆等對曰 水道不直 泥淖沮洳 隨鑿隨塡 不可開鑿 從之. (임영대군 구 영의정신숙주등굴포복명 상어서합 문개착이해 구등대왈 수도부직 니뇨저여 수착수전 불가개착 종지 ;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와 영의정(領議政) 신숙주(申叔舟) 등이 굴포(堀浦)로 부터 복명(復命)하였다. 임금이 서합(西閤)에 나아가 개착(開鑿)의 이해(利害)를 물으니, 이구(李璆) 등이 대답하여 이르기를, 수도(水道)가 바르지 않고 진흙이 물러서 파는대로 무너지니, 개착할 수 없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많은 암반과 개펄지역을 극복할 수 있는 토목 기술이 당시로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두 왕조에 절친 숙원의 토목공사는 고려 인종12년인 1134년부터 조선 현종 10년 1669년까지 무려 530년 간 계속되었지만, 전체 7㎞중 4㎞만 개착되고 나머지는 완공하지 못했다. 슬픈 일이다. 이 비운(悲運)의 굴포운하는 그후 세월 흘러 다 메워져 자연으로 돌아가고 일부 구간만 유적으로 남아 있다. 육운(陸運)이 발달하여 도로교통 원활하고 조세를 미곡으로 걷을 일 없으니 운하의 필요성이 없어진 탓이다.
구간 : 금북정맥 제 18구간(윗갈치~붉은재) 윗갈치/29번 도로(09:45) ~ 사격장 ~ 123봉 ~ 169.9봉 ~ 183봉 ~ 솔개재(10:45) ~ 임도 ~ 비룡산(11:43) ~ 집뿌리재 ~ 295봉 ~ 금강산(12:35)/점심 후 13:15 出 ~ 팔봉지맥 갈림길 ~ 장군산(13:45) ~ 수량재 ~ 물래산(14:35) ~ 100봉 ~ 140봉 ~ 32번도로 ~ 팔봉중학교 ~ 시멘트도로 ~ SK 중계탑 ~ 과수원 삼거리 ~ 굴포운하 ~ 마을회관 ~ 파란지붕 오거리 ~ 인삼밭 ~ 30분 알바 ~ 버스정류장 ~ 붉은재(17:24)
3월 1일 흙의 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너무 어렵다. 요즘 계속 회사일 때문에 무리해서 과로가 겹친 탓이다. 뭐 그다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굴포운하/掘浦運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대산 가는 29번 도로 우측에 골프연습장이 하나 있다. 그 입구 주차장에 주차한 후 가볍게 몸 풀고 산행준비를 했다. 일주일 사이에 날씨가 많이 풀렸다. 기온 체크하니 영상 4.5도다. 계절의 변화가 놀랍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와 버렸다. (09:45). 도로 건너 '서령정'표지석 뒤로 올라갔다.
# 서령정 비석 뒤로 오늘 구간 들머리가 시작된다.
묘지 뒤로 오르면 완만한 오름이 시작된다. 시작부터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전부 진달래나무다. 한두 달 뒤에 이곳을 지난다면 온몸에 꽃향기 가득 묻힐 수 있겠다.
# 서산시 사격장. 뒷쪽 산으로 정맥이 이어진다.
# 국궁장.
# 관중(貫中)이요~~
사격장 뒷쪽 숲속으로 들어 갔다. 편안한 숲길이 이어진다. 작은 고개를 지나 한차례 올리면 '123봉'이 나오고, 아래로 내렸다가 작게 오르내리고 다시 한차례 밀어 올려 삼각점이 있는 '169.9봉'에 오른다.(10:27)
# 잔설이 남아 있는 솔개재.
솔개재는 갈산 3통의 큰말에서 성연면 일람리로 넘어가는 산길이다. 옛날에 이곳에 솔개가 많이 살았다 해서 얻은 이름이라고 서산문화원에서 기록해 두었다. 생뚱 맞은 이름 유래이고 믿기 어려운 내용이다. 솔개 있고 없고로 고개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보다는 뭔가 다른 어원이나 전설이 있을 듯하다.
# 바위암봉에서 비룡산을 건너다본다.
# 지도에 없는 임도 하나 정맥을 넘어 간다.
지도에는 없는 임도다. 최근에 닦은 듯하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길게 고도를 높여 올라간다. 비룡산 사면은 산불 피해지역이다. 한차례 밀어 올리면 바위들로 된 봉우리에 서게 되고 주변 조망이 트여 비룡산 정상으로 착각한다.
# 금학리쪽 조망.
# 묘지가 있는 비룡산 정상.
비룡산 정상에는 전주 이씨의 묘가 모셔져 있다. 이곳이 비룡의 꼭대기라면 좀 전의 그 바위봉우리는 비룡의 콧구멍쯤 되나 보다. 묘지 우측길로 내려 간다. 좌측길은 성리의 풍전저수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 금강산 산줄기와 저멀리 팔봉산이 보인다.
# 지난주에 시산제를 올렸던 팔봉산을 땡겨본다.
# 집뿌리재.
# 당산나무가 서 있다.
# 괜차뉴님이 집뿌리재란 이름을 발굴해서 기록해 두었다.
집뿌리재는 마전과 용암을 잇는 고갯길이다. 이 지역 산꾼인 괜차뉴님이 지역 노인들을 통해 이 고개의 이름을 발굴했다. 당연 지도에는 없는 이름이다. 고개 위에는 멋진 당산나무가 한 그루 의연하다. 그 나무에 기대 잠시 머리 숙여 안전산행을 기원해 본다.
# 선바위가 있는 봉우리를 넘고,
# 금강산에 오른다.
# 누군가 냄비를 매달아 두었다.
# 정상에서 본 금학리쪽 조망.
이 산은 316m의 낮은 고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이란 멋진 이름을 얻었다. 이 동네 사람들 허풍이 좀 심하다. 비룡(飛龍)에 금강(金剛)에 장군(將軍)까지...
# 팔봉지맥 갈림길.
# 산림 정리를 하지 않아 볼품없이 빽빽한 내리막길.
# 군부대 뒷산의 바위봉우리.
# 수량재.
수량재는 태안 가는 '32번 도로'가 전방에 있고 차량들이 씽씽 날아다닌다. T자형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지하도가 있는 모양이지만 빙 돌아가는 게 싫어서 우측으로 내려가서 차량 흐름이 끊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중앙분리대를 넘어 얼른 도로를 횡단했다. 위험했다.
# 우측으로 내려가서 도로를 무단횡단했다.
도로 건너 식당 좌측으로 고개를 올라 넓은 수렛길을 따라 올라간다. 길이 녹아 질퍽질퍽하다. 잠시 올라 고개 위 독립농가 앞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개활지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오른다. (14:35) '물래산'에 도착했다.
# 물래산.
좌측으로 갈라지는 길이 부석지맥이라고 괜차뉴님이 적어 두었다. 지맥, 기맥 참 많기도 하다.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데 길게 고도를 낮추며 가는 모양세다.
# 팔봉산이 건너다 보인다. 오전에는 팔봉산의 반대쪽을 보고 왔는데...
# 32번 국도.
32번 도로를 다시 무단횡단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잠시 갈 길을 몰라 헤맸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챙겨와야 하는데 요즘 바빠서 미처 챙기지를 못했다.
# 팔봉중학교.
팔봉중학교 본관 우측으로 올라갔다. 마을 뒤쪽으로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구릉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소나무숲을 지나 '시멘트도로'에 섰다. 잠시 가면 'SK 중계탑'이 나오고 바로 뒤 '과수원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내려갔다. 저 멀리 오서산이 보인다.
# 올해 처음 만나는 큰개불알풀.
# 통신회사 중계탑을 기준으로 갔다.
# 과수원 삼거리에서 우틀한다.
# 이 삼거리에서 우틀하라고 표지기가 매달려 있는데, 그냥 직진하면 된다.
# 굴포운하. 상류여서 이렇지 하류 쪽은 온전한 운하의 모습이다.
# 굴포운하 안내판.
한남에서는 현대식 운하를, 이곳 금북에서는 옛 사람들의 손길 그대로인 운하유적지를 만났다. 굴포운하를 지나 시멘트도로를 계속 따르면 큰 '느티나무'와 '교회'를 지나게 되고 '인평리 다목적회관'도 지난다.
# 느티나무와 교회를 지난다.
# 농가 담벼락에 고개를 빼꼼히 내민 얌생이. 아자씨~ 누구셔유~~
# 파란 지붕집 뒤 오거리.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한다. '인삼밭'을 지나고 가겟집도 지나고 '북창마을 버스정류소'가 있는 사거리에서 우틀하여 길게 도로 따라 올라간다. 축산농가를 지나 고갯길을 위로 올라가니 '붉은재'가 나온다.(17:24)
# 저 이정표 따라 우틀하면 붉은재가 나온다.
# 붉은재. 좌틀하여 산을 올라가면 오서산 가는 길이다.
중간에서 두 번이나 알바를 하는 바람에 시간이 예정보다 많이 걸렸다. 그냥 도로를 따르면 팔봉중학교에서 1시간이면 족한 거리를 쓸데없는 고집 피우는 표지기들을 따르다가 2시간이나 걸렸다.
# 팔봉산을 배경으로 유유자적한 젖소부인.
# 버스 기다리며 반사경에 셀프샷 한 방!
북창 버스정류소에서 간식 먹으며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가 나타난다. 두 시간을 걸어왔던 길을 순식간에 달려 태안으로 나갔다가 태안에서 택시 타고 윗갈치로 돌아가 차량을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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