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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열여덟번째(붉은재~장재)-고난극복의 고장 태안(泰安)! 본문

1대간 9정맥/금북정맥 종주기

[금북정맥]열여덟번째(붉은재~장재)-고난극복의 고장 태안(泰安)!

강/사/랑 2008. 3. 31. 00:19
 [금북정맥]열여덟번째(붉은재~장재)

 

 
'태안(泰安)'은 동쪽으로만 서산에 이어져 있을 뿐, 서남북(西南北)의 3면이 모두 바다에 둘러싸인 반도(半島)의 지형이다. 옛날 학교 다닐 때 반도(半島)의 예로써 태안반도를 외웠던 기억이 난다. 미국엔 플로리다반도, 한국엔 태안반도...

그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면 동으로는 서산(瑞山), 서쪽으로는 서해, 남으로는 보령군의 원산도(元山島)를 마주 보고, 북쪽으로 경기도의 덕적군도(德積群島)를 바라보고 있다.
결국, 동쪽으로 접하고 있는 서산이 내륙(內陸)으로 연결되는 육상교통의 유일한 관문이다.

태안에서 서쪽 방향인 서해로 315㎞를 나가면 중국(中國)의 산동반도에 이르게 되는데, 일찍이 대륙문화가 이 서해의 물길을 통해 태안반도에 들어왔다. 그 옛날 백제 시대 불교 문화가 이곳 태안을 통해 수입 번창하였고, 태안반도의 끝이자 금북정맥의 종착지인 안흥항(安興港)은 여송 무역선(麗宋貿易船)의 기항지로 널리 알려져 있던 곳이다.

 

또 북쪽의 원북 청산리는 해상 교통이 발달하여 인천항을 내왕하는 정기 여객선이 1960년대까지 활발하게 이어져 경인 문화(京仁 文化) 수입에 한 몫을 다했던 곳이다. 하지만 세월 흘러 육상 교통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해상 교통은 두절되고 말았다.

태안은 그 이름부터가 '크게(泰) 편안한(安) 고장'이라 옛부터 살기 좋은 고장으로 유명했지만, 지난해 겨울 느닷없는 기름유출 사고로 전쟁의 참화를 겪은 듯 초토화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의 강인한 재활 의지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 국민들의 환난상휼(患難相恤) 정신이 총집결되어 어느 정도 상처를 씻어 가고 있는 중이다.

금북정맥은 280km의 긴 여정을 이곳 태안에서 마치고 서해로 잠기게 된다. 2007년 7월 말. 삼 정맥이 분기하는 안성 칠장산에서 첫 발걸음을 시작한 이래 한 걸음 두 걸음 누적시키다 보니 어느덧 금북정맥의 마무리를 앞두게 되었다.


우리네 종주 산꾼들은 1대간 9정맥의 종주에 일종의 강박관념적 집착을 가지게 된다. 그 산줄기 걷기 욕심 깊어 시간 날 때마다 산으로만 내달리느라 세상사에 무심할 수밖에 없었고 남들 다 했다는 자원봉사도 한번 나서질 못했다. 


그 와중에 태안 기름유출사고 뒷정리는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고 검은 기름 뒤덮었던 태안의 해변도 상처를 회복 중이다. 완전한 옛모습을 되찾는 데는 아주 오랜 세월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검게 물들었던 기름 덩이에서 벗어나기는 하였다. 금북정맥이 바다로 잠기는 안흥진 앞바다도 그러하다.


그 안흥진 앞바다에서 금북정맥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는 태안을 온전히 가로질러야 한다. 태안이 상처를 딛고 다시 옛모습을 회복하는데 아무 일조도 못한 사람이 이제 산길 마무리 하겠다고 그 고장을 찾자니 미안한 마음 크다.


하지만 우리 같은 소시민이 세상사 모든 일을 아름다이 완벽하게만 이뤄낼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태안의 강인한 회복력과 의지를 응원하고 그 고장의 산하가 옛 영광 되찾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자위는 되리라 싶다. 태안을 응원한다!




고난극복의 고장 태안(泰安)!


구간 : 금북정맥 제 19구간(붉은재~장재)
거리 : 구간거리(15.7 km), 누적거리(260.3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8년 3월 8일. 흙의 날.
세부내용 :

붉은재(09:48) ~ 조림지 ~ 오석산 전위봉 ~ 오석산(10:20) ~ 시멘트도로/고개 ~인삼밭 ~ 넓은 벌목지 ~ 241.7봉 ~ 바위 전망대 ~ 안부 고개 ~ 백화산(12:35) ~ 점심 후 13:17 出 ~ 태을암 ~ 바위전망대 ~ 모래기재(13:50) ~ 태안여고 로즈홀 ~ 무명봉 ~ 시멘트 도로 ~ 삼거리 ~ 순복음 교회 ~ 예비군 부대 ~ 무명봉 ~ 철조망 장애물2 ~ 159.7봉 ~ 퇴비산 분기봉(15:20) ~ 차도고개/32번 도로 ~ 무명봉2 ~ 구수산 갈림봉 ~ 유득재(16:25) ~ 시목초등학교 ~ 시목구판장 ~ 서해철망 ~ 도루개 ~ 우렁각시탑 ~ 쉰재~ 장재(17:34)

총 소요시간 7시간 46분.



3월 8일. 흙의 날.
오늘 내일 이틀간 연속으로 진행해서 금북을 졸업할 계획이다. 다섯 시에 알람 소리 듣고 눈은 떴지만 안락하고 따스한 침대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워 한참을 미적대느라 오늘도 출발은 늦다.

 

여덟 시에 집을 나서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는데 사위에 안개가 자욱하다. 서해대교쯤에서는 시야가 거의 사라질 지경이다. 서해나들목 나와 서산 거쳐 32번 도로 따르다가 진장리로 빠져 지난주 지났던 굴포운하 지나 도내리 북창마을에 도착했다.

 


백화산/白華山

태안읍 동문리(泰安邑 同門痢 )에 우뚝 솟은 해발 284미터의 진산(鎭山)이다. 산 전체가 흰 돌로 덮여있어 그 모양이 괴이하여, 봄이면 마치 부용화(芙蓉花) 같기도 하고, 또한 가을이면 돌 꽃이 활짝 핀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즉 백화(百花)가 난만한 느낌을 주는데, 이 백화산은 서울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조선조 500년간 태안에서 과거에 급제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백화산이 만약 黑華山으로 변모할 때는 이 태안에서 文萬武千이 난다고 전하여 내려왔는데, 다행히도 일제말엽에 들어와 소나무가 울창해져 산을 덮었으므로 태안 사람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미구에 해방과 더불어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도벌과 남벌로 인하여 흑화산이 다시 백화산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태안에서는 출세한 사람이 없다고 전하여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와 자연보호와 더불어 치산 녹화 운동이 전개되어 다시 흑화산으로 변모해 가니 앞으로 기대할 만 하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금북정맥 제 19구간 붉은재~장재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히면 원본을 볼 수 있음)

 

 

 

 

붉은재 갓길에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했다. 붉은재는 붉은 황토흙이 많아 얻은 이름인가? 각종 자료를 찾아보지만 붉은재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09:48)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붉은재를 출발했다.

 

 


# 붉은재.

 

 

# 저멀리 오석산이 보인다.

 

 

 

들머리에 들어서면 뭔가 개발한 후 조림을 해 둔 넓은 공터가 나온다. 그곳 소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한차례 밀어 올려 능선 마루금에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산의 우측 사면은 자작나무 조림지다. 좌측길로 한차례 밀어 올리면 '오석산 전위봉'에 선다.

아랫마을에서 박자를 맞춘 망치질 소리가 흥겹게 들린다. 마치 일본 영화 '자토이치'의 엔딩 장면에 나오는 것처럼 리드미컬하다. 우측 소나무숲 너머로 굴포운하가 보이지만 안개 때문에 희미하다.
잠시 내려 양지바른 묘지를 지나고, 금방 위로 올리면 산불 감시초소와 삼각점이 있는 '오석산' 정상에 선다.(10:20)

 

 


# 저멀리 대산화학단지의 굴뚝들이 안개 때문에 허공에 뜬 배처럼 보인다.

 

 

# 산의 우측 사면은 자작나무 군락지다.

 

 

# 굴포운하가 희미하게 내려다 보인다.

 

 

# 오석산.

 

 

# 괜차뉴님의 작품.

 

 

 

아래로 길게 내려 안부에 이르고 이후 편안하고 넓은 길 따라 진행한다. 군데군데 갈림길이 나오지만 직진만 하면 된다. 전방이 잠시 트인 묘지가 나온다. 그곳에서 가야 할 정맥길이 보이는데, 백화산까지는 대여섯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위로 밀어 올려 봉우리를 넘고 다시 하나 더 넘자 '시멘트도로'가 지나는 고개가 나온다.(11:00)

고도계가 55를 가리킨다. 고개 저쪽에서 오토바이를 탄 지역 주민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등산객들이 산에 쓰레기를 버린다면서 마구 화를 낸다. "나는 대간, 정맥을 하는 사람이고 산길엔 발자욱과 땀방울 외엔 아무것도 남기질 않는다." 고 얘기해 주지만 지금 이 사람에겐 화풀이할 누군가가 필요할 뿐이다.

한참 혼자 구시렁대더니 옆에 바짝 다가와서는 이것저것 질문을 해댄다. 어디까지 가느냐? 왜 혼자 다니느냐? 힘들지는 않느냐? 등등... 이 분 대답해 주느라 10여 분을 소모했다.

 


      

# 저 멀리 백화산까지는 여러차례 산을 넘어야 한다.

 

 

# 蘭이 겨울에도 지지 않는 푸르름을 보여 준다.

 

 

# 산후리와 상옥리를 잇는 고갯길.

 

 

 

고개 건너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 잠시 가면 '인삼밭'을 지난다. 두어 차례 오르내리다 다시 한차례 밀어 올려 '바위암봉'에 오른다. 좌틀하여 능선 따라 잠시 내렸다가 안부에서 한차례 밀어 올리면 '넓은 벌목지'가 나온다.

 

                          

# 이름표를 단 나무들이 많다.

 

 

# 생강나무가 부풀어 올라 곧 꽃을 피울 태세다.

 

 

# 벌목지.

 

 

# 벌목지 상단의 241.7봉에서 돌아본 인평리쪽 조망.

 

 

# 지나온 정맥길. 저멀리 팔봉산이 보인다.

 

 

 

# 파노라마로 펼쳐보았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벌목지 상단에 서면 태안의 들녁과 인평저수지, 그리고 지나온 정맥길과 저 멀리 팔봉산이 보인다. 벌목지는 산불로 인해 정리 작업을 해 둔 듯하다. 241.7봉에서 우틀하여 길게 내려 갔다. 백화산을 올라 가야 하는데 이렇게 길게 내려가면 어떡하냐?

내리막 중간에 바위전망대가 있어 올라보니 백화산이 바로 건너다보인다. 과연 암봉이 발달한 산이다. 정상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길게 아래로 내려 백화산 안부 '고개'에 섰다.(12:07) 현 고도가 140이니 다시 140을 더 올려야 정상이다. 백화산 오름은 꽤 경사가 급하다. 고개에서 입에 문 사탕이 다 녹을 무렵, 정상 직전의 능선 마루금에 올랐다. 공군부대와는 반대로 좌틀하여 잠시 오르면 백화산 정상에 서게 된다.(12:35)

 

 


# 암봉이 발달한 산이다. 이 산이 검게 변해야 태안에 인물이 많이 난다.

 

 

 

      

# 암봉을 당겨보았다.

 

 

# 백화산 들머리가 있는 고개.

 

 

# 지나온 241.7봉.

 

 

# 백화산. 華는 곧 花이다. 백화산은 흰 바위가 활짝 핀 꽃처럼 보여 백화라 불렀다.

 

 

# 지역주민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 드디어 바다를 볼 수 있다.

 

 

# 태안읍 전경. 도심에서 연기가 솟구치고 있다. 아마 불이 난 듯하다.

 

 

 

정상에 서면 태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불이라도 난 듯 연기가 뭉게뭉게 솟고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 멀리 바다까지 조망되는데 안개 때문에 명쾌하지 않은 게 안타깝다.

지역 주민들이 많이 올라와 있는데, 한 꼬맹이가 다가와 배즙을 내민다. 엄마가 갖다 주랬다고... 완전무장을 해 있는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했나 보다. 어쨌건 고마운 일이다. 멀리서 목례로 답례를 드렸다.

한참을 조망 구경하며 휴식한 후 우측 쌍괴대(雙槐臺)라고 적힌 바위쪽으로 내려갔다. 쌍괴라면 회화나무가 두 그루 있다는 얘긴데 주변 둘러보지만 그런 큰 고목은 뵈질 않는다. 잠시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조망이 좋은 바위전망대가 있길래 배낭 벗고 점심을 먹었다.



      

# 나그네에게 배즙을 나눠준 친절한 가족.

 

 

 

# 쌍괴대(雙槐臺).

 

 

 

점심 후 13:17에 출발했다. 조금 내려가면 '태을암'이 나온다. 꽤 규모가 있는 절이다. 바위에 '일소계(一笑溪)'라고 적어 두었다. '왜 사냐건 웃지요'의 경지인가? 아님 '한바탕 웃음으로' 집착을 벗어난다는 의미인가?

태을암을 지나 도로 따라 내려가다가 좌측 숲으로 들어간다. 곧 '바위전망대'가 나오고 바로 아래에 등로가 있어 그 길로 내려갔다. 잠시 가다가 등로와 헤어져 작고 희미한 길로 들어갔다. 표지기를 잘 봐야 한다.

군데군데 갈림길이 많이 나와 역시 표지기에 유의해야 한다. 잠시 후 숲을 벗어나 밭을 지나 '모래기재'에 내려섰다.(13:50)

 



# 일소계란 저 글귀처럼 한바탕 웃음으로 세상사 근심을 씻어 낼 일이다.

 

 

# 태을암.

 

 

# 절마당 햇살 좋은 곳에 누렁이 한 마리 무심(無心)히 엎드려 있다. 산사에 사는 강아지라 불심을 얻었나 보다. 점잖고 무심하다.

 

 

# 도로를 잠시 따르다 숲으로 들어 간다.

 

 

# 바위전망대에서 백화산을 올려다본다. 산이 많이 까매졌으니 인재가 나올만 하다.

 

 

# 밭을 지나면 모래기재가 나온다.

 

 

# 잘 생긴 소나무인데 안타깝게 말라 죽었다.

 

 

 

모래기재엔 차량통행이 많다. 도로를 건너 '태안여고 로즈홀' 우측길로 올라간다. 잠시후 좌측 숲으로 들어가라고 표지기들이 손짓한다. 그냥 이 도로따라 계속 가도 될것 같은데??

숲으로 들어가 잠시 오르면 태안여고에서 만든 듯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한차례 올랐다가 아래로 내리는데, 과연 태안여고쪽에서 올라온 도로와 다시 만난다. 거 봐!!


      

# 태안여고 로즈홀. 우측길로 올라 간다.

 

 

 

# 음~ 나야 행보(行步) 열심히 하고 있지!

 

 

 

# 이 도로를 따르다 언덕을 넘고 저 뒤쪽 정맥 산줄기를 따른다.

 

 

 

이제부터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마을길을 길게 지나야 한다. 시멘트도로 따라 길게 간다. 마을을 지나 언덕위에 오르면 'T자형 삼거리'가 나오고 그 너머로 퇴비산이 보인다. 우틀하여 농로를 따라 계속 길게 갔다. 잠시후 '순복음교회'를 지나 '예비군부대' 정문앞에 섰다. 



# 이곳에서 우틀한다.

 

 

 

# 오늘 출발지가 붉은재인 이유를 알것 같다. 토양이 아주 빨간 황토로 된 고장이다. 고구마 농사 잘 될 곳이다.

 

 

 

# 순복음교회와 예비군부대.

 

 

 

# 백화산이 배경 되어 준다. 그 배경으로 농부들이 농사 준비에 한창이다.

 

 

 

예비군부대 뒷산으로 올랐다가 좌측으로 한 바퀴 크게 휘감는 형상이다. 부대는 쥐죽은 듯 고요하다. 초병조차 보이지 않는다. 부대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숲으로 올라갔다. 곧 원형철조망이 앞을 가로막지만 밟고 지나가게 되어있다. 이 산의 사면은 온통 '예비군 훈련장'이다.

제법 가파르게 위로 밀어 올린다. 철탑을 지나 한차례 올려 무명봉을 올랐다가 잠시 내리면 등로에 철조망 장애물이 설치되어 앞을 가로막는다. 조금 더 가면 또 이런 철조망이 나타난다. 야간에 지날 때는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 같다.

159.7봉 오름엔 무수히 많은 우회로가 있다. 저게 모두 무슨 용도인지 알 수가 없다. 그중 하나의 우회로로 무심코 우회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잠시 후 우회로가 사라져 버리고 잡목숲이 앞을 가로막는데, 산을 완전히 한 바퀴 휘감은 후에야 정맥길과 합류할 수 있다. 잡목을 헤치고 나오느라 먼지 구덩이에 땀범벅이 돼버렸다. 잔머리의 결과다.

봉우리를 하나 넘고 다시 하나를 더 오르면 '퇴비산 분기봉'이다. (15:20). 정맥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90도 꺾여서 떨어진다. 그러다 TV안테나가 있는 분기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TV안테나 선이 따라 내려오고 있다. 계속 내려가면서 두어 번 오르내린 후 '32번 도로'가 지나는 '차도고개'에 내려섰다.(15:37)

 

 


# 저멀리 서해바다가 보인다.

 

 

 

# 묘지를 지나 32번 도로에 서고 저 능선을 한바퀴 휘감아 다시 도로로 복귀해야 한다.

 

 

# 32번 도로가 지나는 차도고개. 노을 그리고 바다.

 

 

 

이곳에서 32번 도로를 건너 구수산 전위봉을 올랐다 우측으로 휘감아 내려 다시 31번 도로에 내려서야 하는 형태다. 그냥 도로를 따라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도로를 건넜다.

한차례 밀어 올려 능선 마루금에 오르고 우측으로 잠시 올라 봉우리를 하나 넘는다. 곧이어 나타나는 두 번째 봉우리는 허물어진 '옛 산성터'이다. 봉우리 정상엔 누군가 성돌을 주워다 돌탑을 쌓아두었다.



      

# 허물어진 옛 성터. 

 

 

 # 그 돌로 탑을 쌓아 두었다.

 

 

 

다시 조금 내렸다 오르면 '구수산 분기봉'이다. 잠시 한숨 돌렸다가 우측으로 떨어져 내린다. 유득재 가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이다. 동진(東進)하는 이들은 땀 꽤나 흘리겠다.

길게 내려 'S OIL 주유소와 관광버스 주차장'이 있는 '32번 도로'에 다시 내려섰다.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면 '등나무 슈퍼'가 있는 '유득재'가 나온다.(16:25)



# 등나무슈퍼가 있는 유득재.

 

 

# 우측 산줄기를 한바퀴 감아 도로에 도로 내려 왔다.

 

 

 

사거리에서 시목초등학교 방향으로 우틀하여 도로 따라 길게 진행한다. 한적한 시멘트 길 따라 길게 진행하면 '시목초등학교', '시목 구판장', '서해 철망'을 차례로 지나고 '장대1리' 안내판이 서 있는 '도루개'에 도착한다.(16:58)



# 하루종일 유일한 벗이 되어준 내 그림자. 어느새 길게 길어졌다.

 

 

# 좁쌀만한 꽃. 그러나 이름은 큰 개불알풀이다.

 

 

# 도루개.

 

 

 

도루개 좌측엔 인삼밭 한가운데 있는 사당과 소나무숲이 있다. 계속 직진하여 비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했다. 이런저런 생각하며 터덜터덜 걸어간다. 지금쯤 우측 숲으로 들어가라는 표지기가 나와야 하는데?? 지도 확인하니 딴생각하느라 표지기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나 보다. 핑계김에 그냥 길 따라 진행했다. 우린 임도파여!!

길게 진행하면 우측에 묘지가 있는 고갯길이 나오고 아까 지나친 숲길로 올라갔다면, 이곳으로 내려 와야 할 곳이다. 잠시 더 진행하면 '우렁각시탑'이 나온다. 가족 묘인 듯한 묘지들 앞에 누군가 돌탑을 쌓아놓고 우렁각시탑이라고 적어 두었다.

뭔가 전설이나 이야깃거리가 있을 법한데 아무 설명이 없다.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지만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세상 먼저 떠난 부인을 우렁각시로 투사해 그 그리움을 돌탑으로 쌓아 둔 듯하다.

어쨌든 우렁각시란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헌신을 다 하고 있다면, 그녀가 아무 조건도 없이 그냥 날 위해 봉사하고 있다면, 게다가 절세미인이기까지 하다면.... 오호라!!! ^^*

우렁각시탑 앞에서 터무니없는 상상에 혼자 흐뭇해하다 다시 임도로 나와 진행했다. 잠시 더 가면 다시 '32번 도로'와 합류한다. '쉰고개'다.


      

# 어떤 사연이 있을 법한 우렁각시탑.

 

 

# 쉰재에서 32번 도로를 다시 만났다.

 

 

 

오늘 32번 도로와 몇 번이나 만났다 헤어졌다 반복했다. 우측으로 잠시만 가면 버스 정류소와 안흥으로 갈라지는 6번 도로를 지나고, 오늘 구간 종착지인 '장재'에 도착한다.(17:34)


      

# 만수가든이 있는 장재.

 

 

 

장재엔 고개 위에 음식점(만수가든)과 수룡모텔이 있다. 식사와 숙박은 저기서 해결하면 되겠다. 배낭 내리고 마눌에게 산행 마쳤음을 알리고 모텔에서 일박하겠노라고 말했더니, 조카녀석이 찾아 와서 형님네랑 같이 저녁식사한다고 빨리 돌아오란다. 오잉? 오늘 여기서 자고 금북 졸업하려고 했는데? 왜이리 주변에서 협조들을 안해주냐??

금북 졸업도 중요하지만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더 중요하다! 아쉽지만 졸업은 다음으로 미루고 차량회수하러 택시를 불렀다.

금북이여! 그대와의 마지막 접속은 결코 쉽지만은 않나보오!
천천히, 여유있게 또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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