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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그 마지막 걸음(장재~안흥진)-안흥진 앞바다에 손을 담그다! 본문

1대간 9정맥/금북정맥 종주기

[금북정맥]그 마지막 걸음(장재~안흥진)-안흥진 앞바다에 손을 담그다!

강/사/랑 2008. 3. 31. 00:20
 [금북정맥]마지막 걸음(장재~안흥진)

 


'안흥항(安興港)'은 태안군 제일의 항구다. 태안읍에서 32번 국도를 타고 만리포를 향해 가다가 5번과 603번 지방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그곳에 안흥항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백제시대부터 당나라와의 무역항으로 사용되던 유서 깊은 항구였다. 고려시대에는 당시 중국의 패자(覇者)인 송나라와 무역하였다. 그 후 조선조 효종(孝宗) 때 안흥진(安興鎭)을 개설하면서 안흥성(安興城)을 쌓았고, 그곳에서 서해를 건너온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영접지(迎接地)로 사용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의 교류를 통한 국제항으로서의 역할이 컸으나 대내적으로는 호남지방의 세곡(稅穀)을 서울로 이송하는 길목의 항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원래 안흥 부근은 수로가 험하여 조운선(漕運船)의 항해가 어려웠고 파선(破船)으로 인한 피해도 많았다. 그리하여 먼 길 가는 조운선의 피항지(避港地)나 중간 기착지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였다. 그때의 이름은 '난행량(難行梁)'이었다. 지나기 어려운 곳이란 뜻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바닷사람들이 난행량이란 이름을 싫어해서 '안흥량(安興梁)'이라 고쳐 불렀다 적고 있다. 난행이 안흥으로 바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시대에 이미 이곳을 안흥으로 불렀다는 기록은 전해진다.

 

지금은 사철 싱싱한 활어회와 인근 바다에서 잡아 올린 전복과 해삼 등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한 수산물 집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인근에 풍광이 훌륭한 절경이 많아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비는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또 안흥항은 우리나라 우럭 배낚시의 메카이다. 항구에는 약 50여 척의 낚시 전용선이 우럭 손맛을 보려는 전국의 낚시꾼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나 역시 낚시꾼 시절 수십 차례 동료들과 같이 안흥을 찾아 손맛, 회맛, 술맛을 실컷 즐겼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때는 보통 낚시 하루 전날 저녁에 도착해서 숙소 정하고 밤새 이런저런 얘기들로 술잔을 기울이기 일쑤였다. 우럭 배낚시라는 게 정통 낚시에는 한 발 빗겨난 장르인지라 낚시보다는 술맛, 회맛에 이끌린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러다 보니 밤새 부어라 마셔라 하며 질펀한 음주가무가 낚시에 늘 우선하였다.

이렇게 밤새 마신 사람들 중엔 꼭 뒷날 낚싯배 위에서 멀미와 숙취에 해롱해롱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고, 간밤에 먹은 비싼 음식물들을 배 위 이곳저곳에서 확인하는 진풍경이 속출한다. 그럴때면 낚시가 더 관심사인 우리 정통 낚시꾼들은 한 마디 해준다. "거 이왕 내용물 확인할 거면 포인트에 조준 잘해서 토하시오. 우럭 밑밥으로 쓰게! ^^*"

이제 세월 흘러 낚시꾼에서 산꾼으로 변신한 강/사/랑이 지난해 7월 31일, 안성 칠장산에서 홀로 출발한 금북정맥을 마무리하고 안흥진 앞바다에 손 담그기 위해 마지막 금북길에 나섰다. 역시 홀로!!

 



안흥진 앞바다에 손을 담그다!!!


구간 : 금북정맥 제 20구간(장재~안흥진)
거리 : 구간거리(20.1 km), 누적거리(280.4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8년 3월 29일. 흙의 날.
세부내용 :

장재(09:40) ~ 통신안테나 ~ 갈림길 ~ 고개 ~ 하얀 농가 ~ 시멘트도로/길주의 ~ 무명봉 ~ 농가/마늘밭 ~ 5번 도로 ~ 마금1리 마을회관 ~ 목장 ~ 매봉산(11:08) ~ 밤고개 ~ 시멘트도로 ~ 마을/도로 ~ 남산(12:00) ~ 후동고개 ~ 103봉(12:18)/점심 후 12:50 出 ~ 73.7봉 ~ 근흥중 ~ 초원다방 ~ 근흥장로교회 ~ 의용소방대 ~ 연포, 채석포갈림길 ~ 채석포교회(13:35)  ~ 묘지群 ~ 115봉 ~ 무명봉 ~ 장승고개(14:39) ~ 고개 ~ 죽림고개(15:47) ~ 군부대도로 ~ 군부대 정문 ~ 철조망 ~ 갈음이고개 ~ 143봉 ~ 전망대 ~ 갈음해수욕장 ~ 127봉 ~ 안흥진(18:15).

총 소요시간 8시간 35분.  만보계 기준 24,300보.

 

 

3월 29일. 흙의 날. 4시 30분에 알람을 맞춰 두었지만, 눈 뜨고 일어난 것은 6시다. 씻고 나오니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TV뉴스에선 오늘 전국적인 비 소식을 전한다. 어제 뉴스에선 그런 말이 없었는데? 인터넷으로 기상청에 접속해서 서산, 태안지방 날씨 확인하니 '흐림'으로 나온다.

3주 전에 금북 졸업하러 갔다가 조카 녀석이 갑자기 찾아오는 바람에 마지막 구간을 남겨 두고 돌아왔고, 이후 2주 연속으로 주말마다 비가 오거나 일이 생겨 금북길에 나서질 못했다. 더이상 미루다가는 안달이나 못 견딜 것 같아 출발을 강행했다. 가지 말라고 말리는 마눌에게는 들머리까지 가보고 비가 오면 포기하고 돌아오겠노라 말하고 고생보따리 챙겨 집을 나섰다.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니 금방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차 올려 달리는데 주룩주룩 참 장하게도 내리신다. 음악 크게 틀고 태안까지 드라이브나 하자 마음 먹고 내달렸다.

그런데 서해대교 지나 당진쯤 가니 점점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서산나들목을 빠져나오자 비는 완전히 그치고 잔뜩 흐리기만 한다. 기상청 웬일이니? 이렇게 맞을 때도 있네?


 

안흥진/安興鎭

예전 서해의 큰 항구였던 안흥진(安興鎭)은 서해로 내달리던 금북정맥이 내포 지방을 지나 바다로 빠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빚어 놓은 나루다. 지금은 서해에 접한 작은 어촌이지만, 백제 시대에는 당나라와의 교역으로 크게 번창했던 항구였다. 안흥항 앞바다는 물길이 험하기로 유명한 해역이었다. 그래서 이 곳은 지나기 어렵다 하여 난행량(難行梁)이라 불렀는데, 나라의 세곡을 실은 배들이 자꾸 조난을 당하자 조정에서는 평안한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이름을 안흥량(安興梁)이라 바꾸었고, 이 곳 지명도 자연스레 안흥으로 불리게 되었다. 안흥항을 지키던 곳이 안흥성(安興城)이다. 조선 시대엔 수군첨절제사를 두어 군사상 중요한 임무를 맡아보게 하였고, 뱃길로 조선을 찾은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성안의 건물은 대부분 불타 없어졌다. 성안에는 태국사라는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또 성벽과 네 개의 성문이 비교적 원형대로 남아 있다.

마금리/磨金里

마금리는 달리 마금동(磨金洞)·마김(磨劍)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곳의 지형을 살펴보면 주위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서 마치 동네가 온화하고 포근함이 막은 것 같다 하여 우리말로 '막음→마금'이라 부르던 것을 지명의 한자표기에 따라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취음으로 마금(磨金) 또는 마김(磨劍)이라 기록 함으로써 혼동을 가져오게 했다. 많은 인사들이 단순히 이 '磨金과 磨劍'의 뜻을 풀이하여 옛날 이 곳에서 金細工術이 발달했다느니 또는 군사들이 칼을 갈았다는 식으로 무리하게 풀이함으로서 견강부회(牽强附會)를 저질렀는데, 이는 모두 막음(원형은「막다」이다)의 뜻을 이해치 못한 데서 야기된 것이다.

신진도/新津島

신진도는 1.43㎢의 면적을 가진 섬으로 신진(新津)이라는 유래는 육지와의 내왕을 위해 새로 나루를 개설하여 "새나루"라 호칭하였는데 이를 한자 표기에 따라 그대로 신진이 되었다. 수협 위판장에서는 싱싱하고 다양한 생선을 싼값에 살 수 있다. 인근에는 수산종묘배양장이 있어 치어 방류사업을 하고 있으며 견학도 할 수 있고 방파제, 등대, 해양경찰대 함정 공개 등 현장 체험 학습의 장으로 이용하면 교육적 효과가 크리라 예상된다. 신진도는 지금도 신진 신항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신진항은 2종 항구로 많은 어선이 정박하므로 신진수협 공판장에서 싱싱한 수산물을 구할 수 있다.  신진도는 1995년 연육교로 안흥항과 연결되었으며 마도와도 붙어 있다. 신진도 방파제에서는 여름과 가을 학꽁치 낚시가 잘되며 마도와 신진도에서 갯바위낚시를 하는 낚시인도 많다. 근래에는 신진도에서 출항하는 낚시배도 많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금북정맥 제 20구간 장재~안흥진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금북정맥 마지막 구간 들머리인 '장재'에 도착, 만수가든 옆 공터에 주차했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지만 바람이 많이 불고 으슬으슬 춥다. 가볍게 몸 풀고 출발했다.(09:40)

만수가든 좌측에 나있는 농로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인삼밭'과 '통신안테나'를 지나자 '야산 정상'에 오르게 되고, '갈림길'이 나와 좌측길로 내려갔다.

 

 

 

# 금북 마지막 나들이의 출발지인 장재.

 

 

 

# 넓은 수렛길을 따라 올라간다.

 

 

 

넓은 수렛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개간지를 지나고 우측 숲으로 들어가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 묘지가 있는 고개가 나오고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하얀 목조농가' 뒷길로 가서 시멘트도로와 밭을 지나 무심코 넓은 길따라 직진했다.

 

묘지들 사이로 직진해서 산의 사면을 가로 지르는데 숲에서 벌목작업을 하던 사람이 금북하냐고, 그럼 길을 잘못 들었다고 알려준다.

감사드리고 다시 빽하여 돌아가니 밭 가장자리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무심코 직진하기 쉬운 곳이라 주의해야 할 곳이다. 

 



# 숲속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생강나무.

 

 

 

# 진진이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 처음 만나는 올괴불나무.

 

 

 

# 개암나무도 몸을 부풀리고 있다.

 

 


# 태안은 황토가 좋은 고장이다. 

 

 

 

#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올해 처음 할미꽃을 만났다.

 

 

 

한차례 올려 정상에 서면 갈림길이 나온다. 좌틀해서 아래로 내리면 전방이 트이며 저 멀리 수룡지가 건너다보인다. 농가 사이로 나오면 마늘밭이 나오고, 5번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좌측 아래에 수룡지가 있고 낚시꾼들이 산란기를 시작하려는 붕어와 한판 대결이 한창이다.

지금부터 5월까지가 붕어낚시의 산란기 피크타임이다. 나도 과거 2, 30년간 해마다 봄철이면 온몸에 비린내 풀풀 날리며 물가에서 빨간 찌를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길따라 오르면 멋진 소나무가 서 있는 마금1리 다목적회관을 지난다. 이 마금리는 사방이 둘러 막혀 있어 나온 '막음'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계속 도로를 따르다 길이 구부러지는 우측에 목장이 나와 목장 안으로 들어가 보는데 표지기도 없고 남의 집안으로 들어간다는 게 거시기해서 도로 나와 도로를 계속 따른다.

 


# 숲 너머로 수룡지가 보인다.

 

 

# 5번 도로를 따라 갔다.

 

 

 # 마늘밭 너머로 수룡지가 보인다.

 

 

 # 아직 붕어철이 조금 이른데 마음 급한 조사들은 벌써 물가로 나왔다.

 

 

 # 마금1리 회관.

 

 

 # 이 고장 사람들은 소나무 한 그루가 주는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이다.

 

 

 # 가야 할 정맥 줄기.

 

 

 

목장을 지나 잠시 가다보면 우측 숲에 표지기들이 매달려 있다. 조금 오르면 다시 시멘트도로에 서서 지나왔던 목장방향으로 도로 내려간다. 그러나 좌측 숲으로 올라 가라고 표지기들이 손짓한다. 결국 목장 안으로 해서 오면 지름길인데 목장 때문에 빙 둘러 온 셈이다.


숲으로 올라가 한차례 밀어 올린다. 440걸음을 세고서 봉우리에 올라 이곳이 매봉산인가 했더니, 이곳은 전위봉이고 매봉산은 바로 뒤에 작지만 오똑 솟아 있다. 우측으로 내려 다시 조금 오르면 '매봉산 정상'이 나온다.(11:08)


 


# 저 목장 때문에 이 목초지를 빙 둘러 왔다.

  

 
# 매봉산, 100여m의 낮은 산인데도 해안가라 고도감이 느껴진다.

 

 

 

삼각점이 있는 봉이라 고도계를 셋팅하였다.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내린다. 길게 내려가는 도중에 갈림길이 많이 나온다. 소나무 언덕을 지나 '밤고개'를 지나고 야산 하나를 넘자 또 '시멘트도로가 있는 고개'를 만난다. 수렛길을 따라 전방의 언덕을 넘어 내려가면 다시 '마을과 시멘트도로'를 만난다.

 



# 바다가 보이는 곳인데 날씨가 잔뜩 흐려 표현불가다.
 

 

 

# 마을을 지나 소나무 언덕을 넘는다.

 

 

# 시멘트도로를 지나 수렛길따라 오른다.

 

 

# 가야 할 정맥길. 야트막하지만 그 맥을 이어간다.

 

 

 



마을을 가로질러 묘지를 기준으로 올라갔다. 묘지 좌우로 허수아비와 개가 들어 있는 철망이 있는데, 허수아비는 無言으로 강아지는 有言으로 낯선 통과자를 맞이한다.

한차례 올려 봉우리를 넘고, 이후 두어 차례 편하게 오르내리며 진행하다가 한 차례 밀어 올려 '남산'에 오른다.(12:00). 남산에서 길게 내리면 정맥을 가로지르는 고개에 내려선다. '후동고개'다.

고개를 가로질러 절개지를 치고 올라 한차례 밀어 올린다. 고도는 낮지만 나한테는 이것도 힘이 든다. (12:18). '103봉'에 오른다. 103봉엔 돌탑과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배낭 벗고 마음에 점 하나 찍었다.

 


# 뼈만 앙상한 허수아비.

 
# 후동고개.

 

 

# 103봉.

 

 

# 간단한 제물 올리고 금북정맥 무사종주에 감사하는 제를 올렸다.

 

 

 

점심 먹고 12:50에 출발했다. 두어 번 오르내리다 삼각점이 있는 '73.7봉'에 이른다. 오는 도중 숲이 트인 곳이 나와 드디어 시원한 바다풍경을 눈에 담았다. 계속 내려가다가 운동시설이 있는 공터를 만나고, 좌틀하여 내려가면 '근흥중학교'가 나온다.(13:07)

 


# 드디어 서해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 73.7봉

 

 

 

# 운동시설 있는 공터에서 좌틀하여 내린다.

 

 

 

# 근흥중학교 앞 603번 지방도.

 

 

 

근흥중학교 앞으로 나와 603번 지방도를 조금 가다 좌측으로 들어가 '초원다방' 골목으로 들어갔다. '근흥장로교회'와 '의용소방대'를 연달아 지나고 다시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했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진행하다가 '연포, 채석포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 전(前) 버스 정류소에서 우틀하여 올라 갔다. 지도만으로는 길찾기가 조금 어려운 곳이다. 이곳에서 잠시 길 찾아 헤매야 했다.

 



# 초원다방.

 

 

 

# 바다가 좌측에 따라 오고 있다.

 

 

 

# 603번 도로를 다시 만나 계속 도로를 따른다.

 

 

 

# 길가집 화단에 황금빛 수선화가 꽃을 피웠다.

 

 

 

# 붉디 붉은 동백의 자태. 춘희(椿姬)의 눈물인가?

 

 

 

# 연포, 채석포 갈림길 前 버스정류소에서 우틀한다.

 

 

 

'채석포교회' 옆으로 해서 숲으로 올라갔다. '개사육장'을 지나 넓은 길따라 오르다 넓은 묘역을 만나 그 옆으로 올라 갔다. 묘역 상단에 서면 서해 바다가 돌아다 보인다.

 

다시 한차례 빡세게 밀어 올려 능선 마루금에 오른다. 헉헉 숨을 잠시 고르고 좌틀해서 마루금을 따르다 보면 삼각점이 있는 '115봉'에 오른다.(13:50)

 



# 넓은 묘역 우측으로 오른다.

 

 

 

# 바다여! 정맥의 끝자락에 섰음을 알겠구나!

 

 

 

# 노루귀의 우아한 자태.

 

 

 

정상을 넘어 내리는데 오른 각도 그만큼 떨어져 내린다. 이런? 아니나 다를까 안부에 이르니 이번에 내린 그만큼 밀어 올린다. 높은 고도는 아니지만 힘들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다시 길고 완만하게 내리더니 또 한 차례 더 밀어 올린다. 그럼 정맥인데 쉽기만 할라구??

정상부는 차돌바위와 육탈(肉脫)되어 뼈대만 앙상한 소나무가 서 있다. 다음 정맥꾼이 왔을 때도 여전히 서 있을라나? 꿋꿋이 버텨 보거라!

이제 내려가자! 그러나 그냥은 못 보내겠단다. 작지만 두어 번 더 오르내린 후 내려가란다. (14:39). '장승고개'에 내려선다.

 



# 육탈된 소나무가 서 있는 무명봉.

 

 

 

# 장승고개.

 

 

 

장승고개에서는 좌우 방향 모두 바다가 보인다. 우측 아래엔 염전이 있을 테고 좌측 아래엔 연포 해수욕장이 있을 것이다. 장승 좌측으로 올라가 편하게 숲속을 걷다가 내려가면 마을이 나온다. 좌측 아래로 연포해수욕장이 보인다. 우측으로 올라가는데 소라껍질이 큰 산을 이루고 있다. 수천 년 뒤에 패총(貝塚)으로 발굴될 수도 있겠다.

고개 건너 산으로 올라갔다. 제법 길게 밀어 올리고 있어 아이고 소리가 나올 즈음 정상 직전에서 우측으로 꺾어 떨어진다. '대밭이 있는 고개'를 지나 농로를 잠시 따르다 우측 숲으로 올라갔다. 한차례 올라 마루금에 오르고, 이후 서너 차례 오르내리며 길게 진행했다. 그러다 한차례 길게 올랐다 내리면서 우측으로 90도 꺾어 길게 내려갔다. (15:47)'죽림고개'다.

 



# 장승고개 뒤 마을. 우측 전방에 정맥이 보인다.

 

 

 

# 대밭있는 고개 지나 숲으로 올라 갔다.

 

 

 

# 죽림고개. 저 멀리 군부대가 있는 지령산이 보인다.

 

 

 

죽림고개엔 절개지를 파먹는 공사가 한창이어서 내려설 수가 없다. 이곳저곳 방황하다 결국 절개지를 스틱에 의지해 미끄러져 내렸다. 고개 우측엔 주유소가 있고 좌측으로 내려가다가 우측 '군부대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이후 도로를 따라 고도를 높여 가며 길게길게 올라갔다. 중간에 마루금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숲으로 들어가라고 표지기를 달아 두었지만, 크게 의미 있지는 않는 듯하여 그냥 도로를 따른다. 안면 많은 표지기들이다. 힘들다 소리가 나올 즈음 군부대 정문을 만난다.

 



# 죽림고개 공사 현장. 뭘 또 만들려고 저러나?

 

 

# 군부대 도로 따라 길게길게 올라간다.

 

 

 

정문에서 좌측 철망 쪽으로 얼른 들어갔다. 외부인의 출입이 전혀 없고 정맥꾼들만 가끔 지나는 곳이라 길이 희미하고 잡목의 저항이 아주 심하다. 아야~아야~ 소리를 연신 내며 진행하는데,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늘이 지금까지 잘 참아 주더니 막판에 드디어 인내심이 다 되었나 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장대비를 맞으며 출발했었는데, 지금까지 참아 준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산행 대부분을 비 맞지 않고 진행한 것도 하늘이 강/사/랑의 금북 졸업을 축하해 주느라 참아 준 것이라 생각한다.

철조망을 길게 따르다 좌측 아래로 떨어진다. 갈림길에 서면 가야 할 마지막 금북정맥의 흐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 군부대 철조망과 우측의 갈음이고개, 143봉과 갈음이 해수욕장, 그리고 금북의 마지막 봉우리인 127봉이 빗속에 묵묵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 죽림지와 죽검들이 내려다 보인다.

 

 

# 빗속에 말 없는 마지막 금북의 흐름. 갈음이고개, 143봉, 갈음이해수욕장, 127봉.

 

 

 

갈림길에서 좌측 아래로 떨어지는데 바위들이 흔들려 위험하다. 다시 철조망을 만나 길게 철조망 따라 내려가다가 우측 숲으로 들어갔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져 더이상 못참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고집피우다 이미 절반은 젖었다.


숲길을 길게 내려 옛고개를 지나고 다시 길게 진행하면 '갈음이고개'가 나온다. 이제 산 두 개만 넘으면 된다. 그러나 이 두 산이 해발고도는 100여m의 낮은 산이지만, 해발고도 0에서 올라야 하므로 만만치는 않다. 더욱이 산행 막바지의 지친 후라 더 힘이 든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강/사/랑의 비장의 무기, 숫자세기가 시작된다. 850개를 세고서 '143봉' 정상에 섰다.(17:17).

 



# 갈음이 고개.

 

 

# 갈음이 해수욕장과 금북의 마지막 봉우리 127봉.

 

 

 

비가 점점 굵어져 조망은 전혀 없다. 가파르게 내려가다가 길게 진행하면 허물어진 옛 성터가 나오고, '전망대'가 있어 전방이 툭 트인다.

마지막 가야 할 금북을 눈에 담고 올라온 높이 전부를 떨어뜨린다. 성곽 흔적이 중간중간 나타난다. 한 겹의 성이 아니라 방어선을 2중 3중으로 구축했던 모양이다. 가파르게 내려 갈음이 해수욕장에 내려섰다.

 


# 갈음이 해수욕장. 비 때문에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 얼른 찍었다.

 

 

 

갈음이 해수욕장은 작지만 풍광이 아름다워 광고촬영지로 유명하다는데, 비 때문에 앵글 잡기도 어렵고 판초우의 뒤집어 써 비를 가리고 얼른 한 컷 찍은 후 카메라를 집어 넣었다.

모래언덕을 올라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는데 너무 힘이 들어 아무 생각없이 숫자만 셌다. 1,200걸음을 걷고서야 금북의 마지막 봉우리인 '127봉'에 오른다.(17:55)

 



# 금북 280km의 마지막 봉우리인 127봉.

 

 

# 빗속에 말 없는 서해바다.

 

 

 

우측길로 급하게 떨어져 내린다. 중간에 바다 쪽으로 트인 곳이 나타난다. 잠시 드넓은 서해 바다 향해 두 팔 크게 벌려 천지기운(天地氣運)을 받아들였다. 흐으읍!!! 흐으읍!!!흐으읍!!! 파도소리 들으며 길게 내려 드디어 '안흥진'에 내려섰다.(18:15)

 



# 마지막으로 표지기 하나 달고...

 

 

# 괜차뉴님이 축하해 주시면서 홀로 외롭지 않냐고 물으신다. 대답했다. 괜챠뉴~~~!!!

 

 

 

아, 드디어 금북정맥 280km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었다. 2007년 7월 30일에 안성 칠장산에서 출발했으니, 꼭 8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안성, 천안, 성환, 연기, 공주, 청양, 홍성, 서산, 태안을 거쳐 이곳 안흥진까지 올록볼록 금북스러운 산들을 참 많이도 오르내리며 걸어 왔다.

백두대간과 9개 정맥 중 한남, 한북, 그리고 금북까지 세 개의 정맥길을 두 발로 걸은 것이다. 그중 오늘 졸업한 금북은 감회가 한남, 한북과 남다르다. 재작년 백두대간을 졸업하는 날 느닷없는 질병을 얻었고, 그 이후 산행을 멈췄다가 용기를 내서 중간에 멈췄던 한북을 졸업했었다.


그때도 감격이 컷지만, 한북은 절반은 발병 이전에 했던 것인데 반해, 금북은 오롯이 건강 회복하고 시작부터 끝까지 조심해가며 마친 정맥이라 그 감회가 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렇게 무사히 금북을 졸업할 수 있게 도와주신 천지신명의 은혜가 컸을 터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음덕(陰德)도 컸을 것이고. 비 내리는 안흥진 바닷가에서 드넓은 서해바다를 보고, 지나온 금북의 산줄기를 보고 감사의 큰절을 홀로 올렸다.

 



# 안흥진의 외로운 정자.

 

 

# 홀로 산꾼의 홀로 정맥 졸업이라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어, 금북 280km를 함께 걸어온 보따리와 지팡이에 모자 씌워 기념사진을 남겼다.

 

 

# 서해 바닷물에 손 담궈 금북 졸업 의식을 갖는다.

 

 

# 안흥진아, 널 보러 그 먼길을 걸어 왔다!

 

 

# 긴 방파제 걸어 人間世로 향했다.

 

 

 

주룩주룩 비 내리는 날이라 그런지 일요일인데도 안흥진엔 인적 하나 없다. 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이요, 萬徑人蹤滅(만경인종멸)이다.

쬐끔 쓸쓸하기도 하지만 홀로 감회에 젖기도 좋네!! 서해 바닷물에 손 담궈 졸업의식을 홀로 치르고 긴 방파제 걸어 인간세로 향했다.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소리 무심하고 내 앞으로 긴 길이 펼쳐져 있다.

 

"자, 이제 또 어느 길을 걸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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